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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웹소설) 10,000회차 연재 후 끝장나는 세계 - 42021.09.22 PM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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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고래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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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는 한때 범고래를 동경했다. 시골에서 S시로 상경하자마자 이름을 오르카로 개명한 것도 이때문이다.
물론 돌고래는 범고래가 될 수 없다. 왜냐면 돌고래는, 돌고래였으니까. 태생적인 한계였다.
하지만 오르카는 오늘도 범고래의 꿈을 꾸고 있다. S시의 빵집에서 빵을 팔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한 자루의 총이 자리하고 있었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질적인 의미로 말이다.
***
빵집 아르바이트를 끝낸 오르카는 앞치마를 풀어헤치고, 대신 새카만 정장을 입었다. 이것이야말로 돌고래 사회의 ‘집행자’에게 허락된 정식 복장이었다.
‘돌고래는 돌고래의 법으로 심판하라.’
그것이 육지에 사는 돌고래들이 공유하는 절대적인 법률. 규율을 어긴 돌고래를 처단하는 것이 집행자의 직무였다.
스마트폰에 들어온 명단을 확인한 오르카는 가볍게 혀를 찼다.
‘망할 목록에는 오늘도 죄다 이상성욕자들 뿐이군.’
돌고래는 본래부터 지능이 뛰어난 생물. 지능이 뛰어난 만큼 추구하는 방향이 다양하고, 이는 성적 기호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돌고래는 지상에 있는 종족 중에서 이상성욕이 특출난 편이었다.
그 유명한 식인 엘프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패티시즘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돌고래고, 선을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물의를 일으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돌고래를 처치하는 게 바로 집행자였다.
낮에는 빵집 아르바이트, 밤에는 동족을 처단하는 무자비한 집행자.
서둘러 학교로 향한 오르카는 때마침 목표물이 걸어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교사 주제에 돌고래와 다람쥐가 교미하는 일러스를 커미션 했다지? 용서할 수 없다.’
품에 숨긴 총을 쓸 필요도 없었다. 하굣길의 혼란 속에 자연스레 섞인 오르카는 목표의 허리를 깊게 찌른 채 속삭였다.
“이건 존슨이 아니야. 바다마녀의 특제 마법독이지. 도리를 벗어난 돌고래는 대가를 치러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오르카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잠깐 인상을 찌푸린 장 선생은 입을 떼기도 전에 온 몸에 퍼진 마법독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맛봐야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굣길의 하늘에 울려 퍼진 것은 살해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의 비명- 이 아니라, 환호성이었다.
“장 쌤이 물거품이 됐다!”
“아니 여기서 마술 쇼를?”
“어이 저기 봐. 폭죽까지 쏘아올리셨어.”
“흥. 장 선생님 답지 않은 지저분한 불꽃놀이로군”
“그래도 석양하고 잘 어울리지 않아?”
“아아, 석양이 굉장해졌군.”
“마치……”
한편, 골목길에 숨어 장 선생이 물거품과 폭죽이 된 것을 확인한 오르카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번졌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담당자를 만나야겠어.”
***
손님 한명 없던 꽃집 ‘너구리’에서 느닷없이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꽃집은 교외의 대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부서진 온실의 유리 파편 위에 온 것은 경찰의 발이 아니라 석양의 주황빛 뿐이었다.
이 소란의 중심에 있던 것은 오르카였다. 암살 현장에서 재빨리 이탈한 뒤, 지령담당관의 거점인 이곳까지 무작정 오토바이를 몰고 온 것이다.
화단 한쪽에 오토바이를 처박은 오르카는 돌고래들의 지령담당관이자 꽃집 사장인 너구리를 보자마자 그의 고환에 총구를 겨눴다.
경고 따윈 없었다. 그는 집행자다. ‘쏴야 한다’생각했을 때는 이미 쏜 뒤어야 했다.
“대답은 신중히 해라 너구리. 남은 불알 한쪽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야.”
“끄윽. 다짜고짜 불알을 쏴버리다니……. 왜, 암살 대상이 물거품으로 변하기라도 했나?”
“네 녀석, 보고있었나?”
“헷, 간단한 이치다. 의문이 생긴 집행자는 네가 처음이 아니란 거지.”
너구리는 부상 따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느긋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일어날 수 있냐는 표정이군. 그렇게 놀라지 말라고. 순서대로 말해줄 테니.”
너구리의 갈색 털 위로 비릿한 웃음이 번져갔다.
“너 같은 놈들이 하도 많으니까 빼서 다른 곳에 숨겨뒀지. 토 생원이 별주부 엿먹일 때 쓴 방법을 배워두길 정말 잘했다니까.”
너구리가 뒤이어 말한 것은 오르카의 가치관을 근본부터 뒤집는 내용이었다.
돌고래의 사회는 돌고래들이 아니라 사실 ‘어떤 조직’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조직의 이름은 유교드래곤. 이상성욕 없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이성교제 사회를 목표로 하는 그들은 인간만큼 성욕이 강했던 돌고래들을 주시해왔고, 이를 음지에서 통제해 왔다.
“그렇다면 집행자는 그들의 수족에 불과했던 건가.”
“처음에는 아니었어. 제대로 도를 지나친 녀석들만 통제했지. 그렇지만 유교드래곤이 손을 댄 뒤부터는 그게 과해지고, 이윽고 돌고래 사회 밖에 있는 인간에게 까지 집행자가 가게 만든 거야.”
“그렇군. 설명에는 감사를 표하지.”
“대가는?”
“어쨌든 너도 날 속인 셈인데,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나?”
“뭐, 그렇다고 치지. 앞으로 어쩔 셈이야?”
“집행자가 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다.”
“호오, 그게 뭐지?”
“이상성욕의 과잉 통제 역시 이상성욕 중의 하나. 그렇다면 유교드래곤 역시 숙청 대상에 불과하다.”
“돌고래는 돌고래의 법으로 심판한다는 건가. 행운을 빌지.”
“너구리가 비는 행운 따윈 믿지 않아.”
그렇게 말한 오르카는 S시 상공에 떠있는 거대 운석이 만드는 그림자에 섞여,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성욕을 통제하려 하는 유교드래곤과 그 야망을 저지하려 하는 돌고래가 벌이는 장절한 사투의 서막이었다.
***
“-그런 기획을 세워봤는데요.”
광고회사 ‘파랑새’의 직원인 나구리는 발표를 끝내고는 부장의 반응을 기다렸다.
S시의 육상 돌고래 단체에게 홍보영상 의뢰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아이디어를 100% 그대로 옮긴 기획안이다. 나구리는 이게 통과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부장이 문 담배가 반쯤 타들어간 후, 나구리의 기획서는 정확히 반으로 쪼개졌다.
“자질구레한 설정이 너무 많잖아. 게다가 배경 자체도 무겁고. 배트맨이냐? 이게 배트맨이냐고. 얼간아. 왜? 아주 제목도 돌핀맨이라고 하지 그랬냐? 이건 기각이다. 기각!”
“엑.”
***
이곳은 K국의 S시.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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