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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설탕은 창조의 어머니2020.08.24 PM 10:44
설탕은 창조의 어머니
와우. 잘 지내? 난 잘 지내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해. 왕도 부럽지 않는 편안한 상태. 왜냐, 저녁으로 기름에 저린 느끼한 돈까스를 한 사발 먹고, 요맘떼 아이스크림으로 위 청소한 후, 설탕덩어리 팥 앙꼬까지 후루룩 상태에서, 26도 에어컨 바람 아래 있으니까!
사실 이런 호사는 오늘에서야 시작한 거야.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체감 32도씨 방구석에서 혼돈 파괴 망각을 맛봐야 했어. 이건 순전히 내 스스로 의도한 거야. 저녁을 때려치운 건 다이어트 때문에, 에어컨을 틀지 않은 건 엄마 눈치 보느라, 전기요금 아끼느라 그렇게 한 거지.
그러나 다 포기했어. 왜? ..후우, 대본이 나가질 않아! 쇼 마감시간은 다가오는데, 준비된 주제는 없고! 머리 쥐어짜며 흔들어 보지만, 어후, 단 한 마디도 튀어나오지 않았어. 그저 멍하니, 월드워 Z 찍은 좀비 된 기분이었지. 전두엽과 정수리 사이가 짜부라져서 아플 정도였어.
혹시 파, 파킨슨? 조기 치매? ...워워, 농담 아냐! 심각했다고! 이제 이 생활 그만둘 때가 왔구나. 머리에 한계가 임박했구나! 얼마나 자괴감 들었는데! ...망상이야? 그래, 우린 아직 젊기에! 걱정하기엔 이르기에! 벌써부터 이러면 부모님 보기 부끄럽지.
그래서 원인을 찾아봤어. 더 이상 대본을 쓸 수 없는 이유는요! ...흐음, 이런 변고가 이번 달 들어서 생겼거든. 8월의 무더위가 시작되고, 다이어트 한답시고 저녁을 굶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렇다면 이 두 요소가 범인이라는 말인데...
일단 과감히 에어컨 틀었어! 25도, 27도 아닌 정확히 26도로. 사타구니 진물이 뽀송해지는 절대 온도지. 핫. 단 몇 도 차이임에도 몸은 천국을 느껴. 비듬으로 가득한 두피는 더 이상 가렵지 않아. 위장마저 냉기를 머금고 안정적 바이탈 되찾았지.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지만! ..여전히 안 써져! 모처럼 쾌적한 환경 맞았다고 그저 쉬고 싶어. 이전이 그냥 좀비였다면, 에어컨 아래에선 나른한 곰탱이로 진화했을 뿐이야.
찬 바람이 안 통하면 이제 남은 건 텅 빈 위장 탓이라는 건데, 워호, 이 부분은 들어갈 때부터 반신반의 했어. 아니,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아? 말짱한 정신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굶는다,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시험 아침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배고픔을 불철주야 노동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그런, 앙? 인정? ...인정!
한편으론 설탕덩어리를 넣어줘야 할 것 같았어. 왜, 뇌가 몸에서 가장 에너지 많이 소모하는 기관이라며? 찾아봤더니 근육 대비 10배나 더 먹는데! 와우. 성인의 경우 하루 섭취 칼로리에 20%, 신생아는 75%를 머리님이 잡수신다 하니, 이거 이거, 헬스 할 시간에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나? 흐음.
그래서 제 선택은요! 먹고 보자! 배 채우고 잠 쏟아져서, 쇼 펑크 낼지 모르지만, 일단은 먹자! 어차피 동태눈깔 상태로는 무대에 서봤자 아무것도 안 된다. ..그리하여! 어제부로 다이어트고 뭐고 때려치웠어. 하하하! 흰 쌀밥 탄수화물을 밀어 넣는다! 설탕과 소금이여 내게 오라! 신선한 고기!
효과는 놀라웠어. 닭 안심에 케첩 듬뿍 담은 한 끼 했더니, 이건 무슨 상대성 이론 터진 거 마냥 대본이 술술 나와. 맙소사. 그제야 깨달은 거지. 뇌는 가차 없다! 네놈이 감히 일용할 양분을 공급해 주지 않아? 그럼 일 안 해! 이 결단엔 양보가 없어. 아무리 뱃살을 생각해서 다이어트 하자, 통풍에 시달리는 발 고치자 해도 두뇌님은 뇌세포 하나 깜짝 안 하지. ..난 노예가 아니다! 이 몸에 주인이다!
여기서 잠깐, 자긴 찜통에서 굶어도 잘만 일한다 하시는 분 있을 건데, 잘 생각해 봐. 과연 그 일이 “창조”적인 행위인지. 아항?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굴러가며,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일은 대충 할 수 있어! 그 정도는 나도 한다니까. 일어나자마자 크롬을 키고, 신작야동 탐색하고, 고인물 돼버린 게임을 하고, 유게이를 탐방하고, 유튜브를 정신없이 시청하고, 자소설을 쓰고, 공식처럼 외국어와 시험지를 달달 외우고!. ..말하고 나니 왜 이렇게 슬프냐. 커헉.
이번에 알았어. 내 하루 중 진짜 짱구 굴리는 시간은 오직 대본 쓸 때뿐이란 걸.. 뭐, 이거라도 하는 게 어디야. 작지만 소중한 시간이지. 투자할 가치가 충분해. 전기요금 따위! 설탕 덩어리 섭취 따위! 날 막을 수 없다고! 캬하하!
...응? 악독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혼 불태운 분들? 어... 그 분들은.. 고흐, 윤동주 같은 분들은... 천재니까! 도파민과 엔돌핀으로 하나가 된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했던 거지! ...개소리? 야! 내 장담해! 만약 열량 충분히 보충하시고, 18도 선선한 기후에서 활동하셨다면, 지금보다 작품 4배는 더 내셨을 거야. 서시! 동시 북시 남시! 별이 빛나는 밤에! 낮에, 황혼에, 새벽에!
그래서 오늘 결론은요. ..창조는 설탕에서 나온다. 정신력? 그것도 설탕에서 나온다. ...뭐? 당뇨? 그건 너님 유전자 때문이다. (찰싹!)
두뇌는 에너지 먹는 하마 :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01IJRZty4DGJM000
- 개잡부인생
- 2020/08/24 PM 10:54
- 풍신의길
- 2020/08/25 AM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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