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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일본판 환단고기,『타케우치 문서』를 아시나요?2015.09.08 PM 06:24
고대사 관련 자료들을 뒤적이다 이런게 있다는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군요. 일본 위키피디아를 퍼와서 번역해 올립니다.
어느 나라든 국뽕에 취해 병신짓의 끝판왕을 달리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조금 길더라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어째 여러가지 정황상 환단고기와 닮은 부분이 참 많아요. ㅎㅎㅎ
※ 타케우치 문서(竹?文書)
이소하라 문서(磯原文書), 아마츠교 문서(天津?文書)라고도 한다. 이는 카미요 문자(神代文字)로 기록된 문서와, 그것을 부레츠 텐노(武烈天皇)의 칙명에 의해 타케노우치노스쿠네(武?宿?)의 손자인 헤구리노마토리(平群?鳥)가 한자(漢字)와 카타카나(カタカナ)를 섞어 번역했다고 하는 사본군(?本群)과, 문자가 새겨진 돌, 철검(??) 등, 일련의 총칭으로 이른바 고사고전(古史古?) 서적. 아마츠교의 성전(聖典)이며, 원본은 후술할 재판에 제출되었지만 나중에 소실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는 연구가들로부터 위서로 인정받고 있다.
○ 개요
~ 헤구리노마토리의 자손이라 여겨지는 타케우치(竹?)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다고 자칭하는 타케우치 키요마로(竹?巨?)가 1928년 3월 29일에 문서의 존재를 공개했다. 사본의 대부분은 소실되었지만, 남조(南朝) 계열의 고문헌을 재편집했다고 여겨지는 사본도 있다.
당시 타케우치는 코우소코우타이진구우 아마츠교(皇祖皇太神宮天津?)를 일으켜 이 진쟈(神社)의 신쇼쿠(神職)를 맡고 있었다. 원래 타케우치 문서는 그의 아마츠교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으나, 타케우치 문서의 내용과, 새로운 종교인 아마츠교의 교리가 더해지게 된 것이 이 종교 단체의 교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서적 뿐만 아니라, 나중에 기술할 신보(神?) 종류까지 포함해 「타케노우치 문헌(竹?文?)」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 내용
~ 타케우치 문서에서는 진무 텐노(神武天皇)로부터 시작되는 현재의 황조를「카무야마토조(神倭朝)」라 부르며, 그 이전에 「상고 25대(上古25代: 혹은 황통 25대)」와 이어지는 「아에즈조 73대(不合朝: 이 아에즈조의 73대째가 진무 텐노라 주장한다)」가 있으며, 또 그 이전에 「아마츠카미 7대(天神7代)」가 있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상고 21대 텐노는 「伊邪那岐身光天津日嗣天日天皇」라 하며, 이 텐노는 이자나기(『고사기』에서는 伊邪那岐命, 『일본서기』에서는 伊?諾神로 표기)에 해당한다고 주장, 그의 두 아들 중 하나가 「月向津彦月弓命亦ノ名須佐之男命」... 즉, 츠쿠요미(『고사기』에서는 月?命, 『일본서기』에서는 月弓尊로 표기)이며, 츠쿠요미는 스사노오의 다른 이름이라 한다.
그 외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이스키리스 크리스마스(예수 그리스도라 여겨진다)의 유언」이라고 하는 「이스키리스 크리스마스. 복(福)의 신. . 오색인(五色人)에게 보내는 글」로 시작되는 문서가 있으며, 거기에 따르면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고 도래(골고다 언덕에서 처형된 것은 동생인 이스키리라 기록한다), 1935년 8월 초에 타케우치 키요마로가 아오모리 현(?森?)의 헤라이 무라(??村: 현재의 신고 무라)에서 발견한 십래총(十?塚: 타케우치 키요마로가 촌장에게 쓰도록 했다)이 「이스키리스 크리스마스」의 묘... 즉 그리스도의 묘라 하며, 모세의 십계는 사실 오모테 십계(表十戒)이며, 우라 십계(裏十戒)... 혹은 진십계(?十戒)를 포함한 원문이 기록된 돌을 아마츠교의 신보로 삼아 아마츠교가 소유하고 있으며, 텐노가 일본을 방문한 모세로부터 받아 모세의 묘가 이시카와 현(石川?)의 호다츠시미즈 쵸(?達志水町)에 존재하고 있다. 석가를 시작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대종교의 교조는 모두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텐노를 모셨다고 되어 있다.
*세상에는 오색인(五色人: 황인종, 적인종, 청인종, 흑인종, 백인종)이 존재하고 있다.
*코우소코우타이진구우가 전세계의 중심이다. 注: 현재 이바라키 현(茨城?)에 존재하는 진구우는 천궁(遷宮)된 것.
* 3000여년 전의 상고 2대 텐노의 시대에 16인의 형제자매들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지명으로서 남겨져 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요하네스버그」「보스톤」「뉴 욕」같은 이름들이 보이는데, 이러한 도시들이 세워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약 3000년 전의 아에즈조(不合朝) 64대 시대에 황자 31명과 황녀 43명이 순행하였으며, 이들 중 우두머리격인 万?巡知彦尊가 지용대력(知勇大力)으로 외적을 제압한 것이 「모모타로 전설(桃太???)」의 기원이라 한다.
*아에즈조 69대인 神足別豊鋤天皇의 시대에 미요이, 타미아라가 함몰된 것과 무 대륙이나 아틀란티스 대륙을 연상케하는 기술이 있다.
*히히이로카네(緋緋色金)에 관한 기술이 있다. 또, 문서와 함께 전해졌다고 여겨지는 철검이 히히이로카네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토야마 현(富山?) 쿠레하 산(?羽山)의 하네토비노보리유쿠토코로(羽根飛登行所)는 일본 국내 전용... 즉 국내선 공항, 이시카와 현 하쿠이 시(羽?市)에 있는 하네 비행장은 세계 각지를 돌기 위한 국제선용이었다. 태곳적 옛날에 하늘을 나는 배가 있었고, 텐노가 그것을 타고 만국을 순행했다고 한다.
*토야마 현의 타테야마 마을(立山町)에는 UFO 목격자가 매우 많은 토가리야마(尖山: 톤가리야마 라고도 한다)라는 고대 일본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표고 559m). 「카미요의 만국사(神代の万?史)」에 삽입된 권두 사진 설명에는 「톤가리야마는 상고 제 24대 아메노니니기노스메라미코토(天仁仁杵身光天皇)의 신전 뒤에 있다」라고 쓰여져 있다. 이것은 신전 「아메토츠치피라미츠토(アメトツチヒラミツト)」로, 텐노는 그곳에서 「아메노우키후네(天の浮舟 = UFO)」를 타고 전세계를 비행했다고 여겨진다.
○ 타케우치 키요마로에 대해...
타케우치 키요마로(1875?~1965)
토야마 현 카미니이카와 군(上新川郡) 신보 무라(新保村) 출신. 어렸을 적에 모친이 폭한에게 습격을 받고 자살, 원수를 갚기 위해 수행을 결심했다.
*1893년, 조부로부터 유언으로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공개하거라」라는 말과 함께 물려받은 보물, 문헌을 가지고 상경. 보물, 문헌을 지인에게 맡기고 토쿄(東京) 온타케교(御嶽?) 본부로 입신. 쿠라마야마(鞍馬山)과 더 깊은 곳에 있던 다이히 산(大悲山)에서 1000일에 걸쳐 수행했다. 그곳에서 「오오나무치노미코토(大己貴尊)」를 시작으로 하는 신령(神?)이나 수행자들로부터 신법도술(神法道術)이나 카미요 문자를 배웠다.
*1897년, 맡겨둔 보물과 문헌이 신경 쓰여 토쿄로 돌아가 잠깐 머물렀다. 모친의 원수를 찾아 다녔다.
*1899년 무렵, 카미요(진무 텐노 이전) 시대부터 전해지는 진짜 역사서라고 하며 「타케우치 문서」를 공표. 이 문헌, 신보류를 「경전」으로 삼아 코우소코우타이진구우를 부흥, 아마츠교의 개조가 된다.
*『메이지 기인 이마요시츠네 쿠라마 수행 실력담(明治奇人今義?鞍馬修行??譚)』이 나가미네 하잔(長峰波山)에 의해 하치만 쇼텐에서 발매(1912년). 이 책은 타케우치 키요마로의 구술을 기록한 책인데, 이 책에서는 아직, 타케우치 문서에 대해서도 헤구리노마토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1921년 무렵, 『쵸케이 텐노 어진필(長慶天皇御?筆)』, 『고다이고 텐노 어진필(後醍?天皇御?筆)』, 『니치렌 쇼닌 어진필(日蓮上人御?筆)』 등을 소유하고 있다고 공개.
*1929년 8월 4일, 호적상의 이름을 키요마로(巨?)로 개명.
*1930~1944년, 「아마츠교 탄압 사건」
*1945년 3월, 압수된 문헌이나 보물은 무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키요마로에게 반환되지 않았으며, 토쿄 법무성에서 보관하고 있었지만 토쿄 대공습 때 대부분이 소실. 이 때문에 오늘날 남겨진 타케우치 문서라 하면, 전에 키요마로나 일부 연구가에 의해 필사된 자료를 기반으로 『카미요의 만국사』와 타다 남은 일부 「신보」뿐이다.
*1965년 1월 27일 타계. 장남인 요시미야(義宮)가 키요마로의 뒤를 이어 코우소코우타이진구우의 67대 관장으로 취힘. 요시미야도 1999년에 사망, 현재는 요시미야의 장남인 야스스케(康裕)가 68대 관장을 맡고 있다.
덧붙여, 키요마로의 넷째 아들로 타카바타케(高?) 가문에 양자로 들어간 요시쿠니(吉邦)는 「天神人祖一神宮」 의 관장이다.
○ 문헌 비판
*야마자키 테츠마루(山崎鐵丸): 야마자키 테츠마루는, 카와우라 미사오(川浦操)의 타케우치 문서 소개 논문인 「쵸케이 텐노의 산능(山陵)에 대해」(1927년 3월)를 본 뒤, 「타케우치 가문의 기록에 대해」(1927년 8월)로 문헌에 대해 비판했다.
*카노 코키치(狩野亨吉): 카노 코키치는 1928년 5월에 아마츠교 신자 2명으로부터 7장의 사진 감정을 의뢰받았지만 거절했다. 1935년 『일본 의사 신보(日本?事新報)』로부터 감정을 의뢰받아 7장 중 5장을 감정, 위조라 회답했다. 1936년 6월, 이와나미 쇼텐의 『사상(思想)』지에 발표한 「아마츠교 고문서 비판」에 의해 위서임을 증명했다. 감정한 것은 이하 다섯개 문서를 찍은 사진이다.
『長慶太神宮御由?』
『長慶天皇御?筆』
『後醍?天皇御?筆』
『大日本天皇同太古上?代御皇統譜神代文字之? 大臣紀氏竹?平群?鳥宿?書字?筆』
『大日本?太古代上?代神代文字之?』
카노 코키치는 1942년에 검찰 측 증인으로서 언어학자인 하시모토 신키치(橋本進吉)와 함께 출석해 증언한다.
*쿠마자와 텐노(熊?天皇): 남조의 쿠마자와 텐노라 자칭한 쿠마자와 히로미치(熊??道)는, 1947년 선거에서 타케우치 문서가 노부마사노오(信雅王)가 전한 물품이나 보물과 함께 도둑맞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쿠마자와의 지지자였던 요시다 쵸조(吉田長?)가 후쿠시마 현(福島?) 후타바 군(?葉郡) 카츠라오 무라(葛尾村)에 있던 코후쿠지(光福寺: 후에 칸후쿠지. 남조 측에 붙었던 사찰이다)로부터 메이지 중기에 쿄무소(?無僧)인 사이토 시쿄(?藤慈?)로부터 훔친 것을 1920년에 타케우치 키요마로가 고물상에서 사들인 것이라 말한다.
○ 아마츠교 탄압 사건
*제 1차 아마츠교 탄압 사건
- 1930년 12월 7일~19일. 『토쿄 일일 신문』에 비판 기사. 경시청이 사기죄 용의로 타케우치 키요마로, 마에다 쇼조(前田常?), 타카바타케 야스히로(高?康?)를 취조한다. 불기소.
- 1932년, 내무성 특고 경찰이 타케우치 키요마로를 구인(拘引), 불경한 언동에 의해 동년 6월에 신보 배알 금지, 진쟈(神社)의 토리이(鳥居)를 철거.
*제 2차 아마츠교 탄압 사건
- 1935년 12월 28일, 신보가 하타 신지(秦?次)의 손에 의해 토쿄 시 야스쿠니 진쟈(靖?神社)의 유슈칸(遊就館)의 마츠다 쇼타(松田常太) 관장에게 맡겨졌다.
- 1936년 2월 13일 아침, 이바라키 현 타가 군(多賀郡) 이소하라 마을에서 타케우치 키요마로(1937년 7월까지 미토 경찰에서 구류)와 이소하라관이라는 여관의 요시다 카네요시(吉田兼吉)가 불경죄, 문서 위조 행사죄, 사기죄 용의로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17일 검찰 서류 송치, 4월 30일, 타케우치 키요마로, 신보를 미토지방 재판소로 옮긴다는 취지의 수탁증을 썼다.
- 1937년 12월 11일, 체포된 15명 중에 타케우치 키요마로 만 불경죄로 기소된다.
- 1942년 3월 16일, 일심 불경죄 유죄 판결. 상고. 상고대리인인 변호사는 타다이 시로지(田多井四?治), 미야모토 마사미(宮本正美), 특별 변호인 우자와 후사아키(?澤總明: 후에 극동국제군사 재판의 일본 변호단장이 된다).
- 1944년 12월 12일, 대심원(현재의 최고 재판소) 무죄 판결, 결심. 판결에서는 「이 문제는 재판소의 권한을 뛰어넘는 종교 문제다」, 또는 「단순한 증거 불충분이다」라고 해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해산 지정(解散指定)
- 1950년 1월, 연합국군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GHQ / SCAP)로부터 아마츠교는 해산을 명령받는다.
○ 소실과 의혹
~ 이 재판에 맞춰, 코우소코우타이진구우로부터 「신궁신사 불경 피고 사건 상고취의서(神宮神祠不敬被告事件上告趣意書)」가 신보를 포함해 타케우치 문서 약 4천여점과 사적(史跡)의 현지 조사 보고서 등과 함께 제출되었다.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제출된 증거물품은 재판이 종료되자마자 반환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원본들은 태평양 전쟁 중에 벌어진 공습에 의해 소실되었다고 한다. 전후, 키요마로의 아들인 타케우치 요시미야가 그 사본을 전하고 있다.
댓글 : 4 개
- 제노비아스
- 2015/09/08 PM 06:42
그런데 일본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세계 각국이 설화나 신화를 자국의 역사로 가르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유럽이나 선진국들도 그렇더군요.
물론 역사가 짧은 미국은 예외입니다만....
괜히 우리나라만 환단고기를 가지고 역사가 아니니 뭐니 하며 폄하할 건 아니죠.
물론 환단고기가 허구성은 좀 짙지만, 비난만 할 건 아닌 것 같네요.
물론 역사가 짧은 미국은 예외입니다만....
괜히 우리나라만 환단고기를 가지고 역사가 아니니 뭐니 하며 폄하할 건 아니죠.
물론 환단고기가 허구성은 좀 짙지만, 비난만 할 건 아닌 것 같네요.
- 菊池桃子
- 2015/09/08 PM 06:47
어느정도는 이해를 하겠는데, 이 타케우치 문서나 한국의 환단고기는 도가 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 HaKun1
- 2015/09/08 PM 07:02
1. 환단고기는 한국 신화도 뭣도 아닌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창작물입니다
2. 환빠들은 환단고기를 근거로 말도안되는 전체주의,파시즘적 주장을 펼쳐대죠
3. 환빠들의 창궐로 한국 고대사에 대한 말도안되는 이상한 인식이라던가 잘못된 이미지가 각종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대중에 퍼지는건 심각하죠
2. 환빠들은 환단고기를 근거로 말도안되는 전체주의,파시즘적 주장을 펼쳐대죠
3. 환빠들의 창궐로 한국 고대사에 대한 말도안되는 이상한 인식이라던가 잘못된 이미지가 각종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대중에 퍼지는건 심각하죠
- 절대지존미남
- 2015/09/08 PM 08:22
허구성이 짙은게 아니라 판타지소설로 보자면 그래 그런상상력도 재밌지 라고 퉁칠수있지만 역사라고 주장하면안되죠. 소설은 소설로 역사는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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