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주식·부동산·채권 모조리 ‘대학살’…이것이 역사를 흔들었다2023.01.24 PM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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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지난해 세계 자산시장엔 ‘대학살의 신’이 강림했다. 주식, 부동산, 채권, 가상화폐가 일제히 폭락했다. 1970년대 이후 가장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벌어진 일이다. ‘금융투기의 역사’를 쓴 전 GMO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드워드 챈슬러의 신작은 5000여년에 걸친 금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금융 자본주의의 실체를 파헤친다.


태초부터 이자는 존재했다. 하지만 이자의 고향은 바빌론이다. 메소포타미아인은 기원전 3000년에도 점토판에 대출 내역을 쓰고 도장을 찍고 목격자도 기록했다. 부채가 상환되면 점토판은 파괴했고, 이자는 은이나 보리로 냈다. 기원전 24세기 대출 문서에 한 채무자는 13년 치 식량에 해당하는 보리 9360리터를 빚진 기록이 있다. 그들은 부동산과 노예 구매, 소비, 사업을 위해서 대출받았다.


이자 계산을 위해서 시간과 가치가 표준화되어야 한다. 한 달 30일, 1년 12개월의 수메르 달력을 기준으로 이자를 계산했다. 채권자는 채무자와 그의 가족, 노예가 노동을 통해 이자를 갚도록 하기도 했다. 토지 담보를 점유하는 방식도 오늘날의 임대나 금융리스와 동일하다. “금융은 신성의 그늘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왕궁과 사원은 주요 대출자였다. 이들은 미망인과 고아 등에게 식량을 배급해 자원 재분배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부른 ‘복리’도 발명했다. 도시국가 움마는 라가시의 농경지를 점령하고 땅에 대한 대가로 매년 300리터의 보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분쟁 지역을 되찾은 다음 부채를 복리로 연 33.33%씩 늘어나도록 계산해, 두 도시는 결국 전쟁을 했다. 기원전 175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도 이자율이 등장한다. 은의 최고 이자율은 20%, 보리는 33.33%로 정했다.


이자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이집트에선 출산, 고대 그리스는 송아지란 뜻이었다. 영어의 capital은 소머리에서 유래했다. 농경을 위해서 씨앗과 동물을 빌리면 수확기 이자와 함께 돌려받은 데서 비롯한 것이다. 고대부터 금리는 관습과 법만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바빌론의 사채업자들조차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금리를 형성했다. 게다가 금리는 수천 년 동안 경제성장과 아무 상관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기원후 1000년간 세계 경제는 연간 고작 0.01% 성장했다. 같은 기간 유럽의 실질금리는 6~12%에 달했다.


다만 뵘바베르크에 따르면 한 나라의 금리는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금리는 위대한 문명의 진로를 뒤따랐다.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에서 금리는 수 세기에 걸쳐 U자형 패턴을 그렸다. 문명이 번창할 때는 떨어졌고, 쇠락하거나 멸망할 때는 급격히 상승했다. 폭풍전야일 때는 초저금리도 등장했다. 18세기 네덜란드가 프랑스에 공격당하기 직전 금리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21세기 초저금리는 위안이 될 현상이 아닌 셈이다.


책에 등장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은 스코틀랜드인 존 로의 실험이다. 23세에 결투에서 정적을 죽인 뒤 교수형을 선고받은 그는 탈옥해 대륙으로 도피했다. 25년 후 그는 프랑스 재무장관이자, 중앙은행 설립자가 되어 프랑스에 지폐를 도입해 금리를 2%까지 낮췄다. 광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시시피 버블은 그의 작품이다. 액면가 500리브르에 발행된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1719년 한해에만 20배가 상승했고 1차 청약자는 40배 이상을 벌었다. ‘백만장자’란 말이 이때 탄생했다.


24시간 지폐를 찍어내던 왕립은행은 미시시피 회사와 합병했고, 결국 광란의 인플레이션으로 귀결했다. 물가는 몇 배로 뛰었고 돈은 나라 밖으로 도피했다. 주가를 고정하는 조치까지 취했지만 주가는 -90%로 곤두박질쳤고, 결과는 폭동이었다. 위대한 금융 실험은 재앙으로 끝났다. 로는 실패했지만 후계자 벤 버냉키를 남겼다.


금융위기가 가져온 변화 중 하나는 제로금리의 보편화다. 2012년 캐나다 경제학자 윌리엄 화이트는 논문을 통해 급속한 금리 인하로 소비가 증가하고 저축이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낮은 금리로 기업 투자 촉진을 바랐지만, 화이트는 기업들이 실제로는 투자를 줄이고 있음을 경고했다. 자본의 잘못된 분배가 일어나며 창조적 파괴가 좌절됐다. 정부는 국가 부채를 무제한적으로 늘렸고 값싼 돈은 최후의 심판을 계속 미루는 효과만 낳았다. 양적완화의 결말은 지난해 우리가 목격한 폭락 장이다.


무상 대출이 노동자에게 재앙이 되리라는 건 19세기 프랑스 자유무역 옹호자였던 의원 프레데릭 바스티아부터 이어진 주장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더 높은 금리로 대출받고 부유한 기업과 투자자는 저렴한 대출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 심지어 2011년 아랍의 봄 또한 미국의 제로 금리로 개발도상국에 자본 유입이 빨라졌고 상품과 식량 가격이 치솟으면서 일어난 민중 봉기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생산성 증가 붕괴, 구매 불가능한 주택, 불평등 심화, 시장 경쟁 소멸, 금융 취약성 등 코로나19 이후 경제 위기의 많은 원인이 ‘초저금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초저금리는 포퓰리즘의 부활이라는 비싼 대가까지 치르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원제는 시간의 가격(The Price of Time).

 





댓글 : 1 개
  • Pax
  • 2023/01/24 PM 05:21
확실히 낮은 금리가 증대시킨 소비지출성향이 사업적 동기유발증대를 압도해버린거 같다는 게 2000년대 이후로 드는 생각임.

사업은 일부만 하지만 소비는 누구나 하니까.

뭐 그 증가한 소비가 전세계적 번영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가계단위에서 부의 재창출이 없는 소비의 증가가 낮은 금리 때문에 생산의 증가보다 압도적이면 소비성향 증대에 의한 부채의 증가분이 언젠가 폭탄의 뇌관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음.

근데 그게 2~30년 이상가는 한 세대 넘는 시간단위로 터지니 금융적 재난의 경험이 없는 세대에서 저금리에 의한 부채가 가속화되며 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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