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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 - 아라이 신이치2014.06.23 PM 01:32
식민주의가 남긴 상흔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가져갔던《조선왕실의궤》가 다시 한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엔 한국의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 쇼비대학교의 하야시 요코는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가 개인이 보유하는 것까지 합친다면 30만 점 가까이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조선왕실의궤》가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도록 일본 국회를 설득한 저자 아라이 신이치는 과거의 상처,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미래로 다함께 나아가기 위해선 문화재 문제가 꼭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근대사의 역사는 문화재 약탈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던 한국 문화재를 약탈해간 것을 시작으로 일본으로부터 광복할때까지 수많은 문화재가 국외로 사라졌습니다. 문화재 약탈은 학자들과 군대가 일체가 되어 국가적 사업으로 수행되었습니다. 궁중에서 수백 년 간 축적해 온 재화와 보물이 하루아침에 없어졌고, 조상의 묘들은 파헤쳐졌습니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유물은 물론이고 삼국시대나 석기시대의 유물까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표적이 되었습니다. 문화재 약탈은 곧 역사의 약탈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재를 수집함으로써 국력을 과시하고자 했고, 동시에 동양 학술과 미술의 정수를 한군데 집결시킴으로써 동양의 정점에 서고자 했습니다. 문화재 약탈은 군사,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아시아의 유일무이한 패권국가를 꿈꾸는 것으로써 탈아입구론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수집한 문화재는 식민지를 다스리는 방법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조선 쇠망의 원인이 상류 사회의 부패에 있다는 정체사관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일본과 한국이 본가와 분가와 같은 관계라는 일한동종설설, 고대 일본이 한반도 일부를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설 등이 등장했습니다.
중요한 역사 문서가 개인 수집가에게 매각되면 일반 사람들이 도서관이나 사료관을 통하여 집단적인 정체성이나 기억의 원천에 접근할 기회가 사라지고 만다. 과거를 상품화하면 공공 영역은 좁아진다. -《공공 철학》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세계 곳곳에서 식민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약탈 문화재 문제는 중요한 안건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일본에 대한 연합군의 방침도 어떤 재산이 약탈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그 일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약탈 문화재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일본의 한반도 점령 기간을 1910년부터 할 것인지, 1931년(만주사변) 이후로 할 것인지의 논쟁이었습니다. 기본 규칙은 1910년(한국병합)을 언급했지만 연합군 미술기념물 과장이었던 존 스타우트 소령과 프리어미술관의 아치볼트 웬리는 1931년 이전에 있었던 한국과 일본의 불평등조약, 한국병합 등은 당시 합법적으로 성사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연합군 총사령부는 최종적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으로 결정했고 그 이전에 유출된 한국의 문화재는 반환 정책에서 제외되어버렸습니다.
연합군의 전후조치는 독도문제처럼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도 많은 분쟁거리를 낳았습니다. 연합국의 대일 정책에 관한 최고 결정 기관인 극동위원회는 한국은 극동위원회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에 배상받을 수 없고,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기고 간 재산 취득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결정해버립니다. 극동위원회에는 아시아에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가 참여했기 때문에 탈식민지적인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 역시 한국의 참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화재 문제는 한일 간 직접 교섭으로 해야 했고 약탈 문화재를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 쉽게 돌려줄리가 만무했습니다.
대영박물관의 논리는 세계의 식민지에 군림한 대영제국시대의 의식, 제국의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보수적인 정치가나 박물관 관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생겨서 유럽 일대의 박물관이 세계에서 수집한 유물이나 문화재를 잃는 곤란한 상황이다. - p.193
헤이그협약, 유네스코협약, 유니드로아협약 등이 생겨났고 세계적으로 식민주의 청산을 위한 문화재 반환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는 선진국들의 태도로 인해 난항을 빚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영국 간의 엘긴 마블(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 반환 문제, 영국과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 반환 문제, 프랑스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문제 등 돌려받고자 하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 어떻게든 오래 보유하고 싶은 과거 제국국가들간의 문화재를 둘러싼 힘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화재는 원산지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은 지역이나 민족의 자립과 정신적 독립의 증표이자 해방의 상징인 것입니다. 아라이 신이치는 미래는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의 길로 가야 하며, 평화 정착의 핵심에 문화재가 있다고 말합니다. 문화재 문제는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는 상징적인 문제인 것입니다.《조선왕실의궤》뿐만 아니라 데라우치문고, 북관대첩비,《조선왕조실록》등이 반환되었고 프랑스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한 도서들을 영구 대여하는 형태로 돌려주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일본에 한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가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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