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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하는 뇌는 없다 - 그녀생각2016.07.23 PM 02:19
독서와 독서라는 과정을 통한 문해(literacy)도 습득/숙련/훈련 되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독서를 읽는 행동이라 한다면, 읽고 문맥을 살피고 해석하는걸 문해라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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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뇌는 없다
“세월은 만물을 성숙하게 하지. 날 때부터 현인은 없어.”
- 세르반테스 -
평생 책을 읽는 시간, 10개월
10개월.
여러분이 서른 살의 평균적인 사람이고 만약 여든 살까지 산다면, 평생 동안 당신에게 주어진 독서 시간이다. 같은 기간 동안 여러분은 스마트폰을 열세 배 이상(약 12년) 쳐다볼 것이며, 일곱 배 이상(약7년) TV 시청을 할 것이다. 여러분의 독서시간과 가장 비슷한 시간은 평생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시간(약 330일)이다.
최근의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종이책 9.2권, 전자책 1권으로,10.2권에 불과하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독서실태 조사는 평균이 아니라 중위값을 구해야 더 실제적인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지인들을 보더라도 책을 열 권정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다수와 연간 최소 50권 이상을 소화하는 소수의 다독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모습이 마치 중산층이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네 경제같다. 아마 독서 인구 100명을 일렬로 세우면 가장 가운데 있는 사람은 1년에 다섯 권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성인들 대부분은 자기의 독서량에 불만을 갖고 있다. 자기 독서량에 만족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이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명 중 일곱 명에 이른다. 자신의 독서량을 부족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70%의 사람들이 책 읽기가 학교생활과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독서량이 많을수록 더 큰 도움을 받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었다. 학력이 높고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독서 효용의 인식과 독서량 사이의 상관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자기의 독서량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일까? 조사에 따르면 그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습관이 되지 않아서, 다른 여가생활을 하느라 바빠서 등이라고 한다. 그런데 독서가 정말로 나에게 도움이 되고, 독서량 부족에 대해서도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면, 없는 시간도 내고 습관도 만 들어 여가생활에서도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런 핑계들은 버리자. 더 그럴듯한 핑계를 알려 주겠다. 이는 서른 살까지 독서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면서도 실패한 나 자신을 위한 자기변호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책을 잘 읽는 뇌는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책을 빨리 읽기를 바란다. 지식은 자본과 비슷한 속성이 있어서, 돈이 돈을 낳듯 지식은 지식을 낳기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독서를 통해 지식의 바다를 조속히 항해하기를 기대하며, 적극적인 부모는 아이가 서너살 때부터 글자 공부를 시킨다. 네 살도 되지 않아 사서삼경을 술술 읽었던 과거의 위인들을 떠올리며.
그런데 놀랍게도 영국의 독서학자 우샤 고스와미 교수가 유럽의 서로 다른 3개 언어의 5~7세 아이들을 대상 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5세에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이 7세에 시작한 아이들보다 오히려 독서 성취도가 낮게 나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교육이 따로 필요 없다. 하지만 글자는 그렇지가 않아서 따로 교육하지 않으면 스스로 터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자계의 거장 스티 븐 핑커는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은 이미 선이 연결된 상태이지만,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뇌는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반면, 글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뇌는 독서를 염두에 넣지 않았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이다.
독서라는 과정은 또한 단순히 문자를 시각적으로 읽는 것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정신활동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 하나이 다(E.B.휴이).1980년대에 멀린 위트록 박사는 독서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씌어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과 감정의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 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들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 즉 뇌의 각영역들이 잘 연결되고 빠르게 통합되어야 한다. 연결된 뉴런은 전기적 신호를 기반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데, 이때 전기 신호가 너무 느리면 통합 작용이 원활하지 못하다. 문제는 각 영역들의 성숙도의 생물학적 시간표가 달라서, 독서를 위한 통합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뇌의 신경섬유는 미엘린(myelin)이라는 지방 성분에 둘러싸여 있는 데, 미엘린은 전기적 신호가 신경섬유를 따라 빠르게 전달 되도록 한다. 일종의 구리선같은 성능 좋은 전도성 물질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미엘린의 성숙(미엘린화)은 뇌의 각 영역마다 서로 다른 발달 스케줄에 따라 진행된다.
예를 들어 청각 신경은 임신 6개월째에 미엘린화된다. 그래서 한 인간이 처음 듣는 소리는 물소리이며, 출렁이는 양수 소리를 통해 세상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또한 태반의 소리, 장이 꾸르륵대는 소리, 엄마의 피가 자궁을 돌아 흐르는 소리도 듣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태교가 왜 의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소리들은 뇌에 자극을 주어 아이가 성장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다른 감각들은 임신 6개월 때 미엘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신경은 생후 6개월이 되어야 하며, 여타 감각 및 운동 부위가 모두 미엘린화 되기 위해서는 5세는 되어야 한다. 또한 신경학자 노먼 게슈윈드에 의하면, 독서라는 뇌의 통합작용에 필요한 주요 뇌 부위들은 7세는 지나야 미엘린화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왜 5세에 독서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7세에 시작하는 것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지 알 수 있다. 5세에는 독서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뇌 기능이 준비되지 못한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부모의 도움으로 독서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계속 실패를 겪을 것이고,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독서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독서 능력의 성장이 더디게 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미엘린화가 됐다는 말은 독서를 하기 위한 최소 요건을 갖추었다는 것이지, 독서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말을 하는 능력과 달리 독서를 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즉 처음부터 ‘책 읽는 뇌’라는 것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뇌는 비장의 무기를 들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가소성이다(뇌는 뇌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해부학적으로 변한다). 책 읽는 뇌가 아니었지만, 책 읽는 뇌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뇌를 어떻게 해야 책 읽는 뇌가 될 수 있을까?
독서는 뇌를 바꾼다
1930년 말 중국에 사업수단이 매우 좋은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이 장점을 살려 돈을 벌었다. 그런데 어느날 강렬한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깨질듯 아팠지만, 잠을 푹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도 두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눈을 뜨자마자 이메일을 열어 파트너 회사에 요청했던 중요한 자료를 확인했다.
그런데 평생 읽고 쓰던 모국어인 중국어가 갑자기 읽히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황한 그는 다른 이메일을 서둘러 열어 보았는데, 영어로 된 이메일은 정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모국어를 읽는 능력을 잃어버렸으면서도, 놀랍게도 영어를 읽는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고전학자였던 험프리 키토는 “한 민족의 정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언어구조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언어의 구조는 추상적인 정신의 구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뇌의 구조도 바꾼다. 영어나 한글같은 표음문자를 사용할 때 뇌를 스캔해 보면 뇌의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두정엽의 엄선된 부분들이 활성화되는데, 특히 측두엽과 두정엽 주변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한자는 표의문자로, 글자 하나하나가 상징과 이미지의 결정체이다. 그래서 한자를 읽는 뇌를 스캔해 보면, 알파벳을 읽을 때와는 달리 물체 인지에 사용되는 후두와 측두 영역의 주요 부위가 활성화된다. 알파벳이나 한글을 읽을 때는 좌뇌 부위만 활성화되는데, 중국어를 읽을 때는 좌뇌와 우뇌를 모두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차이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영어는 문제없이 읽을 수 있지만, 중국어 읽는 능력을 상실한 이 사업가의 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우뇌를 다친 것이다.
뇌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에서만 활용부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표음문자라도 언어에 따라 뇌의 활성화 영역이 미묘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영어 사용자는 이탈리아어 사용자보다 시각적 형태 파악과 관련된 뇌 부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탈리아어 단어는 소리 나는 그대로인 경향이 있는 반면, 영어는 발음과 철자가 다른 경우가 상 당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읽었느냐에 따라 뇌는 달라진다. 그리고 다른 뇌를 가졌다는 것은 다른 정신작용과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과 내용은 우리가 과거에 읽은 것으로부터 형성된 식견과 연상에 기초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대문호 마틴 발저는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라고 했으며, 작가인 조지프 엡스타인은 "작가의 전기를 쓰려면 그가 언제 무엇을 읽었는지 상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그가 읽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서하는 뇌와 그렇지 못한 뇌는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근본적인 효용은 무엇일까?
독서가의 뇌는 뭐가 다를까?
포르투갈 학자들은 외딴 시골 주민들 중에서 문맹인 사람들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비교 연구했다. 연구결과 문맹인 사람들은 단어가 음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음성들을 쪼개어 재배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birth’를 ‘b’를 빼고 발음해 보라고 하면 발음을 제대로 못했다. 또한 의미 없는 단어인 ‘benth’ 같은 단어를 말하면서 따라해 보라고 하면, 다른 유사하게 생긴 의미 있는 단어, 예를 들어 ‘birth’로 변형시키려고 했다.
두 그룹이 60대가 되었을 때 앞서 실시했던 과제를 다시 내 주고 뇌를 스캔해 보았더니, 문맹인 사람들은 과제를 전두엽 영역에서 처리했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측두엽 영역에서 처리했다. 쉽게 표현하면 문맹인 사람은 문제 해결에 CEO가 나선 반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비서 차원에서 처리한 것이다. 중앙 아시아에서 실행한 대규모 실험에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거의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 인식과 자아 인식마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발달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6세 아이는 대상을 종류에 따라 분류화하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9세 아이에게는 분류화 능력이 제대로 발휘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6세와 9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생각의 시대』의 저자인 김용규는 그 사이에 아이의 뇌신경이 크게 발달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이 학교에서의 읽고 쓰는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은 현대 심리학자들은 문자가 아이들의 정신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초보 독서가인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뇌를 촬영해 보았더니, 뇌가 활성화 되는 정도도 높고 활성화 영역도 넓게 나왔다. 아이들은 문자와 단어를 식별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뇌의 많은 영역들을 사 용하고 있었다. 또한 글을 이해하는 뇌의 경로도 매우 느리고 효율이 떨어지는 배측 경로를 사용했다. 이는 단어 안에 들어 있는 음소들을 조합하고, 단어에 연계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전부 검색하느라 시간을 소모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시각정보, 음운론적 정보, 의미론적 정보를 눈 깜박할 사이에 인출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이를 ‘복측 경로’라고 한다.
독서에 능숙해지면 보통 양쪽 뇌를 활성화하는 체계가 아니라 좀 더 효율적인 좌최 시스템만을 이용하게 된다. 초보 독서가의 뇌는 문자의 일차적인 이해를 위해 고전분투를 하는 반면,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문자 해독을 잘 구축된 자동화 시스템에서 순식간에 해결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을 은유, 추론, 유추, 감정, 기억, 경험적 배경을 통합하는 좀 더 고차원적인 의미해석을 위해 활용한다. 이러한 ‘깊이 읽기’는 독서가의 지적 능력을 한껏 성장 시킨다. 세계 최고의 발달 심리학자이자 독서연구가인 매리언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숙련된 독서가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선물은 ‘끝없이 기상천외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생리적 기반이 된다. 독서 행위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독서를 잘하는 뇌란 없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왜 그렇게 독서를 힘들어 하는지, 반대로 독서를 잘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드문지를 알려 준다. 하지만 뇌는 독서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문자를 창조하고 자신이 창조한 문자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스스로의 생존 확률을 높였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숙련된 독서가의 뇌를 가질 수 있을까?
문제 속에 답이 있다. 독서에 숙련되면 된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인이고 초보 독서가라면 숙련된 독서가의 뇌를 가질 수 있을까? 문제 속에 답이 있다. 독서에 숙련되면 된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인이고 초보 독서가라면 숙련의 첫 시작은 단연 '다독'이다.
** 다음 편에서는 '다독'을 중심으로 1년에 10권 정도 책을 읽었던 내가 어떻게 해서 1년에 300권을 읽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 본 내용은 그녀생각(고영성)의 신작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다독(많이 읽다)편'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주인장 소개로 갑니다.>
[출처] 독서하는 뇌는 없다|작성자 그녀생각
- 체셔토깽이
- 2016/07/23 PM 02:24
처음부터 숙련된 독서뇌가 없지만 영원한 독서 뇌도 없는 법인가봐요... ㅠ.ㅜ
사실 이 글도 정독 못함... ㅠ.ㅜ
- 최후의수
- 2016/07/23 PM 02:37
정말 필요를 느끼신다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읽히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 '왜 읽히지 않지?' '왜 내용과 저자의 의도가 안 들어오지?' 등의 질문을 떠올리시면서 일종의 자기반성 과정을 하는 것부터가 시작인것 같습니다. (자문자답식의 일기/사색?)
저는 독서 관련은 아니고 종교적인 방향성을 잡고 제 일기를 쓰는데,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 100% 독서 일기는 아니지만 살짝 걸쳐있네요..
- 스타드림
- 2016/07/23 PM 02:24
- 스타드림
- 2016/07/23 PM 02:31
- 최후의수
- 2016/07/23 PM 02:38
- 향아~
- 2016/07/23 PM 02:41
- 최후의수
- 2016/07/23 PM 02:48
http://ppss.kr/archives/64696
검색을 해보니 다른 곳에 기재된 곳에 2쇄 들어갈 때 수정되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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