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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중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절약의 역설’2024.02.26 PM 12:38
중국의 민간 투자는 2015년 1분기 이후 무려 70%가량 줄었다. 가계저축 증가와 민간투자 감소는 경제성장률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투펀치’가 되고 있다. photo 파이낸셜타임스
2014년 말 ‘중국망(www.cmnews.kr)’이란 중국 사이트에 ‘세계은행, 올해 안에 중국이 미국경제 추월 전망’이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1990년부터 시작된 초고속 경제성장 덕분에 2014년 미국·중국 간의 경제규모(국내총생산·GDP) 순위가 뒤집힌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만 해도 ‘중국의 미국 추월’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2027년 중국 GDP가 미국 GDP 추월’(2007년 골드만삭스 전망), ‘2025년 중국·미국 간 GDP 규모 역전’(2009년 도이치방크 전망) 등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전망이 잇따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도 2022년 6월 ‘중국이 2032년경에 GDP 면에서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했었다.
힘을 잃어버린 중국의 미국 추월론
하지만 지금 이런 전망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EIU부터 작년 6월 중국의 GDP가 미국을 앞지르는 시점을 2039년으로 ‘무려’ 7년이나 늦췄다. 다른 싱크탱크들도 줄줄이 중국의 미국 추월 시점을 늦추는 수정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중국이 경제 면에서 미국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비록 ‘조건부’지만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할 때, 2030년대에 중국이 미국을 앞서지 못하면 영원히 ‘미국 추월’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현 하버드대 교수)도 2022년 8월 블룸버그 TV에 출연하여 “불과 6개월~1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이 자명(axiomatic)했지만 이제 그런 주장은 갈수록 덜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소련·일본이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보았던 역사적 예측의 실패가 중국의 사례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부상의 역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 2년간 글로벌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마오쩌둥 시대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FT 분석에 의하면,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2% 미만에서 2021년 18.4%로 10배 가까이 폭증했는데 이 성공 스토리에 반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실제 2022년 중국의 세계경제 점유율은 약간 줄었고 2023년에는 그 비중이 17%로 더 크게 떨어졌다. 올해 하락폭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중국은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었던 제국의 지위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그 목표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막대한 부채로 인해 청산명령을 받은 헝다그룹이 짓고 있던 베이징의 한 아파트. photo 뉴시스
급격한 저축성향 증가가 의미하는 것들
미국 경제학자 애덤 포즌(Adam S. Posen)은 작년 8월 ‘포린어페어스(FA)’에 기고한 ‘중국 경제기적의 종말’이라는 논문에서 중국은 시진핑의 돌연한 ‘제로코로나’ 중단 결정 이후 본격적 경제활동이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전의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뭔가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라는 지적이다.
특히 중국인들의 ‘저축성향 증가’는 문제의 심각성을 상징한다. 지금 중국에서는 내구재 소비와 민간 부문 투자율이 모두 코로나19 이전보다 하락한 반면, 가계저축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장기적인 경제 전망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반영한다. 즉 중국에서 개인·기업이 자산에 대한 접근성 상실의 두려움이 커지고 투자보다 단기유동성을 우선시한다는 의미다.
포즌의 평가에 의하면,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1분기에 중국 경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중국 정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공산당(CCP)은 2015년부터 경제 통제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 이후 GDP 대비 은행예금이 무려 50%나 증가했고, 지금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민간 부문의 내구재 소비는 2015년 대비 약 50% 수준으로 줄고, 경제재개 이후에도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보복소비’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 감소하고 있다. 민간 투자는 2015년 1분기 이후 무려 70%가량 줄었다. 가계저축 증가와 민간투자 감소는 경제성장률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투펀치’가 되고 있다.
미국 가계 저축률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작년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왜 중국에 그렇게 문제가 많은가?’라는 기고문에서 지금 중국에서 드러나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을 지적했다. 크루그먼의 진단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중국은 소비자들이 너무 많이 절약하려 하면 경제가 침체될 수밖에 없는 역설에 시달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저축하는 돈을 기업이 빌려서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경기 침체다. 경기 침체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감소시키고, 더 많이 저축하려는 시도는 실제로 투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민간 저축률이 높은 원인은 저출산으로 인해 은퇴 후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사회안전망이 미흡하여 공적 부양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 빠르게 이뤄지면 기업들은 저축한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이제 그런 종류의 성장은 과거 일이 되었다. 그래서 중국은 엄청난 양의 저축을 쌓아두고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CCP의 흑역사는 이런 문제를 감추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연속이었다. 한동안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며 수요를 유지했지만, 이는 보호무역주의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중국은 과잉저축을 엄청난 부동산 거품에 쏟아부었지만 이 거품은 이제 터지고 있다. 여기서 해답은 분명하다. ‘소비자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국영 기업이 근로자와 이익을 더 많이 공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필요 시 정부가 미국처럼 수표를 발행하여 국민에게 돈을 지급하면 된다. 가처분소득의 증가는 수요 증가, 그리고 투자·생산 증가, 나아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크루그먼에 의하면 중국이 뻔한 해답을 실행하지 않는 데는 4가지의 이데올로기적 이유가 있다. ① CCP는 민간 부문에 적대적이다. ② 그래서 인민들에게 더 많은 소비 능력을 부여하면 통제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다. ③ CCP는 인민에게 비현실적 야망을 고집한다. 지금 당장의 삶을 즐기지 말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다그친다. ④ 강력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청교도적 반대’ 입장이다. 특히 시진핑은 노동 윤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복지주의’를 비난한다. 따라서 결과는 뻔하다. CCP는 다시금 과거와 같은 투자(부채) 주도의 경기 부양책을 추진하는 ‘반쪽짜리 노력’을 반복할 것이고,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상하이 증권거래소 photo 뉴시스
뻔한 해답을 외면하는 공산당의 딜레마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이 경제의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래 CCP는 오랫동안 민간 부문에 간섭하려는 충동을 의도적으로 자제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 치하에서 특히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CCP는 권위주의적 수단으로 회귀했다. 중국의 장기적 경제침체 주범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CCP의 극단적 경제개입에 대한 일반 대중의 면역(거부)반응이다.
이와 관련 작년 12월 FT는 ‘중국 사회계약의 붕괴’라는 분석 기사에서 ‘경제가 발전하는 한 정치적 제약을 감내한다’는 ‘중국특색’ 사회계약이 무너지는 모습을 분석했다. 중국 특유의 사회계약은 ‘정치에 불개입하면 문제도 없다(不谈政治, 没问题)’로도 나타난다. 요컨대 인민들이 정치적 자유의 엄격한 제한을 받아들이는 대신, CCP가 풍족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CCP와 인민들 간 묵시적 합의(사회계약)였다. 그런데 성장이 둔화되면서 농민공들의 임금상승이 주저앉고,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일자리가 부족하고(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자 CCP는 작년 8월부터 관련 통계의 발표를 중단), 도시 중산층은 부동산 침체로 재산을 잃고, 부유층은 당국의 전방위(인터넷, 금융, 보건 등) 압박에 쫓기고, 서슬퍼런 ‘반(反)간첩법’ 광풍에 해외기업들의 투자가 중단되었는데, 이 와중에 작년 3월부터 3차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은 ‘공동부유’ 정책을 밀어붙였다. ‘공동부유’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건설의 키워드가 되었다. 성장·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발상이다. 양극화된 소득불평등에 대한 청년층의 집단저항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꼼수다.
공동부유의 양 날개는 강력한 규제와 반부패 단속이다. 핵심은 텐센트, 알리바바 같은 빅테크를 때려잡아 노동계층에 그 돈을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중국특색’ 소득재분배 정책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발상이 기업가정신(entreprenership)과 혁신 의지를 무너뜨렸다. 작년 11월 말 돌연 시진핑은 ‘공동부유’를 접고,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돈풀기’에 나섰다. 공동부유 같은 우격다짐 식의 CCP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성장 기반을 무너뜨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매그너스는 저서 ‘붉은기: 시진핑의 중국이 위험에 처한 이유’에서 사회계약 붕괴보다 더 큰 문제를 지적한다. 과거의 경제발전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 인민들은 CCP가 수많은 문제의 해결에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뢰의 붕괴’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포즌이 지적하였듯이, 독재정권이 일반 가정과 기업의 신뢰를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오늘날 중국 인민들은 마오쩌둥 시대 이후에 볼 수 없었던 광범위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의 권력이 단기간에 약화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에르도안(튀르키예), 푸틴(러시아), 심지어 마두로(베네수엘라)까지 증명했듯, “정치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no politics, no problem)”는 묵계를 깬 독재자들은 경제성장 둔화, 심지어 경제붕괴 이후에도 살아남는 생존력을 보였다.
작년 9월 7일 마이클 슈먼은 ‘애틀랜틱’에 기고한 ‘중국 모델의 사망’이라는 분석 기사에서 중국 경제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피크 차이나’를 넘어서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유는 더 이상 중국 국력이 미국의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즉 기세등등하던 ‘중국몽’이 ‘백일몽’ 또는 허망한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슈먼은 20%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청년 실업률 공개를 거부한 중국 국가통계국의 결정과 관련, 시진핑이 이런 문제를 숨기거나 외면한다고 해결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초고속 성장을 이끈 자유화와 국가통제의 조합(the mix of liberalization and state control)이라는 자랑스러운 중국 모델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그에 의하면 벌써 몇 년 전부터 많은 경제학자와 중국 전문가들, 심지어 중국의 정책기획가들도 ‘중국특색’ 모델에 근본적 결함이 있으며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지만 시진핑은 오로지 권력 강화에 골몰하여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형상 중국 경제의 문제는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의 파산과 부동산 침체 등으로 나타난다. 10년 전 중국의 국가총부채는 GDP의 약 2배였으나, 지금은 3배로 늘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마이클 페티스는 이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부채 증가”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부채’라는 이슈를 악화시킨 주범이 경제가 아니라 ‘정치(즉 CCP)’라는 점이다. CCP는 높은 성장률을 독재정권의 정당성과 유능함의 증거로 내세워 왔다. 그래서 경제성장률이 목표치 아래로 떨어지면 신용을 풀어 성장률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지방정부에만 인프라 자금 조달 명목으로 9조 달러의 부채가 쌓인 것으로 추정한다.
CCP도 오랫동안 부채 의존형 성장전략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일례로 2007년 당시 총리였던 원자바오는 “중국 경제에 불안정·불균형하고 조율되지 않아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CCP는 이 문제의 해결책도 정확히 알고 있다. 부채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성장동력, 즉 여타 주요국들이 비해 턱없이 낮은 국내 소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금융부문 자유화, 민간기업에 대한 국가통제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진핑은 집권 초기에 이러한 요구를 수용할 것처럼 보였다. 일례로 2013년 시장에 경제에서의 ‘결정적’ 역할을 부여하겠다는 개혁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개혁안은 시행되지 않고 흐지부지되었다. 개혁의 후폭풍이 두려웠던 것이다. ‘개혁 → 국가(CCP) 권력 약화 → 시진핑 권력 약화’가 뻔했기 때문이다. CCP와 시진핑은 경제 성장을 위해 정치 통제를 양보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지난 2월 8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춘절 단배식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주석. photo 뉴시스
시진핑의 처방은 “참고 견뎌라”
시진핑에게 더 많은 권력이 집중될수록 경제 분야에서 CCP의 조치는 고압적·강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부문이 뒷걸음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2년 전만 해도 중국 100대 상장기업의 총 가치에서 민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5%였으나, 2023년 중반에는 39%로 떨어졌다. 유사한 맥락에서 코넬대의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민간 부문의 신뢰 회복이 CCP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CCP)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국내 소비를 촉진해야 할 시기에 시진핑은 강력한 팬데믹 봉쇄조치로 인민들의 소득에 치명타를 입혔다. 중국은 경제를 이끄는 수요 부족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지고,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경제 회생에 필요한 민간 투자와 소비 지출이 더욱 위축될 것이고, 결국 경제 성장률이 더욱 낮아질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중국 모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핵심이다.
물론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 중국 경제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이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비용과 고통이 따를 것임을 지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은 벌써 나와 있다. CCP가 부실채권을 탕감하고, 좀비기업을 폐쇄하고, 정책결정자들이 외면했던 전면적 시장 개혁을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CCP는 이러한 개혁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경제 지원을 위해 여러 계획을 발표했지만, 하나같이 행정적 조정과 모호한 선언에 불과하다.
현재 시진핑이 인민 대중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키려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참고 견뎌라(suck it up)”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최근 공산당 기관지에 실린 연설에서 이렇게 다그쳤다. “우리는 역사적 인내심을 유지하며 꾸준하고 단계적인 진전을 견지해야 한다.” 10여년 전부터 중국 인터넷에 ‘서조선(西朝鮮)’이란 단어가 올라왔다. 이는 ‘서쪽에 있는 북한’이라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도 인용한 유행어다. 1990년대 말 ‘북조선’에서는 최대 60만명이 ‘고난의 행군’ 과정에서 굶어죽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시진핑과 CCP가 내린 처방이 ‘역사적 인내심(历史性的耐心)’의 강요다. 서조선·북조선이 취한 조치의 내용과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다. 이제 막 서조선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조짐이다.
중국이 맞닥뜨린 지금의 난국은 적시적 금리 인하 타이밍의 상실, 공공 부채 증가, 복지주의 거부, 민간 기업 단속·탄압, 과도한 봉쇄조치 강행 같은 정책 실패가 누적된 결과다. 그럼 CCP가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 중 하나는 단기적 경제성장이 더 이상 CCP의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진핑은 중국이 잠재적 적대국인 미국과의 장기적·지속적인 경제적·군사적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시진핑은 중국의 국가적 위대함, 치안, 안보, 회복탄력성 추구를 강조한다. 시진핑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질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려 한다.
따라서 반복적인 정책 실패는 단순히 잘못된 의사결정이라기보다 국가 안보에 대한 새로운 자기희생적 요구 때문으로 보인다.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인민들에게 ‘위험한 폭풍우’를 경고했다. 그에게 이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내적 통제와 지정학적 도전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이미 정책의 무게중심이 경제 성장에서 국가 안보로 현저히 기울고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에 안보에 대한 집착은 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다. 요컨대 중국몽은 한낮의 백일몽이나 잠꼬대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부패의 축’ 국가들의 연대
현재 중국과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시진핑이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해외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위험은 ‘중국몽의 함정’이다. 군국주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은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독일몽’과 ‘일본몽’의 실현을 서둘렀다. 야심적 도전국이 정점에 도달한 후에 쇠락의 내리막길에 내몰리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려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모든 정황을 고려하면 중국몽이 시진핑의 소원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래서 독일·일본과 마찬가지로 ‘기회의 창’이 닫힌다는 초조함,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해 무모한 대만 정복에 나설지 모른다.
지난 2020년 젱(Bingyong Zheng)과 샤오(Junji Xiao)는 ‘경제행동·조직’ 저널에 게재한 논문(‘Corruption and Investment: Theory and Evidence from China’)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이란 것은 부패가 키운 신기루”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의 세계개발지표를 보면 2021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법치주의와 부패통제 지표값은 각각 -0.313과 0.0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93 및 1.130에 크게 미달한다. 결국 경제 규모는 크지만, 경제가 글로벌 시장에서 핵심 플레이어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구성원 간의 신뢰도가 낮아전반적 효율성도 뒤떨어진다는 의미다. 중국 내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중국 특유의 정치·사회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의 이원적 구조로 보인다.
냉전 2.0 시대에 벌어지는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미국 주도의 서방진영에 대항하여 중국은 러시아·북한·이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연합전선을 강화하려 한다. 그런데 이들의 ‘부패지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국제투명성기구(IT)가 발표한 2022년 기준 부패인식지수(CPI)에 의하면, 조사대상이 된 155개 국가 중에서 중국(45점·65위), 러시아(28점·137위), 북한(17점·171위), 이란(25점·147위)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63점, 31위), 미국(69점, 24위), 일본(73점·18위)과 사뭇 대조적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중·러·북·이란은 ‘저항의 축’이라기보다 ‘부패의 축’으로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 결론적으로 이제부터는 ‘피크 차이나’ 시대의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때다.
- 칼 헬턴트
- 2024/02/26 PM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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