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vie Review] [리뷰] 라쇼몽(1950)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을 탐구해보자(1)2016.08.24 PM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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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요즘 한창 침몰 중인 일본 영화계가 낳은 불후의 감독으로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감독이다. 언젠가 봐야겠다 봐야겠다 마음만 먹었다가 마침 시간이 남아도는 적기인것 같아서 바로 실행에 옮겼다. 가장 먼저 그를 세계에 알리게 한 작품 [라쇼몽] 부터 시작한다.

[라쇼몽]은 1950년에 만들어져 그 이듬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일명 '라쇼몽' 효과'라고 하는 서술트릭으로, 사건을 기억하는 인물에 따라 묘사가 크게 달라진다. 즉, '기억의 주관성'이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기주의는 타고난 원죄" 라는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는 장치로 활용된다.



각설하고 스토리만 놓고보면 매우 간단하니 잠깐 짚고 넘어가자.
 
"때는 헤이안 시대(서기 794~1185/1192), 한 나무꾼이 숲 속을 거닐다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는 본디 사무라이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아름다운 아내와 숲 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때, 우연히 마주친 타조마루라는 도적이 사무라이 아내에게 욕정을 품고 사무라이를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사무라이를 과연 누가 죽인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도적과 아내, 사무라이(무당에게 접신하여 증언한다.), 나무꾼(목격자)의 이야기가 다 다르다. 과연 이 살인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단 도적이 사무라이의 아내에게 홀려, 남자를 공격해 결박하고 그 자리에서 아내를 겁탈한 것까지는 증언이 일치된다. 그 후 부터 4명의 증언이 달라지는데, 일단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팩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남자는 단검에 찔려 죽었다.(아내, 사무라이의 증언)
or 남자는 도적의 칼에 죽었다.(도적, 나무꾼의 증언)

2. 두 남자 사이에 결투가 있었다.(도적, 나무꾼의 증언)
or 두 남자 사이에 결투는 없었다.(사무라이, 아내의 증언)

두 부류로 나눠진 객관적 사실 또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 같은 부류의 의견이라도 사건의 묘사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사무라이와 아내의 증언의 객관적 사실만 놓고보면 같은 부류이지만, 영화 속의 묘사는 이 두 증언이 가장 상충된다.
사무라이는 도적과 아내의 관계가 겁탈이 아닌 화간으로 보고, 마지막에 남편인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본다. 그는 배신감과 절망감에 휩싸여 단검으로 자결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아내의 얘기는 다르다. 자신은 끝까지 지조를 지키려 노력했지만 겁탈을 막을 수 없었으며, 그런 자신을 사무라이가 벌레처럼 취급했다고 증언한다. 

 
네 사람 모두의 증언에는 조금씩 겹쳐지는 부분이 있지만 또한 논리적으로 허점이 존재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네 사람이 사건 증언에는 자신들의 입지를 변호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네 사람, 각각의 증언에서 묘사된 특이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도적은 자신의 남성스러움과 무법자의 이미지를 어필하려고 한다. 그의 증언에서 묘사된 도적과 사무라이의 결투는 화려한 액션으로 그려지며, 영웅적인 전투 끝에 도적은 사무라이를 죽인다. 한껏 무력을 과시한 그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이 결투는 후의 나무꾼의 증언과 다르게 묘사된다.

- 아내는 자신이 남성에게 수동적이며 지조있는 아내임을 어필하려 한다. 그녀의 증언에서 묘사되는 아내의 모습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따로 없다. 이는 남편인 사무라이의 증언과 상충된다.(남성에게 순종적이며, 수동적인 여성상은 당시엔 가장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 사무라이는 자신의 죽음을 비장함으로 포장한다. 자기의 죽음은 결투의 패배로 인한 것이 아닌 아내의 배신이 간접적인 원인이며, 결국 자살을 택함으로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주체 역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일본인의 자살에 대한 개념을 생각한다면...) 결투가 없었다는 점에서 도적과 나무꾼의 이야기와 상충되며, 유일하게 아내의 배신을 증언하고 있다.

- 나무꾼의 증언은 전체적으로 도적과 유사한 사건전개로 보여지나, 아내가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사무라이와 도적의 싸움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특별한 차이를 보인다. 더군다나 자신의 남성다움을 주장한 도적의 증언과는 달리 자신이 겁탈한 여자에게 매달리는 찌질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후에 묘사되는 사무라이와 도적의 결투는 더 가관으로 서로 자기 몸이 베일까봐 칼도 제대로 못휘두르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같은 싸움이 벌인 끝에 도적이 겨우 사무라이를 죽인다. 
판관(즉, 관객)의 눈으로 보기엔 제 3자의 입장이었던 나무꾼의 증언을 더 믿을 수 있었으나, 그도 결국 사건에 가장 중요한 단서인 값나가는 단검을 몰래 훔침으로서 신뢰성을 잃고 만다.



영화는 끝끝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한다. 애초에 이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사건을 기억하는 인간의 주관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주관성 결국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니, 결국 진실을 온데간데 없고 서로 자기 얘기만 하는 세태에 대해서 염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는 딱 인간의 이기심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논제는 진실을 쫓으려는 인간의 노력에 물음표를 던진 것이 아닐까? 사건은 결국 인간의 주관적 시선에서 묘사된 증언을 말할텐데 결국 진실이란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진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구로자와 아키라는 영상이란 매체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다양한 연출기법을 사용한다. 영화는 숲속을 거니는 장면을 계속해서 우거진 나무잎 사이로 비치는 태양빛을 보여주는데, 이 나무 숲밑에서 논란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이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그 본질을 알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이와 대비되어 네 사람이 증언하는 자리(아마도 관아일 것이다.)에서는 숲속의 장면과는 완벽하게 대비된다. 숲속의 복잡한 오브젝트 대신, 심플한 담벽과 아무것도 없는 공터 한자리에 있으며, 그 위로 태양빛이 내리쬐어 그림자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증인들을 보여줄 때도, 카메라는 제3자의 시선이 아닌 판사의 시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증인들은 이따금 금기로 여겨지는 카메라 응시를 자주 한다. 숲 속 장면의 현란했던 카메라 움직임은 여기서는 매우 절제되어 있으며, 구도 또한 연극무대를 보는 듯이 설정되어 있다. 회상의 공간과 판단의 공간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대비는 결국 진실과 진실을 쫓는 행위,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리뷰글을 읽어보니 진중권의 칼럼에서는 해체주의까지 나오고... 철학적으로 많은 텍스트가 읽히는 영화인 것 같다. 나는 그 방면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 섣불리 쓸 수는 없지만, 나름 그렇게 써보려고 노력을 했다. 매우 허접하긴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아시아 영화계에서 이렇게 철학적으로 읽혀지는 텍스트가 나온 것은 [라쇼몽]이 최초라고 들었다.(물론 나도 들은 얘기라서 진위여부는 알 수가 없다.) 영화가 제작되었던 시기나 감독의 개인사를 생각해보면... 전후 혼란스러웠던 일본인의 정신구조가 반영된 영화라고 생각된다.

 
* 가혹했던 일제통치시기를 기억하는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들려주는 메세지에 무릎을 탁 치면서도 답답함도 동시에 느껴진다.
 
** 분명 구로사와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인간의 이기심에 더 초점이 맞춰진 듯 하다. 본 리뷰에서는 거의 얘길 안했지만 라쇼몽, 즉 '나생문'은 성곽의 제일 끝에 위치한 문으로서 도시의 출입문이다. 원작인 소설에서 묘사될 때, 시체가 오고나가는 을씨년 스러운 문으로 역할했다고 한다.(우리나라도 광희문이 이렇게 쓰여졌다.) 즉, 시체가 드나드는 공간의 맥락에서 볼 때, 감독은 기억의 주관성보다는 지옥도 묘사를 더 중시한 것 같다. 정작, 해외평단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따로 있지만.

댓글 : 7 개
여러모로 대단했던 영화.... 인생 영화 중 하나네요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별로 촌스러움이 안느껴지죠.
오히려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연출이나 미장센같은 영상문법들은 요즘 영화들을 초월한 듯하고...
유투브에 올라와 있던 이걸 보고..
결국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거 전부 찾아보게 되었네요..;;
진짜 대단한 작품이자 감독..지금의 일본영화는 왜 저렇게 되었는지..
아무래도 제작자들의 썩어빠진 마인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구로사와 감독이 정작 일본내에선 천대받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보면서 편집도 편집이지만 조명에 참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빛과 어둠을 정말 자연스럽게 썼어요.
이거 정말 공감.
숲속 장면같은 경우에는 오브젝트가 너무 많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때문에 흑백영화에서 빛조절 제대로 못했으면 망했을 것 같은데;;;
처음 볼때 라쇼몽 효과에 중점을 두고 내러티브에 포커스 했는데, 나중에 미장센 공부하면서 "헐 그럼 라쇼몽 그거 숲장면 죄다 자연광이였던거야?"하면서 놀란 기억이 나네요.
제 기억으로 외국 감독들이 라쇼몽을 베니스에서였나 처음 봤을 때 자연광쓴다는 것에서 컬쳐쇼크가 왔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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