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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종숙님께 못 전한 말2021.12.08 AM 12:09
종숙님께 못 전한 말
어.. 울적하다.. (또 왜!) ..오늘 새벽에 꿈을 꿨다? 내용인 즉, 검은 코트 입은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어. 첨엔 내 첫사랑인가 싶어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더니, 그건 아니더라고. 혹시 얘가 성형이라도 했나 두리번거릴 즈음, 그녀 음성이 내 귓가를 타고 들어왔어.. 희한하게 뭐라 했는지 글귀는 기억나지 않는데 목소리만큼은 또렷이 알아차렸지. 아, 내 첫사랑 목소리는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지?
난 궁금증에 타들어 가는데 그녀는 초월적 웃음을 보이는 거야. 그녀 옆에는 어느새 한 남자가, 똑같은 검은 코트를 입고 서 있는데, 그 놈도 실실 웃기 시작해. ..순간 가슴이 싸해지며, 나 스스로, 난 실험체니까 이놈들의 의도를 알 도리가 없다.. 혼자 자포자기 하는 거 있지? 그러더니 꿈속의 내가 2명의 상대방 눈을 스캔하기 시작해. 저들의 눈동자는 흰색과 파랑색 중 어느 쪽인가? 그것만이라도 밝혀내야 한다! 이유야 모르지만, 아무튼. ...꿈은 여기까지야. 깨자마자 꿈 속 일지를 기록하기 바빴어. 저번처럼 까먹으면 안 되지.. (쓸데없이 무슨..)
워워. 오해는 마. 사주팔자 보려고 꿈을 기록한 건 아냐. 쇼에서 썰 풀려고 새겨둘 뿐.. 다만, 오늘 꿈만큼은 예지몽에 가까웠다. (...) ..오늘 병원에 갔걸랑. 6개월 마다 돌아오는 통풍약 타임. 이왕 가는 김에 치과 스케일링도 예약하고, 아주 룰루랄라였어. 아침 8시 30분 병원 열리자마자 바로 피검사 받으러 갔지.
거기서.. 9년 만에 종숙님을 만났어.. 마스크를 쓴 상태라 모르고 지나칠 법도 한데, 종숙님이 내 이름을 대번에 부르시는 거야.. 맙소사.. 그 목소리에 난 몸이 굳어버렸어.. 너무 죄송하고, 할 말이 없고, 또 죄송해서... 종숙님은 나 다 챙겨주고, 할머니 장례식 다 주관해 주시고, 심지어 철없는 내가 본인 따님에게, 6촌 지간 누나에게 프러포즈를 했음에도 여유롭게 넘어가 주셨건만.. 후우.. 난 보답 드린 게 없어. 아니, 오히려 일부러 피해 다녔어.. 취직 못했다는 핑계로..
병원 한편에서 얘기를 나눴건만 감히 내가 먼저 여쭐 용기가 나지 않더라.. 고모 할머니는 잘 계신가요? 병원은 왜 오셨습니까? 어디 편찮으십니까? 누나는 잘 지내나요? 제가 미친놈이었죠, 그래도 여전히 사랑합니다.. 꺼내야 할 말이 한 가득이건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종숙님께서도 서서히 말을 거두시더니 눈이 깊어지셨어.. 딱 3마디에 내 사정을 다 파악하셨거든.
니 지금 뭐하노? ..올해 니 몇이더라? ..가방이 무겁네, 책이가?.. ..내가 거기서 무슨 거짓말을 내뱉겠어. 내 씁쓸한 몸이, 눈빛 하나하나가 비굴한 걸.. ..종숙님이 주섬주섬 5만 원 권 2장을 손에 쥐어주시더라. 그리곤 조용히 떠나셨어.. 정말 돼지머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거구나.. 난 실험체의 돼지머리처럼, 자괴감에 떨지만 표정이나마 웃고 있을 상이었던 거야..
그렇게들 말하지. 위로는 말보다 금액으로 하는 거라고..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 10만 원이 꽁으로 생겼는데 아니 기쁠 수 있는가! 이걸로 카메라 장비나 질러야지! ..근데, 근데.. 가슴 왼쪽 주머니에 담은 종잇조각이 날 더 아프게 했어.. 죄송함만 더 할 뿐이었다.. 예쁜 치과선생님이 스케일링을 해 줘도, 칫솔질까지 가르쳐 주는 순간에도,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짜장면 곱빼기를 먹는 와 중에도, 이 답답함은! 아련함은.. 부끄러움은..
이제야 알겠어. 차라리 잔소리 퍼부어주시는 게 나아! 그럼 반발심이라도 생겨 방종에 몸을 맡기지! ..그렇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마냥 쳐다보시는 건, 다 이해한다는 듯 말없이 용돈 찔러주시는 건, ..너무 가혹하십니다..
미안하다. 괜히 개인사 털어놓는 바람에 분위기 면접 탈락장 됐네.. 차마 이런 얘기는 여러분 아니고서야 털어놓을 상대가 없잖아.. ..에잇! 오랜만에 꿈을 꿨으면 조심이라도 할 걸! 혹시 아는 사람 마주칠까 얼굴 숨기며 다닐 걸! .. 다음 또 해괴한 꿈꾸면 아예 방구석에서 나가질 않을 거야.
..그래도, 너님들에게 감정을 전가하니 홀가분하다야.. 정말 고마워. (...) 긍정의 샘이 솟구친다! 하긴, 내가 이런 경험 한 두 번 겪나! 앞으로도 끊임없이 겪겠지! 그럴 때마다 툴툴 털고 일어날 테다! 그럼! 하룻밤 자면 다 까먹을 거야. 일용할 10만 원만 빼고! (짝!) ..그리고 다음번 종숙님과 만났을 땐 좀 더 당당한 사람이 될 다짐과 함께, 앙!
고모할머니, 종숙님, 그리고 사랑했던 누나..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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