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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호겐・헤이지의 난 #042018.09.13 AM 12:02
제 01장 -분열 하는 정계
一. 왕가의 내분
◇ 분열 하는 정계(政界)
~ 이미 부친을 잃은 토쿠시(得子)였으나, 그녀의 사촌인 후지와라노이에나리(藤原家成)는 토바인(鳥羽院)의 첫째 가는 근신(近臣)으로서 하리마노카미(播磨守) 등을 거쳐 공경(公卿)에 반열에 올라있었으며, 호엔(保延) 4년(1138)에는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인의 근신으로서 최고위인 곤노츄나곤(権中納言)으로 승진 해있었다. 거기다, 토쿠시의 조부인 아키스에(顕季)의 사위가 된 무라카미 겐지(村上源氏) 출신의 미나모토노마사사다(源雅定)나, 나카미카도류(中御門流) 출신의 후지와라노무네미치(藤原宗通)의 자식들도,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특히 마사사다는 에이지(永治) 원년(1141)에 토쿠시가 입후(立后)됨과 동시에, 그녀를 모시는 코고구우직(皇后宮職)인 쵸칸코고구우다이후(長官皇后宮大夫)로 취임하여 측근이라고도 해야 할 입장에 있었다.
이런 마사사다는, 타이켄몬인(待賢門院)의 형제인 칸인류(閑院流) 출신인 후지와라노사네유키(藤原実行), 사네요시(実能) 형제와 오오오미(大臣), 타이쇼(大将) 자리를 경쟁하는 관계에 있었다. 마사사다가 속한 무라카미 겐지는, 일찍이 호리카와 텐노(堀河天皇)의 외척으로서 오오오미를 시작으로 하는 고위고관을 독차지 하고 있었지만, 외척관계의 단절과 함께 추락 할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대신에 시라카와인(白河院)의 외척인 동시에, 토바, 스토쿠(崇徳) 2대에 걸쳐 외척으로서 대두한 칸인류에게 밀리는 기미도 보이고 있었다.
호엔 6년(1140)의 사다이쇼(左大将) 인사가 있었을 때에, 외가 쪽 백부에 해당하는 사네유키를 추천한 스토쿠 텐노를 토바인이 제지, 마사사다를 임명하기도 했다. 확실히 토바는 토쿠시와 이에나리, 무라카미 겐지들을 중시하였기에, 칸인류와 손을 잡은 스토쿠와의 사이에서 매우지 못 할 구렁이 생겨 있었다. 그 배경에는, 물론 토쿠시에 대한 총애, 타이켄몬인과 소원해진 것도 관계있었을테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역시나 이에나리를 시작으로 하는 즈료층(受領層)이 성공 등에 의해 막대한 경제 봉사를 행하여 인의 경제기반이 되어 있었다는 것, 또, 그들은 신분적으로 한계가 있었던만큼, 인에게 충실했던 것도 관계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인의 근신으로서 새롭게 즈료층이 대두 한 것과, 비후쿠몬인(美福門院)이나 코노에 텐노(近衛天皇)를 중시한 자세가 관계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켜 온 칸인류에서는 정치에 개입할 움직임도 보여주었다. 일찍이 카쇼(嘉承) 2년(1107)에 토바 텐노가 즉위했을 때, 텐노의 외가쪽 백부이자 타이켄몬인의 부친에 해당하는 킨자네(公実)는, 외척이라는 입장을 이용하여 섭정(摂政) 자리를 바란 적도 있었다. 사네유키, 사네요시 형제는 이치몬(一門) 최초의 오오오미를 노리는 자세를 보였다. 토바인이 스토쿠를 기피한 배경에는, 이러한 칸인류의 대두를 우려하는 의식도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 왕가의 분열과 셋칸케(摂関家)의 분열도 실은 전혀 관계 없지 않았다. 타다미치(忠通)의 아내는 나카미카도류 출신인 곤노다이나곤(権大納言) 무네미치의 딸이었던 데에 반해, 요리나가(頼長)의 아내는 칸인류 출신의 공경인 사네요시의 딸... 즉, 타이켄몬인의 조카에 해당했다. 사네요시의 형인 사네유키는, 아키스에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의 아들인 킨노리(公教)가 신제이(信西)의 자식인 토시노리(俊憲)를 사위로 삼는 등.. 인의 근신 세력과도 가까이 하고 있었는데, 사네요시는 타다자네, 요리나가가 실각하기 직전까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큐안(久安) 5년(1149), 마사사다의 나이다이진(内大臣) 승진과 동시에, 칸인류에서 첫 오오오미로서 사네유키가 우다이진(右大臣)으로 승진했다. 호엔 4년에 후지와라노무네타다(藤原宗忠)가 사임한 이래, 이때까지 10년 남짓한 시기 동안 우다이진은 공석이었다. 칸인류와 무라카미 겐지의 첨예한 대립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익 큐안 6년에는, 사네요시도 요리나가의 지원을 받아 나이다이진 자리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칸인류파인 요리나가에게, 토쿠시... 즉, 비후쿠몬인이 반발 한 것도 당연했다.
마찬가지로 큐안 6년, 요리나가는 어렸을 때부터 양녀로서 있던 아내의 조카인 타시(多子)를 코노에 텐노에게 들여보내려 했다. 여기에 대해, 비후쿠몬인은 타다미치의 아내 소시(宗子)의 조카이자 후지와라노코레미치(藤原伊通)의 딸인 테이시(呈子)를 일단 자신의 양녀로 삼은 다음에, 이어서 타다미치의 양녀로 삼고는 코노에의 중궁(中宮)으로 내세웠다. 부친인 타다자네가 타다미치를 의절한 것은, 이 입궐 경쟁 직후의 일이었다.
이리하여 정계는 양분된다. 타다자네, 요리나가라는 셋칸케 주류와 타이켄몬인으로 이어지는 칸인류가 한 파벌. 여기에, 비후쿠몬인이나 인의 근신과 손을 잡은 타다미치, 무라카미 겐지 출신인 마사사다나 나카미카도류가 또 다른 파벌. 타이켄몬인, 스토쿠와 비후쿠몬인, 코노에의 대립은, 셋칸케를... 그리고 조정 전체에 커다란 균열을 생기게 했다. 분열된 두 세력 위에 토바인이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천의 군주(治天の君)로서 정계를 통솔한 토바의 권위에 의해, 양자는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 모순(矛盾)의 격발(激発)은 억제되었다는 뜻이다.
이어서, 셋칸케 안에서의 타다미치와 요리나가의 대립과, 당시의 셋칸케의 실태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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