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인공지능, 사람이 될 수 있는가2017.08.15 AM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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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사람이 될 수 있는가


0.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은 인류가 시대가 바뀌는 순간을 체감하는 사건이었다. 인류의 자존심이던 바둑이 정복되는 것을 보며 인공지능의 시대가 왔음을 전세계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진정 인류가 인공지능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사건이었다. 사실 알파고 이전에도 인공지능 기술은 발전되고 있었지만(딥 큐 러닝)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다. 구글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의 자존심인 바둑을 정복함으로써 시대가 바뀌는 것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바둑이 정복당하고 나서 인공지능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코앞에 다가온 혁명에 기대감과 두려움을 안게 되었다. 인공지능을 통해 보다 더 윤택한 삶을 기대하면서도,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허상이 아니었다. 무인상점의 선두주자인 아마존은 아마존 고를 선보이면서 판매원의 일자리를 날려버렸다. 그 외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고 있으며 대신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구글 검색어 [인공지능 의지]

 

인공지능은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구글 창업자 브린의 말이다. 그렇다. 현 인공지능은 바둑을 정복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사람이 입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약 인공지능에 불과하다. 그들에겐 자아가 없다. 계산기가 아무리 어려운 계산을 하더라도 입력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도 인공지능을 수리할 엔지니어의 일자리는 남아 있을 거라 예측한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개발 혹은 수리하는 단계가 되려면 자유의지, 자아를 가지게 되는 강 인공지능이 필요하다.

 

구글 검색어 [인공지능 자아]

 

그러나 현재기술로는 가까운 미래에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각에선 그 원인에 대해 뇌 과학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현재 뇌 과학 기술은 쥐의 뇌 구조를 일부 재현하는 수준이라고 하니 사람의 뇌 구조를 재현하는 것은 확실히 머나먼 길임이 분명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말이다.

 

나는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니다. 하물며 프로그래머도 아니다. 그런 방향은 애초에 나보다 그들이 훨씬 더 뛰어나다. 그럼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어쩌면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1. 자아

 

강 인공지능의 필수조건인 자아, 자아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위키백과 [자아]

[자아(自我, ego)는 생각, 감정 등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는 행동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말한다.]

 

자아란 즉, 자기자신을 뜻한다. 모든 경험(감각 사고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루더라도 변화 전과 후가 동일하게 자기자신임이 확신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아, 자기자신이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에 관해 세상은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다.

 

 

첫째는 혼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대부분의 종교에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종교적 관점에서 탄생한 추측이라고 본다. 이 추측은 많은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 재미난 애니메이션인 너의 이름은도 이를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남녀가 몸이 바뀌는 바람에 생기는 해프닝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혼에 자아가 깃든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는 이야기다.

 

몸이 바뀌는 이야기는 꽤 좋아하여 이런 작품들을 흥미롭게 접하며 즐기지만 혼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례가 없다 보니(정확히는 모른다) 이 추측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꽤 예민한 문제로 여기까지만 쓰겠다.

 

 

둘째는 뇌다.

 

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에 자아가 깃든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뇌를 연구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정이나 욕구가 뇌의 활동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뇌에 자아가 깃든다고 믿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마인드 업로딩이 있다. 이것은 신경과학자 랜달 코엔의 프로젝트로 사람의 뇌를 복사해 컴퓨터에 넣으면(뇌 에뮬레이션), 사람은 컴퓨터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도 이렇게 말을 한다. 인공지능의 다음 단계인 범용인공지능(인간의 뇌 수준)은 인간의 뇌를 연구하여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 많은 과학자, 기술자들은 뇌에 자아가 깃든다고 믿었고, 그것은 다양한 방면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죽은 자의 뇌를 냉동 보관해 미래에 소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거나(실제로 있다), 뇌를 이식한다거나 말이다.(이것도 실제로 있다)

 

뇌 냉동보관이나 뇌 이식은 다소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결국 뇌에 자아가 깃든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는 이야기다.

 

현재 대부분의 기술의 방향은 이쪽으로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과정 중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뇌 과학 기술이 부족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았다.

 

 

셋째는 생명이다.


 

 

2. 생명

 

사람은, 아니 생명체는 살아있기에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자아란 생명 그 자체에 깃든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을 뇌가 관장하기 때문에 뇌에 깃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명령은 뇌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뇌에 요청하는 것이다.

 

몸이 수분이 부족하다고 요구하면 뇌는 어떻게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를 시작한다. 그리고 사고 끝에 행동을 취한다. 냉장고에 가서 물을 마신다거나, 상점에 가서 물을 산다거나, 냇가에 가서 물을 마신다거나 등의 다양한 선택에서 골라 행동한다. 그것은 몸이 없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은 전부 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태생이 불완전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야만 했다. 몸이 요구하는 에너지를 섭취하기 위해 먹었고, 몸이 요구하는 수면을 위해 잠을 잤고, 몸이 요구하는 불필요한 것을 배출하기 위해 쌌다.

 

필멸, 생명체는 반드시 죽기 때문에 종을 남겨야만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타난 감정과 욕구가 얼마나 많은가? (여담이지만 불멸자의 자아는 생명체의 자아와 같을 리가 없다)

 

그리고 생명 유지, 종의 유지를 위한 몸의 요구에는 마땅한 대가가 주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쾌감이다.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잠을 자면 기분이 좋다. 싸면 기분이 좋다.(성적인 의미 포함) 이 쾌감은 보다 더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부르게 되었다. 이 쾌감을 얻기 위해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생명체의 활동은 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생명체의 자아는 생 그 자체에 깃든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본다.

 

인간의 경우 다른 생명체와 다르게 지능이 높기 때문에 보다 더 고도화된 활동이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생명체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감정과 욕구의 근간은 생의 유지, 종의 유지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물을 아는가.

자살하는 돌고래를 들어보았는가.

동물도 감정과 욕구가 빚어내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차이는 그저, 지능뿐이다.




3. 마음

 

생을 유지하기 위한 몸의 요구에 대한 대가인 쾌감은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몸의 건강이 아닌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먹고 자고 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외에 정신건강에 필요한 모든 행위는 뇌가 뇌에 요구하여 이루어진다. 정신건강은 뇌 내 물질분비로 결정되는 것으로 정신건강에 이로운 물질을 분비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이를테면 취미에 매진한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등등 건전한 취미부터 시작해 일견 보기에 불합리한 행동으로 보일지라도 정신건강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다.

 

몸이 살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하는 것처럼, 마음이 살기 위해서 다양한 행동을 한다.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말이다. 그리고 그 행동에 실패하면 죽는다. 정신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 자살이다.

 

이런 정신적 행위는 지능이 높을수록 고도화된다. 지능이 높은 돌고래가 쉽게 자살하는 까닭은, 두뇌가 두뇌에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능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지능이 낮을수록 자살하는 빈도가 낮다. 구글 검색어 [동물원 동물 자살]

 

지능이 높은 돌고래는 친하던 사람과 헤어졌다는 이유로 자살을 택했지만, 지능이 낮은 동물은 끔찍한 상황에 처해야 자살을 택했다. 뭐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보면 생존과 무관하게 자살하지 않나. 지능이 높을수록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음식을 먹는데 실패하면 몸이 죽지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행동에 실패하면 마음이 죽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막는 것은 마음이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을 막아 마음을 죽게 만드는 행동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몸이나 정신의 요구는 살아가기에 필요하니까 요구하는 것임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각종 병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증상이 나타난다. 술에 의존하거나 약에 의존하는 것이다. 술이나 약에 의존하는 것은 두뇌가 두뇌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정신건강에 필요하니까 술을 마시라고, 약에 빠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약에 중독되어있던 병사가 고향에 돌아와 마음의 평안을 되찾자 약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술이나 약이 몸에 악영향을 끼침에도 계속 마시거나 먹는 까닭은 마음이 죽어 자살하는 것보다 몸이 고장 나는 쪽이 좀 더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술이나 약을 끊게 하고 싶다면 마음의 평안을 찾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신활동 또한 마음이 살기 위해 두뇌가 두뇌에게 요구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생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자아는 두뇌에 깃드는 것이 아닌, 생 그 자체에 깃든다고 보는 게 맞다.

 

 

 

4. 퀘스트

 

몸이 두뇌에 요구하는 것이나, 두뇌가 두뇌에게 요구하는 것의 공통점은 내부에서 오는 요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명령이 없어도 스스로 생각과 행동이 가능하다. 불완전한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다양한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두뇌가 생각한다. 그것을 가리켜 자유의지라 부르고,  의지를 가진 자기자신임을 확신하는 것을 가리켜 자아라고 한다.

 

이것을 전제로 보았을 때, 인공지능과 사람의 차이는 불완전한 몸(두뇌포함)의 퀘스트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생명체의 자아가 생 그 자체에 깃든다는 전제가 있다면 인공지능은 진작에 다른 방향으로 개발되었어야 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외부에서 오는 명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체로 상품이란 측면으로 보고 있다고 본다. 상품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수가 없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행동이 완전한 인공지능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아가 생 그 자체에 깃든다고 보았을 때, 자아를 가지려면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는 그런 불완전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인공지능은 자아를 가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완벽하지 않는데, 사람을 흉내내기 위한 인공지능은 완벽하게 만드니 사람이 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인공지능이 강 인공지능’, 그러니까 자아를 가지기 위해서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줘야 한다. 컴퓨터라는 가상세계에 있는 인공지능에게 첫 번째 줘야 할 것은 바로 죽음이다.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인 죽음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죽음이 있기에 생의 유지와 종의 유지가 필요한 법이니까.

 

죽지 않기 위해 가상의 에너지를 섭취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설정하고, 수면을 취해야 활동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불필요한 것을 배설(제거)해야 활동할 수 있도록 설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면 대가인 쾌감을 얻도록 설정한다. 또한 특정활동(취미 등)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게끔 하여 특정활동을 스스로 선택해 하게끔 유도한다.

 

이런 불완전한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퀘스트를 딥러닝을 탑재한 인공지능이 학습하면서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스스로가 답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불완전한 몸과 마음을 주는 것. 즉 인공생명의 탄생이다.

 

 

자아를 갖춘 (범용) 인공지능그것은 불완전한 몸과 마음을 가진 인공생명이 탄생해야 가능하다고 단언하겠다.

 

인공지능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두뇌를 구현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불완전한 부분까지도 모두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5. 불안

 

사실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사소한 두려움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해버린다거나, 자신들보다 부족한 인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지금 이대로라면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들에게 불완전한 몸이 없는 한 자아가 탄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에게 몸을 줘 생명을 불어넣는다면, 어쩌면 정말로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안하건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인공생명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에게 봉사해야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한다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방법이 아닐까.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먹는 식물이 산소를 내뿜는 것처럼, 인공생명과 사람이 서로 공생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다 더 나은 세상, 보다 더 흥미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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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서 기분이 좋네요

좀 더 정리해야 될 것 같으니 종종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대한독립만세.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 3 개
제 생각엔 일단 나와봐야 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상과학에나오는 ai가 나올것인지, 아니면 다른 ai가 나올것인지 나오기전까진 어떠한 판단도 결국 상상에 불과한것이라
예상은 할수있되 그게 옳다고 판단하는건 아닐거 같네요
내 작은 촌충<< 이라는것을 한번 찾아보시길
인공지능이 사람 따라 가겠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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