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한국·일본·대만이 빨리 잘 살게 된 비결 3가지 (feat. 빌 게이츠 추천도서)2023.06.30 PM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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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승환』 님 블로그


 

아시아의 힘 (How Asia Works)

빈국의 경제 개발, 통치자의 도덕성,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단상


 

 

조 스터드웰이 쓴 아시아의 힘을 읽었다. 저자는 개발학 박사 출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Financial Times, Economist 등에 기고하는 언론인이자 작가, 대학 강사다. 그는 중국 경제와 대중국 투자를 다루는 The China Economic Quarterly의 편집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책은 빌 게이츠가 2014년의 추천도서로 선정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저자의 주장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저자가 전개하는 논리는 다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2차 대전 종전 당시 저개발 국가였던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 중, 어째서 동북아(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와 동남아(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명운은 극단적으로 갈렸는가? 동북아 국가들을 경제 강국으로 이끈 동력은 무엇이었으며, 동남아 국가들이 빈국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빈국이 개발 과정에서 단계 별로 취해야 할 최적의 발전 전략이 있으며, 이 전략을 동북아 국가들의 사례에서 일관되게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북아 국가들의 경우 국가 간에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발전 전략을 잘 구사했기에 연 10퍼센트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수십 년 동안 지속해 오늘날의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동남아 국가들은 이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기에 반 세기 후에도 빈국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빈국을 위한 최적의 개발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가족농 중심의 농업 육성


가족농, 즉 자신의 토지를 소유한 자작농을 육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토지와 노동력 외에는 아무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빈국의 상황에서, 국가의 총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늘날 미국의 농장지대와 같이 자본주의식 대단위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과 달리, 빈국의 농업 시설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또한 농업 외에는 생산가능 인구가 종사할 수 있는 산업이 딱히 없으므로, 모두 텃밭에 달라붙어 단위 면적당 소출을 최대한으로 쥐어짜 내는 것이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한 자작농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으로, 소출을 높이는 일이 개인의 부로 연결된다는 인센티브가 주어졌을 때 텃밭농사의 생산성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평등한 토지 분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본, 한국, 대만의 사례는 모두 가족농을 육성해 텃밭농사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동남아 국가들은 토지 개혁 없이 봉건 시대 지주와 같은 소수 기득권층이 농지를 독점하는 가운데 농부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열심히 일하면 부를 축적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진 소작농들은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잃어버렸고, 이들 국가의 단위 면적 당 소출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져 개인에게 농지를 분배하지 않고 집산 농장 체제를 선택했으며, 그 결과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뒤늦게 경제 개발 대열에 합류했다.



2. 제조업 기반의 수출 대기업 육성


빈국이 가진 생산자원은 토지, 그리고 노동력이다. 가족농 기반의 농업 육성이 토지에서 뽑아낼 수 있는 잉여 생산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가가기 위한 최소한의 부를 축적하면, 이제 저렴한 노동력을 무기로 제조업을 육성해 수출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단 인간의 탐욕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온다. 전형적으로 빈국의 자본가들은 해외 시장을 향해 위험한 도전을 하기보다는 국내 시장을 독점해 안전하게 지대 추구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 때문에 기업가들을 강제해 수출 시장으로 내몰아야 하는데, 이는 정부의 몫이다. 행정력, 그것도 절대 권력에 가까운 강제력이 기업을 통제해야 가능한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절대 권력이 기업들을 통제해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기업들끼리 경쟁시켜 패자를 도태시키고 승자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수출 규율'이 핵심이다. 이 대목 즈음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대사와 박정희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후 미군정이 군부와 결탁한 재벌 해체 작업을 진행했고, 그 바통을 상공성이 이어받아 수출 규율 정책을 실시했다. 기업들은 수출액에 따라 사실상 감세 혜택인 장부상 감가상각액 계상 한도를 적용받았고, 그 외에도 외화 융자, 인프라 투자, 무상 용지 등의 혜택을 제공받았다. 한국의 박정희는 기업 총수들을 잡아 가두고 강력한 수출 규율을 행사했다. 그 결과 60, 70, 80년대를 거쳐 오늘날의 삼성, 현대와 글로벌 기업을 배출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대만의 경우 상대적으로 수출 규율의 강도가 낮았기에 글로벌 수출 대기업을 키우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 한국에 비해 낮은 1인당 GDP 수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산업화를 늦게 시작했지만, 공산당 독재 체제는 수출 규율을 매우 효과적으로 행사하여 강력한 공기업들을 키워냈으며, 이들을 경쟁시켜 패자를 도태시키고 승자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작업 또한 매우 효율적으로 해냈다.


한편 동남아 빈국들은 가족농 기반의 농업 육성도 이루지 않은 채 어설프게 동아시아 국가들의 산업화 정책들을 따라 하려는 실책을 저질렀고, 그 결과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여전히 빈국에 머물고 있다.



3. 국가의 금융 통제 (단계 별 발전 전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저자에 따르면 국가는 금융 부문을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금융 부문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개입은, 적어도 선진국가 대열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필수적이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금융 부문을 시장에 맡겨 버릴 경우 은행은 단기적이고 확실한 수익을 추구하게 되며, 그 결과 장기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산업 부문에 자금이 공급되지 못한다. 또한 기초 체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선진 금융시장을 표방하며 외국 자본에 금융을 열게 되면, 글로벌 투기 자본이 들어와서 국내 시장을 교란하고 망가뜨리게 된다. 따라서 상당한 수준의 경제 개발을 이루기 전까지 개도국의 금융은 국가가 통제하고 개입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육성 산업에 자금 공급을 집중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어린아이가 성장을 해나가는 과정에 비유하며, 충분히 자라기 전까지는 통제와 개입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평에 따르면 일본, 한국, 대만 중 가장 효과적인 금융 정책을 실시한 것은 한국의 박정희 정권이다. 97년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의 금융 부문은 통제되고 폐쇄적이었으며, 외환위기 때 IMF에 의해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게 된다. 저자는 97년의 금융 부문 개방에 대한 평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듯 하나, 한편으로는 학계의 비판적인 의견 또한 소개하며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아래는 본문 발췌)


... 진정한 문제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더 개방적이고 자유화된 금융 체제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이전의 필리핀이 너무나 성급한 규제 완화로 떠밀렸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면 한국은 훨씬 이후의 산업화 단계에서 IMF가 강제한 규제 완화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한편 동남아 빈국들은 농업, 제조업도 키우지 않은 채 금융을 개방했다가 글로벌 투기 자본에게 아주 호되게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금융 부문을 아직 개방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공산당 독재 체제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을 정부가 통제하고, 국가 발전에 필요한 산업에 집중하는 일은 매우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중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평가절하하는 통념들, 이를테면 부실한 그림자 금융으로 인해 중국 경제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투로 적는다. 중국 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며, 중국 정부의 통제력은 세간의 우려보다는 훨씬 건재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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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책을 읽던 중 문득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20대의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를 표방했고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부조리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30대인 지금, 특히 근래 몇 년에 와서는 10년 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도덕적, 정치적으로 무심해졌다. 가끔은 '내가 언제 이렇게 속물이 되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덕적 판단에 둔감해진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사에 선악의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균형 잡힌 판단으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것이 요즘의 생각이다. 옳고 그름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세상엔 절대적인 진실 같은 건 없다. 사안을 감정에 따라 단죄하면 그 후의 추론은 확증을 거들 따름이다. 생각하기 전부터 이미 싫다고 답을 내려버린 사안에 논리를 동원해 확증하는 일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박정희에 대한 저자의 후한 평가에 대해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해졌다. 20대의 내가 박정희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대략 이렇다. 친일파와 공산주의자를 거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기회주의자, 총칼과 군홧발로 사람들을 짓밟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영구집권을 시도한 독재자... 도덕적으로 판단하면 선한 사람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볼 수가 있겠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자본가들과 붙어먹으며 사리사욕만 챙기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실제로 동남아의 독재자들은 국가 개발에 아예 관심이 없었거나, 어설프게 시도는 했지만 그 결과가 끔찍했다. 필리핀의 예를 들면, 한국전쟁 후 필리핀은 한국보다 2배 잘 사는 나라였으나 반세기 만에 11배 못 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가족농 육성, 수출 제조 대기업 육성, 절대권력의 금융 통제 및 선택적 지원이 아니었다면 한국도 지금보다 11배 못 사는 나라, 어쩌면 북한 정도로 못 사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실제로 80년대 전까지 한국은 북한보다 못 살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박정희의 개발 정책이 그의 이타적, 도덕적 동기에 근거한 건 아닐 것이다. 사실 '남한의 경제 개발'은 영구한 권력 독점에 이은 그의 개인적 자아실현 수단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에 대한 지나친 추앙과 신격화가 거북하고 메스껍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근래 들어 읽을수록, 생각할수록 말을 아끼게 된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한국의 현대사와 개발 정책은 떼어낼 수 없는 주제이며,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움켜쥐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박탈당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특혜를 얻었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 속에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리고 반 세기만에 1인당 GDP는 417배 성장했다. 월급쟁이가 평생을 벌어도 얻지 못할 부를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는 이들이 제법 많으며, 오늘도 강남역 한 구석에는 노숙인들이 더위에 지쳐 잠을 청할 것이다.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현대사를 회고하며 글을 쓰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부국에 태어나 적당히 먹고살만한 수준으로 지내고 있으니, 나는 운이 좋은 축일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나는 대단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는 않으나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먹고살고는 있다. 앞서간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제도경제학 

댓글 : 1 개
  • Pax
  • 2023/06/30 PM 09:46
경제 개발에서 자영농 육성을 위한 토지개혁과 수출규율 및 장기적 자본투자 독려를 위한 권위주의적 정부의 존재를 필수요소로 간주하는 논리로군요.

동아시아적인건 맞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권위주의를 용인하게 되는, 누군가의 권력욕을 위해 이용되기 딱 좋은 논리라는 게 또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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