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142013.06.03 PM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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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한 남 콘베트 해방 전선 소속의 게릴라 부대. 케산 소대의 소대장 응우옌반렘은. 잿더미로 변한 마을 앞에서 코를 감싸 쥐며 눈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양념도 안치고 늙은 양을 구워먹었나? 이 누린내는 대체 뭐지?”

그의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소위님 이상한 건 그것만이 아닙니다. 보통 마을 인근에 위치한 부대는 남 콘베트 병사들이 섞여있는 혼성군입니다. 기껏해야 간부는 서른 명을 넘기지 않을 테고, 대부분은 남 콘베트 병사들이라 더더욱 이 마을을 공격할 리가 없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남 콘베트의 독재정권과 메리아카 국의 군부가 징집군을 편성할 때. 심리전을 유도하기 위한 측면과, 메리아카 내부의 반전 여론으로 자국 내 병사 모집이 힘든 관계로 인해. 콘베트 병사들은 일부러 부대 근처의 마을에서 뽑아 쓰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단 그것 때문에 하극상과 탈영. 부대 이탈이나 내부 분열 등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징집군들을 운용하는 부대는 내부 원주민들의 배신이 무서워 인근 마을을 공격하지 않고, 병사들 역시 자기 가족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 것도 뻔히 알기 때문에 공격명령이 떨어져도 명령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학살이나 강간 같은 범죄는 순수한 메리아카인으로 구성된 부대가 저지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도축장 바닥 같은 풍경은, 순수 메리아카인들로 구성된 군대. 아니 지옥의 악마라도 쉽게 벌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학살이나 마을 파괴 정도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마치 ‘먹다가 남긴’ 것 같은 시체 조각들이었다. 시체의 눈알이나 귀, 혹은 기름기가 붙어있는 살점이 꼬챙이에 꿰어 있는 것은 물론. 사람의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 넓적다리와 갈비뼈. 심지어 양념이 잘 배어들 겸 빨리 익게끔 여기저기 칼집이 나 있는 시체는 마치 바비큐 파티를 벌이고 난 자리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양 볼을 부풀리다가, 한참 뒤에 다시 목구멍으로 넘겼으나. 몇몇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바닥에 믹서기에 넣고 갈은 무 같은 토사물을 쏟아냈다.

응우옌반렘 소대장은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억지로 삼킨 뒤, 군홧발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육식동물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런 미치광이 같은 놈들! 이게 사람이 할 짓….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그 때 응우옌반렘의 귀에 뼈 갉는 소리와 고기 씹는 소리가 들렸다. 케산 소대의 전 병력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흘러나온 곳에는 들짐승처럼 보이는 뭔가가 쭈그려 앉아 뭔가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조금 더 자세히 보니, 들짐승이 아니라 마치 허수아비 마냥 비쩍 마른 사람이었다. 가뜩이나 비쩍 마르고 피부도 회색으로 탈색되다시피 변질되어,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뒤룰 돌아보더니, 케산 소대의 병사들이 총을 겨누는 모습을 보고 마치 짐승처럼 네 발로 달아났다. 그러자 응우옌반렘 소대장이 허공에 총을 한 발 쏘면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새끼 잡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이에 케산 소대의 병사들은 총을 쏴 가면서 짐승 몰듯 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인간을 빙 둘러쌌다. 그러자 비쩍 마른 인간은 병사 중 가장 덩치가 작아 보이는 한 명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을 물어뜯었다. 짐승 같은 남자가 살을 한 입 베어 물자, 살점이 한 뭉텅이 뜯겨 나갔고, 비쩍 마른 남자는 그 살점을 씹어 삼켰다.

“이, 이 더러운 새끼!”

소대장은 그 참혹한 광경에 놀라, 권총을 재빨리 뽑아들어 짐승 같은 남자의 다리를 쐈다. 그러자 미이라 같은 남자의 다리가 마치 봉제인형 마냥 찢어지면서 그는 속이 메스꺼워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응우옌반렘 소대장은 그 짐승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팔 다리에 한 발씩 더 쏴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 새끼 메리아카 징집군 놈이잖아. 야 저 새끼가 뭘 하다가 도망쳤는지 한 번 뒤져봐!”

응우옌반렘은 병사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음, 징집병이 뭔가를 뒤적였던 곳으로 팔을 뻗었다. 병사는 아무 말 없이 소대장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크게 놀라면서 그 자리에서 전날 먹은 식량을 죄다 게워냈다.

“이 새끼 대체 뭘 봤기에 아까운 식량을 쏟아내고 있어. 대체 뭘 본거야?!”

그 병사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것은 먹다 남긴 과일 같은 몰골을 한 사람의 머리였다. 소대장은 눈가에 주름을 잔뜩 잡은 뒤, 그 쪽으로 걸어가 사람 머리통을 집어 들고 대충 훑어봤다. 그리고 크게 놀라 머리통을 떨어트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리에 힘이 확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마는 마치 쥐가 쏠은 것처럼 갉아먹은 자국이 남아 있고, 뜯겨져 나간 귓불과 눈꺼풀. 코와 입술 등에 이빨 자국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케산 소대의 사람들은, 메리아카 징집군이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이고 도망간 것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메리아카 제국주의에 뼛속까지 물든 돼지새끼!”

응우옌반렘은 허리 아래 춤에 찬 벌목용 칼을 뽑아들어, 병사의 머리통을 힘껏 후려쳤다. 가뜩이나 비쩍 마른 병사의 머리통이 참외 마냥 간단히 두 쪽이 나면서 녹슨 벌목도가 깊숙이 박혔다. 이윽고 그의 머리통에 박힌 칼을 빼자 머리통이 갈라지면서 새빨간 과즙이 뿜어져 나왔다. 소대장은 칼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피를 대충 털어낸 뒤, 다시 허리춤에 채웠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새로운 작전 지시를 내렸다.

“모두 준비해라! 다들 오늘 저녁은 배불리 먹고 푹 쉬라고 해! 오늘 새벽에 다 갈아 엎어버릴 테니까.”

케산 소대의 병사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잿더미 위에 지포라이터와 가솔린으로 그대로 불을 붙이고 백팩에 짊어진 식량을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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