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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누군가의 산타2019.12.25 PM 10:44
누군가의 산타
안녕하세요. 전 안녕 못합니다. 나 홀로 집에! 점심에도 짜파게티, 저녁에도 짜파게티! ...올해는 유달리 더 살살한 크리스마스인 거 같아. 엄마라도 집에 있으면 치킨 시켜먹자고 했을 텐데, 성당에 가서 그럴 수도 없고. 크흑. 그래도 나와 같은 처지인 여러분을 보고 힘을 냅니다! ...응? 어제 이미 모텔 갔다 왔다고? ......둘이 들어가 세 명이 나오리라. 할렐루야!
초등학교 4학년? 그때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정말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흐음. 문제는 물질적 풍요! 다른 말로 해서 선물! 어릴 땐 장난감 하나라도 받았건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죠. 이러니 무슨 기대가 되겠어!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레고들 다 어디 갔지? 최소 4개는 샀는데, 없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엄마가 버렸나? 레고뿐만이 아니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멋진 로봇 완구! 크흑! 지금 생각하면 나이 대에 맞지 않는 선물이었어. 7살 어린애가 어떻게 초합금의 소중함을 알겠어. 지금이면 박스까지 고이고이 소장품으로 모셔둘 건데!
선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어린이 친구들이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알아볼까! 그런데 찾아보니 오히려 반대 자료가 더 많이 나와. 초딩이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지 않은 선물 리스트! 자, 싫은 선물 1위는 무엇일까요? ....책입니다. 예?
하긴...겨울방학 코앞에 두고, 크리스마스에마저 책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진 않을 거야. 그래도 그렇지. 책이 얼마나 좋은 선물인데! 마음의 양식! 농담이 아니라 각자 인생에 충격파 날린 명작들 있자 않아? 난 미운 돌멩이라고 어린이 소설 읽고 울기까지 했다니까. 흐음. 그래도 싫다면... 세계의 명화를 선물해 봅시다. 그 있죠? 간간히 누드 나오는.. 고백하자면 비너스와 큐피트 그림 보고 해피타임을 가진 적 있습니다. ....응? 찰싹! ...아잇! 그 만큼 순수했단 증거죠! 초딩 때는 자위가 뭔지도 몰랐어요! ...아무튼.
자, 다음! 두 번째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은? 학용품이야. 헐. 아니, 학용품이 싫다고? 공부하랄까봐? 이것도 조사가 잘못됐어. 명확한 질문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야. 이를테면 일본산, 이 시국에! 묵직한 샤프하나 줘 봐요. 아니면 금테 두른 만년필이나. 아무리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좋아할 걸?
대망의 3위는 어린이 장난감이야. 예? 장난감을 싫어한다고? ..문제는 장난감이 아니라 어린이에 있대. 우릴 지금 유치원생으로 보시는 겁니까! 자존심 상합니다! 이 말이지. 크흑. 역시 애들은 애들이야. 유아용 장난감 매력을 전혀 모르잖아. 엘사 인형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애송이들! 너흰 아직 덕력이 부족해. 하악하악. 엘사짱! .....찰싹!
가치를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 굳이 돈 써가며 선물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 돈을 유용하게 씁시다. 평소에 사지 못했던 플스, 레고, 겨울왕국 피겨, 퍼펙트 그레이드 건담. 이런 것들을 애들 선물이라 퉁치고 사는 거야. 얼마나 좋아. ..딸아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건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구나. 할 수 없네. 아빠가 대신 쓸 수밖에. 오! ....응? 엄마? 어... 엄마에겐 애들 선물 핑계로 엘사 빨간 내복 코스프레를! 핫. 뜨거운 밤 보내세요!
여기까지가 저학년이었다면 이젠 고학년 차례. 성호르몬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민감한 애들. 여기서 눈밖에 찍힌 선물은? 외식과 생활용품! 호오... 이것도 아리송하네. 외식이야 한번 먹고 땡치니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생활용품은 왜 싫어하지? 신발, 가방, 옷. 다들 좋아하지 않아? 이것도 금액이 문젠가? ..부모님! 제가 바란 건 구찌라고요!
아무튼. 연예도, 결혼도 못한 인간이 애들 선물 생각하고 있으니 이상해. 그래도 상상은 해 보자. 내 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줘야 행복해 할까? ...응? 난 딸이 좋아. 아들이라면 울어버릴래! 아들보단 딸이지! ..오랜만에 성인지감수성 풍부한 말 한 것 같아 뿌듯하군요. 전국 외동아들만 둔 아버지들께 치어스. ...둘째는 딸일 겁니다. ...힘내요.
그런데 말입니다.... 남자애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바로 떠오르는데 여자애는 모르겠어! 남자애는 간단하죠. 크리스마스 마다 CPU 업글 해주면 됩니다. 거기에 오늘은 100연차 아빠가 쏜다! 이러면 쓰러지겠지. ...어릴 때부터 사행성 기르는 꼴인가? 크흠. 반대로 여자애는...어... 이런 수박바! 평생 동정남으로 살아온 인생. 여자를 모릅니다! 할 수 없다. 똑같이 100연차 가즈아! SSR 뽑을 때까지 우리 딸 파이팅!.....찰싹!
하하하. 하아.....잠깐이나마 우리 생에 허락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자니 ...더 슬프잖아! 때려쳐! ....진짜 선물이 필요한 건 나야. 우리라고! 12월 25일 방구석에서 유튜브나 하루 종일 보고 있었던 가련한 중생들. 다 같이 자신을 향해 선물을 보내자. 산타가 되어! ....대신 정말 불가능한 건 안 돼. 사랑, 남친, 여친, 콘돔, 이런 거. ..거북알 아이스크림 정도는 되겠다.
어디보자. 스팀에서 세일하는 게임 질러? 몬헌이 끌리는데. ..아니면 꿈에 그리던 풀프레임 카메라? 찰싹! 이 정신 나간 장비충. ..평소 신세만 지는 사야짱 영상을 블루레이로 주문하는 것도 괜찮겠어. ..어오, 그럼 보답해야 할 분이 너무 많잖아. 무라카미 유리, 유마 아사미, 하루나 하나. 헉헉. 이건 안 되고! ..나온 지 5년 지난 지프로2나 은퇴 수순을 밟아줄까나. 리얼미 Q랑 홍미노트8T가 괜찮던데. 흐음......끄응.....아잇!........푸후후....
지름신으로도 이 공허함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후우.... 어릴 때 크리스마스가 즐거웠던 건 선물 때문만은 아닌가 봐. 날 사랑하는 사람들, 챙겨주는 사람들. 아들을 위해 전날부터 로봇완구를 몰래 이불장에 숨겨놓은 아빠의 마음. 안 된다 하면서도 레고 테크닉 하나 손에 쥐어준 엄마의 마음....이제 그러기엔 너무 커버렸네.
잠깐...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순 있잖아! 기부....아잇, 전에 해보고 이젠 안하기로 했는데...그래도....그래 결정했다! 나연이에게 작디작지만 기부! 그 전에 단체 상태부터 봐야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라. 호오. 사업비가 83%! 믿을 만 하구만!
나연이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미 투!
나연이 해피빈 : 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56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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