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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친구여2019.01.02 PM 06:03
친구여
친구 많이 있어? 난 어때 보여? 면접에서도 몇 번 받은 질문인데 그때마다 구라를 쳤어. 친구 많아요! 실제론 2명이야. 내 성격이 쪼잔하기도 하고 방구석에서 나가질 않으니 원. 변명을 하자면 수는 적지만 깊게 사귄다고 할까.
인터넷에 정리해야 할 친구 유형이라는 글이 있더라고. 한번 읽어보고 정리할 사람은 정리하고, 내가 그런 인간은 아닌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자고.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
흠, 여기서 필요라는 건 부탁을 말하나 봐. 근데 애매하네. 오고가는 부탁 속에 우정이 클 수도 있잖아. 아! 좀 거시기한 부탁만 하는 경우를 말하는 거야? 이를테면 보증 서 줘, 돈 줘. 그렇다면 난 여기서 자유롭네! 백수에게 이런 부탁 하는 친구는 없거든. 아니 사람도 없지. 나도 누구한테 돈 빌려 달라 하지도 않고. 통과!
지갑을 안 들고 다닌다.
이것도 앞에 것과 비슷하네. 결국 돈 문제잖아. 이건 찔리는데. 친구들은 나를 챙겨줘. 내가 무노동 식충이라는걸 알거든. 다행히 친구들은 주머니 사정이 괜찮지. 부산에 놀러 올 때면 오히려 내가 얻어먹는다니까. 미안해서 나도 사기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가 먼저 내 줘. 백수가 뭔 돈을 쓰냐고. 심지어 나 쓰라고 돈 봉투를 건네준 경우도 있어. 거절했지만.
나 친구 정리 대상 1호야? 아니지? 잘 지낸다고. 이것도 혹시 백수 프리미엄인거야? 백수 친구는 얻어먹어도 문제없다? 오케이!
종교나 정치적 신념을 강요한다.
다행히 친구들 정치색은 비슷한 거 같아. 이성적이고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지.
친구 중 한명은 기독교 신자야. 그 친구가 교회에 한번 와 보라고 부탁한 적은 있긴 하지만 강요한 적은 없었다고. 그것도 교리를 들으라는 게 아니라 사람 좀 만나 보라고. 내 딥다크한 성격에 조금이라도 빛을 드리우기 위해 노력했지.
오히려 내가 무신론자의 논리를 강요한 거 같아. 기독교 까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잖아. 근데 친구는 내 말을 다 들어줬다고. 대형교회고, 먹사고 같이 잘못됐다고 비판했어. 이런 친구를 두다니 정말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
자기 자랑을 심하게 하는 사람.
난 친구들이 자랑해주면 좋겠어. 자랑한다는 게 뭐야? 뭔가 일이 잘 풀렸거나 로또가 됐거나.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 그러나 친구 행복은 나의 행복이라고. 친구란 존재는 기쁨을 나누거든. 적어도 난 그랬는데. 취업했다! 오 축하! 오늘은 내가 쏜다! 하면 싱글벙글 달려가서 대화를 나눴지.
나도 자랑을 하고 싶어. 아주 마음껏. 친구야 로또 됐다! 가즈아! 그런 다음 맛집 소개에서만 봤던 비싼 뷔페에 가는 거지. 대접하고 자랑하고 싶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하나 추가요.
같은 고민을 반복해서 말한다. 만나면 우울한 이야기만 한다.
이건 이전에도 들어서 알고 있었어. 만나면 늘 웃고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책에서, 스피치학원에서, 유튜브에서 봤지. 여기도 속은 다 탔는데 친구 앞에선 내색안하는 분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참았어. 친구랑 말하고 싶은데 연락도 안 했지. 그게 너무 후회된다고! 나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인데! 친구를 과소평가 하지 말라고! 친구에게까지 가식의 가면을 쓰라니, 당장 때려치우겠어!
친구의 푸념을 듣고 싶다고. 그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1만 개 중에 1개라도 될까. 그래도 듣고 싶다고. 마음의 위안이라도 주고 싶어. 그리고 친구가 그 어려움을 이겨내서 웃을 때 나도 같이 웃고 싶다고! 백번이라도 말 하라지! 워워, 진정.
나를 너무 따라 한다.
이건 뭐야? 패션스타일을 말 하나? 아하, 의도적으로 커플티 입고 그러는 거? 생각 해 보니 부담되기는 하네. 어느 날 친구의 시선이 뜨겁다. 나의 엉덩이로 향한다. 유 게이?!
그래도 잘 지낼 거 같은데. 물론 둘이 여행가는 건 좀 고민해야겠지만. 친구랑 붕가라...일단 내 동정은 사랑하는 여성과 나누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못하겠다는 건 아니야. 진짜 사랑한다면 할 수도 있지. 근데 이건 우정이 아니라 사랑 아냐? 그게 그건가?
남의 고민은 가볍게 여긴다. 나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고 가볍게 생각한다.
친구가 가볍게 여긴다면 진짜 가벼운 문제일 수도 있어. 걱정 안 해도 될 문제인데 혼자 끙끙 앓는 건지도 몰라. 아니면 친구 입장에선 해결책이 있는 건지도. 이럴 땐 물어보자고.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그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면 진짜 심각한지, 별거 아닌지 나오겠지.
약속이라, 난 친구랑 약속 자체를 잘 안 해놔서 모르겠네. 시간 약속이야 너무 기본이라 넘어가고 그런 거 있잖아. 친구야, 올해 안으로 내 취업할게. 이런 큰 약속. 이걸 지킨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약속은 하지도 않는다고. 그래도 한다면 지키겠어. 나도 하나 지키고 있잖아. 여러분과의 약속. 매일 이 자리에 서는 거.
드디어 마지막이군. 이제는 만나면 괴롭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면 괴로운 게 친구인가? 근데 괴로울 수도 있지. 나 같은 사람은 집구석에서 나가는 거 자체가 모험이자 괴로움이라고. 그래도 만나거든. 그건 친구에 대한 괴로움이 아니니까. 내 게으른 천성 때문이지. 이건 친구를 끊을 게 아니라 각종 중독을 끊어야 되지 않겠어?
다 살펴본 소감은 어때? 이것들을 친구에게 대입하기엔 좀 거시기 한 거 같지 않아? 그냥 직장, 사회에서 인간관계 잘 하는 법 정도랄까. 친구란 그냥 살아가다 아무 때나 말하고 듣고 싶은 존재 아니겠어. 1년이고 10년이고 연락이 없다한들 그냥 어느 날 저녁에 보자! 하면 만나는 그런 거.
그냥 믿는 거지. 그냥 들어주는 거고. 솔직하게. 그래서 연락이 끊기면? 70억 분의 1이잖아. 분명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이해타산도 쪽팔림도 가식도 없는.
여기서 증명해 보일게. 당신은 우정과 10억 중에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엇, 10억요....아....에잇 그래도 우정이죠!
미친놈아! 10억을 받아야지! 친구가 말하는 군. 역시 좋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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