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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마이 아르파 세븐2020.02.05 PM 10:18
마이 아르파 세븐
선생님, 살려주세요. 머리가 핑핑 돌아요! (찰싹!) ..워워. 지금 제 정신이 아냐. FLEX! 져먼 슈퍼 FLEX 해버렸거든!
전에 말했었나? 내가 카메라에 미쳐서 전 재산의 3분의 2를 때려 박았어. 이 미친 자식! (찰싹!) 그런데 하하. 남은 재산의 절반을 또 엎었네? 어디에? 카메라 수리 하는데! 오, 맙소사. 아테나님, 이 새끼를 구원하소서!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거야. 내 성격 생각 못하고 실용성만 따진 결과지. 없는 사정에 카메라 지르려다 보니 자연히 중고부터 찾았어. 그 중에서도 상태 안 좋은 녀석으로. 아항? 돌에 찢기고, 기스(찰싹!)가 아니라 상처 좔좔 흐르는 놈을 노렸지. 사진만 찍히면 된다! 이 마인드. 그래서 내 손에 들어온 게 바로 이 녀석이야. 손 휘, 아르파 세븐 아르 마크 투!
시중가보다 싸게 샀어. 상태 좋은 제품보다 한 45만 원 정도. 핫. 보기엔 이래도 작동은 잘 돼. 그러면 된 거 아냐? ...아니! 끄흐흑. ....후우. 진정. 이 얘길 하려면 우선 내 안의 덕후력부터 설명해야 돼. 한 때 피규어 모아본 사람으로서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 달라. 도색미스? 상처? 용납을 못합니다. 종이박스가 찌그러졌다? 상품성 제로!
이 끝 모를 집착이 다른 분야까지 번졌어. 새 폰이 오더라도 뜯질 않습니다! 왜? 보호필름이랑 케이스가 없으니까! 그 둘을 안 붙이고 어떻게 폰을 사용한단 말이오! 내 소중한 폰! 마이 프레셔스! ..그래서 5년 전 출시된 LG 지프로2도 이렇게 깨끗하지. 캬하하. LCD에 줄 하나 없습니다. 반짝반짝! ...아잇. 이 자괴감은 뭐지.
중고로 전자제품 사면 알코올 소독부터 하고 보는 인간이야. ...응? 그런 강박증 환자가 어디 있냐고? 여기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눈앞에! 소독만 하는 줄 알아? 소독 끝나면 비눗물로 때까지 밀어! ..그 후엔 집안 식구들에게 인사시키지. 자, 여기가 터줏대감 컴퓨터 어르신. 저긴 너랑 동기뻘 탁상시계. 우리 식구가 됐으니 친하게 지내자! 호우! ...갑자기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봐? 전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물건에 대한 애착이 풍부할 뿐이라고요!
이런 녀석이 상처투성이에 한쪽 면이 부러진 카메라를 견딜 수 있다? ..없다! 안 돼! ...후우. 때는 1월의 비오는 날. 카메라 녀석과 땀을 나눌 만큼 친해진 후였어. 그 날도 집구석에서 이리저리 만지고 있는데, 소리가 들리는 거야. ..주인님, 절 사랑하시나요? 당연하지! 마이크 단자에 일부러 아무것도 안 넣을 만큼. ..그럼 이런 제 모습을 그대로 놔두실 건가요? 소녀, 딴 건 몰라도 상단 케이스만큼은 갈아치워 주시옵소서. ..오 갓.
그 이후로 카메라 들 때마다 신경 쓰이는 거야. 한번 상처가 눈에 들어오니 이제 그거밖에 안 보여. 부서진 껍데기 사이만큼 내 마음도 아파. 그래서 고치기로 했습니다. 제 의지로 말이죠. 카메라 껍데기 갈자! FLEX! 껍데기, 그 얼마나 한다고!
그런데 말입니다... 껍데기 가격이 장난 아냐!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알리에서 부품 값을 매겨봤거든. 부러진 윗뚜껑과 뒷판 해서 132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6만원 돈이지. 하하하. 그 시커먼 마그네슘 쪼가리가 16만원! 치킨이 8마리! 이런 수박바!
그래도 이건 저렴한 축이야. 소니 서비스센터에선 23만원 불렀으니까! 여기서 인생 갈등이 시작됐어. 안전하게 정식센터에 맡기느냐, 아니면 8만원 아끼고 자가 수리를 하느냐. 선택은요? ..다들 알잖아. 나 소심한 거. 안전빵 정식센터로 가즈아!
그럼 23만원 주고 기능에는 아무 상관도 없는 카메라 껍데기를 갈아치웠냐? ..아니! 37만 5천원 주고 바꿨거든요! 예! 끼요옷! ...누가 펩시 좀 던져줘.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펩시가 이 아픔을 씻어줄 거야. ...는 개뿔!
왜 37만 5천원 인가! 소니가 등 처먹었나? ..아니! ..이것도 내 의지대로 지불한 거지. 캬하하. 이왕 하는 김에 모조리 바꾼다! FLEX! 앞판, 모서리, 버튼, 구멍, 손잡이 다 바꿔! 기능엔 아무 영향 없지만, 그래도 바꿔! ..카메라도 잘 생긴 게 최고야. 그럼! (찰싹!)
손희 수리 기사님이 처음에 말렸어. 껍데기 간다고 37만 5천원을 때려 박다니, 이 맛 간 고객, 구해야 한다! 그러나 주고받는 대화 속에 내가 얼마나 외모지상주의자인지 기사님도 알아챘지. 당신의 카메라. 강남 누나만큼 성형해 주겠소. 수술 수락!
집도 기간, 무려 2주. ..우리나라엔 부품 재고가 없어서 다 수입해야 했거든. 하긴, 케이스 통째로 가는 흑우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것도 5년 전 카메라를! ..아무튼. 쨔잔! 성형하고 온 제 카메라에요! 예쁘죠? ...그냥 시커먼 플라스틱이라고? 야! 이 상처 없는 시커먼 플라스틱 덩어리를 위해 내가 37만 5천원을 쏟아 부은 거라고! 어! ....음머~
...지금 무슨 생각 드는 줄 알아? ..차라리 이럴 거, 처음부터 상태 좋은 걸로 사지.. 풀박스에 신제품 냄새 안 빠진 놈으로다가. .후우. 지난 일인 걸 어떡해. ..우울해 졌어. 울어버릴래! 끄아앙! 이런 FLEX한 사정 때문에 멘탈이 나갔어. ..난 누구? 왜 이 짓? 하하하! 미쳐가고 있어! ..여러분한테 하소연 안 하면, 오늘 잠 못 잘지도 몰라. 이해해 줄 거지? ....땡큐배리감사. 굳이 교훈을 찾자면, 어....나처럼 덕후력 충만한, 아니, 사랑의 경계가 무생물까지 확장된 사람은 새 걸 사자. 중고라면 A+ 풀박스로. 아항? 그래야 내 꼴 안나!
이 경계 없는 사랑이 사람에게까지 뻗어야 할 텐데, 참 어렵네. ..맹자는 사람을 인자하게 대한 후에야 사물을 사랑할 수 있다는데, 난 정반대야. 사물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은...어...돈, 외모, 권력 보고 사귄다? (찰싹!) 소인배는 웁니다!
아무튼. 카메라! 이제 아껴 쓸 거야. 장롱에 고이고이 모셔둬야지. 히힛. ...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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