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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다시 읽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다시 읽기-part09.2023.01.16 PM 09:06
이 만화는 원작 소설을 먼저 읽으시고 보시면 더욱 재미 있습니다.
마침내 이 소설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장면이 나왔습니다.
81페이지에서 6학년 담임선생님은 엄석대에게 '교탁 위'로 올라가라고 명령합니다.
왜 하필 '교탁 위'일까요? 보통 복도나 교실 구석 아닌가요?
'교탁 위'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은 '전시'입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몰락한 엄석대의 모습이 반 아이들에게 잘 보이도록 전시합니다.
이어서 한 명씩 일어서서 엄석대의 비리를 고발하라고 시키는데, 이 때 고발자와 엄석대는 1대1로 마주보는 상황이 됩니다.
아마도 6학년 담임선생님은 엄석대가 다시는 부활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파괴하고 싶은가 봅니다.
이어지는 두 장면에서 작가는 반의 권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어른만해 보이던 엄석대가 갑자기 작아지고, 대신 6학년 담임선생님이 거인처럼 커집니다.
이렇게 작가는 엄석대가 가진 권력이 6학년 담임선생님에게로 이동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한병태는 말합니다.
'어쩌면 담임선생님은 처음부터 그걸 노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어 6명의 우등생(편의상 '친위대'라고 부르겠습니다)을 불러낸 6학년 담임선생님은 먼저 그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맞고 입을 열래? 좋게 물을 때 바로 댈래?"
솔직하게 대답하면 안 때리겠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6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을 믿고 친위대는 엄석대를 고발합니다.
그러자 6학년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약속을 깨고 친위대에게 몽둥이를 휘두릅니다.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 손을 안 대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때릴 마음이 없었는데 학생이 잘못했다고 말하자 참을 수가 없어서 때렸다...
저는 6학년 담임선생님의 이 논리가 이해가 안 됩니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한 번 해석해 보죠.
지금 상황에서 6학년 담임선생님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1번. 친위대가 엄석대를 고발하게 만들어 엄석대의 부활을 막는 것.
2.번 친위대에게 자신이 더 강한 지배자임을 보여 주는 것.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6학년 담임선생님은 '솔직히 말하면 안 때리겠다'는 거짓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친위대가 잘 믿지 않자 억지웃음까지 보이며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꼬임에 넘어간 친위대가 엄석대를 배신하자마자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는 몽둥이를 휘두릅니다.
자기가 엄석대보다 더 강한 지배자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이렇게 친위대를 정리하고 난 6학년 담임선생님은 이제 나머지 반 아이들에게도 엄석대를 고발하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한병태의 태도를 한 번 살펴 보죠.
'나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그의 신음소리를 들은 듯했다.'
교실에 총 62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병태는 하필 엄석대의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한병태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지난 회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후반부에서 한병태는 철저하게 엄석대의 대리인으로서 행동합니다.
즉, 엄석대의 생각과 행동을 한병태가 대신해 줍니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한 명씩 엄석대를 고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묘한 것은 아이들의 태도였다.'
라면서 고발의 '내용'이 아닌 '태도'를 문제 삼고, 마치 자신이 모욕 받은 것처럼 아이들에게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잡아 땝니다.
이렇게 한병태는 '6학년 담임선생님 + 반 아이들 VS 엄석대'의 싸움에서 혼자 엄석대의 편에 서서 그를 옹호합니다.
이 사건에서 한병태는 반 아이들에 대해 모순되는 두 가지 평가를 내립니다.
1번. 더 강한 자가 나타나자 서슴없이 엄석대를 배신하는 비겁한 존재.
2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변혁을 열망하는 용기 있는 존재.
작가는 왜 두 개의 상반된 평가를 함께 보여주는 걸까요?
1번 평가는 평소 이문열 씨의 입장이므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문제는 2번인데, 이건 이 소설이 출판된 당시의 상황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1987년의 6월항쟁과 대통령 선거 사이에 출판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군사독재의 종식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시기였지요.
그리고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이문열 씨도 대중들의 열망에 답을 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문열 씨가 비판하는 그 대중이 바로 자신의 책을 구입할 독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자존심(1번)과 독자들의 열망(2번)을 모두 담고자 했고, 그 때문에 반 아이들에 대한 상반되는 두 개의 평가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 이연걸 주연의 영화 [영웅]과 비슷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무명'은 중국대륙을 통일한다는 핑계로 계속 전쟁을 일으켜 학살을 일삼는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접근합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그에게 감화되어 결국 암살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무명'이 변해가는 과정이 '한병태'의 모습과 겹칩니다.
이 소설에서 6학년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며 폭력을 사용합니다.
정말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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