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린풍자쇼] 기생인2019.06.04 PM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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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인

 

 

대통령까진 아니지만 국회의원 정도는 하고 싶었어. 국회 꼴을 보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거든. 아니, 저 인간들 보다는 더 잘할 자신이 생겨. 시민 말 잘 듣고, 법 만들고, 이상한 수작 부리지만 않으면 되잖아. 어려운 거야 밑에 보좌관들이나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잘 해주겠지.

 

백수라도 이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도덕뽕 때문이었어. 내가 돈이 없지 양심이 없냐! , 물론 일부 정치인들에 비해 그렇다는 거야. 보통 사람 기준에선 자격 미달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약자를 배려하고, 자유를 넓히면서도, 평등한 사회를 위한 꿈! 호우.

 

근데 오늘부로 이 망상은 깔끔히 접었어. 어제 쇼 보러 오신 분? 쌩큐베리감사. 박수! 내용이 뭐였죠? , 분쟁광물. 그러다 공정무역 문제로 갔네? 공정무역! 저기 남미 커피 농장 아주머니들, 동남아시아 담배 농장 아이들, 아프리카 코발트 광산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아저씨가 행복해질지도 모르는 무역. 물건 값이야 조금..... 많이 비싸지지만.

 

이 생각지도 못한 난제를 겪으며 고민에 빠졌지. 그래서 결론은요! 난 기생충 같은 놈이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으휴. 부모님 등골 빨아먹는 거야 이전부터 알았어. 불효자는 웁니다. 그래도 높으신 분들처럼 노동착취하고, 임대료 빼먹고, 돈 놓고 돈 먹고, 사기 처먹는, 빨대인간은 아니라 생각했거든. 당당한 대한민국 최하층 흙수저로서의 자부심!

 

근데 세계적 시각으로 보니 빨대맨이나 나나 똑같은 수준이 돼버리더라니까. 애들이 중금속 들이마시며 하루 종일 일하면 어때. 일해라 어서! 더 싸게 만들어! 저기 훌쩍이는 애는 채찍질 하세요! ? 할달량을 못 채웠어? 몸으로 갚아! 으슥한 데서 이상한 짓 하고.

 

그렇게 중국 욕하지만 중국산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 둘러보니 다 중국산이야. 차라리 중국산 아닌 걸 찾는 게 빠르겠다. 원재료까지 생각하면 수입 아닌 게 없겠지? 그래놓고 짱깨새끼들은 다 죽어야 된다고 욕하고. 다 죽으면 누가 100원짜리 생필품 만들 건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크악. 시진핑님 죄송합니다. 지금껏 당신의 위대함을 몰라 뵀습니다. 13억 중국 인민을 하나로 이끄사, 밤새 공장 돌리시고, 밤새 쥐어짜시고. 어릴 때부터 착실한 노예교육을 펼치시니 그래도 정신 못 차린 놈들은 공안하셨습니다.

 

미세먼지를 들이마셔도 할 말이 없어. 내몽골의 매연가스야! 베이징까지만 퍼지렴. 대신 계속 까만 연기 뿜으며 싸게 싸게 만들어야 된단다. 환경규제? 나만 아니면 돼! 아마존이 눈물 흘리든, 바이칼 호수가 말라붙든, 삼천리 금수강산이 있는데 무슨 상관.

 

현자 타임..... 정치인, 재벌. 이 싸가지 없는 착취꾼들아! 욕했는데, 정작 나도 누군가의 피를 갈아 마시고 있었어. 자유주의? 평등? 더불어 사는 세상? 이런 말 담기도 부끄러울 지경이야. 정말 풍자극대로 20% 남은 빵 남겨두고, 거기서도 빨아먹는 구조.

 

억울하게도 창피함이 여기서 끝이 아니더라고. 시각을 동물까지 확대하면. 크익. 9천 원짜리 치킨을 위해서라면 케이지 속에서 항생제만 처먹다 죽는 닭이 필요하지. 고릴라 죽어나나가든 말든 폰을 위해서라면. 개돼지들아! 한평생 개돼지처럼 살다 죽으렴. 인간을 위해서.

 

제일 망막한 게 뭔지 알아? 난 변하지 않아. 용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공정무역? 그것보다 내 주머니사정이 더 중요해. 후원은 바라지도 마. 공장식 사육? 치킨을 포기할 순 없지. 국민 등쳐먹는 지도자들? 이제 까질 못하겠어.....수박바!

 

.....

 

대신 감사하며 살려고 해. 중국 노동자들에 대한 감사, 필리핀 바나나 농민들에 대한 감사, 콩고 탄광 아이들에 대한 감사. 전 세계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태클은 안 걸려고. 난민 구호 활동에 열심인 잘생긴 우성이형, 다양한 이유로 채식하는 분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꿈이 생겼어. 500만원 모아서 몽골 쿠크 호수 근처에 사는 꿈. 누구 눈치 볼 필요 없고, 양심 가책 느낄 필요 없지 않을까? 500이면 택도 없으려나. 꿈같은 소리라고? 크흠, 인정. 그래도 모르잖아. 양떼랑 돌아다니다 추운 벌판이 인연을 맺어줄지. 말 잘 타는 과부누나랑.

 

떠날 때 8TB 야동하드는 뿌리고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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