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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요청번역] 『일본의 신 해석 사전』#0992017.12.25 PM 09:12
第二編 -키키신화(記紀神話)의 신들
◎ 진무 텐노(神武天皇)/카미야마토이와레히코노미코토(神倭伊波礼毘古命)
<키키 계보상의 초대 텐노(天皇)>
- 알려진대로, 진무 텐노(神武天皇)는 첫번째 텐노로, 일본 건국의 시조라 여겨지고 있다.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鵜葺草葺不合命)와 타마요리히메노미코토(玉依毘売命)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어자(御子) 중 막내 아들이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서는 카미야마토이와레히코노스메라미코토(神日本磐余彦天皇)라 나오며, 히코호호데미(彦火火出見)라 불리운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히코호호데미는 진무 텐노의 조부에 해당하는 야마사치히코(山幸彦)... 즉, 호오리노미코토(火遠理命)의 신으로서의 이름이기도 하다.
『니혼쇼키』에 따르면,「날 때부터 총명하였고 다부졌다. 열다섯에 태자가 되었으며, 자라서 히무카노쿠니(日向国) 아타 마을(吾田邑)의 아히라츠히메(吾平津媛)를 아내로 맞이해 비(妃)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히무카노쿠니 아타 마을의 아히라츠히메를 비(妃)로 삼아 타기시미미노미코토(手研耳命:『코지키』에서는 타기시미미노미코토와 키스미미노미코토, 두 황자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를 낳았다고 되어 있다.
마흔다섯살이 되었을 때(甲寅年), 형인 이츠세노미코토(五瀬命)와 모의해「何れの地に坐さばか(어디에 있는 땅에서 정치를 해야할까... 라는 뜻으로, 그 뒤에 다음 구절이 이어진다)」,「하늘 아래에서 정무를 평탄히 살펴야하니, 좀 더 동쪽으로 가야」라는 결론이 나와 히무카노쿠니를 떠나 츠쿠시(筑紫)로 향했다.
이하는 각 항목이 모두『古事記(코지키)』의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도중에, 토요쿠니(豊国: 부젠노쿠니) 우사(宇佐)에서는, 토착민인 우사츠히코(宇佐都比古)와 우사츠히메(宇佐都比売)가 궁전을 지어 텐노 일행을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어주었다.
그런 뒤, 츠쿠시 오카타노미야(岡田宮: 치쿠젠노쿠니 온가 군 온가 강 하구)에서 1년, 아키노쿠니(安芸国) 타케리노미야(多祁理宮)에서 7년, 키비(吉備: 비젠노쿠니)의 타카시마노미야(高島宮)에서 8년을 보내게 되었다.
7년, 8년이라 나와있는 이유는, 많은 날들을 보냈다는 의미이지, 합해서 15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7, 8이라는 숫자는, 그옛날, 일본인이 생각하던 성수(聖数)이다.
조수가 빠른 해협에서는, 우즈비코(宇豆毘古)라는 자와 만나 안내를 받고 나니와(難波)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시라카타노츠(白肩津)라는 곳에서 토미노나가스네비코(登美能那賀須泥毘古: 나가스네히코)와 싸우게 되었다.
이때, 텐노군은 서쪽에서 공격해 들어갔는데, 큰형인 이츠세노미코토가 날아든 화살에 맞아 깊은 상처를 입었다. 큰형은「우리들은 태양신의 자손이니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맞서 공격해 들어가면 아니 된다. 길을 돌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동쪽에서 나가서 태양을 등지고 싸우도록 하거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길을 우회하여 진군하게 되는데, 도중에 큰형인 이츠세노미코토는 결국 전사하고만다. 게다가 텐노군은 남하하여 키슈(紀州) 쿠마누(熊野)에 도달했을 때, 커다란 곰을 만나 그 영기(霊気)를 맞고 전원이 실신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텐노군을 따랐던 이 지역의 토호(土豪) 타카쿠라지(高倉下)가 후츠노미타마(布都御魂)라는 검을 바치자, 즉시 전원이 소생한다. 그리고, 야타가라스(八咫烏)의 안내로 요시누(吉野)로 들어갔다.
요시누 강(吉野川) 끝에는 어랑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 즉, 쿠니츠카미(国津神)인 니에모츠노코(贄持之子)를 만난다거나,「꼬리 달린 사람」이라 『코지키』에서 표현되어 있는 이히카(井氷鹿)와 이와오시와케노코(石押分之子) 등의 귀순자를 데리고 야마토(大和)로 진군시켰다.
맨처음, 에우카시(兄宇迦斯)와 오토우카시(弟宇迦斯) 형제군과 조우하여 에우카시를 평정하고 오토우카시를 귀순시키는 등... 여러 전투를 거친 끝에 태양을 등지고서 숙적인 토미노나가스네비코와 대치한다.
『니혼쇼키』에 따르면, 이때, 금빛으로 빛나는 소리개가 날아와 활고자(弓弭)에 멈춰 앉아서는 그 빛으로 눈이 부셔 움직이지 못한 나가스네히코(長髄彦)의 군대를 싸우지도 않고 패퇴시켜버렸다고 나와있다.
이어서 텐노군은 에시키(兄師木)와 오토시키(弟師木)를 귀순시켰는데, 그 무렵, 아마츠카미(天津神)의 어자인 니기하야히노미코토(邇芸速日命)가 나가스네히코의 누이동생인 토미야비메(登美夜毘売)와 결혼하여 야마토를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니기하야히노미코토도 텐노군에 귀순했다.
그리고, 우네비야마(畝傍山) 동남 쪽의 카시하라노미야(白檮原宮: 카시와라)에서 신유년(辛酉年) 정월, 첫번째 텐노로서 즉위했다. 그리고, 오오키사키(皇后: 황후)로서 호토타타라이스스기히메노미코토(富登多多良伊須須岐比売命:『니혼쇼키』에서는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노미코토)를 맞이하여 히코야이노미코토(日子八井命)와 카미야이미미노미코토(神八井耳命), 카미누나카와미미노미코토(神沼河耳命)를 낳았다. 백서른일곱살에 세상을 떠났고, 우네비야마 북쪽에 있는 카시노오노에(白檮尾上)에 능(陵)을 만들었다고 전한다.『니혼쇼키』에서는, 백스물일곱살 봄 3월에 세상을 떠났고, 익년 9월에 우네비야마 동북쪽 능에 매장했다고 나와있다.
즉위를 신유년 정월 1일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제 33대인 스이코 텐노(推古天皇)의 9년 신유년 정월 1일을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으로 하는 역사적 사항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며, 또, 진무 텐노에 관한 신화 속에는, 제 10대 스진 텐노(崇神天皇)의 사적(事績)을 투영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또,『니혼쇼키』에는「始馭天下之天皇(하츠쿠니시라스스메라미코토: 처음으로 나라를 다스린 텐노라는 의미)」라 나와있어, 국가의 통일, 건국한 뒤의 첫번째 텐노라 말하고 있다.
건국 신화 중, 특히나『니혼쇼키』의 기술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진무 텐노의 동정(東征) 때의 금색의 빛을 뿜어낸 소리개의 비래(飛来)는, 군인의 무훈장으로서 킨시 훈장(金鵄勲章: 금소리개 훈장)을 제정(전후에 폐지된다)하거나 하기도 했다.『코지키』안에 기록되어 있는 인간적인 신화의 일면은 감춰졌고,『니혼쇼키』의 동정 무용(武勇) 사적 같은 것만이 메이지시대 이후부터 태평양 전쟁(太平洋戦争)까지, 일본 국민의 정신고양이 기조(基調)라 여겨진 것도 특기(特記)할 필요가 있다.
진무 텐노를 주제신(主祭神)으로서 모시고 있는 진쟈(神社)는, 메이지 초년까지는 없었다. 메이지 23년(1890) 3월 20일, 야마토노쿠니(大和国)... 즉, 나라 현(奈良県) 카시하라 시(橿原市) 쿠메 쵸(久米町)에 카시하라 진구우(橿原神宮)가 창설되었고, 같은 날, 관폐 타이샤(官幣大社) 반열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도 전술했던『니혼쇼키』의 영향이라 해야할 것이다.
[진무 텐노를 모시는 진쟈(神社)]
나라 현(奈良県) 카시하라 시(橿原市) 쿠메 쵸(久米町)에 있는 카시하라 진구우(橿原神宮): 칸다이(官大)
[카무야마토이와레히코노미코토로서 모시고 있는 진쟈]
미야자키 현(宮崎県) 미야자키 시(宮崎市) 진구우 쵸(神宮町)에 있는 미야자키 진구우(宮崎神宮): 칸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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