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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문화일보 시평 - 고려대 교수라는 양반의 글2012.10.19 PM 04:40
<時評>5·16과 유신
서지문/고려대 문과대 교수·영문학
(문화일보, 2012.10.04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5·16과 유신과 인혁당 사건은 모두 불법으로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행위"라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법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합법적 쿠데타란 있을 수 없으니까) 다 같이 위법이겠지만 5·16이 유신 및 인혁당 사건과 동렬에 놓이는 것에 대해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4·19혁명이 일어난 것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남보다 일찍 취학했던 나는 그때 우리 나이로 열세 살이어서 학생혁명의 의의는 잘 몰랐지만 학생들이 정의를 위해 용감한 투쟁을 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정권이 무너져서 혁명이 '성공'하면서부터 매일매일 데모가 이어졌는데, 국가·사회적 중대사에 관한 것에서부터 온갖 잡동사니 이익집단의, 몇몇 개인의 요구까지 거리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당시를 '데모 만능의 시대'라고 했지만 공권력이 마비돼서 데모로도 '해결'되는 일은 없었고 혼란과 무질서는 나날이 더 기승을 부렸다.
4·19혁명에서 5·16 사이의 1년 간은 개인적으로도 공포의 세월이었다. 매일 등·하굣길에 학교 앞에서 '앵벌이'들에게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손이 새까만 일고여덟 살 정도의 소년들이 교문 앞에 포진하고 있다가 나처럼 어리바리해 보이는 학생을 보면 손을 얼굴에 들이대며 돈을 요구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영원히 헤어날 길이 없는 악몽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렸고, 믿을 수 없게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5·16이 나를 그 지옥에서 구해준 것이었다. 군사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한 박정희 소장은 깡마르고 왜소하고 과묵하고 소탈해 보여서 내게 한 점의 사심 없는 구국의 영웅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소녀 시절 내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기 때문에 세상 소문이나 정치판의 형세를 전혀 몰라서 그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7, 8년이나 지속됐다.
그가 혁명과업을 이루고는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하고서 스스로 군복을 벗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배신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다행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가 3선개헌을 하겠다고 했을 때, 몹시 서글펐다. '급류 속에서는 말을 바꿔 타지 않는다'는 슬로건에 상당 부분 수긍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평화적·순리적 정권교체가 한 번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무너졌기 때문에 무한히 슬펐다.
그리고 3년 뒤에 '유신'이 선포됐을 때의 환멸과 배신감을 무엇으로 다 표현하겠는가!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불가능한 나라인가? 박정희는 처음부터 영구집권을 목표했던 것일까? 그가 수차례 자신의 대(對)국민 약속을 번복한 것은 상황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국민을 기만한 것이었을까? 그가 적어도 처음에는 순수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우리나라가 너무나 싫어졌다.
인혁당 사건은 내가 한국정치에 대한 크나큰 실망을 안고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중에 일어났는데, 유학생 사회에서 격렬한 말이 많았지만 설마 그렇게 완전히 날조된 것일 수야 있겠는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마도 1975년에 이미 박 대통령은 판단력이 마비됐던 것 같다. 그때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그때 5·16 전야의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어떤 감회를 느꼈을까? 순진했다고 비웃었을까? 그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슬퍼했을까? 아니면 국민을 멋지게 속인 것에 쾌재를 불렀을까?
유신과 인혁당 사건, 기타 무수한 과오로 훼손된 5·16의 주역 박정희 장군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스스로는 모두 설명하고 해명할 수 있다고 할지 몰라도 그는 자신의 업적을 깎아먹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좌파가 득세할 기반을 마련해 줬으며 자기 자녀들에게 가혹한 짐을 남겼다.
북한 동포의 비참한 삶을 볼 때,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와 기타 세계 여러 곳의 가난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독재에 무방비한 개도국 국민들을 볼 때, 우리도 5·16과 경제개발이 없었다면 그런 나라들처럼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박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 인다. 그의 혁명이 '유신'으로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를 순수하게 흠모하고 추모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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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4.19 당시 혼란기에 졸라 어수선했는데,
박정희 장군님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며 5.16 혁명으로 난세를 평정하셔서 졸라 좋았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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