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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영도씨가 팬픽을 평가하는 글을 보고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2020.09.14 PM 10:37
드래곤라자, 눈물을 마시는새 등의 작가 이영도씨가 자신의 팬픽을 쓴 분들에 대해
세심하면서 뼈아픈 평을 남겼더군요.
https://britg.kr/award/2020fanfic/
그리고 어떤 평들을 하셨을까 하고 평을 쭉 보다보니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직 글을 취미의 영역에서 쓰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글을 써오면서
나름 글로 도달해야할 영역. 경지 라고 생각하는 목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때, 묘사와 문체 기교에 치중하며 상상과 재치 만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작품 하나가 완전히 산으로 가버리고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실패했는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처음 글을 쓸때의 즐거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길을 잊고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글쓰기의 끝은 나에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하구요.
물론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 도리는 없었습니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었거든요.
이후 글을 쓰다 막힐때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고
길을 찾으며 글을 써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요 한달 사이 늪에 빠진것처럼 질척이며 글이 써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써서 만족스럽다 싶다가도 친구가 지적을 해주면 그제야 무리했던 부분이 드러나고
또 고치고 하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서 평을 듣고 싶어도 그럴만한 분량이 되지도 못하니 보여줄 수도 없는 글이었죠.
회사일을 하며 짬을 내어 쓰는 글이다보니 쓰는 분량은 많지도 않은데, 그나마도 다시 찢고 쓰고
하다보니 조바심만 가득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이영도씨의 글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 새를 마시는 눈물.
– 흐음.
– 삼가 직언하는데 글을 쓰시려거든 글을 믿으세요. 선문답을 하며 멋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믿는 사람은 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소중한 도구이기에 글을 잘 손질하려고 애쓰고요. 그게 글을 신뢰하는 태도죠. 하지만 귀하의 글에서 보이는 태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안 믿으니 문장 하나 하나를 정성껏 쓰는 대신 메모하듯 대충 써놓고 허겁지겁 이야기를 따라 달려가는군요. 어휘를 안 믿으니 대명사나 보통명사를 쓰고 그 뒤에 괄호 열고 고유명사를 넣는군요. 낮은 맞춤법 수준도 글을 잘 닦아봐야 뭐 하겠냐는 불신감, 저신용의 반영처럼 보입니다. 본인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글을 믿고 아끼시길 바랍니다.
글을 믿어야한다.
허겁지겁 이야기를 따라 달려나간다.
자신의 글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않으니 완성을 하지 않고 제쳐두고 외면하고 다음 장면을 보려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제야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막히는 부분의 장면을 보니,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서장에서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묘사했던 주인공 아윈.
그리고 그 대척점으로 설 인물로 감정묘사를 했던 발터.
이 두명은 단 둘이 외딴 섬에 갖다놓아도 둘이서 실컷 떠들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케릭터 메이킹이 되어있는 등장인물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등장한 현자의 제자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자의 제자라는 배역으로 나와 그에 걸맞게 배경도 설명해주고, 사건 전개에도 기여할 비중있는 배역이면서 외형과 재주, 단순한 배경 외의 다른 부분은 빈칸으로 만들어둔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영화 주연배우 둘과 함께 연기를 해야하는데 입간판을 세워놓았으니, 대사가 제대로 나올턱이 있겠습니까
고칠때마다 성격이 달라져버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은채 플롯을 따라가는 소모품으로 배치하고 이야기를 넘기려하니
글을 믿지도 못하고 저에게 솔직해지는 글을 쓰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하고 밤 운동을 하며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갑갑하게 막혀있었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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