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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행복한 똥덩어리2019.07.13 PM 11:05
행복한 똥덩어리
우연찮게 초등학교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좋았어. 겉모습만 어른이라는 것 빼곤 나도 완전 애처럼 같이 놀았지. 푸하하하. 내가 애를 좋아하다니! 맙소사.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는데 진짜야. 애들 안 만났으면 죽을 때까지 초딩 공포증에 걸린 채로 살았을 거라니까.
성취향도 범위가 좁아졌지. 사실 확신이 없었어. 애들 보고 내가 딴 마음 품지 않을까 하는. 사전교육도 엄청 받았어. 애하고 손도 잡지 마세요! 예쓰 맴! 그렇게 다짐했건만 결과는? 응, 다 까먹었어. 목마 태우고, 꺄르르 웃고, 하이파이브! 워워, 남자애들 하고 만이야. 아무튼, 그래서 알았지. 아, 내가 소크라테스처럼 뽀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오히려 1학년 3반 담임쌤을 더 조심해야 하는구나~. 선생님 너무 좋...... 크흠.
아무튼. 피부로 전달되는 지혜를 경험했어. 걔 중에는 상당히 경제적인 문제도 있는데, 바로 글짓기 시장에 대한 안목! 갑자기 무슨 죠스바 씹는 소리냐고? 그게 말야, 이래봬도 내가 작가를 꿈꾸걸랑. 작가라 하기엔 너무 거창한데. 아마추어 잡소리꾼 정도?
취미로 글을 적는다지만 딱 하나, 프로처럼 써야 할 책이 있어. 대책 없는 약속을 해버렸거든. 사모하는 선생님과. 무슨 약속? 죽기 전에 동화책 한권 내기로 한 약속. 호오. 무슨 생각으로 덜컥 말했을까. 크흑. 여러분도 그 분 앞에선 멍하니 말했을 거야. 선생님 말씀인데 해보겠습니다. 하악하악. 선생님 사랑해요!
아잇. 오늘 추억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네. 부르르!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글쟁이라 하면 뭐야? 시, 소설, 에세이, 자기개발서 등등. 그것만 생각했어. 너무 머리가 커진 거지. 동화책도 짭짤한데! 평작만 되더라도 기본 6000천부는 보장 돼. 전국 초등학교 수가 6000개 정도 되거든. 인기 좋으면 한 학교에 서너 권도 들어가니까 대박이지.
300장짜리 소설에 비하면 분량은 그야말로 헤븐. 짧은 건 A4 한 장이 안 돼. 길어봤자 2장 되려나? 그것도 적을 거 없다 싶으면 그냥 방귀 소리 적으면 되지. 뿌쓩뿌쓩! 괜찮아, 괜찮아. 애들이 재밌어 하거든. 그럼 이렇게 얇은 책이 싸냐? 전혀! 거진 한권에 만원 꼴이야. 알록달록 그림에 두꺼운 표지. 여기 그림 좀 그린다 하는 분? 나랑 동화책 한번 내 볼래요? 7:3! 물론 내가 7!....이 아니라 3. 대신 대금은 후불로. 오케이.
자, 그럼 동화책으로 꿀 빨아 보실까!.....어....음.....안 돼. 첫 문장부터 나가질 않아. 애들한테 뭘 전달해야 하지? 어떻게 써야 재밌을까? 그러면서도 선생님과 학부모님 사로잡을 알찬 내용도 있어야 하는데.....끄아악! 꿀은 무슨. 헬이잖아!
이런 절망적 상황에 뒷골 때리는 소식이 들려. 무슨 소식? 스페인 바르셀로나 학교도서관. 200여개 성차별적 아동도서 퇴출! 하하하. 저질 동화책들 물갈이 하는 건가! 아니! 이 목록에는 빨간 모자와 늑대,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이 우리가 훤히 꿰고 있는 책도 있어. 명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책들!
하긴. 100년 동안 잠만 자다 왕자님 키스 한방에 인생 역전하는 공주님 이야기는 살짝 그렇지? 잠깐. 100년 동안 어떻게 버틴 거야? 냉동인간? 방부제 한 사발이? 호오. 이거 저주인지 조차 헷갈리네. 차라리 1만년 자다가 영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에 깨는 건 어땠을까.
빨간 모자는 워낙 여러 가지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 성차별 요소가 있는 버전은 빨간 모자랑 할머니가 늑대밥이 된 후에 남자 사냥꾼이 구해주는 내용이야. 근데 내가 어렸을 때 본 건 이게 아니었어. 빨간모자가 늑대 속여서 배 터져 죽게 한 다음에 할머니를 구하는 내용이었지. 요건 괜찮지?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버전은 빨간모자와 늑대인간이 코와붕가 하는 거지만. 어험.
우리나라 전래동화라고 뒤질쏘냐, 아니! 극악동화 하면 항상 꼽히는 선녀와 나무꾼. 대체 범죄가 몇 개나 나오는 거야? 납치, 절도, 강간, 협박, 노동착취, 스토킹. 호우! 어릴 땐 왜 못 봤지? 오직 나무꾼 입장에서만 봤어. 결혼도 못 하는 나무꾼 불쌍해. 결혼하고 애도 생기니 행복해. 선녀가 날개옷 입고 떠나다니 불쌍해. 그래도 마지막엔 만났으니 행복해! .....이런 수박.
이제 알겠어. 왜 많은 동화책에서 똥방귀 이야기가 나오는지. 뿌웅! 좀 냄새나긴 해도 성차별, 인간차별, 살해, 사기는 없으니까. 푸드드드득. 그래. 후우.
내심 행복한 왕자 급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 보석, 금 다 빼주고 결국 고철신세가 되지만 제목처럼 행복한 왕자! 옆에 배달부 제비도 잊지 말라고. 재미와 감동. 크흑! ....잠깐. 설마 왕자라고 불편하신 분? 그, 그럴 수 있어. 어.....행복한 공주, 행복한 트젠, 행복한 양성. 원하는 대로 고르라고.
행복한 똥덩어리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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