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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감정실금2019.09.24 PM 09:58
감정실금
오늘 뜻밖에 바깥구경을 했어. 엄마 심부름으로. 오전 10시. 백수가 게임하기 가장 좋은 시간. 신나게 마우스질 하고 있었지. 그때 엄마한테서 전화가 온 거야. 아들, 성당 열쇠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 니가 대신 가져 온 나. 빨리! 신부님 기다리신다. ..마이깟!
엄마가 얼마나 급한지 10분 단위로 전화를 하는 거야. 지금 어디고? 안 출발하고 뭐하는데! 그냥 오면 되지 뭘 씻는다고. 빨리 안 오나! ....핫. 엄마도, 평생 봤으면 내 성격 알 텐데. 방구석에서야 일주일이라도 안 씻지만, 밖에 나갈 땐 반드시 목욕재계한다! 이 닦고, 샤워하고, 면도까지 다 한 다음에야 출발했어.
전화기 상으로 이미 데시벨 초과야. 지하철 안에서 폰이 울리는데 겁나서 일부러 안 받았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그렇게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성당에 도착했지.
한 소리 들을 각오로 비장하게 열쇠를 건네주는데. 갑자기 푸훗. 엄마 보는데 그냥 웃음이 나오더라.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참아야 하느니라. 지금 웃을 분위기 아니다! 아테나님의 장난일까, 참으려니까 더 터져. 근육으로 내리눌러도 올라가는 입을 잡을 수가 없어. 얼마나 절박했으면 할머니 장례식 상상까지 했다니까.
결과는! ...엄마도 웃더라고. 역시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나 봐. 하하하.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집에 돌아오는 내내 웃음이 멈추질 않는 거야. 제발! 키히힉. 크하하하하하! 드디어 미쳐가고 있어! 오늘 부산 연산동에서 하늘 보며 켈켈켈 거리는 놈을 봤다면 접니다.
감정과 상관없이 울음이나 웃음이 나오는 걸 감정실금이라 하더라고.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삐죽삐죽 나오는 증상. 곤란함 정도로 치자면 요실금과 쌍벽을 이뤄. 병문안 가서 웃고, 장례식 가서 빵 터지고. 윗사람이 뭐라 하는데 히히! ...웃어?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있지. 고등학교 2학년! 야자하는데 코까지 골며 꿈나라로 갔네? 누가 뒷목을 꼬집는데 수학쌤이었어. 나와. ..낮으면서 싸늘한 톤. 엎드려. 크흑. 쌤이 한 빠따 치셨거든. 밀대자루로 맞는데 2학년 복도 전체가 조용했어. 퍽! 퍽! 퍽! 일어서. ...거기서! 스마일! 이런 미친!
SM성향이냐고? 아니! 야동도 그 쪽은 안 본다고! ....뒷일은 여러분 상상대로야. 웃어? ....퍽! 퍽! 이 자식이 미쳤나? ...쌤! 제일 미치겠는 건 나라고요! 그날 하루 3년 치를 몰아 맞았어. 아니다, 중딩 때도 그렇게 맞은 적은 없으니 6년 치인가? 그때의 아픈 기억! 선생님, 오해입니다! 속으론 피눈물 흘렸다고요! 쌤도 너무하셨어요. 웃는다고 빠다코코낫 먹인다니 이게 말입니까!
아무튼. 만약 그때 감정실금을 알았다면, 엉덩이 멍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선생님. 제가 웃는 것은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빠따가 안 아픈 것이 아니라, 감정실금 때문입니다! 뇌혈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 자주 나타납니다. 저 불쌍한 놈입니다. 이렇게! 지금에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뭐. 여러분 중에도 상황파악 없이 웃거나 우는 분 있어? 한번 MRI 받아 봐. 이게 심하면 치매, 백치, 중풍으로까지 갈 수 있대.
그런데 말야, 좀 이상해. 기뻐서 우는 건 아무도 태클 안 걸잖아. 시상식에서 상 받는 연예인들 봐. 끄허헉. 상 받아서 좋아요, 팬 여러분 사랑해요! 그런데 눈물이 나요. 그럼 옆에서 동엽이 형 같은 진행자가 한 마디 하지. 얼마나 좋았으면. 연기 아니죠?
괴로울 때 웃는 사람이 진짜다? 글쎄... 여기 직장 다니는 분들. 부장님이 부글부글 끓는 게 보여. 분위기 완전 태풍전야. 이런데 막내가 거기대고 낄낄 대면 어떻게 돼? 부장님 파이팅! 하하하! ..들어온 지 이틀 만에 구인광고 다시 올려야 하는 거 아냐? 물론 그 막내가 회장님 낙하산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럼요! 역시 5년 후 전무님이십니다. 다 같이 웃읍시다.
속은 썩어 들어가는데 웃을 수 있는 경우는 딱 3가지 인 거 같아. 첫째, 감정실금! 둘째, 평소 숙달된 웃음. 면접 보느라, 응대 하느라 안면근육이 굳어진 거지. 마지막으로, 부장님을 비롯한 이사급 장성들. 괴로워도 다들 웃어! 죽을 것 같더라도 웃어! 대신 못하면 진짜 죽어. 크하하하하. 행복하다! 너희들도 행복하지? 여기서 눈치 없이 찌푸리면 안 돼지.
어쨌든. 표정, 중요해.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세상 보기에 너무 어려워. 페이크가 많으니까. 아무리 가식적인 웃음이라도 어설플 때야 안쓰럽지, 숙달된 조교는 분간이 안 가. 눈물? 세월호 때 박근혜 쇼를 보고 나선 선뜻 믿기 그런데. 분노? 정치인들 어그로 끌려고 분노 풀게이지 채우잖아. 뒤에선 샤바샤바.
결정적으로 우리가 가장 기쁠 때 어떤 표정을 지어? 행복한 표정? 땡! 침대 위에서! 미간에 힘 빡 주고 똥 싸고 있지! 절정의 순간에는 입도 다물지 못하고. 표정만 보면 죽을병에 걸린 줄 알 거야. 특히 서양 누님들은. 오! 깟! 이쿠!
신음과 표정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 어디 보자, 남편, 남친 있는 여성분들. 별로였는데 좋은 척 해봤다 손?....있죠! 왜 그러셨어요?....아, 남편 기 세워주려고. 역시 현모양처이십니다. 박수! 옆에 남편, 잘 들었죠. 파이팅! 다음엔 다른 부분도 살펴보세요. 얼굴에 홍조가 도는지, 둔덕에 피가 몰렸는지. ....응? 모쏠이 뭘 아냐고? 아니! 제가 경험은 없지만 구성애 쌤 강의는 다 들었습니다! 시미켄 형님의 똥꼬 핥기까지! 킁킁. 하라랄. 어.....내가 뭔 말 하고 있었더라.
아무튼. 장례식에서도 웃으면 복이 와요! 친구 결혼식에서 울면.....안 돼. 이건 아냐! 양가 부모님, 신부, 신랑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아니면, 윤종신이 부른 너의 결혼식. 몰랐었어 네가 그렇게 예쁜지 웨딩드레스. 하얀 니 손엔 서글픈 부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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