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서평]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 글렌 그린월드2014.07.12 PM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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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리적이고, 위험하죠"

영화『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잡기 위해 만든 모든 휴대폰을 도청하는 장치를 보여주자, 배트맨의 조력자 루시우스 폭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는 악을 해결하기 위해 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면서, 결국 모든 휴대폰을 도청하는 장치는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모든 생활을 체제가 빠짐없이 감시하는 빅브라더는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의 NSA(국가안보국)이 하고 있는 범죄 행위를 폭로했습니다. 그것은 NSA국장 키스 알렉산더가 내세운 핵심 목표, '전부 수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휴대폰, 인터넷은 단순한 도구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현대인들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재자들은 큰 사건이 터지면 인터넷부터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유무선 통신 시스템의 장악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입을 장악하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원격 조종해서 도청 장치로 전환하는 기술인 로빙벅스roving bugs 기술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정치적 정적의 대화를 도청하거나, 적국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스파이 활동은 언제나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스노든의 폭로에서 중요한 점은 그런 감시 체제가 미국 정부를 제외한 모든 국가, 모든 시민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NSA 내부 파일에 따르면 블라니 프로그램의 2010년 목표에는 브라질,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대한민국,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유엔이 포함되었다. - p.155

NSA의 범죄 행위를 고발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CIA와 NSA에서 일했고, 그가 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전자통신을 NSA의 수집, 저장, 분석 활동의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서 전 세계인의 프라이버시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NSA가 채용하지 못해 안달이 난 수준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였고, 하와이에 있는 연봉 2억 이상의 직장을 가진 장래유망한 29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부와 명예가 약속된 삶을 버리고 배신자라는 모욕을 들어가며 수십 년 동안 감옥에 갇힐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내부고발자가 된 데에는 인터넷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의 지적 발전 경로중엔 독특하게도 비디오 게임이 포함되어 있는데, 스노든이 비디오 게임에서 배운 교훈은 단 한 사람이 거대한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노든은 저널리스트이자 변호사인 글렌 그린월드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로라 포이트러스에게 연락해 신문〈가디언〉을 통해 NSA의 범죄 활동을 폭로합니다. NSA가 미국 최대 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의 미국인 고객 수백만 명의 통화 기록을 수집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페이스북, 구글, 애플,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스카이프 같은 기업들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프리즘 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했고, 미국 전역의 이동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수십억 건의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수집, 분석, 저장하는 '국경없는정보원 프로그램'의 정체도 폭로했습니다. 스노든의 자료는 미국 자국민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이었던 민주 국가들도 무차별 대량 감시의 목표였음을 말해줍니다. 감시 목표는 테러 혐의자부터 동맹국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까지 망라되었습니다.

NSA는 기업이 미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구입하면 배송 도중에 가로채 몰래 포장을 뜯어 감시 프로그램을 심어놓는 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 네트워크 장비는 의심스럽다며 위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해킹 행위를 통해 전세계의 컴퓨터 10만 대에 멀웨어를 감염시키기도 했습니다. NSA의 메타데이터 수집은 연간 1조 건에 달하는데, 이 자료들은 미국의 다른 부처에 공유되어 미국의 외교 스파이 활동과 경제 스파이 활동 등에 사용됩니다.



자기검열은 저자나 기자의 생각을 뿌리부터 뽑아버린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검열보다 더 나쁘다. 검열은 판결이든 법이든 유혈이든 흔적을 남기지만, 자기검열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자기검열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자기검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이다. -《검열에 관한 검은책》p.88

미셸 푸코는 국가의 근본적인 매커니즘 가운데 하나로 감시와 처벌을 지적합니다. 지속적인 감시는 권력의 유형이며, 개인의 순종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강요된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NSA의 전방위적인 정보 감시는 그러한 현대국가의 일면이 극대화된 것입니다.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개인 프라이버시와 국가 감시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특정 극우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를 감시당해도 그 대부분은 쓸모없는 정보라면서 NSA의 행동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들도 자신의 거의 모든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이 가지고 싶어하는 프라이버시들, 예를 들면 성적 취향 같은 것이 빅데이터로 유출된다면 설령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 정보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행복 추구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인간의 정신적인 본성인 감성과 지성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삶의 희로애락 가운데 일부분만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믿음, 생각, 감정, 감각을 보호하려 했다. 정부에 대항해서 혼자 있을 권리를 부여했다. - p.226

9.11 이후 미국 정부의 무차별 대량 감시는 테러를 막겠다는 이유로 용인되었지만, 여러 연구들, 심지어는 미국 행정부조차도 NSA식의 정보 수집은 테러를 막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NSA가 이룬 일은 미국 시민들의 자기검열 효과만 불러일으켜 실질적으로 미국사회를 더 폐쇄적이고 순종적이고 비자유적인 나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스노든과 로라, 그린월드는 정부와 미디어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고 더 실질적인 처벌, 감옥행이나 최악의 경우 고문까지 감안하면서까지 내부 고발과 고발을 돕는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정부의 감시체제를 막기 위해 라 트리콜로레를 든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모든 시민들의 핸드폰을 도청할 수 있었던 배트맨의 장치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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