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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백색의 백수2019.01.06 PM 05:31
백색의 백수
염색에 대해 고민하는 분 있어? 아직 젊어서 그런 고민은 안중에도 없나. 보시다시피 나는 오른쪽 옆머리에 새치가 있지. 다 뒤집어서 보여줄게. 잘 보이지? 신경 쓰이냐고? 아니. 거울도 잘 안보는 놈이 이 정도 갖고는 아무렇지도 않지. 게다가 염색하려면 돈도 들잖아. 백수가 무슨 염색이야.
근데 딱 한번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 초등학교에서 애들과 지낼 때였지. 수학문제를 가르쳐주느라 정신이 없는데 머리가 뜨끔 한 거야. 돌아보니 나랑 친한 애가 흰머리를 손가락에 들고 있더군. 선생님, 흰머리. 잘 했죠? 그, 그래.
칭찬을 듣자 애가 더 뽑으려고 했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그제야 벌떡 일어나 아프다고 했지. 사실 간질간질한게 아이의 손길이 좋았지만.
왜 거절했냐고? 난 흰머리도 소중하다는 주의자거든. 민머리보단 흰머리가 낫잖아? 탈모인들 동의하지? 근데 참 신기해. 스트레스와 노화의 상징이라는 흰머리가 어떻게 검은머리보다 악착같이 붙어 있을까? 애들은 떨어질 생각도 안 해. 베개에 떨어져있는 건 죄다 검은 머리카락이라고.
아무튼, 아이에게 물었지. 염색하는 게 낫겠니? 예! 하래. 당장. 그 순수한 아이가 보기에 하라하면 그건 진짜거든.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염색약을 샀어. 물론 풀어서 바르고 씻고 하는 건 겁나서 못 샀고, 그 있잖아. 부분 염색약? 새치만 살짝 가려주는 거. 로레알 매직 리터치.
그런데 하루 쓰고 안 썼어. 짜잔, 선생님 뭐 달라진 거 없어? 없는데요. 머리 바뀐 거 없어? 없는데요. 끄윽. 거금 1만 2천원을 들여서 아침에 별에 별 짓을 다했건만 모르더라고. 그땐 잠깐 삐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된 거 같아. 그 후론 다시 염색약이 뭔지도, 흰머리에 대한 걱정도 잊고 살았으니까.
게다가 나 같이 흰머리에 무심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분들이 있다고. 간지가 좔좔 흐르는 백발들 있잖아. 지금 생각나는 건 강경화 장관이군. 강장관을 보면 오히려 부러워지기까지 하거든. 그레이 헤어라고 해서 패션 잡지에 까지 실리더라니까.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 그레이헤어 모델들은 하나같이 백발이 이미 다수가 된 상태더라고. 마치 백발마녀처럼 최종보스의 느낌을 주지. 나처럼 시커먼 머리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흰머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지? 흑화 시키는 게 맞나? 아니면 차라리 탈색을 해서 다 흰머리로 만들까?
아니지, 아니야. 그냥 놔둘게. 통풍에 이어 염색약의 굴레에 까지 얽히고 싶진 않아. 백수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이 지금도 산더미인데 거기에 더 추가할 수 없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새치야 말로 젊음의 끝을 맞고 있는 자에게 허락된 특권 아니겠어? 마치 10대의 파릇한 교복처럼. 머리색도 중요하겠지만 더 본질적인 게 있잖아. 생각 하나, 행동 하나에서 풍기는 사람의 품격!
온갖 역경과 고생 끝에 백발이 온 머리를 덮게 되면 우리도 성숙할 수 있을 거야. 염색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진짜 흰색 포스를 풍기겠지.
회색의 백수님이 백색의 백수로 승급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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