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철학] [2024 노벨상] '신약 개발 AI 혁명 이끈 과학자'…화학상에 데이비드 베이커·데미스 허사비스·존 점퍼2024.10.09 PM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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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구조 예측 AI 만든 딥마인드 연구진

새로운 단백질 만드는 AI 선보인 데비이드 베이커 교수

몇 년 걸리던 실험을 단 몇 분으로 단축

“인류 이익 위해 현기증 날 정도의 성과”

 

 




단백질은 생명 현상을 구현하는 일꾼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는 것도, 태아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도,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나 질병에 걸리는 것도 모두 단백질이 작용한 결과다. 단백질 없이는 생명이 존재하지 못한다. 올해 노벨 화학상은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인류에게 생명의 기본 단위인 단백질을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을 부여한 생명과학자와 컴퓨터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위원회는 9일(현지 시각)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의 강력한 게임체인저로 떠오른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한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62) 워싱턴대 교수와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48)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John Jumper·39)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 위원회는 “뼈와 피부, 근육 등 생명의 모든 부분에 기여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올해 화학상 수상자들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디자인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위원회는 9일(현지 시각)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와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AFP 연합뉴스



◇단백질 구조 예측 50년 넘은 난제 해결


베이커 교수와 허사비스 CEO, 점퍼 연구원은 발표 전부터 올해 유력한 화학상 후보로 꼽혔다. 이들은 노벨 위원회의 설명대로 생명의 기본 단위인 단백질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생화학에 혁신을 일으켰다.


단백질은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구조를 가진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개의 아미노산은 세포 내에서 서로 연결돼 긴 끈을 형성한다. 아미노산의 끈이 꼬이고 접히면서 독특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한다. 이 구조에 따라 단백질이 근육을 만들기도 하고, 호르몬이나 항체가 되기도 한다.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석할 수만 있다면 생명의 기본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1962년 존 켄드루와 막스 페루츠가 X선 결정학을 이용해 헤모글로빈의 단백질의 구조를 최초로 밝힌 이후 50년이 넘도록 이 분야에선 큰 발전은 없었다. 1970년대부터 수많은 연구자들이 아미노산 서열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20년 놀라운 돌파구가 마련됐다. 허사비스는 구글 딥마인드의 CEO로 있으면서 다양한 AI 모델을 개발했다. 2016년에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도 허사비스의 작품이다. 그의 꿈은 바둑 챔피언이 아니었다. 딥마인드는 2018년에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AlphaFold)’를 공개했다. 그 전까지 단백질 구조 예측 AI의 정확도는 기껏해야 40% 수준이었지만, 알파폴드는 단숨에 60%를 달성했다.



알파폴드가 해독한 여러 단백질의 3D 구조. 다양한 단백질 구조를 통해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기능이 구현된다. /구글 딥마인드



딥마인드 연구진은 이미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의 정보를 AI에게 학습시켜 패턴을 찾았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예측 속도와 정확도를 높였다.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단백질 접힘을 연구한 점퍼 연구원이 딥마인드에 합류하면서 알파폴드의 성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알파폴드는 2020년 단백질 구조 예측 정확도를 겨루는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단백질 구조 예측 학술대회(CASP)’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 공개된 업그레이드 버전인 알파폴드2를 이용해 구조를 예측한 단백질은 단 몇 년 만에 2억건을 넘어섰다. 앞서 수십 년에 걸쳐 실험을 통해 구조를 밝힌 단백질이 21만건에 불과했는데, 게임의 판을 바꾼 것이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구조 예측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연에는 없는 새로운 맞춤형 단백질을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베이커 교수는 1990년대부터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인 로제타폴드(RoseTTAFold)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베이커 교수는 처음부터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아미노산 서열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방식을 역으로 이용해 의약품과 백신, 나노소재에 사용되는 혁신적인 단백질을 개발했다. 지난 2021년 공개한 로제타폴드 버전은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구조의 단백질을 만드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베이커 교수가 개발한 로제타폴드는 세상에 존재하던 단백질의 구조를 개량하는 게 아니라 아예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AI다. ‘드노보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분야다. 베이커 교수는 로제타폴드로 드노보 디자인의 혁명을 일으켰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로제타폴드’를 2021년 최고의 연구 성과로 뽑으면서 “생명과학의 발전을 끌어갈 돌파구”라며 “세포의 비밀을 이해하는 것부터 신약 개발까지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베이커 교수의 연구실에서 로제타폴드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2020년 12월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초기 버전은 한 달 만에 완성했고, 성능을 끌어 올리는 데 4달 정도가 걸렸다”며 “알파폴드가 코드를 공개한 덕분에 초기 버전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고, 이후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백신 개발, 나노소재 개발에 적용


노벨 위원회 역시 같은 평가다. 노벨 위원회는 “단백질의 놀라운 다재다능함은 생명의 광대한 다양성에 이미 반영돼 있다”며 “새로운 기능이 가득한 단백질을 만드는 건 의약품이나 백신 개발, 나노소재 등 다양한 분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벨 위원회는 이들의 성과가 인류의 이익을 위해 현기증 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단백질 구조 예측게임 폴드잇 화면. 폴드잇도 데비이드 베이커 교수 연구진이 만들었다. 2020년 일반인들이 게임에 참여해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을 단백질도 설계했다./미 워싱턴대



김우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는 “딥마인드 연구진은 AI로 단백질의 구조를 밝힐 수 있다는 걸 처음 증명했고, 베이커 교수는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며 “정확도가 100%는 아니지만, 기존에는 실험을 하려면 1년이 걸리던 걸 단 몇 분이면 알 수 있도록 판을 바꾼 인물들”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수상자인 베이커 교수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4억3400만원) 중 절반을, 허사비스 CEO와 점퍼 연구원이 나머지 절반을 각각 나눠 갖는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에서 열린다.


노벨 위원회는 지난 7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전날 물리학상, 이날 화학상을 발표했다. 이날 화학상 발표를 끝으로 올해 노벨 과학상 발표는 끝났다. 오는 10일에는 문학상, 11일 평화상,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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