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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프리미엄 택배박스2019.06.07 PM 10:27
프리미엄 택배박스
방구석 인생에게 지름게시판만큼 흥미로운 데가 없어. 돈은 없지만 지르고 싶은 걸. 기나긴 취업전쟁에서 떨어질 때로 떨어진 자존감을 올리려면 소비도 현명하게 해야 된다고. 가령 남들은 9900원에 살 거 난 9890원에 산다던가. 아싸, 10원 벌었다!
이번에 들어온 목표물은 반찬가계! 돈까스, 불고기부터 시작해서 마늘장아찌, 오징어무침, 김치까지 다양하게 팔더군. 회사정보를 보니 호오, 대기업이야. 동원! 참치로 번 돈으로 이런 것까지 차리셨군요. 아무튼.
이런 신생 판매처는 손님 모으기에 혈안이 돼있지. 첫 구매 시 2만원 상당의 반찬모음 무료! 키야, 이런 꿀 기횔 놓칠 순 없잖아. 바로 개인정보 헌납하고 주문했지. 만 원 이상 주문하면 배송료 무료 이벤트도 하길래 딱 1만원 어치 주문했어.
이틀 지나서 박스 도착. 첫인상은....뭐가 이리 크지? 27인치 모니터 넓이만한 스티로폼 박스가 왔는데 꽤 묵직하더군. 호오. 기대되는 걸! 그러나 뚜껑을 열자 내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지. 박스 안에 대부분은 비닐이 채우고 있었으니까!
커다란 비닐 풍선이 2줄. 일반 뽁뽁이 말고 튜브형으로 큰 거 있지? 그게 깔려있더군. 여기까진 이해해. 내 손바닥보다 큰 아이스팩이 6개. 무려 6개! 무게는 이 녀석이 다 잡아먹고 있었던 거야. 어흑. 실망.
뭐 좋아. 여름도 다가오니 아이스팩 좋지. 뜨거워진 불알에 갖다 대면 천국을 맛볼 수 있을테니. 근데 이 차갑고 묵직한 것을 6개나 수용할 냉동고가 없어. 이미 백수의 친구 만두와 돈가스로 다 차버려서 말이지. 할 수 없이 1개만 겨우 우겨넣었지. 나머지 5개는 어쩌겠어. 버릴 수밖에.
여기서 난관. 아이스팩은 어느 요일에 버릴까요? 맞추시는 분 아이스팩 드릴게. 일반 버리는 날? 어, 다 아네! 난 겉이 비닐이라서 비닐 버리는 날 내놔야 하는 줄 알았지. 아니었어. 일반쓰레기였지. 일반쓰레기는 뭐다? 전용 봉투가 필요하다. 평소 일반 쓰레기는 3달에 한번 버릴까 말까한 내겐 치명적이었어. 응? 내가 한 분리수거 하거든. 닭뼈도 망치로 가루내서 변기에 버려. 이거 불법 아니지? 크흠.
반찬은 어떠냐? 평범해. 강렬한 매력 포인트는 없지만 안정적인 맛. 대기업이 만든 바로 그 맛. 다만 양은 기대하지 마. 두 끼 먹으니 끝나버려. 월 500 이상은 벌어야 주문할 생각이 들겠는 걸. 대신 딸려온 반찬통이 괜찮아! 적절한 크기와 적절한 뚜껑 조임. 기존 쓰던 본죽 통은 안녕. 나도 이제 제대로 된 반찬통 마련했다!
근데 멀쩡한 반찬통 있는 분들에겐 이것도 다 쓰레기잖아. 락앤락 쓰는데 이게 왜 필요해? 이쯤 되면 내가 반찬을 주문한 건지, 쓰레기를 주문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계산해 봤어. 반찬 총무게는 1025그램. 1키로 살짝 넘네. 이에 반해 쓰레기는. 보자. 중자 아이스팩 하나가 250그램이라 치면 6개니까 1.5키로. 반찬통하고 공기튜브가 다 합쳐서 한 100그램 정도 되려나? 거기에 스티로폼 박스 더하면 대충 2킬로그램 나오겠네. 무게만 따지면 2배. 부피는 6배도 더 되겠다.
아무리 포장 빵빵해야 된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매립장에 쌓일 미래를 생각하니 지구가 불쌍해서 이젠 못 시키겠어. 내가 손해 보는 느낌도 나고. 생각해 봐. 포장에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데, 퀄러티 있는 반찬을 만들 수 있겠어? 아, 그래서 양이 창렬이었구나. 한 젓가락 떠먹었더니 사라졌어요!
택배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뭔가 손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다간 질소과자의 비극이 온 세상으로 퍼질 기세야. 스티로폼, 뽁뽁이, 아이스팩. 반찬통? 호오. 그래. 차라리 비싼 택배박스를 쓰면 어때. 델몬트 유리병처럼, 이마트 에코백처럼. 쓰고 또 써도 멀쩡한 택배박스, 방수, 방진, 보온 기능까지 있는 프리미엄 택배박스. 위치추적에 QR코드까지! 귀여운 참치마크는 덤.
이렇게 무지막지한 녀석을 뭔 수로 쓰냐고? 크흠. 온갖 택배에 다 쓰자는 건 아냐. 물건보다 포장이 더 무거운 녀석들 있잖아. 우리가 씹고 뜯고 맛 볼 먹거리들. 반납하면 박스 값은 돌려주는 걸로 하고. 괜찮지?..... 반납하기 귀찮아? 에이, 후손을 위해 이 정도는 하자. 반납은 가까운 주민센터로.
참치들은 이미 찬성했어. 이제 동원만 하면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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