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112013.05.18 PM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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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커스터의 부대는 이제 부대라고 불러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 콘베트 병사들은 전투는커녕 일상생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이 말라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군사훈련이나 막사 보수작업 등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예 원시인 마냥 수렵과 채집에만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물론 이따금씩 병사들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밥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장교들은 ‘조금 더 모이면 그 때 한꺼번에 나눠주겠다. 지금 나눠줬다가는 빨갱이들도 너희들의 몫 일부를 가져가게 될 것이다.’ 라고 하며 병사들을 물리쳤고, 그 사이에도 보급품은 커스터 대령과 장교들의 천막 안에서 썩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커스터 대령은 매일 아침마다 호루라기를 불어, 병사들을 연병장으로 불러 모아 아침 점호를 실시했다.

아침 점호 때마다 병사 중 몇 명은 나무 기둥에 묶여 때가 잔뜩 묻은 누런 천으로 입과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은 정육점 고깃덩이처럼 묶여 있는 이들을 향해 돌을 던져댔다.

잠시 후. 늘 그렇듯 장교와 부사관들이 울타리처럼 병사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양떼 주변에 전기담장을 쳐놓은 것 같았다. 잠시 후 커스터 대령이 천막을 걷고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다들 모였나?”

대령은 파이프에 불을 붙인 뒤, 어젯밤 자신의 천막에 몰래 숨어 들어갔던 병사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반면 기둥에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그들은 더러운 천으로 얼굴이 가려져, 어떤 표정도 그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러면 오늘 덜미가 잡힌 빨갱이 새끼들에 대한 공개숙청을 실시한다! 사수 앞으로!”

커스터 대령은 직접 권총을 뽑아든 뒤 격철을 젖혔다. 그리고 병사들은 총을 들어 기둥에 묶인 병사들을 향해 겨눴다. 잠시 후 커스터 대령이 허공을 향해 한발 쏘자, 그것을 신호로 병사들은 방아쇠를 쥔 손가락에 힘을 줬다.

연발로 놓고 쏘는 M-16소총의 총성이 마치 전사자 명단을 타이핑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번갯불로 콩을 볶는 것 같은 공개숙청은 탄창 한 개가 다 비워질 즘에야 멈췄다.

교전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변두리 부대인 이상. 식량은 몰라도 탄약이나 수류탄 따위는 장난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커스터 대령과 장교들은 물론. 병사들 역시 짙은 화약 연기가 마치 대마초 연기라도 되는 것처럼 깊이 들이마시며, 입 꼬리를 죽 찢어 올렸다.

한편 기둥에 묶인 채 쏟아지는 총알 비를 맞은 ‘빨갱이’들의 몸뚱이는 다진 고기를 뭉쳐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커스터 대령은 다시 한 번 허공에 총구를 대고 한 발 당긴 뒤, 씩 웃으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걸로 오늘의 아침 점호 및 공개숙청을 마친다. 나머지 뒷정리는 너희들이 해라.”

‘빨갱이 공개숙청’은 커스터 대령의 연설 이후 추가된 아침 행사다. 커스터의 천막에 몰래 접근하거나 간부들이 숨겨둔 식량을 훔쳐 먹은 이들. 혹은 말콤 이병의 주장에 설득되어 커스터 대령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했던 이들 모두 ‘빨갱이’가 되어, 그렇게까지 원했던 식량 대신 총알을 뱃속에 넣고 막사 밖으로 버려졌다.

그리고 그들을 다진 고기로 만들 때마다 병사들은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고, 커스터 대령과 간부들은 병사들의 시선이 다른 곳에 몰려 있는 동안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이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뭐.”

커스터 대령은 콧노래를 부르며 천막으로 돌아가, 느긋하게 콘비프 통조림을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지금 그의 표정은 이곳에 진지를 잡은 뒤 가장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결과. 가뜩이나 볼링공 같은 체형의 커스터 대령은 걸어 다니기도 힘든 상태로 부풀었고, 다른 장교들 역시 만삭의 임산부 마냥 풍선 같은 배를 달고 다녔다. 얼굴 역시 말콤 이병의 말마따나, 돼지 비계마냥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연병장을 돌아다니는 병사들은 먹는 게 변변치 못한 탓인지, 피부까지 새하얗게 변해 거의 좀비 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신기한 것이 사흘에 한 번 병사들이 두세 명씩 줄어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탈영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보통은 탈영병들이 탄창 없는 총이라도 들고튀는데 비해 가뜩이나 많이 남은 총과 탄창은 더욱 남아돌았다.

게다가 하루에 꼭 한두 명씩 내다 버리는 ‘빨갱이 시체’까지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주변은 이미 배고픈 병사들이 한 번 휩쓴 곳이라, 참새 한 마리도 얼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먹을 게 부족해져 가만히 있는데도 손톱과 이빨이 저절로 빠져나갈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쯤 되자 커스터 대령도 피우는 담배의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숫자가 눈에 확 띌 정도로 줄어든 것은 물론. 처음에는 그저 빨갱이를 죽인다는 데에 열광했던 병사들이, 지금은 빨갱이의 처형보다는 ‘처형당하고 남은 부산물’을 보며 군침을 흘리는 모습은. 아무리 커스터 대령이라고 해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배불리 먹게 해 준다면서? 그런데 지금 꼴이 이게 뭐지?”

그날도 커스터 대령이 아침 점호를 마치고 들어오자, 말콤 이병의 비아냥거림부터 맞이해야 했다. 그는 상반신이 로프에 꽁꽁 묶인 상태에서도,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천막 밖을 가리키며 코웃음을 쳤다.

“빨갱이 타령 하면서 ‘식량’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조만간 네놈하고 장교 놈들이 저 녀석들 뱃속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 정도는 너라도 각오하고 있지 않았나? 커스터 대령.”
이쯤 되면 화를 내며 말콤 이병의 강냉이 몇 개라도 털어낼 법도 한데, 커스터 대령은 여전히 느긋한 모습으로 양주를 들이키며 파이프를 입에 물고 훅 빨아들였다.

“병신. 내가 왜 네놈만큼은 끝까지 살려뒀을 것 같아? 가뜩이나 부족한 먹을 것까지 줘 가면서 말이야.”

커스터 대령은 마을 쪽을 가리키면서 씩 웃었다. 그러자 말콤 이병은 바로 커스터 대령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크게 놀랐다.

“이, 이 미친 놈. 이전부터 네놈이 쓰레기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네가 그 지경까지 썩어 있을 줄은 몰랐…!”

말콤 이병은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부사관 한 명이 군용 나이프를 뽑아들어, 마치 돼지라도 잡듯 그의 목을 칼로 쑤신 뒤 횡으로 죽 그어버렸다. 그러자 마치 물탱크가 터진 것처럼 너무 빨갛다 못해 거의 까만색에 가까운 피가 콸콸 쏟아졌다.

부대 내에서도 나이프를 가장 잘 다루고 열렬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빌 시몬즈 상사였다. 추가로 말하자면 그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을 가장 싫어했다.

그리고 반쯤 잘린 말콤 이병의 목은, 머리통의 무게 때문에 살과 가죽이 찢어지며 아래로 흘러 내려갔고.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던 중, 부릅뜬 두 눈이 커스터 대령을 향한 채로 멈춰 버렸다. 물론 머리통의 잘려 나간 절단면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나와 바닥을 새까맣게 적셨다.

커스터 대령은 그런 말콤 이병의 머리통을 발로 한 번 밟은 뒤, 같은 팀에게 축구공을 패스하듯 가볍게 차 날리며 한마디 했다.

“병신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 바로 죽여 버리지. 쓰레기 치울 기회 다 놓친 지금 와서 쓰레기니 썩었느니 하면 쓰레기에서 향기로운 냄새라도 날 것 같았냐?”

커스터 대령은 다시 한 번 말콤 이병의 머리통을 발로 찬 다음. 그의 멱을 따냈던 빌 시몬즈 상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몬즈 상사! 저 새끼 시체 피 다 빠지면 기회 봐서 연병장에 던져! 절대로 병사들 눈에 띄지 말고! 알았어?”

시몬즈 상사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말콤 이병의 시체를 고정하고 있던 밧줄을 난도질해 바닥에 내동댕이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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