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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 건설] (KB증권) 2000년 일본 부동산이 2024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2024.04.27 PM 07:46
부동산/건설
2000년 일본 부동산이 2024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Deja-vu: 2000년 도쿄와 2024년 서울
강북권 대개조 사업,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고밀도집적개발의 컴팩트시티 프로젝트를 외치기 시작한 2024년 서울의 모습은 어디선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개발 방향성에서 2000년 전후 일본의 고민과 변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변수를 맞이했던 일본. 1) 2000년을 기점으로 부동산 개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2) ‘왜’ 바뀌어야 했는지, 3) 일본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대폭 변화한 일본의 부동산 개발 정책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부동산 개발 정책은 대폭 변화한다. 1) 전국적인 균형 개발에서 도심 기능을 갱신하는 집중과 효율의 기조로 변화함과 동시에 2) 주거지 개발에서 있어서도 정부 주도 외곽 신도시 개발을 포기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중심부 고밀 개발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변화의 핵심: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한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러한 변화의 핵심을 ‘지속 가능성’이라고 판단한다. 1960년~1990년대 일본이 펼친 확장형 도시정책은 인구증가, 고성장, 전국적인 지가 상승 등을 전제로 전개가 가능한 정책이었다. 어디든 공급하면 누군가 채울 것이다라는 공급자 중심의 믿음이 바탕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버블경제의 붕괴와 고령화 본격화로 한계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본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을 진행할 것인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한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변화의 중심: 일본이 그리고 시대가 디벨로퍼를 원했다
일본의 부동산 개발이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변화하는 중심에는 미쓰이 부동산, 스미토모 부동산과 같은 대형 부동산 디벨로퍼가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이 지속가능한 개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왜 디벨로퍼의 사업 참여가 활발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이유는 이들의 사업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디벨로퍼는 단기적인 관점에 집중하는 시행사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일본 디벨로퍼의 사업구조 자체가 2000년 이후 일본 부동산 개발의 지향점인 ‘지속가능성’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2000년을 닮은 지금: 고령화 그리고 전통적 개발의 한계
부동산 개발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변화를 앞두었던 2000년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판단이다. 1) 고령화가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2) 전통적인 부동산 개발 방법론이 한계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 개발의 룰이 바뀐다. 광운대 역세권 사업에 주목하는 이유
한국에서도 부동산 개발 패러다임이 변화해야만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2000년을 전후로 일본의 부동산 개발 정책이 완전히 변화하는 가운데 단기 매각차익이 아닌 임대수익 기반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킨 일본 디벨로퍼의 성장은 시사점이 크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한국 부동산 플레이어들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추진하고 있는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이 한국 부동산 개발의 새로운 모델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 KB증권 건설 / REITs Analyst 장문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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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ja-vu: 2000년 도쿄와 2024년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11년만에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용산정비창 일대에 최대 용적률 1,700%, 높이 100층 내외인 랜드마크와 함께 50만㎡ (약 15만평) 규모 녹지가 조성된다. 2025년 착공해 이르면 2030년 초부터 부분적으로 입주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5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선다고 밝혔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업무, 주거, 여가 문화 등을 도보권 내에서 모두 누릴 수 있는 컴팩트시티로 조성된다. 서울시는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와 뉴욕 허드슨야드 등을 참고로 하여 용산국제업무지구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웃 일본이 롯폰기힐스, 아자부다이 힐스를 지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모습이 나올지 기대를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북권 대개조 사업, 용산국제업무지구와 같은 고밀도집적개발의 컴팩트시티를 외치는 2024년 지금 서울의 모습은 어디선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도시개발 방향성이 2000년 전후 일본 도쿄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을 20년 정도 후행해 나타나는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는 한국.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변수를 맞이했던 일본이 어떻게 국가와 도시를 개발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본 자료는 기존에 발간된 두 개의 자료 (『[걸어서 일본 속으로 I] 고령화 시대, 도시의생존전략을 묻다』, 『[걸어서 일본 속으로 II] 일본에서 부동산의 새로운 답을 찾다』)를 보다 읽기 쉽게 하나로 요약하고 필요한 부분은 추가 보완하여 완성하였다. 1)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부동산 개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2) 부동산 개발이 ‘왜’ 바뀌어야 했는지, 3) ‘왜 2000년’을 기점으로 바뀌어야 했는지 그리고 4) 일본의 변화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이 자료를 읽는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핵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I.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 국토 개발은 어떻게 바뀌었나
1. 1960~1990년대: ‘균형’과 ‘명분’. 열도개조의 시대
일본 국토 개발정책은 2000년을 기점으로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살펴 볼 1960년~1990년대의 국토 개발 기조 핵심은 ‘균형’과 ‘명분’이다.
일본은 1962년 제1차 전국총합개발계획의 목표로서 국토균형 발전을 설정한다. ‘도시의 과대화 방지, 지역격차 축소를 고려하면서 자연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자본·노동·기술 등의 적절한 지역 배분을 통하여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고도성장 부작용으로 나타난 지역격차 해소 및 국토 균형발전의 목표를 분명히 밝힌다.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의 권력 장악 후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 방향이 성장노선에서 균형노선으로 전환된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1972년 6월 자유민주당 총재선거를 한 달 앞두고 향후 정책기조가 될 책을 발간하는데 바로 『일본열도개조론(日本列島改造論)』이다. 일본열도개조론은 일본이 이룩한 고도경제성장이 인구와 산업의 도시집중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고 결과적으로 도시와 농촌간 불균형을 심화시켰다고 보았다. 따라서 과거 태평양 벨트 지대에 집중되었던 개발을 후진지역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사람과 돈의 흐름을 거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역류시키는 지방 분산을 추진하고 국토를 균형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일본열도개조론은 대도시권 성장을 억제하고자 정부주도로 지방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열도개조론의 틀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는데 1) 지방과 도시간 격차 해소를 위한 교통망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건설, 2) 공업지역 재배치, 3) 인구 25~30만 신도시 건설,, 4) 개발이익 흡수가 그것이다.
균형과 명분에 입각한 정부주도 지방 개발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하에서 마련된 수도이전 계획, 26개 테크노 폴리스 건설 계획, 42개 리조트 지역 건설계획이다. 나카소네 내각은 세계 도시화 전략을 내세웠으나 정치적 안정을 위해 균형 개발은 포기하지 못했다.
1983년 일본 정부는 첨단산업 재배치를 통한 균형발전의 방안으로 테크노폴리스법을 제정하고 26곳의 테크노폴리스를 지정한다. 1970년대 일본열도개조론에서 제안되었던 공업지역 재배치 정책이 첨단산업으로 바뀌어 구현된 것이다. 균형발전이 목표인 만큼 기존 제조업 밀집지역에서는 테크노폴리스를 지정하지 않았다.
1987년에는 리조트법이 제정되었다. 그간 소외되었던 지역에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복합리조트를 개발함으로써 국민의 여가수요와 국토 균형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대상지역으로 도쿄도, 오사카부 등을 제외한 총 42개 지역이 선정되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균형개발 정책은 효과가 있었는가? 중심지의 과밀과 지방의 과소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의 본격적인 제기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효과적인 결과를 끌어내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테크노폴리스 지정에는 비교적 엄격한 요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 과당 유치경쟁으로 인해 일본 정부는 26개나 되는 테크노폴리스를 지정한다. 당초 일본 정부가 예상했던 테크노폴리스는 1~2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많은 테크노폴리스의 지정으로 당초 기대했던 기업 유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분산적인 지방 투자 과정에서 오히려 제조업의 규모가 영세화 되었고 규모의 경제가 나오지 않으면서 생산성이 하락하여 제조업의 해외생산이 촉진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42개 리조트 지역 역시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정 면적이 일본 전체 면적의 20% 가까이 되다 보니 개발과 운영이 순조롭지 못했다.
1960~1990년대 일본은 민간이 아닌 정부 주도로 지방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비수도권 지방 발전이 중앙정부 재정지원에 좌우되는 구조가 되었고 단기간에 집중적인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이 모두 악화되었다.
지방과 도시 간 격차 해소를 위한 교통망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건설 부작용 역시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 열도를 고속도로, 신칸센 등의 고속 교통망으로 연결하여 지방 공업화를 촉진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으므로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었다. 1980년도 들어 일본 국유 철도는 매년 약 1조엔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고 국철재건법에 의해 특정 지방 교통선이 폐지되거나 지방 교통선의 신규건설이 억제된다.
무엇보다 균형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전국적인 과잉 국토개발이 버블경제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비판이 가장 뼈아프다. 당시 적극적으로 추진된 전국적이고 동시다발적인 개발계획이 사람들로 하여금 과도한 지대 추구가 가능하다는 기대를 증폭시켰다는 의견이다. 주택지보다 상업지가 선행적으로 그리고 큰 폭으로 가격이 변동하였는데 가계보다 기업이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인 시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2. 2000년대 이후: ‘집중’과 ‘효율’. 도시재생의 시대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 국토개발 기조가 전폭적으로 변화한다. 1960년~1990년대 국토 개발 기조의 핵심이 ‘균형’과 ‘명분’이었다면 2000년대 새로운 일본 국토 개발 기조의 핵심은 ‘집중’과 ‘효율’이다.
일본은 과거 압축적 경제성장 가운데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도시 내 부족한 주택지를 교외지역 개발로 대응함에 따라 베드 타운이 급증했고 원거리 통근 등 직주분리 문제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균형개발 기조로 인해 업무 및 행정기능이 교외화 되면서 도심부 및 고밀도 시가지의 인구감소 현상이 심화, 생활환경 악화 문제 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 국가경쟁력이 저하되고, 도쿄 등 주요도시가 세계적인 도시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기존에 고수해 오던 도심기능 분산정책을 전환하여 단순한 오피스 면적 증가가 아닌 다양한 기능 집적을 촉진하는 도심기능 갱신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렇게 ‘집중’과 ‘효율’을 앞세운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 출범은 이런 변화를 촉진하였다. 도시재생의 강력한 추진을 목적으로 2001년 5월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고 내각관방장관 및 국토교통대신을 부본부장으로 하는 도시재생본부가 설치되었고, 이듬해 6월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이 시행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도쿄, 오사카 등 17개 지역이 도시재생 긴급 정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규제완화를 목적으로 총합특별구역법, 국가전략특별구역법 등이 추가로 제정되었다. 현재는 내각부 산하 지방창생추진사무국에서 도시재생본부 등을 통합 관리하며 일본의 도시재생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집중’과 ‘효율’을 앞세운 일본의 새로운 국토개발 기조 하에 도시재생 핵심 방법론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컴팩트시티다. 컴팩트시티란 도시의 일반적 기능과 거주를 공간적으로 집약한 도시다. 단순히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합적인 토지이용, 활동의 집중성 등을 겨냥한다. 고밀도집적개발과 대중교통을 통한 도시공간의 연계 등을 바탕으로 일자리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강화된 도시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컴팩트시티가 강조되면서 일본 도시개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간 일본 도시개발이 균형을 목표로 한 공급자 중심 개발이었다면 효율을 바탕에 둔 수요자 중심의 개발로 변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심업무지구로의 접근이나 철도역으로의 접근성이 중시되었고 오피스와 주거가 결합된 복합개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발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의 힘을 빌리며 규제완화에 대한 보상으로 공공기여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컴팩트시티가 일본의 핵심 개발 트렌드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1) 일본정부 및 지자체의 과감한 규제완화 (공공기여를 포함한)와 2) 일본 디벨로퍼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심기능 회복의 거점이 되어야 하는 지역에 자금이나 노하우를 가진 민간의 힘을 전략적으로 투입하여 개발을 과감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서 민간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조치나 도시계획과 관련된 특례조치 (용도지역 및 용적률 규제 적용 배제) 등이 신설되었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획기적인 용적률 상향이 컴팩트시티의 구현을 가능케 한 대표적인 정부의 지원책이다. 마루노우치에 자리잡고 있는 JP 타워의 경우 구역 기준용적률이 1,300%이지만 미쓰비시지쇼가 도쿄역 미이용 용적률을 구입하고, 재개발 시 건물 내 관공정보센터 및 옥상공원 등을 설치하여 총 1,630%의 용적률로 건축될 수 있었다. 또한 미쓰이부동산이 재개발을 진행한 니혼바시 미쓰이타워의 경우 기준 용적률은 718%에 불과하였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미쓰이본관 건축물을 보존함에 따른 공헌을 인정받아 총 1,218%의 용적률로 건축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일본의 대형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1) 핵심지역에 집중 되었다거나 2) 민간에 대한 정부 및 지자체의 강력한 인센티브에 의해 활성화 되었다는 점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와 1) 도시 개발에 있어 ‘기능 강화’가 핵심 아젠다가 되었고, 2) 따라서 단순히 공지 확보뿐만 아니라 해당지역에 부족한 기능을 강화하고 필요한 기능을 확보하는 것도 주요 공헌 항목으로 인정 받을 수 있으며, 3) 도시재생긴급정비지역으로 지정된 구역 안에서는 어디에서나 이미 명시된 기준에 부합하는 개발계획을 민간이 제안하면 관이 규제를 완화하여 사업이 추진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도시 개발의 활성화. 이를 좀 더 잘 이해해 보기 위해 2000년대 이후 진행된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인 시부야 대개조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 시부야 대개조: 역의 기능 회복. 100년에 한 번 있을 변화
시부야구는 일본 도쿄도의 서부에 위치한 특별구다. 이케부쿠로, 신주쿠와 함께 도쿄 3대 부도심 중 한 곳으로 시부야역 주변이나 하라주쿠가 특히 상업 지역으로 유명하다. 시부야 교차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교차로이며, 도쿄의 타임스퀘어라고도 불린다.
시부야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동시에 복잡하고 혼잡한 지역으로 악명이 높다. 시부야역은 4개의 다른 회사가 운영하는 총 9개의 노선이 지나고 하루에 300만명 정도가 이동한다. 그러나 지하 5층~지상 3층 구조로 여러 선로가 이어져 있는 복잡성 때문에 환승이 쉽지 않고 보행이 단절되는 등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입지로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사용자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구조적 문제의 개선, 이것이 바로 ‘100년에 한 번’ 시부야 대개조라고 불리는 도시재생사업의 시작점이다.
시부야를 거점으로 철도, 부동산, 유통사업들을 전개하는 민간기업인 도큐 그룹이 전면에 나섰다. 1922년 설립된 도큐그룹은 도큐전철을 중심으로 하는 운송사업과 부동산, 생활 서비스, 호텔 및 리조트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도큐 그룹은 100여년의 시간동안 시부야를 기점으로 사세를 확장해 왔다. 시부야역 인근 대형 오피스 빌딩의 50% 이상이 도큐그룹 소유다. 시부야 대개조에 적임자일 수밖에 없었다.
2005년 말 시부야가 도시재생 긴급정비지역으로 지정된다. 지정 이후 도큐그룹이 국철 운영 공공기업인 JR, 지하철을 운행하는 도쿄메트로, 시부야구 등을 이끌고 시부야역 및 주변 도시계획을 제안하면서 시부야 대개조가 시작된다. 개별 필지에서 이루어지는 단독 개발의 형태로는 시부야가 지닌 구조적 교통문제, 보행 문제를 해결키 어려웠기 때문에 공동의 움직임이 중요했다. 2013년 도큐토요코선이 도쿄메트로선 부도심선과 상호직통운행을 시작하면서 지상이 아닌 지하 시부야역으로 진입이 가능해졌고 다양한 개발 가능성이 열린다.
2012년 시부야 히카리에 준공을 시작으로 시부야 캐스트 (2017년), 시부야 스트림 (2018년), 시부야 솔라스타 (2019년), 시부야 후쿠라스 (2019년),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2019년 1단계 동관 준공) 등이 완료되었고 현재는 시부야 2-17 지구 사업 (2024년 준공 예정)과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2단계 (2027년 준공 예정)가 진행 중이다.
시부야 대개조의 주요 정비지침 중 하나는 ‘교통결절점 기능강화’다. 재개발 사업을 통해 동선을 개선하고 사용자 편의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초대형 역세권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부야 일대에서 개발되는 모든 건물과 복합시설들은 역과 어떻게든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되고 있다. 건물과 건물 간 이동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을 추구한다. 수직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수직축 이동 공간인 어반 코어를 만들어 다양한 레벨의 도시 인프라를 연결시켰고, 철도시설이나 간선도로 등에 의해 분단된 거리를 연결하기 위해 역 주변으로 보행자 데크를 설치하였다.
시부야 대개조는 단순히 교통과 보행 문제만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주요 프로젝트 개발 시 보행연계 공간을 마련하면 이 과정에서 투입된 개발비용은 용적률 상향을 통해 보전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탄력을 받았다.
히카리에,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등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가 500% 전후의 추가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를 받아 개발되었는데 지하철 역과의 연결, 수직+수평 보행자 네크워크 조성 (어반 코어)이 주요 공공기여 항목으로 인정되었다.
용적률이 올라가니 다양한 기능이 집적될 수 있었다. 단순 오피스, 단순 상업시설을 짓는 것이 아니라 상업, 업무, 주거, 숙박, 문화, 레저 등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기능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버블경제 붕괴 이후 시부야를 떠났던 IT기업 들이 다시 돌아오며 지역은 활력을 얻고 있다.
III. 2000년을 기점으로 주거지 개발은 어떻게 바뀌었나
1. 1960~1990년대: 대도시 외곽. 공공 주도. 대형 신도시
주거지 개발 역시 중심상업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을 기점으로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살펴 볼 1960년~1990년대의 주거지 개발 기조 핵심은 1) 대도시 외곽에 2) 공공 주도로 3) 대형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일본은 1963년 『신주택시가지개발법』 제정을 시작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여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을 시작한다. 신도시 개발을 통해 대도시권 인구 집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저렴한 주택지를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신주택시가지개발법을 통해서 토지수용 등이 용이해져 다수의 사업이 탄력을 받았다. 1963년 오사카 북부 센리 신도시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타마 신도시 프로젝트 등 도쿄 및 오사카 지역에서 총 50개 정도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 당시 조성된 신도시들은 베드타운형 신도시로 대도시 중심부로부터 30~50km 떨어진 지역에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0~1980년대 신도시 입주 초기에는 30∼40대 중심 가구가 대규모로 이동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젊은 인구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공이 주도하여 조성한 베드타운형 신도시 중에서는 버블의 붕괴와 이들의 은퇴 시점이 맞물리며 빠르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소규모 임대주택 공급이 많았던 곳에서 빠른 노후화와 쇠퇴가 나타났다. 이에 주거지 개발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2. 2000년대 이후: 중심부 인근. 민간 주도. 고밀 개발
2000년을 전후로 주거지 개발 트렌드도 본격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버블 붕괴에 따라 교외지역 주택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어려워지면서 교외 신도시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 반면, 대도시권 토지가격 하락으로 도쿄23구나 23구와 바로 인접한 외곽지역에 주택공급이 가능해졌다.아울러 도심기능 강화 기조에 따라 도쿄23구 및 인접지역 주택 사업들에 대해 인센티브가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고밀 개발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수요 하락으로 공공이 주도하는 신도시 개발은 2000년 들어와 완전히 중단되고 민간이 주택 공급의 주체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2000년 이후 도쿄 23구의 인구 증가
※ 후타코 타마가와: RAKUTEN덕에 RISE! 대기업 이전의 힘
2000년을 기점으로 변화된 일본의 주거지 개발 트렌드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후타코 타마가와다.
후타코 타마가와는 도쿄23구 중 남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세타가야구 (世田谷区)에 속하는 지역이다. 세타가야구는 23구 중 면적은 두 번째로 크고 인구는 가장 많은 도쿄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세타가야구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철도 역사와 연계된 최신식 복합쇼핑몰, 타마가와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며 아울러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쿠텐의 새로운 본사가 위치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부야역까지 철도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일본인들이 살고 싶은 도시 상위권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이 지역은 주거지역이기 보다는 도쿄외곽에서 행락을 즐길 수 있는 유원지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1985년 후타코 타마가와 유원지가 영업을 종료하면서 급격하게쇠퇴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을 지나는 철도 노선의 운영자이면서 인근 부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던 도큐 그룹 주도로 재개발이 시작된다.
도큐 그룹은 200여명의 지주들을 설득해 주거, 오피스, 상업시설, 자연이 함께하는 새로운 공간인 RISE를 만들기로 한다. 1단계는 2011년 완공, 2단계는 2015년 완공되었으며 2단계 완공과 함께 라쿠텐이 이곳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후타코 타마가와가 일본에서 손꼽히는 거주지역으로 각광받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라쿠텐의 본사 이전을 꼽을 수 있겠다. 보통 일본 대기업은 도쿄 5구 (미나토구, 치요다구, 추오구, 신주쿠구, 시부야구)나 시나가와구에 본사를 자리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라쿠텐의 경우도 시나가와구가 본사 소재지였다. 라쿠텐의 본사 이전은 당시 상당히 센세이셔널한 이슈였다. 라쿠텐은 본사를 이전하며 자연과 도시생활이 융합된 후타코 타마가와에서 직원의 일상생활과 웰빙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본사 이전 덕택으로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상업시설 역시 활성화될 수 있었다. 실제 RISE 1단계 완공 시점 (2011년)과 2019년을 비교할 때 후타코 타마가와역의 일평균 승하차객이 30% 가량 증가하였음이 확인된다.
대기업 본사가 위치하고 상업시설이 활성화 되니 거주자가 증가하고 지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1년 이후 후타코 타마가와 인구는 15% 증가하고 지가는 67%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는 세타카야구 전체의 증가율을 크게 초과하는 것이다.
※ 카시와노하: 교통, 대학교 그리고 대형 디벨로퍼의 만남
변화된 일본의 주거지 개발 트렌드를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지역으로 카시와노하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시와노하는 도쿄 중심부에서 약 25km 떨어진 소규모 도시다. 일본에서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철도 노선인 츠쿠바 익스프레스 선상에 있지만 츠쿠바나 나가레야마 등과 비교할 때 규모가 작아 유명세는 덜하다.
규모 면에서 다소 작지만 KB증권에서 이 곳에 주목하는 이유는 20여년 전까지는 쇠락해가는 골프장이었던 곳이 교통, 대학교 그리고 대형 디벨로퍼의 만남으로 지속가능하고 확실한 콘텐츠를 지닌 도시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카시와노하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2005년 개통한 츠쿠바 익스프레스 (TX)다. 도쿄 아키하바라역과 이바라키현에 위치한 츠쿠바역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다. 구간의 총 길이는 58.3km로 구간 내에 20개 역이 있다. 최대 시속 130km로 운행하고 있어 쾌속열차 기준 아키하바라역에서 츠쿠바역까지 45분이면 도착한다. 2024년 3월 기준 아키하바라역 – 츠쿠바역 사이의 편도 요금이 1,210엔에 이를 정도로 비싸지만 도쿄로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아 일본에서도 대표적으로 성공한 철도 노선으로 꼽히고 있다.
츠쿠바 익프프레스 개통으로 노선 상의 많은 도시들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도쿄로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종착지인 츠쿠바와 노다선이 교차하는 나가레야마이다. 나가레야마는 일본 전체 시 중에서 2022년까지 6년 연속 인구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카시와노하 역시 2005년 카시와노하 캠퍼스역이 개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30분이면 도쿄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시와노하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키워드는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시설이다. 카시와노하의 별칭은 스마트시티고 카시와노하에 위치한 철도역 이름은 카시와노하 캠퍼스타운역이다. 역 이름과 별칭만으로도 이 곳에서 교육시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 카시와노하 캠퍼스타운역이라는 이름은 인근 카시와노하 공원과 도쿄대 카시와 캠퍼스의 이름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카시와노하 개발은 1998년 도쿄대학이 이곳에 캠퍼스를 만들며 시작된다. 도쿄대는 도쿄의 비싼 땅값을 피해 학교 기능을 분산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카시와 지구가 낙점 된다. 도쿄대의 여러 캠퍼스 중에서 두 번째로 넓은 곳이며 연구소, 연구센터, 대학원 등이 자리잡은 이공계 연구 중심의 캠퍼스다. 2006년에는 카시와 II 캠퍼스를 열며 이 곳의 기능을 강화한다.
치바대 역시 이곳에 분교를 두고 있다. 치바대는 1990년대 카시와 지역을 원예학부의 농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200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원예학부 위주의 캠퍼스를 조성한다.
카시와노하를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키워드는 일본 대표 디벨로퍼인 미쓰이 부동산이다. 미쓰이 부동산은 홈페이지 상의 주요 프로젝트 소개에 니혼바시 재생사업 다음으로 카시와노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둘 정도로 이 사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카시와노하에는 원래 미쓰이 부동산이 운영하던 골프장이 있었다. 골프장을 폐쇄하고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1998년 도쿄대의 캠퍼스 오픈을 계기로 학교 – 기업 – 지자체가 협력하여 이곳을 미래형 글로벌 캠퍼스 타운으로 키우기로 한다. 도쿄대와 함께 역을 유치하고 역과 연계되는 복합쇼핑몰 라라포트를 개장하였으며 더불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조성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미쓰이 부동산의 노력이 하드웨어 (건물)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쓰이 부동산은 카시와노하가 장기적으로 자리잡으려면 분명한 콘텐츠와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곳에 이공계 대학교와 연구시설이 많은 점에 주목했다.
미쓰이 부동산은 이 지역에 위치한 대학교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UDCK (Urban Design Center Kashiwa-no-ha)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UDCK는 카시와노하의 운영을 이끄는 관리전문 기업이다. 공공, 민간, 학계가 제휴하여 어떻게 이 지역을 발전시킬지 고민한다.
미쓰이 부동산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단계별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KOIL (Kashiwa-no-ha Open Innovation Lab)이라는 유무형의 지원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사업으로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카시와노하를 키우고자 한 것이다.
카시와노하 캠퍼스역의 유동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 중
IV. 변화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수도권 억제 - 지방 지원’, ‘대도시 외곽의 대형 신도시’ 와 같은 정책 기조를 벗어나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대도시 중심 고밀도 집적 개발로 변화하면서 일본 정부가 내세운 주요 목표는 도시경쟁력 회복이다. 도시의 매력과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일본 경제의 회복을 위해 시급하다는 의식이 변화를 재촉했다.
과감한 변화를 통해 주요 도시의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일본의 목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구조적인 부담 속에서도 도쿄는 모리기념재단 (Mori Memorial Foundation)의 도시전략연구소 (Institute for Urban Strategies)가 발표하는 세계 도시 종합력 순위 (GPCI)에서 2016년 3위로 한 단계 순위가 상승한 후 이를 유지해 오고 있다. 1위는 런던, 2위는 뉴욕이다. GPCI 지수는 경제, 연구개발 (R&D), 문화교류, 주거적합성, 환경, 접근성 등 6개 카테고리에서 총 70개의 기준을 평가한 자료에 근거해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글로벌 도시들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는 지수이다. 2008년 집계 시작 이후 5위권 내에서는 큰 순위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쿄의 순위 상승은 의미가 크다.
앞서 살펴 보았듯 2000년 전후 공공의 과감한 정책기조 변화로 일본 부동산 개발의 패러다임이 역시 변화한다. 일본 대도시 곳곳에서 오피스, 상업, 주거 등이 결합된 대형 복합개발이 연쇄적으로 이뤄지고 이에 따라서 기업과 생산가능인구의 도심회귀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쿄권역으로의 기업 본사 이전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02년까지는 도쿄권역 외곽으로 기업 본사의 전출이 초과였으나 2003년 이후로는 도쿄권역으로의 기업 본사 전입 초과 경향이 발견된다. 기업이 모이니 일자리를 찾아 인구가 모이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도쿄 및 도쿄권역으로 인구 순유입
글로벌 금융위기, 집계방식 변경, 코로나 확산 등을
제외하고 도쿄 미나토구의 외국인 거주자는 증가 추세
도쿄 내에서도 대규모 복합 개발이 집중되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많이 생긴 도심, 부도심으로의 인구 유입이 두드러졌다. 일본의 총 인구는 2008년을 정점으로 줄고 있지만 도쿄 23구의 인구는 아직 증가 중이다. 치요다구, 주오구, 미나토구를 칭하는 도쿄3구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적고 15세 이상 비중이 많은 일본에서 보기 드문 지역이 되었다.
도쿄23구에서도 복합개발이 많은 곳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짐
V. 변화는 ‘왜’ 필요했을까
1. 수축사회 진입.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이유
균형개발이 버블경제의 주요 원인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국토개발 노선이 변경되어야만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 및 지방정부의 재정악화로 균형개발 노선을 유지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일본이 맞닥뜨린 구조적인 문제점에 본격적으로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19년 동안 일본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을 보였던 일본경제는 버블경제 이후 빠르게 활력을 잃고 구조적 저성장 구간에 들어간다. 2000-2021년 기준 실질 GDP 성장률은 연평균 0.64%에 불과했다.
출산율 저하로 생산가능인구 (만16~64세) 및 절대인구 감소가 본격화되었다. 생산가능인구의 경우 1995년부터 감소가 시작되었고 총인구 역시 2008년 1.28억명 기준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고령화도 심화되었다. 1970년도부터 고령화 사회 (65세 이상 비율 7% 이상)였던 일본은 2010년 초고령사회 (65세 이상 비율 20% 이상)에 진입하였다. 2020년 기준 고령화 비율은 28.4%이다. 2015~2030년 15년간 65세 이상만이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연령대가 된다.
구조적 저성장, 출산율 저하, 고령화가 함께 나타나는 상황. 본격적인 수축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도시정책 변화를 통해 답을 찾기 시작한다.
생산가능인구 의 경우 1995년부터 감소,
총인구는 2008년 1.28억명 기준으로 감소 시작
일본은 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될 전망
2. 도시기능 회복에서 답을 찾은 이유: 생산성과 효율적인 지출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도시정책적 차원에서 대처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왜 도심지 기능 강화가 수축사회의 대응방안으로 떠올랐던 것일까? KB증권에서는 1) 생산성 증대, 2) 세금 지출과 복지제공의 효율성 증대에 그 주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여러 데이터를 통해 (일정수준까지)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산업 생산성이 향상되는 경향이 있음이 확인된다.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가 존재할 수 있게 되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 보면 고객수가 중요한 도소매 업종과 서비스 업종에서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맞닥뜨린 일본이 다양한 기능을 한곳에 집적하는 고밀도 압축개발을 통한 도시기능 강화에서 저성장에 대한 답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구 집적 시 도소매업과 의료복지 분야의 생산성 증가 효과가 큼
무엇보다 복지비용을 비롯한 각종 세금 지출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도시 기능 강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고령화에 따라 정부의 복지비용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별히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존 설비에 대한 유지 및 관리비용 역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생산가능인구감소에 따라서 세금의 주요 납부 주체는 감소하는데 지출의 대상이 많아지면 정부 입장에서는 지출의 효율성에 대한 고민이 필수가 된다. 이 때 다수의 고령 인원이 원거리에 흩어져 있으면 복지를 제공하는데 드는 비용이 더 증가할 수 있다.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인구밀도를 높이는 것이 복지 제공과 세금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1995년부터 총부양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개념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겠으나 총부양비는 0~14세와 65세 이상을 생산가능 연령층이 부양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인구 지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국토개발기조가 본격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 인구구조의 변화, 대응책으로써 효율성 추구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1인당 세금지출은 감소하는 경향
특별한 사회간접자본 신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당
유지관리비용은 장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음
VI. 왜 2000년이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부동산 개발은 2000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다. 그렇다면 왜 2000년이었을까? KB증권에서는 이 시기가 일본 입장에서는 버블경제 붕괴의 상처를 극복함과 동시에 고령화가 실체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을 준비해야만 했던 때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자체보다 1995년을 시작으로 일본의 총부양비가 증가 추세로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한다. 총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 (15~64세)에 대한 유소년인구 (0~14세)와 고령인구 (65세 이상)의 합의 백분비다. 인구의 연령구조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표 중 하나로서 0~14세와 65세 이상을 생산가능 연령층이 부양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일본의 경우 1970년 고령화 (65세 이상 비율 7% 이상)가 시작된 후 고령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으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유소년인구의 빠른 감소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1970년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총부양비가 증가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었지만 단기적으로 본다면 유소년 인구 감소 덕택으로 생산가능 연령층이 부양해야 하는 대상이 늘지 않는 상황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세입의 주된 대상자라고 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 대비 주된 세출의 대상 (유소년 + 고령인구)이 늘지 않은 셈이니 세금 지출에 있어 효율성 보다는 당위성이 강조되어도 큰 부담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1995년부터는 출산율 감소의 효과가 더 이상 고령인구 증가를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추계대로라면 일본은 2045년까지 총부양비의 증가세가 높게 이어질 전망이다. 고령화가 국가 전체에 실체적인 부담을 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만큼 적절한 대응을 고민해야만 했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국토개발기조가 본격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 인구구조의 변화 그리고 그 주요한 대응책으로써 효율성 추구와 관련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다.
일본 1995년부터 총부양비 증가 시작
일본의 경우 1970년 고령화 (65세 이상 비율 7% 이상)가 시작된 후 고령인구가 빠르게 증가
그러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유소년인구의 빠른 감소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1995년이 되어서야 총부양비가 증가하기 시작
`VII. 2000년 일본의 변화가 지금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
1. 새로운 일본 부동산 개발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 부동산 개발 정책이 1) 전국적인 균형 개발에서 도심 기능을 갱신하는 집중과 효율의 기조로 변화함과 동시에 2) 주거지 개발에서 있어서도 정부 주도 외곽 신도시 개발을 포기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중심부 고밀 개발로 선회하기 시작하였음을 앞서 확인하였다. KB증권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핵심을 ‘지속 가능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1960년~1990년대 일본이 펼친 확장형 도시정책은 인구증가, 고성장, 전국적인 지가 상승 등을 전제로 전개가 가능한 정책이었다. 어디든 공급하면 누군가 채울 것이다라는 공급자 중심의 믿음이 전국적인 개발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버블경제의 붕괴와 고령화 본격화로 기존 정책의 한계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베드타운 형식 신도시의 빠른 쇠퇴가 과거 개발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을 진행할 것인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도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한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2.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 필요한 것: 교통. 컨텐츠. 주체
일본 부동산 개발의 변화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도심 중심부에 밀도를 증가시키는 개발이 활성화 되었다는 점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주거, 상업, 행정 등 일상에 필요한 기능을 집약하여 효율적인 생활과 행정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Work – Play – Live가 동시에 가능한 지역을 만들겠다는 도큐 그룹의 구호는 여러모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기능이 집약되어 있어야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도 지속가능 도시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2000년 이후 일본 부동산 개발 곳곳에 녹아 들어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살펴 본 후타고 타마가와나 카시와노하는 변화된 일본의 부동산 개발 기조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단순 베드타운을 넘어서는 지역으로 개발되어 새로운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KB증권에서는 이 두 지역을 통해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우수한 교통이다. 후타코 타마가와는 본래부터 교통이 우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덴엔토시선과 오이마치선이 지나고 시부야까지 15분이면 도착한다. 카시와노하의 경우 원래는 철도가 지나는 곳이 아니었지만 츠쿠바 익스프레스라는 최대 시속 130km의 광역철도 개통 덕분으로 아키하바라까지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둘째, 단순히 하드웨어 (건물)만 존재하는 곳이 아닌지역만의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도쿄 외곽의 1기 신도시들은 베드타운 형태로 지어졌고 그 외의 기능이 부족해 입주민들의 은퇴와 함께 빠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곳이 많다. 반면 이들 지역은 다르다. 후타코 타마가와는 자연, 편의시설과 더불어 무엇보다 직장이 함께하는 지역이다. 카시와노하는 단순히 대학교 캠퍼스가 위치한 도시가 아니라 캠퍼스에서 시작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스타트업이라는 형태를 통해 실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지식산업 도시로 성장해가고 있다.
셋째, 두 곳 모두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이끌고 있는 확실한 주체가 있다. 후타코 타마가와는 도큐 그룹이 지역 개발 및 활성화를 이끌고 있고 카시와노하는 미쓰이 부동산을 비롯한 UDCK가 이 역할을 담당한다.
3. 일본 디벨로퍼 주가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
일본은 2000년부터 부동산 개발에 있어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대형 부동산 디벨로퍼가 있었다.
부동산 개발의 구조적인 변화에서 디벨로퍼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는지 이들 기업의 주가 움직임을 통해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일본 주요 디벨로퍼 (미쓰이 부동산, 미쓰비시 지쇼, 스미토모 리얼티 등)의 주가 움직임은 종합건설사 (오바야시, 카지마 등) 주가 움직임과 명확한 차이를 보여왔다. 특히 주가 상승기에 디벨로퍼 주가 변동성이 확연하게 크게 나타났는데 KB증권에서는 특히 2005~2007년의 주가 급등 시기에 주목한다.
2005~2007년 대부분 디벨로퍼 주가는 그 폭을 달리 할 뿐 강한 상승세를 보인다. 이 시기 디벨로퍼 기업의 실적 측면에서 주요 공통점 중 하나는 ROE 상승이다. KB증권에서는 1) 일본의 변화된 부동산 개발 기조 속에 2) 다양한 개발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3) 이 과정에서 디벨로퍼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도화되면서 이익 레벨이 상승한 것이 주가의 차별적 상승을 이끌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일본이 지속가능한 개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왜 디벨로퍼의 사업 참여가 활발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일본 디벨로퍼는 구조적으로 한국 부동산 플레이어와 다르다는 점을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일정비율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안정적인 계속적 수익모델을 추구하는 Asset-Heavy 형태 디벨로퍼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안정적 임대수익을 바탕으로 부동산 전 영역에 걸친 전문화를 통해 추가적인 부가가치 및 수익 창출을 추구하면서 성장해 왔다.
매각차익이 아닌 임대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개발을 담당한 지역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공실률은 낮아지고 임대료는 상승하는 것이 회사의 외형과 이익 성장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미쓰비시지쇼 - 마루노우치, 도큐 그룹 – 시부야, 스미토모 부동산 - 신주쿠와 같이 각 회사가 지역적 이해도가 높은 거점지역을 연속적으로 개발하면서 해당지역이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결국 일본 디벨로퍼는 단기적인 관점에 집중하는 시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인 셈이다. 일본 디벨로퍼의 사업구조 자체가 2000년 이후 일본 부동산 개발의 지향점인 ‘지속가능성’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VIII. 2024년의 우리는 변화할 수 있을까
1. 일본의 2000년을 닮은 지금: 고령화 그리고 전통적 개발의 한계
부동산 개발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변화를 앞두었던 2000년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판단이다. 1) 고령화가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2) 전통적인 부동산 개발 방법론이 한계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래 없는 저출산과 빠른 고령화는 강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의 고령화 시작점은 2000년도로 비교적 늦게 시작 되었지만 불과 17년 만에 고령인구 비중이 2배 증가하며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에 진입하는데 걸린 기간은 114년, 이웃 일본은 24년이었다.
한국의 노령화지수는 빠르게 상승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빠르게 감소
일본의 사례를 통해 소개한 개념인 총부양비의 경우 한국은 2017년을 시작으로 증가 추세에 들어갔다. 일본의 총부양비가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과 20여년 차이가 난다.
한국의 경우 2000년 고령화 (65세 이상 비율 7% 이상)가 시작된 후 고령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으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유소년인구의 빠른 감소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2012년까지는 총부양비가 감소했고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정체 양상을 보였다. 2017년부터는 출산율 감소의 효과가 더 이상 고령인구 증가를 상쇄하지 못하며 총부양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20년도 들어와 본격화된 총부양비 증가는 2070년까지 그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2040년까지는 YoY로 증가율이 계속 상승하면서 가파른 상승이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의 비중 감소가 해를 거듭할수록 실체적인 부담으로 다가올 시기, 그리고 그 부담이 가중될 시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1990년대 후반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그에 따른 결정이 이뤄져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인구구조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부동산 개발 방법론이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점 역시 2000년을 앞둔 일본과 유사하다는 판단이다.
부동산 PF 부실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언론을 달구고 있다. 극단적인 레버리지 효과를 바탕으로 단기 매각차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의 현재 한국 부동산 개발 모델은 경기하락 시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지난 15년의 시간 동안 두 번이나 확인되었다. 아울러 유례 없는 건축비 상승이 지방 개발사업의 사업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가 고착화되어가는 시대에 과연 부동산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서 과거와 같은 매각 차익 중심 대형 주택개발사업이 향후 한국 부동산업의 주력 사업 형태로 남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개발 패러다임이 변화해야만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판단이다. 메가시티와 고밀도집적개발의 컴팩트시티를 동시에 외치는 2024년 지금 서울의 모습은 어디선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도시개발 방향성이 2000년 전후 일본 도쿄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한국 부동산 플레이어들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대다수는 총선 이후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어떻게 정리될 것이냐에 집중하겠지만 KB증권에서는 2024년을 기점으로 부동산 개발의 룰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시대가 새로운 형태의 기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2. 조금씩 나타나는 공공의 인식 변화
일본 부동산 개발의 변화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의 인식 변화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우러지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특히 서울시를 중심으로 최근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말 ‘강북권 대개조-강북 전성시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균형발전을 위해서 강북권 변화는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노후 주거지와 상업지역에 대한 규제 완화 등으로 개발을 활성화하고, 대규모 유휴부지를 첨단산업과 일자리 창출 거점으로 조성하여 강북권을 더 이상 배후 주거지가 아닌 미래산업이 집적된 일자리 경제 도시로 변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유치, 일자리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상업지역 총량제와 상관없이 상업시설을 유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강북권 내 대규모 유휴 부지 (차량기지 등)에는 사업시행자가 원하는 희망 용도와 규모를 자유롭게 제안하는 ‘화이트사이트’를 최초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기업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용도지역을 최대상업지역까지 종상향 (→ 용적률 800%)하고 용적률도 1.2배 (용적률 800%→ 용적률 960%)까지 높이며 공공기여도 기존 60%에서 50%로 낮춰줄 것이라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11년 만에 다시 본격화된 것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용산정비창 일대에 최대 용적률 1,700%, 높이 100층 내외인 랜드마크와 함께 50만㎡ (약 15만평) 규모 녹지가 조성된다. 2025년 착공해 이르면 2030년 초부터 부분적으로 입주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5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민간 사업자의 창의적 디자인에 대해 용적률 상향을 지원하고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다양한 기능을 모아 컴팩트시티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강북권 대개조나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의 규모 혹은 실현 가능성 등은 이 자료를 통해 KB증권이 강조하고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서울시가 부동산 개발에 있어 ‘도시의 기능강화’와 ‘지속 가능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점이다. 버블경제의 후유증과 고령화로 고민하던 일본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도시의 기능 강화에 집중하는 고밀도 집적개발로 선회하였던 2000년을 상기시키는 부분이 있다.
신도시 개발과 대량주택 공급이 부동산의 주요 화두였던 한국. 강북권 대개조,용산국제업무지구와 같은 변화를 시작으로 한국 부동산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가 도래할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3. 광운대 역세권. 한국 부동산의 새로운 모델이 된다
한국에서 과연 일본과 같이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개발 사례를 만날 수 있게 될까? KB증권에서는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이 한국 부동산 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하게 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광운대 역세권 사업은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광운대역 인근에 있는 물류부지 약 15.7만㎡에 최고 49층 높이 아파트 단지와 오피스, 쇼핑몰, 호텔 등 복합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예상 사업비는 4.5조원에 이른다. 2017년 HDC현대산업개발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고 2023년 지구단위 계획이 확정되었다. 이르면 금년 9월경 착공 및 아파트 분양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광운대 역세권 사업의 첫 번째 포인트는 교통이다. 광운대역은 2028년 개통 예정인 GTX-C가 정차하는 곳이다. 지금도 광운대역을 통해 1호선과 경춘선을 이용할 수 있고 근처 석계역에서는 6호선을 이용할 수 있지만 강남으로의 접근성 (삼성역 기준 약 50분)은 좋지 않았다. GTX-C가 개통하게 되면 삼성역까지 10분 안에 이동이 가능해진다.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는 것이다.
광운대 역세권 사업의 두 번째 포인트는 콘텐츠다. 대기업 본사가 이전하고 주변 대학교와 연계되는 스타트업 공간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 등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운대 역세권 사업의 완공 시점에 맞춰 이곳으로 본사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오피스 공간의 상당부분을 HDC현대산업개발이 채우고 지역 활성화에 힘쓴다는 전략이다. 나머지 오피스 공간에는 공유 오피스 등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이 조성될 전망이다. 광운대역 인근에는 광운대, 서울과학기술대, 경희대, KAIST 서울 캠퍼스 등 다수의 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에서는 오피스 면적 중 일부를 인근 대학교와 연계한 스타트업 공간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대기업 본사 이전과 인근 대학교와의 연계 프로그램 개발. 앞서 살펴 본 후타코 타마가와 및 카시와노하의 성공 사례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세 번째 포인트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이끌 주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광운대 역세권 사업은 개발과 운영이 혼합된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사업을 통해서HDC현대산업개발은 대규모 운영 자산 (임대주택, 상업시설, 오피스, 호텔 / 규모 미정)을 확보하게 된다. 개발 후 매각으로 끝나는 일반적인 사업과 달리 운영자산에서 이익을 확보하려면 지역이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HDC현대산업개발에서는 이 곳에 경춘선 숲길, 중랑천 등 주변의 자연환경을 접목한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사람, 자연, 도시환경이 공존하는 삶의 공간 구현에 초점을 두고 프로젝트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공간을 만들어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계획으로 판단된다.
Appendix. 일본과 도쿄 간단히 이해하기
일본은 1도(都), 1도(道), 2부(府), 43현(県)의 최상위 행정구역 체계를 갖추고 있다. 흔히 도도부현 (都道府県)으로 불린다. 수도라 할 수 있는 도쿄도 (東京都),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 (北海道), 두 개의 부인 오사카부 (大阪府)와 교토부 (京都府) 그리고 43개의 현 (県)으로 구성되어있다. 도도부현의 체계 산하에 시정촌 (市町村)이라는 행정체계를 두고 있다.
도쿄도는 3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도쿄 도심의 23구로 구성된 구부 (区部), 일부위성도시와 전원 지역으로 이루어진 타마 (多摩) 지역, 그리고 도서 (島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 우리가 도쿄라고 부르고 있는 곳은 도쿄도 중에서도 도심의 23 구가 위치한 구부다. 타마 지역은 도쿄 23구 배후지로서 대표적인 베드타운인 타마신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도쿄도 소속이기는 하나 행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도쿄 23구와는 다르게 취급된다. 도서 지역은 지리적으로는 도쿄와 상관이 없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들이다. 재정 지원과 전략적 관리 차원 등의 이유로 수도 도쿄도에 소속되어 관리받고 있다.
23개의 자치구로 이루어진 도쿄 구부 (이하 도쿄23구)는 서울특별시 25구와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면적도 유사하다. 다만 도쿄는 일본의 대표적인 평야지역인 간토지방에 위치해 있어 산지가 많고 한강이 가로지르는 서울에 비해 가용 면적이 훨씬 넓다.
도쿄23구는 명실상부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부다. 도심부에는 관공서, 기업, 각종 상업시설 들이 밀접해 있으며 항만지역에는 공항, 항구 등 광역 교통 인프라가 정비되어 있어 교통 및 물류의 거점 역할을 한다.
도쿄23구는 치요다구에 위치한 황궁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확장된 형태를 보인다. 도심3구로 불리는 치요다구, 주오구, 미나토구는 강남3구와 유사하다. 도심5구로 불리는 치요다구, 주오구, 미나토구, 신주쿠구, 시부야구에는 한국의 2호선과 유사한 개념의 순환선인 JR 야마노테선이 지나간다.
일본에서 문자 그대로의 수도권 (首都圏)이라는 표현은 도쿄도를 중심으로 한 간토지방을 칭한다. 우리로 보면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를 포함하는 셈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통상적으로 수도권보다는 3대 도시권 중 하나인 도쿄권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다. 도쿄권은 도쿄도와 그에 인접한 3현 (사이타마현·지바현·가나가와현)을 일컫는다. 도쿄23구로 통근이 용이한 3현을 포함한 구분이다. 한국 기준으로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서울, 인천, 수원, 안양, 성남, 부천, 광명, 과천, 의왕, 군포, 의정부, 구리, 하남, 고양)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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