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4. 가장 빨리 죽는 새 (1)2015.02.17 PM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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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사람에게 있어 몹시 도움이 되는 가축이다. 농경사회에서 농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지만, 광활한 대지를 날렵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그들의 다리는 인간에게 기동력을 선사해 주었다. 이는 전쟁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깊숙이 연관되어, 말이 없는 생활은 꿈꾸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가령 여섯 마리의 말로 구성된 일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들의 다리로 움직이는 상황이었다면 그들은 진즉에 퍼질러졌을 것이다. 후치는 말의 위대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저기 다리가 보이는군요.”



리타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가 후치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는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한 곳을 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곳에는 150큐빗은 되어 보이는 긴 다리가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그것은 폭도 적당히 넓었고 상당히 탄탄한 느낌을 주었다.



샌슨도 리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 눈을 비비며 설명했다.



“아, 여긴 이라무스 다리입니다. 다리를 건너 좀 더 들어가면…… 아, 수도 바이서스 임펠의 서부 관문에 해당하는…… 이라무스 시가 나타납니다.”



“그럼 거기 들어가서 쉬세나. 자, 기운을 내게.”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던 칼이 짐짓 쾌활하게 말했지만 샌슨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 사이에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를 부르려는 칼을 리타가 제지했다.



“자게 내버려 두죠. 이곳은 저도 지난번에 와봤으니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마인타그양.”



칼은 한 손으로 슈팅스타의 고삐를 이미 잡고 있는 리타의 모습에 겸연쩍게 고개를 숙였다.



일행은 칼라일 영지를 떠난지 얼마 안 된 지난 밤, 운차이의 말을 빌리자면 ‘바이서스 여행자의 새로운 지혜’에 해당하는 일을 경험했다. 휴다인 고개에서 일행과 불미스런 일을 겪었던 오크들이 그들을 추적해온 것이다.



꽤 몸집을 키워 왔기에 일행은 모두 상대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전면으로 붙는다면 승산이 있다고 여겼지만, 살생을 싫어하는 이루릴을 배려해 그들을 혼란시키고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추적을 완전히 따돌리기 위해 밤 동안 쉼 없이 달렸다. 그 결과, 일행은 몹시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만약 자신의 앞에서 화렌차의 복수를 운운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OPG의 맛을 보여주리라는 후치의 다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샌슨과 후치는 제대로 말에 타고 있는 게 용한 상태로 간신히 말 위에 붙어있었다. 칼과 운차이는 피로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루릴과 리타는 별로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후치는 강철 같은 그녀들의 모습에 여자의 의지가 대단한 것인지, 그들 개인의 특성이 신기한 것인지 고민하면서 어느새 다시 수마에 빠져들었다.



후치는 자제력을 잃은 고개를 급속히 낙하시켰다. 그 행동은 곧 아픔으로 연결되었다.







“아얏!”



후치는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온통 새하얀 것이 눈에 띄었다. 눈을 조금 찌푸리면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의 뒤통수였다. 그리고 지금은 양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있다.



뒤통수의 주인은 고개를 홱 돌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있는 큰 눈이 후치를 바라보았다.



“아프다 에요!”



“미안해…… 요?”



후치는 순순히 사과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지금 말 위에 있고, 그의 앞에는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타고 있다. 거기다 둘의 몸은 밀착되어 있는 상태다.



“누, 누구세요!”



몸을 황급히 뒤로 빼다가 말에서 떨어질 뻔한 후치는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러자 그를 황당한 듯 바라보는 시선들이 보였다. 그의 앞에 앉아 있던 새하얀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꿈꿨냐 해요?”



“아, 카피……?”



“정신 차리라 에요.”



후치가 그녀를 알아보자 소녀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후치는 머뭇거리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카피는 그의 앞에 앉은 상태로 제미니의 고삐를 쥐고 있었다. 후치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러자 희뿌연 안개 속에 갇혀있던 기억이 조금씩 머리를 내밀었다.



그와 샌슨은 말과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만큼 피곤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을 보고 리타가 제안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샌슨이 탄 슈팅스타의 고삐를 잡아 이끌고, 후치가 탄 제미니에는 카피가 이끄는 게 어떠냐고 했다. 후치는 잠결에 그것을 승낙했었는데, 설마 카피가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서 고삐를 잡고 있었을 줄이야.



자신이 정말 정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후치는 얌전히 카피에게 몸을 맡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마의 유혹은 너무 거세서 뿌리치기 힘들었다. 어째서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살짝 들렸지만 무시했다.



운차이가 탄 말은 슈팅스타의 안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다리는 말의 다리 밑으로 묶여진 상태라서 어떻게든 슈팅스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리타가 슈팅스타를 이끌어준다는 사실에는 안도했지만, 외간 소년소녀가 한 말에 타고 있는 모습은 봐주기 힘들었다.



리타를 필두로 한 일행은 다리로 접어들었다. 멀리서 봐도 꽤 웅장한 다리였는데, 바로 앞에서 보니 한층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리의 중간쯤에 낯선 것이 하나 보였다. 왼쪽 난간에 기대고 앉아 있는 사람 모양의 그것은 희한하게 생긴 무기를 옆에 두고 있었다. 마치 삼지창처럼 생긴 것인데, 가운데 날이 삐죽하게 긴 모양새였다.



“트라이던트 같은데, 꽤 길다란 것이군요.”



“아함…… 트라이던트면 작살이지 않아요? 던질 수도 있어야 할 텐데……”



후치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덕분에 균형이 뒤로 쏠려 카피에게 눈총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여상스럽게 무시하며 다리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괴상할 정도로 커다란 트라이던트는 퍽 다루기 불편해 보인다.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익히긴 어렵겠지만, 제대로 사용할 줄 안다면 상대하기 꽤나 까다로울 것 같아.”



“그래요?”



“응.”



후치는 간만에 듣는 리타의 단답에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한편 그녀의 손에 이끌리고 있는 샌슨은 리타에게 모든 걸 일임하기로 했는지, 제대로 졸고 있었다. 아니, 그건 졸고 있다기보다는 자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후치는 ‘어휴, 저 오거.’ 라며 고개를 저었다.



일행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중간쯤 되어 난간에 있는 사람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 사람이 움직였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둔 트라이던트를 들어 빙글 돌리더니 가로로 길게 세웠다. 그것은 다리를 건너는 일행의 진로를 막아버리는 행위였다. 명백한 시비였기에 일행은 당황해 멈추었다.



그는 일행이 멈추어 서자 난간에서 몸을 떼었다. 그는 트라이던트를 바로 세우며 후드를 걷어 올렸다. 망토 사이로 보이는 하드레더와 덩치 때문에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나타난 얼굴은 예상외로 젊은 아가씨였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가 헬턴트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무슨 일이신가요?”



리타가 덤덤한 어조로 묻자, 붉은 머리의 여자가 싱긋 웃었다.



“오늘은 개시하자마자 손님이네. 남자는 모두 10셀씩 30셀, 엘프는 여자니까 20셀에 미인이시네? 그럼 30셀. 거기다 죄다 미인들이시군. 여자는 도합 90셀. 어린이는 반액요금으로 5셀. 모두 125셀 되겠군요.”



“미인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아낌없이 지불하시죠?”



“그런데 무슨 돈을 내놓으라는 것인가요?”



“다리 이용료.”



깔끔한 대답에 이루릴은 의아함을, 칼을 비롯한 남자들은 기막히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칼은 허허 웃으며 농담 삼아 질문했다.



“왜 여자는 20셀에 미인은 10셀 추가요?”



“난 남자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미인은 기분 나빠서.”



후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없군. 비장의 미남계를 써야겠어. 아무래도 그거라면 내가…… 뭐요, 왜?”



후치는 농담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주는 샌슨에게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원망했다. 이루릴은 ‘후치, 이성에게 매력을 발산해서 자신을 따르도록 만드는 방식은 당신에겐 무리에요.’라고 말했으며, 리타는 진심으로 측은한 표정으로 그를 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여자의 진심이 듬뿍 담긴 반응에 방년 17세의 꿈 많은 소년, 후치 네드발은 눈물을 머금으며 현실을 원망했다.



리타는 피식 웃으면서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유 있는 일행의 태도에 퍽 재밌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아이는 반액이라면서, 저 아이는 어째서 30셀로 받는 거죠?”



“어려도 미인은 미인이야.”



“음, 그런가요? 그러면 이러면 어떤가요? 카피, 변신 풀어봐요.”



“알았다 해요.”



카피의 새하얀 몸이 그보다 더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바로 뒤에 있던 후치는 갑자기 나타난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고, 그의 앞에 있던 순백의 소녀는 자그마한 드래곤으로 바뀌어있었다.



제미니의 머리로 뒤뚱뒤뚱 기어가 똬리를 트는 카피의 모습에 여자는 놀란 모습이었다. 하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사람이 느닷없이 웜링으로 변신하는 광경은 평생 보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테니까.



그리고 일반적으로 웜링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대개 하나의 사실을 떠올린다.



“꺄악! 드, 드래곤?”



“완전히 아니라곤 할 순 없지만, 일단 부정하겠습니다.”



“카피다 해요.”



카피는 큰 눈을 깜박거리며 작은 머리를 수그렸다. 그 모습은 드래곤이라기보다 무슨 인형에 더 어울릴 법했다. 카피의 귀여운 자태에 여자는 놀람으로 부릅떠졌던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이거 뭔가요?”



“글쎄요. 그것 보단 이런 경우에 통행요금은 어떻게 책정하나요?”



리타의 말에는 비꼼의 의도는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이루릴이 남에게 물어보듯, 그녀의 말에는 단순한 궁금증만이 담겨 있었다. 여자는 붉은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그래도 여자니까 30셀일까?”



“하지만 사람은 아니지요. 미인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니까요. 넓게 봐줘서 이루릴은 인간과 용모가 비슷하니 인정한다 하더라도, 카피는 본 모습이 지금과 같으니 30셀을 받는 건 부당하지 않나요?”



“어, 어? 그건 그러네.”



당황하는 여자의 모습에 리타는 작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제 아버지께서 해주신 먼 곳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곳에는 유료도로당이 있다고 합니다. 용, 즉 드래곤의 경우, 하늘을 날수 있으며 하는 짓이 새끼고양이만큼 유치할 경우에는 면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도로에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새끼고양이 같다는 말에 카피가 낮게 크르릉 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들어도 고양이의 갸르릉거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헤실헤실 풀어지는 얼굴을 여자는 간신히 다잡았다.



“헤에? 아, 아니. 난 다리를 관리하는 것 따윈 관심도 없어! 그저 여길 지나가고 싶은 사람에게 적정한 통행료만 받을 뿐이지.”



“그건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당신은 저희 말에게는 요금은 메기지 않았어요.”



“…… 그래서?”



“카피의 몫은 빼도록 하지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할 여지가 가득하다지만, 그녀의 본 모습은 저렇게 귀여운 생물이니까요.”



“으음……”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리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리타는 전혀 미동도 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마주했고, 여자는 카피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러도록 하지.”



리타는 싱긋 웃으며 카피를 바라보았다. 카피는 뭔가 불만이 있는 눈초리였지만, 사실 그런 모습마저 귀여웠다.



그 때, 소란에 눈을 뜬 오거형 전사가 졸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야?”



“강도.”



여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어깨를 척 올리며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직업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하지만 난 나이트호크라는 직업명을 더 좋아해.”



“소유권 이전 전문가가 더 센스 있는 것 같은데?”



“뭐, 확실히 그렇죠.”



리타와 후치는 능청스레 듀칸 버터핑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사이 샌슨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는 킬킬 웃었다.



“돈을 안내면 어떻게 되지?”



“자신의 수영실력을 동료에게 뽐낼 기회를 가지게 되지.”



“그래?”



샌슨은 슈팅스타에서 내리더니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리타가 그의 모습에 걱정스레 물었다.



“방금 잠에서 깼는데, 괜찮겠어?”



“뭐, 잠 깰 겸 운동 삼아서 몸 푸는 거야.”



“아니, 난 네가 잠결에 사람을 헤칠까봐 그래. 그러면 빼도박도 못하고 몬스터가 사람을 습격하는 꼴이 되니까.”



“뭐? 허허.”



샌슨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후치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순순히 인정하는 걸 보니까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했군. 이제 야생의 드넓은 품으로…… 으앗!”



후치는 휘두르는 샌슨의 팔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샌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롱소드를 여자에게 겨눴다.



“나이트호크가 낮에 돌아다니나? 좋아, 난 여자를 좋아하니까 10셀, 하지만 미인이 아닐 경우엔 10셀 추가. 20셀을 내면 안 건드리고 지나가주지.”



여자는 발끈했다.



“내가 미인이 아니라고? 이 정도면 어디 안 빠지잖아?”



샌슨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이 분들이랑 같이 다녀봐. 어지간한 얼굴은 눈에 안 들어온다고.”



“확실히 이루릴 정도면 보기 힘든 미인이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리타에게 샌슨은 차마 말 못할 시선을 던졌다. 여자는 그 장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보다보다 이런 배짱 좋은 놈은 처음 봤네. 아, 너 시골에서 방금 올라왔지? 그래서 내 이름을 못 들어본 모양이네? 내 창만 보더라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말이야.”



“못 들어봤어.”



“난 트라이던트의 네리아. 잘 기억해.”



“그래? 난 헬턴트의 샌슨 퍼시발. 혼자 상대해 주지.”



샌슨은 일행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러자 네리아가 손가락을 뻗어 리타를 가리켰다.



“이봐. 방금 전까지 저 아름다운 아가씨랑 통행료 협상을 잘 하고 있었는데, 왜 굳이 나서서 강에 빠져들려고 하는 거야?”



“그게 협상이냐?”



“그럼?”



“내가 알기로 이 나라에서는 그런 걸 협박이라고 부르거든.”



“말로는 안 될 도련님일세.”



샌슨은 롱소드를 빙빙 돌리며 앞으로 나섰다. 네리아의 창이 길기 때문에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리라는 좁은 장소에서는 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는 여유가 있었다.



네리아는 농담을 하긴 했지만 샌슨에 비해 여유가 부족해 보였다. 그녀는 긴장이 묻어나는 자세로 샌슨과 대치하고 섰다. 그렇게 1분쯤 흘렀을 때 샌슨이 하품을 했다. 느닷없는 동작에 네리아의 자세가 살짝 흐트러졌다. 그 틈에 샌슨이 고함을 질렀다.



“왁!”



“이얍!”



네리아는 반사적으로 트라이던트를 찔러 들어왔다. 샌슨은 옆으로 돌며 가볍게 트라이던트를 내리쳤다. 그의 동작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네리아는 황급히 트라이던트를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힘 좋네?”



“아, 미안. 아팠어? 그런데 빨리 끝내자고. 피곤해.”



샌슨은 진심을 담아 말했고, 그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바로 움직였다. 몸이 앞으로 기울자 네리아가 곧바로 트라이던트를 내질렀다. 하지만 샌슨의 움직임은 속임수였다. 그는 바로 몸을 뒤로 빼며 트라이던트의 간격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트라이던트를 위로 쳐올렸다.



“일자무식!”



후치가 샌슨의 동작을 보고 외쳤다. 리타도 흥미롭게 그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샌슨은 후치의 일자무식을 흉내 내어 트라이던트를 쳐낸 다음 계속 회전해 옆으로 베어 들어갔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작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있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옆면이 네리아의 허리를 가격했다. 네리아는 얼굴을 한층 더 붉게 물들이며 다시 달려들었다.



사실 첫 수부터 승부는 결정 나 있었다. 후치조차도 네리아와 샌슨의 실력 차는 알아보았다. 네리아가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순 없지만, 샌슨은 그녀보다 확실히 더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샌슨은 트라이던트를 쳐 내리며 그대로 옆으로 돌아 네리아의 엉덩이를 검면으로 쳤다. 울컥하며 몸을 돌리는 네리아의 목에는 어느새 롱소드가 겨냥되어 있었다.



“……”



네리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샌슨은 그녀에게 창을 버리라는 눈짓을 했고, 네리아는 그의 말에 따랐다. 트라이던트가 소리 내며 떨어졌고, 샌슨은 그것을 리타에게 던졌다.



"자, 20셀이야. 어쩔래?“



“못 내겠다면?”



“음, 넌 지금까지 돈을 못 낸 사람을 어떻게 했는데?”



“헤엄치게 했다고 하……”



네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샌슨이 짓궂은 표정으로 강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녀의 귀로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엉덩이를 치는 취미가 있는 줄 몰랐네, 샌슨?”



“야. 그건 대결 중에 어쩌다가……”



“더군다나 힘 약한 여자를 제압하고 강에 빠트리려고 하다니…… 난 너를 그렇게 키운 적이 없단다.”



“…… 네가 언제 날 키웠다고.”



샌슨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리타가 살짝 웃으면서 네리아에게 말했다.



“쿡쿡. 우리 덩치 큰 아가의 잘못은 제가 사과하지요. 저 녀석도 당신을 강에 빠트릴 생각은 없을 겁니다.”



샌슨은 롱소드를 집어넣으며 슈팅스타의 위로 올라탔다. 네리아는 그 모습을 황망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하지요. 우리는 돈도 빼앗지 않고, 당신을 강에 빠트리지도 않았으니 그 정도는 들어주겠지요?”



“…… 들어 보고.”



네리아는 정신을 차리고 리타를 경계하며 말했다. 리타는 손으로 샌슨을 가리켰다.



“저 녀석 기수 노릇 좀 해주시겠어요? 저대로 두면 다리를 다 건너기도 전에 강으로 돌진할 것 같거든요.”



“기수라고?”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 타서 고삐를 잡아주세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런데 그게 왜 불쾌하단 거야?”



“너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렴.”



투덜대는 샌슨을 네리아는 잔뜩 긴장하며 쳐다보았다.



“당신 말대로 덩치 큰 아가가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야! 넌 도대체 날 뭘로 보고. 나도 눈이 있거든?”



“내가 뭐 어때서!”



샌슨은 말없이 이루릴과 리타를 다시 손으로 가리켰고, 네리아는 전과는 달리 화를 내는 것과 동시에 어딘가 기가 죽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리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 녀석에겐 물레방앗간에 두고 온 아리따운……”



“으아아앗! 자, 어서 타.”



후치처럼 차마 직접 응징하지 못하는 샌슨은 그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재빨리 네리아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네리아는 그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당황한 샌슨을 보고 피식 웃더니 손을 잡았다.



“어차피 이라무스 시로 가려고 하던 참이었으니까, 잠깐 말 좀 빌릴게.”



“그래. 내가 졸면 인도 부탁해.”



샌슨은 그대로 네리아를 끌어 올려 앞에 태웠다. 그리고 바로 눈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네리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참, 보기와 다르네?”



샌슨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벌써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리아는 포기한 듯 앞을 바라보며 고삐를 쥐었다. 후치와 칼은 대단하다는 시선을 샌슨에게 보낸 다음 그를 뒤따랐다. 운차이는 후치와 카피에 이어 더 못 볼꼴을 본다는 듯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바로 옆에 있던 후치는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이펀어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화를 발산하는 언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행은 이라무스 시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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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소제목이지요?

이번에는 다른 편들과 다르게 소제목부터 주제를 짐작하기 쉬울 겁니다.

네리아의 매력을 잘 살리도록 노력해봐야지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ps. 설 당일이 목요일이라 아마 그날은 못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요일에 뵙지요.
댓글 : 2 개
네리아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리아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서, 과연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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