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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밭일을 하다가 문득 세종대왕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2019.08.06 AM 01:27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샤워하고 나오니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일요일에 시간이 있느냐 고 하시기에 약속이 있다 말씀드렸더니 한숨을 푹 쉬시며
밭에 삽으로 파야하는데 직접 해야지 할 수 없겠구나 하십니다.
어머니 허리 협착증에 디스크 여러곳 이상으로 수술을 앞두셨는데 밭에서 삽질이라니
이건 답정너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약속을 조금 뒤로 미루고, 어머니에게 오후 1시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약속을 받고
밭에 가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 4시에 기상.................
그렇습니다. 오후 1시안에 돌아오려면 일찍 일어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밭일은 계약 위반의 연속이었습니다.
삽질만 하면 되리라 라고 생각한 것은 경기도 오산.
아버지가 농약을 뿌릴 준비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고추를 보며
병이 퍼지기 시작했으니 남은걸 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어서 따자고 하십니다.
고추도 따고 아버지가 농약 뿌리기 전에 포도 순도 따야한답니다.
명백한 계약 위반이지만, 근로계약서가 없는 노동자보호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다 보니,
눈물을 머금고 모기와 사투를 벌이고 포도 순을 정리합니다.
대충 하고 나니 드디어 삽질을 하게 됩니다.
삽질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워낙 단순한 작업이다보니, 몸은 일하고 머리는 공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죠.
거대 로봇이 되어 파일럿이 조종하여 삽질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쓰다 말은 소설의 소재를 이어 생각하기도 하며,
저녁에 술과 안주는 뭘로 할까 생각하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두서없이 무제한으로 뻗어나가는 나름 유익한 시간입니다.
네. 이런 것을 두고 삽질하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생각과 망상을 하다보니, 전날 본 나랏말싸미 유투브 리뷰가 떠오르고,
세종대왕이 떠오르고, 세종대왕이 최정상급 학자였으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댕댕이, 띵언 같은 야갤용어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한글날을 앞두고 뉴스에 이런 보도가 나오곤 했죠.
[한글날. 외래어 득실거리는 거리. 세종대왕 한탄하신다]
거리에 의미모를 영어로 도배된 셔츠 영상이 나오며 기자가 시민을 붙들고 의미를 물으면
시민이 멀리를 긁적이며 잘 모르겠어요. 라고 답하고
이것이 세기말 재앙의 징조인 것마냥 '위대한 한글을 두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라고 보도하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세종대왕님은 흔히 임금이기 이전에 최정상급 실력의 학자였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런 분이 현세에 나타나 거리를 걸으며 거리의 모습을 보고
간판이나 옷의 문자 등을 보시고 나면 과연 뉴스보도대로
'아 백성이 내가 만든 한글을 쓰지 않는구나' 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구열과 호기심이 뛰어난 학자였다면, 오히려
'저건 무엇인가? 문자란 말인가? 어떻게 읽는것인가? 이상한 모양이구나?'
하고 학구열에 불타오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띵언 댕댕이 이런 야민정음 인터넷 용어들도
문자 변천사의 하나로 보고 그 변화 과정을 연구하고 관심을 가지며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의 한글도 훈민정음 반포했던 시기와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세종대왕이 편협적으로 '내가 만든 언어를 쓰지 않다니!!' 이렇진 않을 것 같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고기부페에 가셔서 흡족해하시는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밭일은 고구마 순도 따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에(고구마 순이 너무 많으면 고구마 알갱이가 이파리에 영양을 다 빨려서 열매가 작아진다. 지금 다 따서 고구마줄기로 무쳐 먹어야한다. 고구마 줄기는 맛이있다. 즉 맛있으니까 빨리 순을 따라 아들아.) 또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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