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린풍자쇼] 죄책감 작은 카메라 찾기2023.02.04 PM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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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작은 카메라 찾기

 

  

토요일은 카메라 장비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장비라기보다 개인 하소연에 가깝습니다.

 

그... 난 부산 구도심을 즐겨 찍어. 때로는 사명감까지 가져가며 기록을 남기지. 언제 사라질지 모를 풍경이니까... 저번 주 일요일도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어. 어느 남루한 동네, 모통이에서 발길을 멈췄지. 그때 그녀가 지나친 거다.

 

여중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내 곁을 씩씩하게 걸어갔어. 마치 부끄러움을 일부러 감추는 듯한 씩씩함이랄까... 그리곤, 내가 찍고 있었던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라고.. 마음이 뜨끔했어. 감히 학생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 했어. 그저 벽에 렌즈를 고정한 채 멍하니 서 있었지. 소녀의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말야...

 

죽을죄를 지은 듯 했어. 내 행동 때문에 학생이 상처 받지 않았을까? 마음이 무겁습니다... 차라리 내게 화를 냈으면 이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텐데... 그러나 소녀는 그저 수줍음을 감추듯 돌아가는 모습에, 그 모습에... 난 가해자인가?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분들 장소에 렌즈를 들이대지?

 

...변명거리는 있어. ...난 당신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나도 가난합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부산 구도심에서 태어나서, 성장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곳을 사랑합니다. 이곳을 남기고 싶습니다... 구차할 뿐인가... 아니, 맹세해! 결코 가난투어는 아니라고! 빈곤 포르노에 기생해서 관심 받을 생각 없다고! ...진짜 없나! ...진짜 없나?... 진짜...

 

세상을 향해 말은 하고 싶었어. 아직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 생활이 측은하게 보일지언정 행복하다고. 다만, 조금만 도와주십사,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나? 여러분이나, 정치권이나,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그런데 이 같은 진심을 누가 판단할 수 있지? 나 스스로 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난 당당한가? ...모르겠어.

 

그 날 이후로 카메라 꺼내기가 더욱 조심스러워...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딴엔 사죄의 의미로 결심한 게 있어. 사진을 마이피에 게시할 때, 절대 장소를 언급하지 않는다. 사진에 위치 단서 또한 담지 않는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오직 나만 보고, 나만 간직한다.. 이렇게나마 죄책감을 덮습니다. 죄송합니다. 머리 숙이겠습니다.

 

 

...자! 분위기 전환! 거리 사진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길거리를 가장 정답게 담을 수 있는 카메라가 뭘까? 아참, 오해하실라. 그저 “길거리”입니다. 사람은 그림자조차 찍지 않습니다! 허락을 구하지 않는 한! 이건 나만의 결심이니까, 참고하시고. 에헴!

 

골목길에서, 꼬마와 만나도, 할머니와 마주쳐도, 할아버지와 대면해도, 하물며 수줍게 지나가는 여학생을 맞닥뜨려도, 그 누구하나 거부감 갖지 않을 카메라라... 일단 작고 귀여워야겠지? 살짝 꼬질꼬질한 느낌도 나면 좋겠는 걸. 흐음... 엇? 이 고민은 이미 몇 년 전에 했었어! 당시 내가 선택한 카메라가 a7s 1세대 바디에, 렌즈는 35mm 2.8 자이스였죠. 난 그때 행복했었나? 거리를 거리낌 없이 담았었나? ...기억이 안나.

 

아참, 언제 어디서나, 꺼내는 데 한 점 주저 없었던 카메라가 있었구나. 이 녀석은 확실해! 바로 RX100 1세대. 똑딱이죠. 이 녀석과 나눈 추억이 많아.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일본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오사카 밤거리에서, 빈민가에서, 집창촌 앞에서도 RX100은 자신만만! 그 누구도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았어. 나조차도.. 지금은 없습니다. 고장 난 걸 부품용으로 팔았거든...

 

이왕 말 나온 거, 자그마한 카메라를 살까? (야!) 이를테면 리코 GR3 어때? 참...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관심 없던 GR3였어. 그런데 한 순간 급 호감이 간다야. 괜히 거리 사진사들에게 사랑받는 제품이 아니구나.

 

어... 소신 발언하겠습니다. 내 눈에는 투박한데! 참... 실물은 괜찮아? (...) 그래서 GR3 가격이... 13만원이네. 괜찮네. 아니네. 130이네. ...후우, 없던 이야기로 합시다. 무슨 길거리 귀요미 카메라야!

 

..이런 고민 자체가 무의미한가? 작든 크든, 귀엽든 사납든,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 자체가 폭력적인가? ...어쩌면 좋지...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동감하고, 생활하며, 마치 가족을 찍듯 카메라를 들 수 있는 노력! 능력! ...장비 따질 시간에 그 실력을 길러야 하나? ...근데 난 안 되잖아? 대인기피 방구석 찐따가 무슨! 아악! 그만! 더 이상은, 속이 메스꺼워! ...자괴감이 몰려온다...

 

아무튼.. 아무튼... 더 겸손해지겠습니다. 인기척 나면 후다닥 카메라 잘 숨기겠습니다. (...) 이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잖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내일은 기필코 고민 없이 들을 수 있는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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