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 | 기술] '세계 생산 독차지 할 것' 미국 제재 받는 중국이 달려드는 반도체2023.11.21 PM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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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수요 75% 차지하는 레거시 반도체에 공격적 투자



중국은 20나노 이상 반도체 국산화를 우선 추진해야 합니다.”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SMIC 부회장을 지낸 반도체 권위자 리웨이(李偉)가 지난 9일 칭다오(靑島)에서 열린 APEC 중소기업 교류회에서 한 발언이다. 중국이 국가 전략 사업으로 추진하는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선 레거시(구형) 공정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線幅)이 좁을수록 연산 성능과 에너지 효율이 높은데 통상 20나노보다 큰 반도체는 레거시 공정으로 분류한다.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조치로 10나노 이하 미세 공정 개발이 좌절되자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구형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뒤 점차 첨단기술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선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 생산을 무기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 숨통을 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AI 반도체, 서버용 칩 등 첨단 반도체 경쟁이 치열하지만 여전히 반도체 수요의 75%는 레거시 반도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레거시 반도체는 자율 주행차를 비롯한 자동차와 가전, 스마트폰뿐 아니라 군사 무기에도 폭넓게 활용되기 때문에 이 시장을 독점하면 안보 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구형 반도체로 눈길 돌린 中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뒷배로 빠르게 레거시 칩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레거시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는 자국 기업에 최대 10년까지 법인세를 면제받는 혜택을 주고 있다. SMIC는 지난해 상하이에 28나노 칩 공장 건설에 89억달러(약 11조원)를 투자했고, 윈텍테크놀로지도 연간 40만장의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생산 규모의 자동차용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제 반도체 장비 재료 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까지 총 31개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으로 대만의 19개, 미국의 12개 공장 신설 계획을 크게 앞선다.


업계에서는 이 추세대로라면 2~3년 안에 전 세계 구형 반도체 절반이 중국에서 생산될 것으로 본다. 시장조사 업체 IBS에 따르면 지난해 15%였던 중국의 28나노 칩 시장점유율은 2025년 4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베인 앤드 컴퍼니의 피터 핸버리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 보인 것처럼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앞세워 전 세계 공급망을 먹어치우며 생산을 독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구형 칩 시장 확대는 한국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에 들어가는 DDI 반도체를 비롯한 이미지센서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생산뿐 아니라 구형 반도체 설계 기술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평가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 등이 앞선 이미지센서에서 SMIC, 넥스칩 등 중국 업체가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양인성



◇美 업체들은 꼼수 납품


중국이 시장 파급력이 큰 구형 반도체에 대한 영향력을 늘려가자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에선 추가 제재안을 검토하고 있다. 첨단 공정뿐 아니라 레거시 반도체 기술 개발에 대해서도 수출 통제 조치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 등을 의식해 수개월째 제재안 논의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미국 반도체·장비 제조 업체들은 미 정부의 제재를 피하면서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을 잡기 위해 ‘맞춤형 제품’ 공급을 늘리고 있다. 대부분 미 반도체 기업들은 전체 매출의 20~30%를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미 엔비디아는 지난 10일 연산 성능을 낮춘 AI(인공지능) 반도체 3종을 출시했다. 한 달여 전 중국에 대한 AI 칩 수출을 금지하는 미 정부 제재가 나오자 최신 제품보다 성능이 한 단계 떨어지는 중국 맞춤형 칩을 내놓은 것이다. 미 의회 소속 미중 경제 안보 검토 위원회(USCC)에 따르면 중국은 올 1~8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수입 금액이 전년 동기 대비 96% 늘었다. 대부분 첨단 미세 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보다 한 단계 아래인 DUV(심자외선) 장비다. 한국, 대만이 초미세 공정에 집중하면서 수요가 줄어든 구형 장비 수입을 크게 늘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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