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관우의 마지막 전투.jpg2012.12.13 PM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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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만 탈탈 털다가
이렇게 지도로 보니까 이해가 좀 잘 되네요.


오소리 새퀴 ㅋㅋㅋㅋ
댓글 : 20 개
과연 명장이군요. 무인으로서는 최고라 하는 여포가 있지만 무장이라 하면 관우에 비할바가 될 수 없습니다.
관우가 서황이랑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군요. 그건 몰랐네요....
희대의 통수.
관우가 신격화 된 건 후세의 통치자들이 관우처럼 주군에게 충성하고 최선을 다하면 인정받는다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겁니다.
관우의 전투력은 그냥...-_-b
괜히 만인지적이 아니네염 ㅋ
한가지 의문인건 형주처럼 중요한 지역에 인재가 너무 없었던게 아닌가...라는 점입니다.
물론 서쪽에서 한중을 공략하느라 그쪽으로 전력이 쏠린 점도 있겠지만 말이죠.
관우가 잠시 조조군에 몸을 담글때 친했던게 장료와 서황이라고 하지요. 세 무장의 공통점은 무용도 무용이지만 과묵한 인품과 무엇보다 첫 출발이 조조군이 아닌 항복한 장수출신이란 점에서 호형호제했다고 하더군요.
ㄴ 오 확실히 공통점이 많네요....
인재가 없었던건 아니에요 ㅎㅎ 우리야 삼국지 게임을 해보고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미방이 ㅄ이라고 생각하는거지 본문을 쓰신분 말씀처럼 미방의 촉군 내의 지휘는 엄청 높았습니다. 그러나 관우의 그 고자세 때문에 손권이나 미방과 틀어진거죠.
사실 유비에게 관우 장비가 없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못했을지도..
근데 사실 관우의 성격 때문에 틀어졌다는것도 100% 신용할만한 이야기는 아닌듯 합니다.
오나라에 있어서 어쨌든 형주는 양보할 수 없는 노른자위니까요.
가장 큰 실수는 역시 촉의 전력 배치라는 생각이 듬.
오소리 새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료 서황과의 친목은 꽤 유명한 이야기죠.
하여간 저렇게 허무하게 가면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미방 개새끼...
관우와 절친이었다던 장료가 관우가 죽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네요.

관우와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하후돈은 조조 사후 쓸쓸히 병사
미방 개객끼 2
장료는 기억 안나는데 서황도 어이없이 죽죠.
관우 죽고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위나라로 튄 맹달(같이 관우 통수친 유비 양아들 유봉은 처형. 처형 직전에 유비가 취소명령 내렸는데 이미 형이 집행되어 엄청 슬퍼했다죠.)은 유비 사후에 위나라 통수친다고 반역했다가 사마의가 알아채서 포위되었는데 서황이 하필이면 맹달군이 쏜 화살에 헤드샷 당해 죽었다고 ㅠ.ㅠ
매번 하는 말이지만
제갈량의 지략은 형주에서 끝났고
어딜봐도 당대 최고의 내정가일 뿐 전략가가 아니라는 부분이 여기서 나옴

영안을 원래 지키고 있던게 엄안이었고
엄안 밑에 있던 장수들 또한 오랫동안 국경이었던
영안 및 형주까지의 지형에 익숙한 장수들이었음

근데 촉을 통일하고 제갈량하고 유비가 처음 하는 일이
내부 불만 잠식과 서열정리를 위한
촉의 주요 장수 모두를 성도로 불러드리는 거였음
이게 내부를 단속하는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지는 몰라도
형주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꼬라지가 되버림

과거 형주에 부속처럼 딸려있는 4개의 성을
관우 조운 장비 등이 지켰던 때와 비교해 보면
형주는 그냥 낙동강 오리알 신세

그 상황에서 관우는 진짜 소설 같은 활약을 보여줬을 뿐이고
제갈량은 의도적으로 모른 척 했던
전략적인 실패였던
차후 촉이 절대로 위를 이길 수 없는 대표적 요인이 되는
형주를 잃게됨

안그대로 척박한 촉의 입장에서는
물자의 중심이자 대대로 인재가 많기로 유명한 형주는 꼭 붙잡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나마 나중에 한중 붙이고 나서도
가장 나라가 클 때의 새력이
위의 1/16 정도 밖에 안되었다니
제갈량의 출사표는 어찌보면 질거 알고 가는 싸움이나 마찬가지 였음
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이 일부러 관우를 버렸다는 평을 하죠.
사실 여러가지 정황을 보면 그리 생각되는것도 무리가 아니구요.

하지만 제갈량을 폄하하기 어려운 부분은 유비사후에도 위라는 초강대국에 오히려 공세를 펼치면서 대등한 관계를 꾀했다는 점입니다. 이건 Ecarus님의 말씀처럼 당대 최고의 내정가일뿐이라면 펼치기 힘든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네루네코//
정치가로써도 좋은 면모가 있었을 뿐
아무리 봐도 전략가 적 면모는 신야 시절에 진즉 끝났죠
이건 우리가 지략가로 많이 알고 있는 많은 문관들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대부분 내정에 밝고, 정치에 해박해서
우두머리들 옆에서 조언하는 역할로 있던 문관들이
무슨 전략가 처럼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는 죽고 나서도 전략가적 면모를 가장 많이 보여준 지장은
곽가 였다는 생각이 듬
정사와 연의를 통틀어봐도
과연 곽가 만큼 신귀출몰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지장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
여몽도 솔까 좃밥인데 저 뒤치기 하나로 인생 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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