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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대항온 소설] chapter. 02011.01.06 PM 04:09
주점 안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새벽녘 정박한 배의 선원들이 한 낮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선원들 곁에는 비어버린 술병이 발 디디기 힘들 정도로 굴러다니고 있다.
“도대체 이 인간들 언제쯤 나갈까요?”
주점의 간판 여급인 크리스티나가 투덜거렸다. 표정은 여느 때와 같이 웃는 표정. 주점주인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래 저었다.
“그런 말은 표정을 바꾸고 말해봐.”
“아직 일하는 중이잖아요.”
그 말에 피식 웃은 주점주인은 깨끗한 린넨 천을 꺼내 유리잔 두개를 닦았다. 다 닦은 잔에다 와인을 따라 하나를 크리스티나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마스터.”
와인을 홀짝거리는 크리스티나에게 주점주인은 자신도 한 모금 음미하고는 중얼거렸다.
“슬슬 끝나겠지.”
“뭐가요?”
“포커.”
주점의 중심에는 선원들로 둘러싸인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줄곧 모여들 있었던 터라 이곳의 냄새는 장난이 아니다. 바닷물과 땀에 절은 퀴퀴한 냄새. 개중에는 럼을 먹고 토악질을 한 냄새에다 비몽사몽간에 지린 오줌 냄새까지 섞여있었다.
“이야, 정말이지 좋군. 이 담배라는 거.”
처음 피워본다면서 잘도 담배를 만끽하는 청년을 바라보는 선장-피에트로-는 속에서 열이 치밀어 올랐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어느새 거덜이 나고 있었다. 판돈이 계속 줄고 줄어 살미엔트가에 상납할 예정인 담배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빼앗은 담배를 피우며 냄새가 덜 느껴진다며 웃어대는 이 청년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으득, 한 게임 더!”
“워워. 선장씨. 그쯤 해둬.”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청년은 두 손을 펼쳐보였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말은 표정과는 거리가 먼 어조였다.
“배라도 남아있어야 밥은 먹고 살 거 아니야? 난 리스본의 차가운 남자지만 불쌍한 이웃에겐 따뜻하거든?”
“으득, 닥쳐. 내 배를 걸겠다!”
“망할. 선장 미쳤수?”
“왜 댁 멋대로 배까지 걸어! 우리는 어쩌라고?”
그나마 제정신인 선원 몇 명이 급격히 당황해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은 선장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청년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퇴직금은 든든하게 주지.”
“아, 뭐. 그런다면야 상관없지.”
“육지 생활도 즐거울 것 같군.”
당장이라도 난리치려던 선원들은 급격히 너그러워졌다. 그 모습에 선장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씨근덕거리며 럼 한잔을 벌컥 들이킨 그는 으르렁거리는 어투로 말했다.
“네 놈은 뭘 걸 테냐? 지금까지 나한테 따간 것 다 합쳐도 배에는 못 미쳐.”
“음, 어쩐다?”
카드를 잠시 빙글빙글 돌리던 청년은 씩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티나를 걸지.”
“누, 누구 맘대로 나를 걸어욧!”
와인을 마시던 크리스티나가 그것을 그대로 내뿜는 추한 모습을 보이며 외쳤다. 웃는 낯이 완벽하게 깨진 그녀에게 청년은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말했다.
“내 맘대로. 아, 그렇다고 감격은 하지 않아도 돼.”
청년은 씨근덕대는 선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차피 내가 이길 게임이니까.”
그리고는 다시 게임에 들어가는 청년을 보며 크리스티나는 이마에 손을 대었다. 취하지 않았음에도 숙취가 느껴지는 불쾌감. 그녀의 단골손님 중에서 가장 특이하다 못 해 황당한 저 청년은 자신을 곤혹케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하, 언제나 인기 좋군.”
주전부리로 꺼낸 아몬드를 씹는 주점주인을 째려보며 크리스티나는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고요. 저번에는 멋대로 내 침대를 썼단 말이에요. 오늘은 날 내기의 대상으로 삼고”
“호오? 침대를?”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 주점주인에게 얼굴이 붉게 변한 크리스티나는 당황하며 덧붙였다.
“이, 이상한 생각 말아요. 절대 내가 재워준 거 아니에요. 멋대로 들어와서 자고 있었단 말이에요.”
“하하, 어쨌든 크리스티나의 침대 신세를 진 남자였던 거군. 다른 사람들이 알면 난리 나겠어.”
“그러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정말!”
더운 듯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크리스티나는 마시던 와인을 마저 비웠다. 그리고는 살짝 토라진 표정으로 청년이 있는 테이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기만 해봐. 가만 안 둘 거야. 흥.”
선장은 못 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카드를 살피며 말했다.
“흥, 주점 여급을 건다니 재미없는 농담이다. 실제로 내뱉을 것을 말해.”
선장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청년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누런 빛깔의 기름종이 색이 번들거렸다.
“그건……지도?”
순식간에 탐욕스런 표정이 되는 선장에게 청년은 쐐기를 박았다.
“침몰선의 지도야. 대서양쪽에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보고 싶으면…….”
그것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며 청년은 입꼬리를 올렸다.
“날 이겨.”
“개자식”
“어이구,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오히려 즐기는 청년의 태도에 선장은 이를 갈면서 카드에 집중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원하는 패가 완성되었다.
“풀 하우스!”
“……이봐, 농담이겠지?”
청년의 안색이 변하자 선장은 통쾌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겪은 수모를 배로 돌려주리라 다짐까지는 하는 그에게
“이쪽 패가 이래서 미안해.”
라며 이내 찬물을 끼얹는 청년의 패는
“로, 로얄 스트레이트 플래쉬?”
“말도 안 되는 패가 나왔어.”
“대단한데?”
충격으로 정신줄을 놓은 선장을 토닥거리며 청년은 다정하게 말했다.
“당분간 육지 생활을 즐겨봐. 재미있다고.”
그리고는 탁자위에 놓인 선박증명서를 챙겨들고 유유히 주점을 나가버렸다. 잠시 후, 주변을 치우는 크리스티나에게 초췌한 몰골이 된 선장이 물었다.
“그 자식 이름이 뭔지 아오?”
잠시 망설이던 크리스티나는 이내 불만어린 표정이 되어 내뱉듯이 말했다.
“진 푸에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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