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5)2015.05.28 PM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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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슨과 후치는 털보와 흉터를 묶었다. 리타는 옷을 갈아입는다며 여자들 방으로 갔고, 다른 일행은 이들을 어찌 처리해야 뒤탈이 없을까 고민했다. 네리아는 털보 앞에서 몸을 숙였다. 그녀가 볼을 툭툭 치면서 깨우자 털보고 금방 일어났다.



“자, 문댄서. 내 친구들은 이렇게 세다고. 난 너희들하고 동업할 생각 없어.”



문댄서라 불린 남자는 일행을 둘러보다가 인상을 팍 썼다.



“저 놈들은 밤이슬 맞는 놈들이 아닌데?”



“이분들은 그런 분들이 아냐.”



“흠, 트라이던트의 네리아도 갈 데까지 갔군. 모험가 흉내라도 낼 생각인가?”



후치는 트라이던트의 네리아라는 위명이 그녀의 말대로 꽤 알려진 것 같아서 놀랐다. 솔직히 네리아의 첫인상을 고려해볼 때 그렇게 유명할 거 같진 않았으니 말이다.



네리아는 문댄서의 싸늘한 말에 냉정하게 대꾸했다.



“난 열쇠 따기나 함정 해체 같은 것은 할 줄 몰라. 그건 특별히 더 미화된 열쇠 기술자이지, 성실한 나이트호크가 아냐. 그리고 이분들은 보물만 있다면 산꼭대기든 땅 밑이든 찾아가는 그런 사람들도 아니고. 우린 그냥 친구야.”



“죽은 친구가 될 거야.”



샌슨이 울컥했지만 나서진 않았다.



“말을 못 알아듣는구나. 할 수 없지. 후치? 술 한 병만 받아올래?”



네리아의 말에 순간적으로 문댄서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네리아를 노려보았다.



“난 머저리가 아냐. 그런 장난으로 날 어떻게 할 것 같아?”



“해봐야 알지. 후치. 드래곤의 숨결을 달라고 하면 돼. 그리고 컵은 다섯 개.”



후치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순순히 방문을 나섰다. 네리아는 싸늘하게 노려보는 문댄서를 향해 차가운 웃음을 지어준 다음 샌슨에게 말했다.



“샌슨. 저 놈을 의자에 앉혀서 벽에 붙여줘.”



샌슨은 힘들 거 없다는 듯 문댄서에게 다가갔다. 문댄서는 반항하려고 했지만 샌슨의 우악스런 힘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일행은 그가 얌전히 네리아가 말한 대로 위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네리아가 뭘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 술이 필요한 걸까?



“가져왔어요.”



후치는 금방 드래곤의 숨결을 가져왔다. 네리아는 술병과 컵들을 받아들더니 먼저 다섯 개의 컵을 테이블 위에 일렬로 세웠다. 그리고 밀봉된 술병을 뜯었다.



화악.



술병에 봉인되었던 술의 향기가 방안에 퍼져나갔다. 가까이 있던 후치는 강렬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샌슨은 눈은 껌뻑이더니 말했다.



“후아, 이거, 레너스에서 유스네가 가져왔던 그거잖아?”



“어, 그러네?”



후치는 익숙한 향이라 생각하던 참이었기에 바로 동의했다. 네리아는 모든 잔에 드래곤의 숨결을 따르더니 일행을 보았다.



“여러분. 대거가 있으면 빌려주시겠어요?”



칼이 대거를 꺼내며 걱정되는 투로 물었다.



“별로 어렵진 않소만.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칼 아저씨. 여긴 나한테 맡겨줘요.”



명확한 대답을 피한 그녀의 말에 칼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얌전히 대거를 건네주었다. 후치와 샌슨도 건네주었고 이루릴은 망고슈를 대신 전해줬다. 마지막은 네리아 본인이 들고 있는 대거였다. 이로써 다섯 자루의 대거가 모두 모였다.



네리아는 다섯 개의 대거를 잔 옆에 각각 늘어놓았다. 그녀는 두 손을 깍지 껴서 머리 위로 들어올려 기지개를 켜고는 말했다.



“이봐. 문댄서. 여자가 필요하다는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여자를 구해 보면 되잖아. 너희들은 오늘 처음 날 봤어. 그냥 돌아가서 날 잊으면 돼.”



“너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돼.”



“그래? 음, 이렇게 해. 돌아가서 날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해.”



“싫어.”



단호한 대답에 네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할 수 없지. 여러분, 네리아가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게요.”



네리아가 일행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때마침 옷을 갈아입은 리타가 카피와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순간 문댄서의 눈빛이 기묘하게 변했다.



네리아가 일행을 침대에 앉히며 당부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일어나지 말아요. 끼어들지도 말고. 이건 우리 세계의 일이니까 끼어들면 곤란해요. 알았어요?”



일행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네리아는 방긋 웃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들어 문댄서에게 건배하듯 내민 다음 쭉 들이켰다. 떨어져 있어도 느껴질 만큼 진한 향에 리타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그 엄청난 술을 들이킨 후 네리아는 눈을 조금 깜빡거렸다. 그리고는 대거를 들어 한두 번 위로 던지면서 무게를 살피더니 순식간에 문댄서에게 집어 던졌다.



“아악!”



이루릴이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일행은 기겁하며 네리아를 쳐다보았다. 운차이와 리타만이 변함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날아간 대거는 문댄서의 왼쪽 귀 옆에 꽂혔다.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로 차이가 날만큼 아슬아슬했다. 네리아가 말했다.



“포기해.”



“안 돼.”



문댄서의 단호한 대답에 네리아는 망설이지 않고 두 번째 잔을 들었다. 상당히 독한 술이 분명한데도 네리아는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술기운이 확 올라오는지 양 손으로 얼굴을 확 감쌌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욱. 역시 세네……”



그러더니 두 번째 대거를 들어올렸다. 단순히 감을 익히기 위해서인지 습관인지 대거를 한두 번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순식간에 집어 던졌다.



문댄서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그의 오른쪽 귀 옆에서 한 마디쯤 떨어진 벽에 박혔다.



“포기해.”



“안 돼.”



잠깐 시선이라도 머무를 만 한데도 네리아는 곧장 몸을 돌려 세 번째 잔을 들어올렸다. 잔을 잡은 손이 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일행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네리아는 곧장 세 번째 잔을 비웠다. 그녀의 입가로 술이 조금 흘러내렸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더니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테이블 모서리를 쥐고 거칠게 숨을 뿜어내더니 머리를 흔들며 다시 바로 섰다.



칼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나섰다.



“네리아 양!”



“뒤에서 말하지 마! 죽일 거야!”



거침없이 터져 나온 폭언에 칼은 굳어버렸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외쳐댄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네리아는 세 번째 대거를 들어올렸다. 이루릴의 망고슈였다.



이번에도 대거를 한두 번 공중에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빗나가 네리아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망고슈가 바닥 깊숙이 박히는 것을 보더니 네리아가 베시시 웃었다.



“날이 좋네……”



그것은 섬뜩하다고 해야 할까? 소름이 돋는 모습이었다. 네리아은 망고슈를 힘줘서 뽑으려다가 너무 쉽게 빠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코코.”



네리아는 의자를 잡고 힘겹게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리를 벌린 다음 팔을 뒤로 당겼다.



그때 문댄서가 말했다.



“포기하지.”



“난 맺고 끊는 게 확실한 남자가 좋더라.”



네리아는 빙그레 웃으며 문댄서에게 걸어가 뺨에 키스해 주었다. 하지만 문댄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시선을 멀리 두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질린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문댄서는 잠시 시무룩한 얼굴을 했지만 어쩐지 일행이 있는 쪽을 계속 노려보았다.



네리아는 자기가 들고 있던 컵을 칼에게 내밀었다.



“칼 아저씨. 소리 쳐서 미안해요.”



네리아는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칼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네리아와 문댄서를 보더니 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더니 바로 술잔을 들었다.



“흠, 좋군……”



멋진 유언을 남긴 칼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술을 나름대로 마신다는 칼이건만 한잔을 버티지 못하고 졸도해 버린 것이다.



네리아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네 번째 잔을 이루릴에게 건넸다. 이루릴은 그것을 받아들지 않고 네리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이 대거를 잘 던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실수를 하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요?”



“그래요.”



“죽어도 상관없다는 의미였나요?”



“그건 저 친구의 판단이죠.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면 계속 버텼을 테고, 목숨이 귀하다면 포기하는 거죠. 내가 선택하는 것은 아니에요. 난 상황을 만들 뿐.”



“생명과 의지, 둘 중에 하나를 강제로 선택하도록? 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자유?”



“정확하네요.”



이루릴은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얌전히 한모금 마시고나서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후우우, 헉, 헉. 이거 너무 독해요오오오오……”



“효과가 빠르죠.”



이루릴의 새하얀 얼굴은 삽시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흐느적거리며 말했다.



“…… 당신은 후치와는 또다르은 의미에서, 후우, 친구를 만드는군요오오. 후우, 강제적이인 서언태액의 요구우. 인간이라안, 이해하기 어려어어……”



늘어지는 말을 하는 이루릴을 보며 네리아는 배실배실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리타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칼이 깨어있다면 당장에 말렸을 테지만 불행히도 그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어있었다. 리타는 주저 없이 술잔을 받아들었다.



“향이 괜찮군요.”



“좋은 거예요. 쭈욱 마셔요.”



리타는 피식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한번에 넘기진 않았다. 조금씩 음미하듯이 입안에 넣고 굴렸다. 그녀 스스로도 한번에 마셨다가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 네리아는 샌슨과 후치에게 빈 잔을 건네고서 술을 따라주었다. 샌슨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었고 후치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네리아는 운차이에게도 술잔을 내밀었으나 운차이는 싸늘한 조소로 응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네리아는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리타는 향긋하게 속에서부터 퍼지는 주향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에서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내는 카피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카피는 술잔을 냉큼 받아들더니 냄새를 킁킁거리고 맡아보고선 인상을 팍 썼다.



리타는 카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문댄서를 바라보았다. 공교롭게도 그도 리타를 보는 중이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리타는 발코니로 나가려는 네리아를 불러 세웠다.



“네리아.”



“혼자 있게 해줄래요?”



“문댄서가 카피에게 반한 모양인데요?”



술잔에 혀를 내밀어 아주 조금 맛을 보던 카피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깜빡였다. 네리아는 문댄서와 카피를 번갈아 보더니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 친구가 끈질긴 면은 있지만 그렇게 취향이 독특한 줄은 몰랐네요.”



순식간에 취향이 독특한 남자가 돼버린 후치가 네리아를 째려보았다. 왜? 제미니가 어때서? 라는 시선에 네리아가 헤실거리며 웃었다.



리타는 다리를 꼬며 카피에게서 다시 잔을 뺏어들었다. 아쉬운 듯한 시선으로 멀어지는 잔을 바라보는 카피를 다독이며 그녀는 한 모금 술을 머금었다.



“흠, 역시 좋군요.”



“리타.”



“글쎄. 질문은 제가 아니라 저 남자에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내 동생을 그렇게 빤히 바라봤는지 말이에요.”



아직 정신이 깨어있는 이들의 시선이 문댄서를 향했다. 그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네리아가 그에게 다가가 몸을 구부리며 물었다.



“헤에. 도대체 우리 문댄서 님께서는 뭐 때문에 그리 쳐다보신 걸까아?”



문댄서는 이를 갈며 말했다.



“벌써 작업에 착수한 거냐?”



“작업? 무슨 소리야?”



“……”



문댄서는 험악한 시선으로 리타와 카피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가문의 문양이 들어간 반지를 낀 여성과 붉은 머리를 한 소녀가 잡혔다. 이 정도로 딱 맞아떨어지는 조합은 없다.



“너를 발견했다고 내가 너무 들떴군. 이 정도로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니.”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문댄서가 싸늘하게 네리아를 쳐다보았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아니면 진짜로 모르는 건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네가 여기서 더 나를 약 올렸다가는 어떻게 될지는 알겠는 걸.”



“……”



네리아의 표정은 문댄서와 달리 생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망고슈가 쥐어져 있었다. 누구도 그녀가 진심으로 웃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리타는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취기가 올라온다. 그녀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모양이죠. 네리아와 카피, 그리고 저에게 관련된 어떤 내용을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다른 걸 물어보고 싶군요.”



리타는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길쭉한 다리가 유려하게 허공을 돌았다.



“당신은 우리 일행을 모르나요?”



“대답해 줘야할 대가는?”



“당신과 동료의 안전.”



“웃기는 군.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서 외부인이 끼어들지 마라.”



“정말 웃기는 건 당신의 미련이 남는 시선이죠. 그 시선의 의미에 따라서 앞선 일은 얼마든지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문댄서는 입을 다물고 리타를 노려보았다. 리타는 무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받았다. 술기운에 얼굴이 상기된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차갑고 냉정한 얼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 말이다.



문댄서는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처음 본다.”



“그러면 나는요?”



“마찬가지.”



“그렇군요.”



리타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의문에 찬 시선을 보내는 일행들에게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몸을 일으켜 묶여 있는 문댄서를 풀어주었다. 후치가 걱정되는지 물었다.



“그대로 놔줘도 돼요?”



“응.”



짧은 대답에 일단 후치는 수긍했다. 리타가 밧줄을 풀자 문댄서는 손목을 문질렀다. 리타는 조금 떨어져 그의 동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댄서는 얌전히 흉터의 포박을 푼 다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쾅 닫으며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고 나자 네리아가 리타를 확 돌아보았다.



“리타. 뭘 알고 있는 거죠?”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들이요.”



“말해봐요.”



“도둑길드가 우리를 추적하지 않는단 사실이에요.”



“앗!”



후치가 놀라서 외쳤다. 샌슨과 네리아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 중요한 목적을 잊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네리아의 행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지만 안전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리타는 그들의 경악에도 느긋하게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잔을 들었다.



“도둑길드에서 우리를 쫓고 있었다면 당연히 문댄서라는 사람도 우리를 알았어야 해요. 하지만 그는 정말 모르는 것처럼 반응했죠.”



“리타하고 카피를 쳐다본 건 그거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야, 후치. 그렇다면 그는 나만 바라봐야 했거든. 카피의 모습은 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어. 카피를 볼 이유가 없는 거지. 그러함에도 카피를 보았다는 건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흐음. 어렵군요.”



“간단히 아는 것부터 생각하자.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도둑길드에서 우리를 수배하지 않았다는 것. 설마 이라무스 시의 사건이 여기까지 전해지지 않은 것도 아닐 테고.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에겐 잘 된 일이야.”



샌슨이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수배가 내려지지 않았다면 그들의 행동은 상당히 자유로워진다. 그건 네리아도 마찬가지기에 그녀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모양이다.



“어째서 알려지지 않았지?”



“정말로 시장의 말대로 일망타진해서 그럴지도 모르죠. 혹은 어떤 사건이 있어서 정보가 단절 되었거나, 길드 수뇌부에서 감추고 있을지도요.”



“그건 너무 나갔어요.”



“그런가? 음.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드는데.”



“뭐, 어쨌든 중요한 건 안 알려졌다는 거겠죠. 다른 건 생각해봐도 알 수 없을 것 같고요.”



후치가 정리하듯 말하자 리타와 네리아는 받아들였다. 리타는 계속 눈을 빛내며 술잔을 노리는 카피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카피는 전처럼 혀로만 맛보지 않고 한 모금 술을 넘겼다.



“흐에엑!”



괴상한 비명과 함께 카피는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화끈한 알콜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꽤 짜릿했을 것이다. 후치는 제미니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카피를 보니 자연스레 고개가 휘휘 내저어졌다. 그를 곤경에 빠트렸던 뮤러카인 사보네가 생각난다.



리타는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연신 카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리아는 이곳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편이 좋겠어요.”



“응?”



네리아가 눈을 번쩍 뜨면서 리타를 바라보았다. 리타는 천천히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은 일단 추적이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리고 그 사람은 뭔가 중대한 일에 연루되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네리아가 남아 있다면 도둑들의 문제에 대해서 훨씬 잘 대처할 수 있겠죠.”



“으음……”



“절 따라오겠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미리 말하는 거 같아 좀 무안하지만, 제 생각에는 확실히 일행에게 네리아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네리아의 마음이지만요.”



“리타는 어딜 간다고 했었죠?”



“북해에요.”



“헥?”



네리아가 깜짝 놀랐는지 격한 숨을 토해냈다. 리타는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어느 사람이라도 북해에 간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리라. 거길 사람이 간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판단은 네리아가 내려요. 그리고 지금은 일단 쓰러진 사람들부터 치우는 게 좋겠군요.”



리타는 손으로 카피를 가리켰다. 붉은 머리칼의 소녀였던 아가씨는 어느새 축 늘어진 새하얀 웜링이 되어 있었다.



“술이 쎄긴 쎈 가봐요.”



가볍게 웃는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후치는 옆에서 칼을 바로 눕히려고 애쓰는 이루릴을 도왔다. 이루릴은 휘청거리는 몸으로 칼의 다리를 들어올리려다 놓치고 침대에 코를 박는 등 악전고투 중이었다. 후치가 칼을 똑바로 눕히자 이루릴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테이블에 놓아둔 자기 잔을 들었다. 그녀는 체리빛 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



“음냐, 지이인짜 도옥해요. 하아아……”



“괜찮겠어요?”



“그래에도 차암, 맛있어요오오.”



복숭아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이루릴을 보며 후치는 생각했다. 이건 심장에 해로운 물체다.



샌슨은 자신의 잔을 말없이 만지작거리면서 이루릴에게 넋을 놓고 있었다. 확실히 취해서 귀여운 엘프를 본다는 건 진귀한 일이다. 리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축하고 있는 후치에게서 이루릴을 넘겨받았다.



“재우고 올게.”



“리타아아아. 우리 바아앙에 가요오오오.”



한 손에는 카피를 들고 한 손으로는 이루릴을 부축한 채 리타는 방을 나갔다. 바로 옆방이기에 금방 방에 들어간 리타는 카피를 침대에 내려두고 옆 침대에 이루릴을 조심스레 뉘였다. 이루릴이 방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요오오.”



“천만에요. 옷 벗겨 줄까요?”



“갠차나여어어……”



이루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스르륵 눈을 감았다. 리타는 그녀의 부츠와 재킷에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그것들을 다 입은 상태로 자는 건 불편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몸을 못 가누던 시절에 받은 은혜도 있으니 갚을 기회였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발코니에 뭔가가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리아였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며 리타와 눈이 마주쳤다.



“술 먹고 위험하게 발코니로 다녀요?”



“기본소양이죠. 그보다…… 뭐 하는 거예요?”



“옷 벗기는 데요.”



네리아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리타와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리타는 이루릴이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는 관계로 강제적으로 옷을 벗기고 있었다. 네리아의 입장에서 어떤 시선으로 비춰졌는지 알아차리기에 그녀는 그런 쪽의 지식이 부족했다.



대충 자기 좋을 정도로만 벗겨둔 리타는 한숨을 쉬며 방을 나왔다. 네리아는 혼자서 쉬겠다고 했기에 그녀는 곧장 옆방으로 향했다. 옆방에선 후치와 샌슨이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리타가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갔다.



“맛있어?”



“독하긴 엄청 독하지만요.”



후치의 솔직한 감상에 리타는 자신의 잔을 들었다. 벽에 꽂혔던 대거를 치웠는지 한켠에 잘 모아져 있었다. 리타는 흠집이 난 벽을 보며 말했다.



“이거 수리비 좀 줘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줘야지.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니까.”



일행의 돈을 관리하는 샌슨이 말했다. 후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발코니 쪽을 바라보다가 의아한 투로 말했다.



“어? 네리아 어디 갔어?”



“방금 우리 방으로 넘어왔어.”



“나가는 건 못 봤는데요?”



“발코니로.”



눈을 깜박거리는 후치에게 샌슨이 보충해서 말했다.



“공중제비를 넘더니 옆 발코니로 넘어가더라.”



“헤에. 술 마시고 공중제비?”



“깔끔하게 넘어가던데.”



“착지도 완벽했고.”



후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입을 쩍 벌렸다.



“아! 그럼?”



샌슨이 빙긋 웃으며 술잔을 흔들었다.



“아까 취한 것은 연극이었지. 그 여자 정말 술 세군.”



“부럽다.”



리타의 솔직한 심정에 후치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부러워요? 공중제비? 아니면 술이 쎈거요?”



“당연히 술이 센 거지. 잘 안 취하면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을 거 아냐? 나처럼 주사가 심한 애주가에겐 아주 부러운 존재라고.”



“…… 스스로 말하기 좀 부끄럽지 않아요?”



“사실인데 부끄러울 게 뭐 있어.”



그러며 리타는 술잔을 기울였다. 드래곤의 숨결이라는 이름답게 첫 맛부터 화끈하게 들이닥치는 술이다. 과연. 지금 이대로라면 드래곤처럼 브레스를 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리타는 빈 잔에 술을 따르며 후치와 샌슨에게 잔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취해도 챙겨줄 사람도 있고, 정신을 놓아도 문제없는 목적지에 있으니까 마음껏 마실 수 있겠어.”



“그거 좀 불안하게 들리는 데요?”



“나도 네 주사는 별로 겪고 싶지 않을 걸.”



샌슨과 후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의 잔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이미 리타의 얼굴에는 음주에 대한 기대감과 술에 대한 열정이 그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참, 어째서 그들의 친구는 이토록 술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은 칼이 있었다면 결코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질렀다.



후치와 샌슨은 잔을 채웠다. 그들은 허공에서 잔을 부딪쳤다.



“모르겠다. 일단 마시고 보자.”



“죽지만 않으면 되지.”



“내일 살아서 보세나.”



만족스런 미소를 띠우며 세 사람을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후치와 샌슨은 어떻게 하면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는 리타에게 잡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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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않은 이루릴 모에버젼입니다.

역시 술은 위대한 겁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4 개
그래에도 차암, 재밌어요오오.
가암사아아합니다아아아
역시 酒님의 위력...
저는 술을 못 먹는 체질이라 술꾼들 뒤치닥거리 담당이지요 ㅋ
저도 절제하는 타입이라 뒤치닥거리 담당입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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