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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증보판 마츠다 세이코論』#172016.03.12 AM 12:15
제 02장 -푸른 과실(果?)의 성숙(成熟)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의 궤적
◇ 여자와 남자의 Balance of Power -「プレイバック Part2(플레이백 Part2)」
「プレイバック Part2」
?の中を走り?けてく?っ赤なポルシェ
(녹음 속을 달려 가는 새빨간 포르셰)
一人旅なの私?ままにハンドル切るの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기분 내키는대로 핸들을 꺾었어)
交差点では隣の車がミラ?こすったと怒鳴っているから
(사거리에서는 옆에서 달리던 차가 미러를 부딪혔다 고함을 지르길래)
私もついつい大?になる
(나도 그만 큰 소리를 내게 돼)
馬鹿にしないでよ、そっちのせいよ
(바보 취급하지 말아요. 그쪽 잘못이잖아)
ちょっと待って Play Back Play Back
(잠깐만 기다려 Play Back Play Back)
今の言葉 Play Back Play Back
(방금 했던 그말 Play Back Play Back)
馬鹿にしないでよ、そっちのせいよ
(바보 취급하지 말아요. 그쪽 잘못이잖아)
これは昨夜の私のセリフ
(이건 어젯밤 내가 했던 말)
?分次第で抱くだけ抱いて
(기분에 따라 안길 뿐이고)
女はいつも待ってるなんて
(여자는 언제나 기다려야만 한다니)
坊やいったい何を?わって?たの
(꼬맹아, 대체 무엇을 가르쳐 주려 온거야?)
私だって、私だって、疲れるわ
(나는 말야... 나는 말야... 지쳐버렸다구)
はるかな波がキラキラ光る海岸通り
(커다란 파도가 반짝반짝 빛나는 해안도로)
短い旅よ力一杯アクセル踏むの
(짧은 여행이었어.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어)
潮風の中ラジオのボリュ?ムフルにあげれば
(바닷바람 속에서 라디오 볼륨을 가득 높히면)
心かすめてステキな唄が流れてくるわ
(마음에 드는 멋진 노래가 흘러나와)
勝手にしゃがれ、出て行くんだろ
(마음대로 해, 나가버려)
ちょっと待って Play Back Play Back
(잠깐만 기다려 Play Back Play Back)
今の歌を Play Back Play Back
(방금 그 노래를 Play Back Play Back)
勝手にしゃがれ、出て行くんだろ
(마음대로 해, 나가버려)
これは昨夜のあなたのセリフ
(이것은 어젯밤 그대가 했던 말)
?がりばかり言ってたけれど
(빈말만 늘어놓았지만)
本?はとても淋しがり屋よ
(사실은 외로움을 타는거야)
坊やいったい何を?わって?たの
(꼬맹아, 대체 무엇을 가르쳐 주려 온거야?)
私やっぱり、私やっぱり、?るわね
(나는 역시... 나는 역시 돌아갈래)
あなたの元へ Play Back Play Back
(그대 곁으로 Play Back Play Back)
あなたの元へ Play Back
(그대 곁으로 Play Back)
1978년 당시, 이 노래는 <새로운 여자>의 노래였다. 새로움의 키워드는 네가지가 있다.
「새빨간 포르셰」「홀로 떠나는 여행」「바보 취급하지 말아요」「꼬맹아」이다.
가사 속에 포르셰라는 상품명이 나왔기 때문에, NHK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 모모에는 「새빨간 자동차」라 가사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어째서 포르셰였는가(그것도 새빨간) 하면, 아기 요코(阿木燿子)는 모모에를 새빨간 포르셰에 태우는 것에 의해, 당시까지의 모모에에게 남아있던 부드럽고 수용적(受容的)이고 청순한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싶었으리라 생각된다.
스포츠카 타입의 고가의 외제차는, 남성적 스테레오타입과, 남성에게 있어서의 스테이터스 심볼 그 자체이기에, 거기에 탄 <내>가 성격의 용감함을 가졌고, 남성적 달성을 완수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포르셰에는, 어떠한 성격의 첨예함 -사회적 부적응에 몰리지 않을 만큼의-이 느껴진다. 게다가 색깔은 공격과 충동의 색인 붉은 색이다.
악녀의 격렬함과 자립을 표방하기 위해서는, 여기서는 푸른색 아우디나 하얀 벤츠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노래하는 것에 의해, 종래의 가요곡에서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던 <남자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은 여자>라는 이미지도 불식시키고 있다.
이 곡은 과장도 무엇도 아니라, 가요곡 사상 최초로 <운전하는 여자>를 노래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남자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서, 밤이슬인지 비 내리는 제 2 케이힌 국도라도 달리고 있는 것이, 상투적인 여자의 패턴이었던 것이다.
그 패턴에서는, 여자는 안타까운 사랑으로 마음 속으로 울면서도, 운전하는 남자의 <성실(誠?)>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애인에서 아내의 자리로 승격이라는 예정조화(予定調和)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곡에서는 <나>는 이미 남자의 조수가 아니다. 예정조화라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여자의 장래 생활을 보장해줄 운전자는 소멸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에, 여자의 생활에 존재해주는 것은 「꼬맹이」 -연하의 남자- 이다. 이미테이션 골드에서 <나>를 따분하게 만들었던 그 <올해 만난 사람>이다.
어젯밤, 그 남자는 「기분에 따라 안길 뿐이고」, <나>에게 「여자는 언제나 기다리는거야」라는 식으로 지껄이고 있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나서 「나는 당신의 장난감이 아니야」라고도 소리질렀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노기에 겁에 질려 휙 하고 등을 돌리고는 「네 멋대로해, 나가버려!」하고 불평했다. 여자는 집을 뛰쳐나와버렸다. 「바보 취급하지마, 그쪽 잘못이잖아」라는 말을 남기고.
하지만, 나홀로 여행을 멋대로 떠났을 <나>의 머리 속에는, 전날밤의 장면들이 몇번이고 반복(Play back)되고 있다. 일찍이 <연하의 남자>와 함께 있어도 <작년에 헤어진 사람>과의 장면(추억)을 반복플레이하고 있던 미련한 여자는, 지금은 <꼬맹이>와의 싸움으로 마음 아파하고, 후회하는 여자로 바뀌어 있다.
자립한, 격렬한 성격의 연상의 여자의 뇌리에 오가는 싸웠던 연하의 남자의 기호(記?)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소녀만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년애(少年愛)라는 테마나, 중년의 여성 작가 -어느쪽인가 하면 관념 소설(?念小?)을 쓰는 타입의- 에게서 볼 수 있는 소년에 대한 편애라는 모티프와 동일한 것이다.
즉, 자립을 목표로 한 여성은 대등한 성관계(性?係)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남자가 가진 사회성(社?性)을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사회적인 존재가 아닌 소년을 선택하는 것으로 인해 그 목적은 달성된다.
성(性)의 정치학 중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대등하게 행동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아직 아무것도 아닌 「소년」을 상대로 할 경우 뿐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역핸디(逆handicap)를 갖추는 것으로 인해, 근대적인 연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여자는 연애에 전체로서 관련하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남자 쪽이 종래의 여자의 입장으로 떨어졌다는 뜻이 된다. 연애의 부조리는 여자 측에서 보면 회피되는 것 처럼 보인다.
이 노래에서 <새로운 연애>는 또 다시 완수되지 않는다. <꼬맹이>는 그 가치 기반인 비사회성 -유아성(幼?性)- 을 어젯밤, 어딘가에서 배워왔는지 <남자의 사회성>으로 오염되어버린 것이다.
모모에에게 있어서의 그 꺼림칙한 <입술 끝에 희미한 웃음을 띄운 남자들>이 몇번이고 말했던 말을, 저 순진무구한 소년이 입에 담았던 것이다. 여자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교차점에서는 옆에 선 차가 -남자가 여자에게 언제나 그러했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여자는 세상의 남자라는 남자에게 큰소리로 외친 것이다, 「바보취급하지마, 그쪽 탓이잖아!」라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말이다. <추상(抽象)으로서의 남자>는 빨간 포르셰를 손에 넣고 성공한 여자에게 어떤 작은 권리도 권위의 침해도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서 모모에가 어젯밤의 꼬마가 보여준 <남자의 속내(本音)>를 옆에 선 차에서 들리는 노성에 부연하여, 세상의 <추상으로서의 남자>로부터 소원해지고, 영원히 홀로 여행을 계속해야할 것을 결의했더라면 그녀는 <나카시마 미유키(中島みゆき)>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나카시마 미유키>는 되지 못하고, 다시 <아기 요코>의 한계 속으로 강하해 갔다.
그녀는, 꼬맹이의 <남자의 속내>를 <빈말(?がり)>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빈말이라고는 해도 「사실은 외로움을 탄다」고, 꼬맹이의 유아성에 <연상의 여자>의 관대한 용서를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적으로 우위에 선 여자의... 열세에 서있는 남자에 대한 권리양도는 아니다. 아기 요코에게 있어서, 여자와 꼬맹이의 관계는 그런 부동의 Balance of Power로 지탱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녀에게 있어서 여자는 약한 존재이다. 감정적으로 미숙한 존재이다. 본래 약한 존재가 아니면 안 되는 여자가, 어째서 연하의 남자를 사랑했는가 하면, 그것은 어쩌면 「연상의 자립한 여자가 심적 에너지를 자기 자신이나 경력의 형성이나 세간에 대한 경계에 모조리 소진해 버리는 데에 대한 공포가 감춰져 있는」(Mary Esther Harding)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는 여자가 되는 것 -여성적 감정이 발달되지 않은 여자- 에 대한 공포가 그녀로 하여금 누군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유아적인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 왜 그런가 하면, 「그가 유아적일수록, 그녀 자신의 미숙한 여성적 감정 -유아성이야말로 여성적 감정의 본질이기 때문에- 을 그에게 투영할 수 있기」(Mary Esther Harding) 때문이다.
<꼬맹이>가 내뱉는 빈말 뒤에, 남자의 에고(ego)가 아닌 <외로움을 타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이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여자는 정신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모모에는 이렇게 해서 남자 곁으로 돌아간다.
「플레이백 Part2」는 <새로운 여자>의 노래가 아니라, 사실은 <자립을 두려워하는 여자>의 노래였던 것이다.
모모에가 <어른 여자>를 동경하는 한편으로 <자립한 여자>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겁을 먹고 있었다는 것은, 이 노래를 발표하기 전에 아기 - 우자키 콤비로부터 잠시 떨어져서 바로 그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와의 작업을 선택했다는 것이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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