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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먹히지 않는 바이든 대중 정책…'중국 공급망 영향력 여전'2023.08.13 PM 10:38
"디리스킹 정책, 미국 동맹국과 중국 더 밀착시켜
미국 '수입선 돌리기'…중국 중간재 수출 폭발적
첨단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이어 대중 투자 제한
미국, 공급망 전반에 걸친 중국 영향력 제거 힘들어
저소득국, 중국 투자‧중간재 받아 완제품 미국 판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뉴멕시코주 벨렌 소재 아르코사 풍력 타워를 방문해 경제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아르코사 풍력 타워를 사례로 들며 자신의 행정부 입법 성과를 강조했다. 2023.08.10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향해 또 하나의 칼을 빼 들었다.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이 9일 발표됐다.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통제에 이어 중국 첨단 제조업체로의 자본 유입을 막겠다는 것으로 '자유시장주의 대변자'를 자임했던 미국의 경제정책이 보호주의와 경제블록화로 퇴행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수십 년간 '효율성'과 '저비용'을 중시하면서 무역과 자본의 세계화를 선도해왔지만,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부상을 저지하고자 경제에 '국가안보'란 개념을 도입했다.
미국이 높은 관세 부과와 수출통제, 투자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와 대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매진하는 것도 '경제 안보'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행정부에서 시작해서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로 이어지면서 더 강화되는 양상이다.
뉴욕 소재 비영리단체인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가 1일 발행한,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동남아를 우선으로 삼아야'란 제목의 44쪽짜리 보고서 표지.
"디리스킹 정책, 미국 동맹국과 중국을 더 밀착시켜"
이코노미스트 최신호 커버. 2023 08 12.
그러나 그 효과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조 바이든의 중국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는 제목의 10일 자 기사에서 새로운 정책이 "(공급망) 회복력도 안보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며 "공급망들이 새로운 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더욱 얽히고설키고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핵심 자원에 대한 미국의 의존은 여전하다"며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그 정책이 미국의 동맹국들을 중국에 더 밀착하게 만드는 왜곡 효과를 보인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겉보기에는 미국의 새 정책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미-중 직접 교역이 크게 줄었다. 아시아에서의 미국 수입 중 2018년 중국이 3분의 2를 차지했으나 2022년엔 절반을 가까스로 넘겼다. 대신에 인도와 멕시코, 동남아로 수입 선이 바뀌었다.
투자 흐름도 마찬가지다. 2016년에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무려 480억 달러에 이르렀으나 6년이 지난 2022년엔 고작 31억 달러였다. 미국의 대아시아 투자에서도 중국이 지난 20년간 신규 외국인직접투자(FDI)의 노른자를 차지했으나 작년엔 인도와 베트남에 밀렸다.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가봉 정상회담에서 발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3 04 19. AP 연합뉴스
미국 '수입선 돌리기'…중국의 중간재 수출 폭발적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의 대중 의존은 여전하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미국이 중국에서의 수입을 다른 나라들로 돌리고 있지만, 그 나라들의 생산은 예전보다 더 중국의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동남아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면서 덩달아 동남아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재 규모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디리스킹'(위험 제거) 혜택을 받는 멕시코도 유사하다. '미국은 중국과의 결별에 어떻게 실패하고 있나'란 이코노미스트의 8일 자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작년에 월평균 3억 달러의 자동차 부품을 멕시코에 수출했다. 이는 5년 전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이런 현상은 최근 자동차 산업 붐을 타는 중‧동유럽에서 더욱 뚜렷하다. 2018년 중국은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등으로 가는 자동차 부품의 3%를 공급했으나 지금은 유럽연합(EU)을 빼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10%를 공급한다.
IMF(국제통화기금)의 연구를 보더라도, 심지어 첨단 제조 분야에서도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나라들이 산업적으로 중국과 가장 긴밀한 연계가 돼 있는 나라들이었다.
중국은 1일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에 돌입했다. 2023 07.06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공급망 전반에 걸친 중국 영향력 제거 힘들어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극단적 사례를 보면 중국 제품이 단순히 재포장된 뒤 3국들을 거쳐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다. 작년 말 미 상무부 조사에 의하면, 동남아의 주요 태양광 패널 공급업체 4곳이 관세를 피하고자 중국 제품에 면피용 가공만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희토류 광물과 같은 다른 분야에선 중국이 대체하기 힘든 자원을 지속해서 공급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새로운 룰은 대중 교역을 다른 곳으로 돌릴 힘을 지니고 있지만 공급망 전반에 걸쳐 중국의 영향력을 없앨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으로 바이든의 접근법은 미국의 동맹국‧우방국 등 다른 수출국과 중국의 경제적 연계를 심화시키고, 이들 나라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충돌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나라 정부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증대를 우려해도 대중 비즈니스 관계는 심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동맹국에서 최종 제품을 수입하는 것은 중국의 중간재에 대한 수요도 증가시킴으로써 중국 기업들이 (중국 아닌)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수출할 인센티브를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저소득국, 중국 투자‧중간재 받아 완제품 미국 판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중요성도 거론됐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한 데 이어 2022년 중국도 가입한 이 협정을 통해 중간재 단일 시장이 창출돼 교역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그러면서 RCEP 가입을 꺼리는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잡지는 "중국의 투자와 중간재를 받아 최종 제품을 미국에 파는 것이 대다수 저소득 국가들에겐 일자리와 번영의 원천"이라면서 "미국이 새로운 무역 협정에 대한 지지를 꺼림으로써 이들 나라가 미국을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중국과 양자택일을 요구할 때 미국 편에 서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에 영향을 주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디리스킹' 정책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작은 뜰과 높은 담장"(small yard and high fence) 정책이라고 표현한 뒤 대중 관세 및 규제 부과에 대한 '대가'를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각자의 안보 우려로 인해 뜰은 더 커지고 담장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초집중(lase focus) 등 더욱 선택적인 접근법 취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코도뇨 "세계 두 블록으로 분열하면 큰 경제 손실"
한편, 런던정경대(LSE) 방문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로렌조 코도뇨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확산 중인 탈세계화와 경제 블록화 흐름에 대해 "세계가 실제로 두 블록으로 분열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는 또한 정치적인 이유로 무역 흐름이 뒤집히면 높은 비용, 낮은 효율성 등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것을 걱정하는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 뒤, 서방의 러시아 고립 시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세계화의 해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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