• [잡담]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한 무게감2024.04.04 PM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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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사람들이 약간은 오해를 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 요셉'이라고 해서 '여러분도 총리가 되는 꿈을 가져야 한다'라고 최종 결론을 지어가는 설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요셉이 꾸고싶어서 꾼 꿈도 아니고 마지막에 의미를 알게 되었다.
물론 요셉이 철이 없어서 꿈을 꾸고 난 후에 형제들에게 자랑을 해서 미운털이 박힌건 맞는데 그 꿈을 꾸고싶어서 꾼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꿈을 마음속에 담았다고 해도 그 꿈이 '다 잘될거야', '언젠간 성공할거야'라는 의미도 아니었다.
총리가 되고난 후에 형제들을 만났을때 이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종으로 팔려갈 때에도 몰랐고 감옥에 갇힐때에도 몰랐고 바로의 꿈을 해석할 때에도 몰랐다.

2. 형통하다라고 하는게 우리 눈에는 좋은게 아닐 확률이 높다.
'만사형통'이라는 단어가 특정 교파에서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데 '형통'이라는 단어가 '나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약점을 단련하는 방향일 수 있다. 괴롭다는 이야기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 39:2~4)
=> 주7일 풀야근 확정! 회사의 모든 일이 그를 한번은 거쳐간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0~23)
=> ㅈㅅ에 가서도 풀야근 확정! 상사는 야근카드 대신 찍어달라는 사람임.

3. 그런데 친위대장 집에서 풀야근하고 감빵에서 풀야근한 결과가 이집트의 모든 정치 경제 시스템을 다 배우는 기회가 되는게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친위대장 집 정도면 높으신 분들 많이 왕래하는거 다 대접했을거고 잔치 벌리면 그거 다 맡고 예절 있게 행동하는거 돈 굴러가는거 사람쓰는거 다 배웠을테고
감빵에 아무나 들어오는게 아니고 진짜 실세들만 들어오는것이라서 그분들이 잘 지내도록 서비스도 하면서 궁중 예절 다 배웠을테고.
이건 각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는거고 거기서 잘 적응하고 인정받았다는 의미인데 과연 이렇게 우리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 애매한 문제가 됨
요즘 시대로 이야기 하면 '중소에서 풀야근으로 10년 일하면서 거래처 잘 뚫고 회사를 키웠는데 줄 잘타는 놈이 나를 밀어서 사직하게 되었고 ㅈㅅ 갔는데 거기에서도 일감은 다 나에게 던지고 야근 안하면서 야근비 받는 상사 밑에서 풀야근으로 ㅈㅅ를 성실하게 키우고 있는 사람'이 되라는건데.

물론 총리된것까지 요즘시대로 이야기 하면 '거래하던 대기업 회장이 ㅈㅅ에서 회사 키우는거 보고 바로 스카웃해서 계열사 하나 떼어서 사장으로 앉혀주면서 나랑 같이 일해보자'라고 하는 해피앤딩인데... 현실에서는 그럴리가 없죠.
'거기서 계속 일하다니. 미쳤음?'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겠죠. 그런데 이게 하나님 관점에서는 형통한거라네. 하하하. 믿고 어떤 상황에서던지 성실하게 일해야함!


4.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2형제중에 11번째 아들인데 가장 먼저 죽었습니다.
'얼마나 개고생을 했으면 먼저 죽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나올 수 있음.
힘들었겠죠.........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았지만 이민 1세대처럼 가장 먼저 선진국에 가서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마한 가계 집단이 큰 민족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은 위대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굵고 짧게 살다 갔.......

정리하자면 요즘 시대에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세요' 라고 이야기 하는건 '야근비 안나오는 ㅈㅅ에 가서도 10년 이상 성실하게 풀야근 하면서 사장의 차를 매년 새 외제차로 바꿔주는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의 삶에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환경에서도 묵묵히 열심히 살 수 도 있겠죠.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계획하고 밀어넣은거라서 도망도 못치도록 환경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꽉막히고 도망갈데 없고 토나오고 뭐하는지 모르겠고. 그런데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평타인 상황이고.
입만 살아서 기독교를 먹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저렇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도 여러분 주위에 어딘가에는 있을겁니다. 눈에 안띄고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시겠죠...

그분들은 그분들이고 과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나도 이런 자세로 살고 있는가?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것은 되돌아봐야함.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저런 자세로 산다는 생각 자체가 나오지 않겠죠.

아무튼 쉽게 '요셉'이라는 단어를 타인에게 심지 말라는 의미에서 주저리 주저리 써봤습니다. 물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는 상황이라면 유일하게 의미를 담아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PS) 10년 이상을 성실하게 일을 떠맡았더니 실력은 늘더라. 어디에 가던지 그 회사의 기둥뿌리가 되기는 하더라. 그런데 부자되는건 또 다른거더라.







댓글 : 7 개
막줄과 그 윗 문장이 와닿네요..
쉽게 요셉을 타인에게 심지 말라라..
좋은 말씀 듣고 갑니다..
꿈을 꾸는 사람 요셉'이라고 해서 '여러분도 총리가 되는 꿈을 가져야 한다'라고 최종 결론을 지어가는 설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
이런 설교하는 곳이 많나요?
개인적으로는 처음 듣는 말도 안 되는 해석이라 많다는 말씀에 충격이네요 ㄷㄷ
인터넷 검색해보시면 '총리'라는 단어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주신 좋은 꿈(좋은 결말)을 위해 현재를 참고 견뎌라'라는 설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 요셉에게는 없었죠. 수수께끼만 있었을뿐.
걍 하나님 믿고 굴렀는데 하나님은 총리로 쓰신거고.
우리가 믿고 구른다고 같은 결과 주실것도 아니고.

저렇게 인지한다면 우리의 기대가 현실과 멀어질수록 신앙이 주저않을 확률이 높아져요.
'내가 기대한 꿈'과 'ㅈㅅ에서의 개고생 10년'의 격차를 겪으면 걍 burn out 되겠죠.
  • Pax
  • 2024/04/04 PM 09:41
좀 쉽게 설교를 하다 그런 뉘앙스로 귀결되어버리는 예가 많긴 합니다.

이른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 엔딩이죠.
문제는 그걸 너무 세속적 성취와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게 니가 하나님 잘 믿고 믿음생활 해도 하나님은 니가 얼마나 잘 해내나 보고 싶으셔서 평생을 위기에 처하게 하실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목회자 입장에선 자주 할 수가 없는 거죠.

이른바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신도를 보면서 월드컵 4강 진출한 한국팀 보듯 [쓰애끼이-! ]하고 주먹을 꼭 쥐며 감동하고 싶어하시며 그 주인공이 너라서 니가 요나처럼 평생 개고생할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신도들에게 그렇게 자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못 돼서 그렇습니다.

여담이지만 주기도문의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구절은 이 고생길 명백한 케이스까진 테스트하지 말아달라고 신자의 입장에서 신께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방향이 이렇다 보니 복받고 재산증식하고 잘먹고 잘 산 성경 인물이 워너비인 기복적으로 살짝 기운 신도분들이 교회엔 제법... 많습니다. 목회자 분들의 설교도 그런 방향으로 점점 기울게 되고요.

근데 신자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게 "그럼 니가 물고기 뱃속의 요나나 돌맞아죽은 스데반이나 목잘려 대령된 세례자 요한처럼 할래?"라고 되물어지면 할 말이... 없어지는게 문제입니다
얼마나 잘 해내나 보고 싶으셔서 하는건 아니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성숙하게 하는게 목적입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신도를 보고싶으셔서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성숙하게 하는게 목적입니다.

요나의 경우는 나중에 이야기 할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사서한 고생입니다.
현재 시대로 예를 들면
* 한국을 노리는 중국이 ㅈㄴ 싫은 상황이다.
* '베이징에가서 회개하라. 회개안하면 망한다.'라는 설교를 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 쟤들이 회개하고 국가가 부강해지면 한국이 위태롭다. 쟤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하는건 민족반역자 수준이다.
* 임무가 싫어서 미국 서부로 가는 배를 타고 갔다.
* 폭풍우 속에서 '죄송합니다. 가겠습니다' 한마디 하고 돌아가면 끝나는걸 '바다에 던져버려'라고 강짜를 놓았다.
* 고래가 중국 본토에 토해놔서 '어디 망해봐라'라고 전하러 갔다.
* 도시를 가로지르는데 3일이 걸리는 큰 도시에서 설교하기 싫어서 하루길만 전하고 끝냈다.
* 그런데 그거 듣고 왕부터 시작해서 회개의 운동이 벌어져버렸다. (이러니까 내가 하기 싫다고 했잖아요.)
* 언덕에서 도시 망하는꼴 보려고 하는데 도시가 안망함. (아. 진짜 이렇게 하실줄 알았다니까요. 나쁜놈들 안죽이시잖아요.)
* 내가 그 도시 사람들도 아낀다.
많은 목사님들이 신자들이 듣고싶어 하는 설교를 하는 경향이 높아지는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개고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깨어있는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듣고싶은것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더 많겠죠.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는동안 지배계층의 정권교체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감옥에 있지 않았으면 숙청 당할수도 있었다는데
요셉이 감옥에 있어서 오히려 몸을 온전히 보존할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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