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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시대극의 오류 찾기 #032017.06.25 PM 09:21
제 01장 -사람에 관한 거짓과 진실
◎ 에도시대(江戸時代)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제도는 없었다
~ 얼마전까지「백성(百姓)」은 차별적 용어라는 이유로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방송 금지용어가 되었고, 이를 대체할 용어로서「농민(農民)」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는 엄청난 오류로, 역사에 무지한 인권 옹호론자가 아는 체하며 나서면, 이런 한심한 일도 일어난다.
「백성」은 전혀 차별적인 용어가 아니며, 오히려「농민」쪽이 당시의 농업 종사자를 얕잡아 부르는 차별적 용어인 것이다.
현대에도, 시골에 가서「농민」이라 말하면 격노하시는 분이 많다.「나는 백성이다! 농민 같은 게 아니라구!」라면서.
「농민」은 농업 종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차별적 용어였으며, 애당초 에도시대(江戸時代)에「농민」이라는 말은 지금의 의미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에도시대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사농공상」이라는 말 자체는 존재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무사업(武士業), 농어업(農漁業), 공업(工業), 상업(商業)」이라는 업종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지, 계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백성」은, 농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복수의 업종에 걸쳐 활동한 자들도 의미한다. 때문에, 가령「농민」에 차별적 뉘앙스가 없었다고 해도 백성이라는 말의 대체용어로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센고쿠시대(戦国時代)에는 무사업과 농어업, 공업, 상업 전부를 겸임하고 있는 자들도 결코 희귀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백병전에서 센고쿠 최강이라 칭송받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군세 9할은, 평상시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백성이었다. 그때문에 우에스기군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농한기(農閑期)만을 골라 치러졌다.
무사업과 농업을 겸임하는 백성이 없었던 것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군대로, 오다 노부나가는 언제라도 전투가 가능하도록 병농분리(兵農分離: 장병을 농업에 종사시키지 않는)를 추진했다.
이유는, 지금이야 노비 평야(濃尾平野)는 곡창지대지만, 노부나가가 살았던 시대는 키소 강(木曽川), 나가라 강(長良川), 이비 강(揖斐川) 같은 키소 삼천(木曽三川)이 매년 범람해 홍수를 일으켜 전혀 안정된 농업 수입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물류에 의한 수입으로 군사자금을 충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노부나가가 적극적으로 가도(街道)의 확장공사에 나섰던 이유도 물류의 원활화, 스피드 업을 도모했기 때문이나 다름 없었다.
노부나가가 라쿠이치라쿠자(楽市楽座: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시장)를 추진한 동기도, 농업에만 의지할 수 없다... 라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지, 노부나가에게 천재적인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써놓으면 파악될 것이다. 오다군에는 상인을 겸임한 무사가 존재했다.
노부나가의 재무담당이자 중신이었던 마츠이 유칸(松井友閑) 등은 그 대표격으로, 다기(茶器)를 싼 값에 사들여 모아두고서는 비싼 값으로 전매한(노부나가가 중신에게 상으로서 수여한 사례를 포함) 것을, 평상시에는 주업무 중 하나로 삼고 있었다.
「사농공상」은, 어디까지나 업종을 의미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한가지 업종에서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는 것도 완전히 자유였다.
무사가 무사직을 버리고 농업, 어업, 공업, 상업 종사자가 되는 것은 자유이며, 그 반대 상황도 있었다(무사 이외의 자가 무사가 되는 경우에는, 다소 제한이 있었지만).
센고쿠시대에는 다수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 하나 거론할 수 없지만, 에도시대에서 무사직을 버린 유명인으로는 나카에 토쥬(中江藤樹)가, 반대로 백성 신분에서 무사가 된 자로는 카츠 카이슈(勝海舟), 오다니 노부토모(男谷信友: 검술가. 지키신카게류 오다니파) 등의 일족이 있다.
「사농공상」을 계급적인 개념으로서... 게다가 무사가 그 이외의 업종에 종사하는 자를 지배한 것 처럼 "세뇌"시킨 것은 메이지 정부(明治政府)이다.
메이지 정부는 보신 전쟁(戊辰戦争)에 의해 토쿠가와 바쿠후(徳川幕府)를 타도했지만, 이 내전으로 거액을 소비해 갑자기 대규모 적자가 시작되면서 일반 서민들에게 부담을 강요할 수 밖에 없어, 온 나라가 불평불만으로 충만했다.
그래서「토쿠가와 바쿠후 시대는 얼마나 봉건적 압박이 심했으면, 서민들에게는 자유가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주입시키기 위해, 진실의 호도를 행한 것이다.
이 세뇌작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시행되었으며, 타이쇼시대(大正時代)에 들어서야 겨우 일본 전체에 정착되었다.
그때문에, 옛날에는 당당하게 일본사 교과서에까지「에도시대에는, 사농공상이라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신분제도가 존재하여, 농민이라는 계급은 오로지 착취당하는 농노적 존재였기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의해 처음으로 해방되었다」 운운하는, 그야말로 진실에서 동떨어진 지식 주입이 행해졌다.
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지식이 바로잡혀지지 않은 채, 세상에 나오는 사례가 자주 보이는건 너무나도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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