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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우쿨렐레2021.07.14 PM 02:45
우쿨렐레를 친 지, 내 악기가 내 손에 들어온지 대략 2년이 조금 더 된 것 같다. 와이프가 산걸 내가 몇번 쳐보고, 내가 사고 나서 조금 후에 어린이날 선물이라며 아들것도 하나 사줬으니 아마 맞을 것 같다. 19년 봄 언저리. 어느 날 갑자기 와이프가 우쿨렐레를 가져왔는데 가져온 날부터 이미 와이프보다 내가 많이 쳤다. 치는법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금방 배우고 내가 원하는 음을 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치고 싶은 음이 어떤 음인지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기본 셋팅된 우쿨렐레는 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아 칠 수 있는 곡이 몇 곡 있지는 않았다. 첫날엔 한 마디씩 계속 늘려가며 로망스를 쳤던 것 같다. 띵띵거리는 발랄하게들리는, 까불거리는듯한 음이 듣기 좋았다. 첫날, 이튿날, 퇴근하고 나면 와이프의 우쿨렐레는 내 차지였다. 금새 와이프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알아보니 남자용 우쿨렐레는 여자용에 비해 훨씬 비쌌다. 남자용 여자용이라고 구분하지는 않고, 크기에 따라 콘서트, 소프라노, 테너 정도로 구분하지만 보통 작은것은 여자가, 큰 것은 남자가 친다.
와이프 것은 대략 20만원 언저리였는데, 내 것은 대략 70만원정도 줬던 걸로 기억한다. 인생에 그렇게.. 그런형태로, 물건을 가지는걸로 인해서 신났던 때가 몇 번 없었던 것 같다. 뭐 그런 격정적인 신남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지만. 맨 아래쪽 현을 한 옥타브 낮은 줄로 바꾸고, 잘 치고 싶어 레슨을 다닐까 학원을 다닐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결국 다 접고 내 맘대로 그냥 설렁설렁 치는걸로 만족했지만.
우쿨렐레도 기타처럼 코드를잡고 현 두개 이상을 튕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그렇게 치는것이 손톱에 걸리기도 하고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그렇게 코드를 잡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고, 내가 좋아하는 곡들, 치기 어렵지 않는 곡,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곡들의 멜로디만 따서 치는 방식으로 쳤다. 절대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음감정도는 가지고 있어 음을 캐치해 내는 게 어렵지 않았고, 내가 잘 부는 휘파람과는 소리의 느낌이 다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봐야 얼마나 다르겠냐만은 내 것은 가격만큼 소리도 좋은 것 같았다. 물론 내 것이 낼 수 있는 소리의 반의반의 반도 못 냈지만 줄을 튕기는 내가 듣기에 좋았다.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음을 캐치해내는 것도, 원하는 강도로 줄을 튕기는것도, 내가 내는 소리 하나하나가 모여 들을만한 음악이 되는 것도 모두 즐거웠다. 나의 그런 즐거운 기분과는 별개로 왠지 내가 치면 많은 노래가 조금 우울해 지곤 했지만… 내 감정상태를 나도 모르게 투영해 낸 거였겠지. 한참 우울할 땐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강도와 박자를 조절해 반복하는것 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우울한 음을 쳐 내곤 했다. 의식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적으로 칠 때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는것이 조금은 문제였을까. 의식해서 신나게 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그렇게 됐다. 전문용어로 뒷박을 탄다고 하던데..
우울할때마다 혼자 앉아서 이수영의 ‘얼마나 좋을까’ 나 파판8의 주제가인 eyes on me 등을 치고, 작년 이맘때 즈음부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나오는 곡들을 따라 치기 시작했다. 칠만하고 좋았다. ‘돌이킬수 없는 걸음’ 이나 ‘탄지로의 노래’ 같은것도 멜로디만 따서 치기 좋았다. 우울할때마다, 뭔갈 생각하고 싶을 때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을 때에도, 가끔은 그냥 이유없이 치기도 했다. 그냥 껴안고 앉아서 몇 줄 튕겨보고, 어쩔땐 조율만 하고 내려놓기도 했지만 보통은 몇 곡을 치기도, 떄로는 30분 한시간씩 치기도 하곤 했다. 애정을 갖지 않기는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에 반한 중후하고 깔끔한 외형. 멋들어지게 생기기도 했거니와 필요할 때 항상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고, 언제나 기대한 만큼 나를 위로 해 주었다. 과분한 물건이 주인을 잘못 만나 자기가 가진 포텐셜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나는 참 좋아했다. 내 것이라고 할 만큼 애정을 준, 애정한 첫 악기. 마지막 악기일 수도 있겠지만.
일이 있기 바로 전날… 2일, 지지난주 금요일에도 쳤다. 컴퓨터 의자에 앉아 멍하니 게임 돌아가는 걸 구경하면서 그리 쳐지지 않은 기분으로 그날도 즐겁게 쳤다. 평소와 다르게 걸어놓는곳을 옮겨서 컴퓨터 책상에 앉아 기지개 켤때마다 떨어트릴 뻔 한 적이 많아 즐겁게 치고나서 오랫만에 케이스를 꺼내 컴퓨터 할 때 방해되지 않도록 안방 문 뒤에 걸어놨다. 원래는 케이스도 없이 그냥 내 손 닿는 곳에 아무렇게나 걸어놨었는데, 보일때마다 칠 수 있게. 무슨 바람이 들어서 하필 그 때, 굳이 그 날 케이스에 걸어서 그것도 평소에 걸던 옷장이 아니라 방문 뒤에 걸어놨는지 모르겠다.
토요일 오후 최근 시작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야한건 아니지만 18금 게임이기도 하고 내가 뭔가를 하는 화면을 다른 사람이 보는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저리 가라고 여러번에 걸쳐서 이야기 했는데 찔끔찔끔 사람 약올리듯이 가지도 않고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났다. 결국 애한테 보지말고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안방 문을 발로 찼다.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또 자기혐오에 빠져있었다. 애한테 소리를 또 지르다니. 너무 우울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번뜩 생각이 나 우쿨렐레를 확인해봤다. 열어보니 상판이 꺠져있다. 줄이 묶이는 부분… 이 깨져서 틀어져있다. 또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서 우쿨렐레를 잡고 애한테 방에 얼씬도 말라는 말을 하며 우쿨렐레를 애 방 벽에 휘둘러 아예 부숴버린다. 정신나간놈이 따로 없다. 나 스스로에게조차 나의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럽게 보여지지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친구가 뭐좀 해달라며 불러서 집에서 좀 나가있을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들이 또 따라 나온다. 속도 없는건지 뭔지. 둘이 친구네 집에 가면서 아들에게 또 나쁜 말들을 퍼붓는다. 마음에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애가 들을 필요는 없는 말들. 친구네 집에 있는둥 마는둥 빨리 일을 처리하고 나서 바로 다시 집으로 간다. 친구에게 말을 좀 하고 나니 기분이 풀어지긴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화는 가라앉았지만 자기혐오는 남는다. 내가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이런… 내가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난리를 칠 때마다 자기혐오에 빠지는것도, 이럴 때마다 손쉽게 아이 핑계를 대기 위해 방어기재를 발휘하여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머리속의 내 자신도 너무나 싫다. 아이에게 많은것을 양보한다고 말 할수 있지만 아이는 그런 양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관심과 상호작용을 바라는데, 그것이 날 지치게 하고 있고, 이것이 언제 끝날지는 보이지도 않는다. 힘들다. 우울하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집에 차를 대고, 애만 올려보낸 후 그냥 차를 타고 이리저리 다녔다. 주말 그 시간에 연락해볼만한 사람도 없다. 내가 없게 만들었다. 마음은 더 우울해진다. 그냥 외곽에 차를 세우고 차 천장에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몇시간이고 그냥 멍 때리다 집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바뀐것도 해결된 것도 없는 집으로.
이렇게 아이에게 터진게 벌써 몇 번인가 싶다. 애 때문만은 아니지만 올해 초엔 모니터를 깨 먹었고, 이번엔 우쿨렐레다. 폭력적으로 변하는 나를 바라보는것은 다른사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즐거운 일도, 반가운일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편해 진다고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날 떄까지 나를 방치할수도, 이런 상태를 유지하며 아들과 관계가 틀어지게 둘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아들을 키우며 너무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있다.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애가 어릴때도 성질이 유난해서 몸이 많이 힘들었으나, 몸이 힘든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나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아이의 아이다움을 받아들이는것이 너무 어렵다. 그러나 나는 방법을 찾을 거다. 나를 지치게 하는 많은 부분이 아이와 내가 공간의 분리가 전혀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을 거다. 아이에게 폭발해서 자기혐오에 빠지고 끝없는 우울에 빠지는 일은 이번 일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 숨쉬어숨
- 2021/07/14 PM 03:12
지금 생각해보면 - 보아라. 내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있고 너무나도 화가났다. 라고 알아주길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수리를 의뢰했지만 악기는 살릴 수 없었고, 그 뭔가를 알아주길 바랬던 사람과의 관계 역시살리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고 여전히 별탈없이 잘 살고는 있습니다만, 이렇게 아직도 가끔 떠올리게 되네요.
- 놀아본오빠
- 2021/07/14 PM 03:48
- 중성미자
- 2021/07/14 PM 05:27
화를 내는게 그 당시에는 어쩔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나한테만 돌아오는게 아니라
아이에게도 그 주변에도 안좋은 영향으로 돌아오더군요. 결과적으로 피하지 못할 파도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걸 많이 봤습니다. 제 경우에나 제 주변의 경우에서도요. 저도 그 파도를 피하지 못해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조금만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더라구요. 그 후회를 줄일려면... 그런 연습을 해보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안에 응축시키고 쌓아서 터트리기보다 살짝 옆으로 흘려 보내는 그런 연습.
초면에 주제넘은 말 죄송합니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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