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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을의 생존법2024.11.22 PM 05:27
을의 생존법
아침부터 잔뜩 성난 상사의 닦달
뱉으면 뱉는 대로, 삼키면 삼키는 대로
속을 내보이는 건 어린 것들이나 하는 짓
어른이 되려면 을의 대화법을 알아야지
선임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른스러운 을의 생존법.
오전 내내 이어진 회의에도 빌린 말뿐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흐리멍덩한 을의 대화.
숨기는 게 더 익숙해진 걸 보면
나도 어엿한 을이 된 걸까
가로등 깜빡이는 골목에서조차
울음을 삼키고 말았다.
온종일 "사랑합니다 고객님."
척수 반사처럼 튀어나와도
사랑하는 법은 배운 적 없어
봄 편지의 첫인사도, 밤 통화의 첫마디도
어느 노랫말, 또 어느 시구
부랴부랴 빌려 쓰곤 했지.
일기장 펼칠 여유도 없이
답장 쓸 용기도 없이
시답잖은 을의 대화법만 늘어
가쁘게 살아남아버렸다고
누구라도 앉혀놓고 갑질하고 싶다
품에 안겨 맘껏 투정 부리고 싶다.
나는 나이고 싶을 뿐이라고
술기운을 빌려...
아, 이마저도 빌린 말이구나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댓글 : 1 개
- 아틴
- 2024/11/22 PM 09:40
하.........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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