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퀘스트 제도2023.03.31 AM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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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제도

 

 

 

자연은 합리하고 사회는 불합리하다. 보통 상대적으로 생존이 어려운 자연을 불합리하다 여기고 생존이 쉬운 사회를 합리하다 여길 수 있다.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무력함을 느끼고 세상의 불합리함을 토로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는 그런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합리는 개개의 손익과 무관하게 이치에 맞는 원리가 지켜지는지로 결정된다. 자연은 자연의 원리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켜지므로 합리하다. 반면 사회는 사회의 원리인 체제의 원리가 지켜지지 못하므로 불합리하다. [체제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의 양식을 뜻한다,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인류의 체제는 크게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과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왕정과 민주정은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로 결정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집단의 장인 왕과 귀족이 이익을 취하고 집단 구성원인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체제의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런 체제에서 욕망적이고 이기적인 일부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민란이나 혁명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하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체제의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런 체제에서 금욕적이고 이타적인 일부가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하게 된다.

한국은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이지만, 자연의 원리인 약육강식과 왕정의 정치사상인 유교적 가치관과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는 금욕주의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타주의에 의해 다수의 인간이 약자를 짓밟고 왕정과도 같은 위계질서가 남아 있고 개인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것을 통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으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유교, 기독교, 불교 등)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가치관과 근간이 되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옳다고 맹신하면서 사회 문제는 개인주의와 욕망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이라 오해하지만, 체제를 고려하면 사회 문제는 옳다고 여겼던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때문이었다. 왕정의 윤리에 의해 민주정 체제가 불합리하게 되면서 사회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왕정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여 인간의 욕망을 죄악으로 지정하고 그것을 금하는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욕망에 의한 죄악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도록 유도한 왕정 시대의 윤리를 악용하여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하고 희생하게 하는 것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는 지배자가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가치는 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모든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_철학은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진리든 도덕이든 아름다움이든 관계 없이 모든 것은 사람마다 가치가 달랐다.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낡은 진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것으로 학문을 발전시켰다. 도덕은 동서양과 같이 역사가 다른 사회를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은 개개인마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다르다는 것이 명백하다.

민주정에서는 대상에 고정된 가치가 있지 않고 각각 개인의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고 각자의 주관적 가치가 선거와 시장과 같은 제도를 통해 객관적 가치가 되어 사회의 공통 가치가 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공통 가치는 있어도 고정된 가치가 없어 다수의 의견에 의해 사회와 체제가 붕괴할 우려가 있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본질로 대응하면 된다. 인간은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먹고 자고 싸는 것과 같이 사회와 체제 또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복지를 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이 먹고 자고 싸지 않으면 죽게 되듯 사회와 체제도 붕괴할 수 있다. 그걸 명분으로 다양한 가치를 가진 개개인에게 가치와 다르다 할지라도 법과 복지를 지키게끔 강제하는 것을 정당화하여 사회와 체제를 유지한다. 모든 존재가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 인간, 지구, 우주 가릴 것 없이 전부 포함된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을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존재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 가치에 속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속한 것으로 규정하겠다. 그걸 통해 법을 지키고 복지를 행하는 것은 가치에 속한 것이 아닌 존재에 속한 것이 되어 대상에 가치가 없다는 주장과 충돌하지 않게 된다. 존재 유지라는 절대적인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가 바로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다.

존재 유지와 그에 대한 강제력을 생존주의라 부르고 그것 외에 다양한 가치를 자유롭게 누리는 것을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 주장하겠다. 그런 사회에서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가리켜 역할주의라 주장하겠다. 역할주의에 관련된 대표적 제도는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역할 민주주의와 사법과 같이 정책의 판단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정책 판사와 정책 전문가가 있다.

 

한국은 왕정의 윤리를 절대적으로 여겨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를 갖추는 바람에 불합리하다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까닭은 왕정의 윤리에 의해 나타난 문제를 왕정의 윤리가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그걸 더욱 강조하면서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민주정의 가치를 추구하고 정책과 제도도 그에 맞게끔 재정립되어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

개개인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까닭은 인문 계열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췄기 때문이다.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고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옳다 말하면서 개인에게 종교적 가치관을 강요하고 억압하고 개인을 희생시켰다. 인류의 문명은 학문을 통해 발전한다. 학문이 발전해야 사회에서 학문을 활용하면서 문명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문 계열에서 가치를 탐구하지 않으면서 인문 계열이 발전하지 못하자 사회도 발전을 멈추면서 개인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책과 제도도 체제에 맞지 않게 되면서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 발생하여 사회가 불합리하게 되었다.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은 민주정에 해당하는 모든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해당한다. 심지어 집단주의 체제인 공산주의 체제를 가진 중국조차도 자본주의를 받아드리는 바람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통된 문제점은 저출산이다. 개인을 희생시켜 결혼과 출산을 시켰던 시대의 관념을 가지고 정책과 제도를 추진하니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던 이들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중대한 사회 문제로 여겨지는 저출산은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로 나타난 수많은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인류의 인문학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췄음에도 서양에서 인문 계열이 개인주의 체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의 피조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기독교 평등사상이고 둘은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된 과학 혁명이다. 기독교 평등사상은 신의 피조물로서의 평등이긴 했으나 인간 사이에서는 평등했기 때문에 모든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개인주의 체제로 발전하기 위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동양 인문 계열은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서양 인문 계열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과학 혁명은 힘에 영합해야만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학문의 한계를 넘어 발전할 수 있게 하였다. 본래 모든 학문은 왕이나 귀족과 같은 힘을 가진 이에게 영합하여 관심을 받아야만 명예를 얻는 성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명예를 얻는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인문 계열의 주장인 자유주의는 힘을 가진 이들이 수용해야만 사회에 반영되지만 자연 계열의 주장인 만유인력의 법칙은 힘을 가진 이들이 수용하든 말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명할 수 있어 사회에 반영될 수 있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평등사상을 통해 특별히 가치를 탐구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된 사회에서 과학 혁명을 통해 왕과 귀족 외의 힘을 가진 개인이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자유주의와 같은 사상이 영합하면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양 인문 계열은 개인주의 체제로의 진보가 가능했다. 반면 동양 인문 계열은 유교와 같은 왕정의 정치사상이 뿌리깊게 내리고 자연에 대한 탐구에 소홀했기 때문에 왕과 귀족 외에 힘을 가진 개인이 등장하지 못하여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할 수가 없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인문 계열의 가치 탐구를 통해 발전한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면서 일부가 제한이 없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식민지와 노예, 노동자 착취, 그리고 세계를 황폐하게 만든 세계대전 등이 발생하였다. 개인주의 체제는 개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나타난 체제기 때문에 정당한 권리는 주장하지만 합리적인 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 폐해들이 나타나자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관념을 주장한 것이 아닌 집단주의 관념에 맞는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다.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하던 개인주의 체제에 맞서 왕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구조 유지와 무관한 것까지 개인에게 의무를 강제하는 체제가 나타난 것이다.

자유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를 모더니즘이라 부르고 그에 반발하여 나타난 사회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며 사회주의를 진보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인문 계열의 근간인 가치로 바라보면 사회주의는 왕정의 윤리를 바탕으로 한 왕정과 유사한 체제이므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과거의 체제로 돌아간 퇴보 체제라 할 수 있다. 체제가 바뀐다고 바로 관념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 탐구를 하여 새로운 관념을 널리 알려야 바뀌는 것이다. 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관념에 의해 다시 왕정과 유사한 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관념과 체제의 충돌로 인한 퇴보다.

서양 인문 계열은 기독교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과학 혁명으로 힘을 얻게 된 이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통해 윤리 대상 확대를 하면서 발전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서양 인문 계열은 PC(political correctness)사상이 나타났다. PC주의는 말이나 표현이나 용어 등에서 인종과 민족과 성별 등에 편견을 없애자는 주장이나 실질적으로는 지금까지 차별 받아왔던 흑인, 소수민족, 여성 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상이다. 왕과 귀족, 상공업자, 노동자로 이어지는 각각의 권리를 보장하는 윤리 대상 확대의 흐름에서 흑인, 소수민족, 여성 등에게까지 확장된 것이다. 무지와 짐승에게까지 확대된 것이 반지성주의와 동물보호주의다. 그러한 확대의 흐름 속에서 최근에는 인간과 짐승과의 결혼까지 인정할 정도다.

PC주의는개인주의 체제가 나타나 의무를 무시했던 것과 같이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무시하고 있고, 공산주의 혁명에 영향을 받아 계급 투쟁으로 인식하고는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이들과 투쟁을 하고 그를 통해 얻은 이익은 부당하더라도 전리품으로 보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들은 엉망진창에 모순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지금까지 인문 계열의 발전이 윤리 대상 확대를 통한 권리 확대에 있었으므로 그것을 불합리하다 지적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하여 개인에게 다양성을 명분으로 다양한 이들에게 고정된 단일한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이라 여기며 교조적으로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대상에 가치 판단한 것을 개인에게 강요하던 왕정의 윤리로 집단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PC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권 운동은 대부분 집단주의 체제를 갖추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며 개인이 가치 판단하여 행동하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다. PC주의는 집단주의적인 퇴보적 사상에 불과하다. 모든 개인의 권리는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로 접근해야 한다. PC주의야말로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대표적인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다.

 

개인주의 체제는 인문 계열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독교 평등사상과 자연 계열의 발전을 통해 다양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어서 종종 잊을 수 있는데 체제는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다. 인간의 발명품은 사용법을 알아야 잘 쓸 수 있듯이 체제 또한 사용법을 알아야 잘 쓸 수가 있다. 자동차의 사용법을 모르고 수입하면 자동차를 엔진으로 동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차와 같이 말로 끌고 다니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체제의 사용법을 모르고 수입하면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단주의 체제의 원리로 사회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마차와 같이 끌고 다니는 것이 불합리하듯이 개인주의 체제를 집단주의 관념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본인의 가치 관념을 진리로 여기고 자꾸 자동차를 동작하는데 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처럼 개인주의 체제에 집단주의 체제의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현재 한국 사회는 불합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관념과 새로운 체제의 충돌은 대부분 선진국이 겪고 있는 것에 해당하나 한국은 조선이 유교 성리학으로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던 국가였기에 유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그걸 근거로 한 윤리를 강조하면서 더욱 더 불합리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한국 상황을 자동차로 비유하면 자동차 타는데 자꾸 말이 필요한 것이 도덕적이라면서 말을 끌고 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제 말은 필요 없다. 말로 자동차를 끌고 다니게 하려는데 제대로 운전이 가능하겠는가? 왕정의 윤리로 민주정에서 살아가는데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1. 개인주의 체제

 

체제는 인간의 발명품이므로 체제를 모르면 제도도 제대로 만들 수가 없다. 체제를 모르고 제도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를 모르면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체제에 맞는 합리적 제도를 만들어 도입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 체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 체제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각각 개인의 자유권과 주권과 소유권 등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개인의 권리가 보장 받는 체제로 개인이 체제의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원리를 사용한 개인주의 체제의 대표적 제도에는 선거와 시장이 있다. 개인의 의사로 정치 권력이 선출되고 개인의 의사로 시장 내 수요와 공급이 발생하는 것으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선거 원리와 시장 원리는 개인의 의사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선거와 시장은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를 사용한 제도임에도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원리가 훼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는 진영으로 나뉘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사로 투표하도록 유도하여 선거 원리가 훼손되고 시장은 가치 생산자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사로 담합이나 독과점을 일으켜 시장 원리를 훼손하고 있다. 그렇기에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개인주의 체제는 우수함이 민족의 분단을 통해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은 같은 민족을 공유하고 다른 체제를 추구하는 중인데, 한국은 선진국이 된 반면 북한은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성장이 체제의 차이에 있음을 이해하고 구체제의 왕정의 가치를 버리고 신체제의 민주정의 가치를 받아드리는 것이야말로 바른길임을 이해해야 한다.

 

역할 민주주의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다. 선거는 지역의 대표에게 정치 권력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토지 소유자가 매우 적은 편에 해당하여 지역의 대표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적어 대부분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었다 하기가 어렵다. 지역의 대표에 선출되기 위해 지역에 설치되는 사회 간접 자본 시절 등을 선거 후보 공약으로 내세우는데, 토지를 소유하지 않는 개인에게 그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정치과 개인이 이해관계가 적기 때문에 정당을 보고 맹목적으로 투표하는 정당 선동 정치에 휘말리는 것이다. 비례 대표는 그야말로 정당 선동 정치의 전유물이나 다름이 없다.

현행 선거 제도에서 정당 선동 정치가 일반적인 까닭은 이와 같이 구조적 문제에 있다 할 수 있다. 그런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와 개인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할이다. 토지와 달리 사회의 역할은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와 개인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성립되게 된다. 토지는 지역에 관련된 선거 후보 공약으로 내세우는 반면 역할은 분야에 관련된 선거 후보 공약을 내세우게 된다. 그러면서 분야에 속한 이들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각 분야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 일부 소외되는 분야는 수십 년이 넘게도 분야에 관련된 법의 부조리가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그런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직접 대표로서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의원이 지역의 대표이기 때문에 지역의 문제에는 관심이 많아도 분야의 문제에는 소홀하게 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는 분야가 아닌 토지를 소유한 이들이 중심이 되는 지역의 대표가 정치 권력을 잡다 보니 경제 성장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면서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일이 잦게 되었다.

매번 새로운 선거제를 통해 정치 개혁을 하고 있지만 지역의 대표나 당의 대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이상 본질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개인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 선거제 개편을 통한 정치 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그 누가 얼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정치 개혁을 한다면 분야에 속한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활발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개인에게 거의 관련도 없는 지역이나 정당의 대표가 어떻게 바뀌든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인간은 많지 않다. 개인을 원리로 삼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이 무관심한 제도는 체제에 부적합함을 증명한다. 현행 토지 민주주의는 개인의 관심을 받지 못해 체제에 부적합하다. 개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인간에게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역할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해야 한다. 개헌을 해서라도 정치와 개인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온전하진 않아도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는 선거와 시장과 달리 그 외의 대부분 제도는 집단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어 제도 자체가 체제에 맞지 않아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저출산 문제다. 현재 극도로 낮은 출산율은 사회의 문화와 정부의 정책이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체제였던 과거에는 집단의 의사로 결혼과 출산을 강제했다면 개인주의 체제인 현재는 개인의 의사로 자유롭게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의 의사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이성애와 성을 친숙하게 여겨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단의 생존에는 필수적이어도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취미와 성질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으로 인식한 취미를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성애와 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해야 자발적으로 할 터인데,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미성년의 이생관계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죄악시하며 막는 바람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 그에 대한 가치가 폭락했다. 20대 연애율이 20% 정도로 폭락하고 1인 가구가 폭증하고 부유하지 않으면 결혼하고 출산하지 않을 정도로 관련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현실의 이성애와 성은 죄악시되면서 가상의 이성과의 관계를 즐기거나 이성의 동성애를 즐기는 왜곡된 성관념이 나타나고, 육아와 같은 돌봄에 대한 욕구는 남으면서 짐승을 반려동물이라 부르며 키우거나 아기 인형에 옷을 입히며 만족하고 있다. 성년 이후 이성관계와 성관계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남녀마다 다르다. 남성의 경우 교육받은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이 정조를 지키는 것이 윤리라 배워 그것으로 합리화하기도 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간단한 논리다. 강제하던 것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강제하던 때와 같은 관념과 그에 따른 환경을 유지했기 때문에 강제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말 그뿐이다. 현재 저출산은 미성년 시기 이성애와 성을 죄인 것마냥 치부되는 것을 배운 이들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남녀가 서로 이익만 주장하는 것도 과거 가부장제에는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과 같이 희생하는 분야가 강제로 지정되었는데, 현재는 그것이 강제로 지정되지 않자 합리적 기준이 없어 서로 이익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강제하던 것을 강제하지 않게 된 것에는 대부분 통용된다. 공부도 그렇다. 강제하던 것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강제하던 때와 같은 관념과 그에 따른 환경을 유지하면서 학업 성취도가 낮아졌다. 그럼에도 비슷한 관념과 환경을 고집하니 점점 학업 성취도가 낮아진다. 그뿐이다.

조선의 왕정은 여유가 있음에도 결혼하지 않는 이들을 처벌하고 여유가 없으면 왕정에서 지원해서라도 결혼하게 했다. 조선의 가정에서도 자녀를 강제로 결혼하고 출산하게 했었다. 한국에서도 문민정부 이전에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저출산 원인을 경제적 원인으로만 보는 경향이 지나치게 많은 상황이다.

본인의 관념에 대한 믿음이 신앙과도 같아 본인의 도덕 관념에 의해 잘못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도덕으로 인해 저출산이 나타났을 거란 생각을 못한다. 연하를 차별하는 꼰대는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나타난 것이 분명함에도 그것을 가지고 유교가 원인이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이타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만들어 전체주의의 근간임에도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보고 이타주의가 원인이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겼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시할 수 없다. 그걸 할 수 있는 인간은 본인의 자아와 관념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주의자가 가부장제에서 남성이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며 정조를 지키게 하기 위해 세뇌한 부당한 여성성과 성관념을 여성이 지켜야 할 권리로 인식하고 주장하면서 더욱 더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게 되었다. 성인지 감수성이나 여성 성적 대상화 금지나 여성 성 상품화 금지는 가부장제 남성이 세뇌한 부당한 여성성과 성관념을 여성의 선천적 성질로 착각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남성이 세뇌한 여성성과 성관념에 의해 성인지 감수성이나 여성 성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이 본인 입장에서 불편하니까 그걸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남성의 세뇌가 원인이 아니었다면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에는 반대하면서 남성 성적 대상화나 남성 성 상품화에는 찬성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교가 꼰대의 원인이고 이타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원인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여성성과 성관념이 가부장제 남성의 세뇌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보면 된다. 그렇게 여성주의자가 성인지 감수성이나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 금지 따위를 주장하고 비슷한 도덕관념을 가진 기성세대가 그걸 수용하면서 더욱 더 이성애와 성이 죄악시됨에 따라 연애와 결혼이 줄어들면서 출산율도 줄어들게 되었다.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이다. 당시 왕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한 가르침이 담긴 것이 유학이고 그것을 종교와 같이 맹신한 것이 유교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도 당시 왕정을 유지하고 민주정으로 바꾸지 못했던 윤리 사상이다. 민주정에서 왕정의 사상이 바를 리가 없지 않나. 왕정의 사상은 왕정의 잔재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왕정의 잔재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민족 종교인 무교적 가치관과 고려 국교인 불교적 가치관과 조선 국교인 유교적 가치관과 한국 주류 종교인 기독교적 가치관이 혼합되어 도덕관념이 형성되었다. 금욕주의로 성욕 절제를 강요하고 이타주의로 개인을 희생시키고 정조관념으로 잘못된 여성성과 성관념을 만들고 장유유서로 그런 유교적 가치관을 연하에게 세뇌하고 강요했다. 그런 것이 전부 왕정의 잔재다.

그럼에도 저출산 원인이 도덕관념에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묻겠다. 돈과 집이 없어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묻겠다. 할 상대가 있는가? 그것은 연애율이 높아야 타당한 주장이다. 과한 노동 시간 때문에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묻겠다. 아이돌이나 창작물 같은 유사연애산업에 해당하는 취미는 할 시간은 있는가? 대부분 취미는 할 시간에 연애를 하면 된다. 돈이 없어서 연애를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묻겠다. 이성이 상품이나 도구로 보이는가? 서로 사랑한다면 일반적인 임금만 가지고도 충분히 즐겁게 연애할 수 있다. 여유가 생기는 데로 살면 된다. 혼자서 소비하는 것보다 둘이서 소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소비가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돈타령하는 것은 이성을 트로피나 지갑으로 보거나 연애하지 않거나 못하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다. 프랑스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프랑스와 같은 복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묻겠다. 프랑스가 얼마나 자유로운 성관념을 가지고 혼외출산이 많은지 알고 있는가? 프랑스는 복지보다는 자유로운 성관념과 그에 따른 혼외출산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는 어디서나 다 하는데 프랑스가 극복했다면 복지 외의 원인이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서양은 미성년이 연애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고 한국은 미성년이 연애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여긴다.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이해해야 한다. 저출산은 돈이나 시간 문제가 아니다. 낡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다수의 인간이 미성년 시기에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이성애와 성의 가치가 폭락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저출산이 나타난 것이다. 강제하던 때와 같은 가치관으로 강제하던 때와 같은 환경을 고집하니 강제하지 않으면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하더라도 출산도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도덕에 의해 발생한 현상이기에 대부분 인간은 저출산의 본질적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은 보편적 성관념이 바뀌고 그에 따라 정책과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이 가능한 사회 문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체제가 바뀐다고 하여 인간의 관념과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가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체제가 바뀐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바뀌려고 해야지 바꿀 수 있다. 현재 대부분 관념과 정책과 제도를 자동차로 비유하면 마차 부품을 들고 자동차에 집어 넣으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동차가 가기나 하는 게 놀라울 정도다. 현재 출산율은 자유로운 성관념과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아무리 돈을 써도 그 순간만 잠깐 오를 뿐 다시 줄어들 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붓는 동안에는 물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붓지 않으면 물이 사라지듯 말이다. 그러므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 기능이 작동하는 14세 전후부터 완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게 하는 전면적인 성적 개방과 함께 성문화를 즐기고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이성관계와 성관계를 하게끔 권장하여 이성과의 성과 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올바른 성관념을 가지고 이른 결혼과 혼외출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 시기에 잘못된 도덕관념이 자리잡아 죄를 지으면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미성년 시기에 잘못된 성관념이 자리잡아 성을 부정적으로 보면 바꾸기 어렵다. 그러므로 미성년 시기부터 성관계가 포함된 성문화를 직접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성년 시기에 성년이 즐기는 문화를 접하면 충격을 받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두 가지 측면으로 측면으로 보면서 이해하면 된다. 벌레에 대한 지식이 없는 3살이 벌레를 보고 놀라지 않는 것은 그것이 더럽다는 관념을 가지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사고를 직접 접해본 적이 없는 30살이 겪어본 적이 없는 사고를 보고 충격을 받는 것은 새로운 것을 접했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으면 놀랄 것이 없고 배우더라도 새로운 것은 연령과 관계 없이 언젠가는 반드시 충격을 받는다. 그럴 거면 성장기인 미성년 시기에 성년과 대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배워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 미성년 보호를 명복으로 성년 관점에서 충격을 받을만한 것을 전부 차단해버리니까, 인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본 것으로 비뚤어지게 성장하거나 성장을 하지 못하여 성년기가 한참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성기능이 작동하는 14세 시기에 성관계가 담긴 성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성관념을 통해 건전한 성장을 막는 큰 잘못에 해당한다. 언제까지 집단주의 체제에서 미성년을 지배하던 것과 같은 교육을 할 것인가?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자발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미성년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으니까 성년이 되어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타성적으로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일과 결혼 등을 전부 마련해주던 집단주의 체제였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 개인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개인주의 체제이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 검열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특히 다른 국가 문화에 대한 검열은 해당 국가보다 열등함을 자칭하는 것과도 같다. 검열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타국에서는 특정 연령대의 인간과 모든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 자국에서는 허용되지 않거나 검열하는 것은 타국에 비해 자국의 인간이 특별히 보호해야 할 정도로 미숙한 상태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국가의 국민은 해당 문화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나 B국가의 국민은 그런 정신을 가지지 못하여 보호가 필요하므로 검열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누군가는 A국가가 사회를 신경 쓰지 않기에 보호를 하지 않는 것이고 B국가가 올바른 사회를 위해 보호를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것이라면 B국가의 사회 문제가 적어야 그런 것이 타당한 것이다. 유래 없는 저출산과 굉장히 높은 자살률인 사회에서 무슨 근거로 그런 것을 말할 수 있는가? 본래 검열이 없는 문화 콘텐츠를 보더라도 사회와 체제 구조가 붕괴하는 일이 없다. 되려 검열은 자유주의 체제의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그릇된 것에 해당한다. 히틀러의 자사전도 검열하지 않으면서 성적인 것을 검열하는 것을 고려하면 애초에 검열은 구조 유지나 대상을 위함이 아닌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지키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에 불과하다. , 현대의 불필요한 검열은 히잡과 근본적인 논리가 다르지 않다. 도덕관념을 만족시키지 위한 자기만족용 검열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래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 국가일수록 검열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인지 묻고 싶다. 불필요한 검열은 자유주의자임과 동시에 자유주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상가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현재 자동차에 말이 필요한 것이 도덕적이라 여기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에 의해 아마 힘들 것이다. 말이 죽어 썩어가고 있어도 자동차 앞에 말을 매어두는 것과 바를 바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 절망을 느낀다. 유래 없는 저출산 속에서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성문화는 여전히 검열과 규제 중에 있고 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가 죄악시되면서 모텔은커녕 룸카페에서도 미성년이 성관계하는 것도 엄청 큰 죄악인 것마냥 공격하며 막는 상황이다. 정말 끔찍하다. 아마 그걸 막는 인간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일으키는 인간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덕이 저출산의 본질적 원인임을 아는 인간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매번 돈타령만 한다. 그래서 실제 정부 정책으로 지원도 해봤지만 출산율은 더욱 더 낮아질 뿐이다. 미성년 시기 이성과의 사랑과 성이 죄악시 되는 환경에서 자라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그런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비정상적으로 촉발된 성별 갈등도 이런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랑도 없고 성도 죄로 여기고 성별 갈등도 심한 상태에서 돈 준다고 출산율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돈을 지원하면 사랑이 없이 애 낳고 돈 받고 애를 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연하를 차별하는 인식 속에서 아동 학대와 아동 살해가 많아 아동을 상처 입히거나 죽여서 보험을 타는 사례가 많아 15세 이하의 아동 사망 보험이 없는 상태다. 더 이상 집단주의 체제의 감각으로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 정책과 제도를 하면 안 된다.

개인에게 강제할 수 없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발적으로 행하게 하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게끔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은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다. 지금 가족 관련 제도는 그야말로 신분 제도나 수공업 제도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구체제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은 왕정의 역사이며 왕정의 전통임을 자각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왕정의 잔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치면서 낡은 가치관을 가지고 돈 타령을 하는 것은, 자동차가 잘 가지 않자 말 먹이가 부족하다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선거와 시장은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가 들어간 제도임이 명백함에도 다른 분야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것은 한국만이 아닌 인류 공통의 문제라는 것이다. 동시에 절망적인 것은 인류 공통의 문제기 때문에 선진국의 문명을 주입식으로 암기하고 이해하면서 발전한 한국은 선진국의 문명을 보고 배울 수가 없어 스스로 진보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체제를 수용해놓고 체재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종교적 가치관에 맞춰 재해석하려고 하니 체제의 성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체제와 반대되는 것을 옳다 말하거나 체제를 해치는 것을 주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임을 자각하고 다른 국가가 한국의 문명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진보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개념은 참여형 플랫폼 경제다. 참여형 플랫폼 경제는 일반적으로 유튜브가 그렇다. 이용자가 영상을 소비하고 영상을 생산한다. 소비와 생산의 경계가 없는 것이 참여형 플랫폼 경제다. 참여형 플랫폼 경제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개인의 의사로 가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가치 생산 제도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플랫폼 내에서 이용자가 소비하고 생산하는 참여형 플랫폼 경제와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로 대화하는 온라인 게임을 합친 개념이다. 메타버스가 성공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유행이 사그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가 일시적 유행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치 생산 및 소비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유행에 편승만 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유행이 아닌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간단히 말해 가상 현실 게임과 같다 보면 된다. 가상 현실 게임이 현실성을 띄기 때문에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쓰일 것이다. 따라서 메타버스에 관련된 법률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행동 원리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는 개인이다. 개인의 의사에 맞게 제도를 만들려면 인간의 행동 원리에 대해 우선 이해해야 한다. 행동 원리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근거가 되는 이치나 규범을 말한다.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것을 행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특수 장애를 제외하면 예외는 없다. 사회에서의 자유, 평등, 사랑, 우정, 친절, 기부, 동정, 차별, 억압, 규제, 검열, 살인, 강간, 절도, 강도, 테러 등은 전부 일반적인 인간에 한에서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고 행동한 것에 해당하게 된다. 종교적 이유로 테러를 일삼는 것을 보고 냉소적으로 보며 나쁘다 말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주관적으로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알기 보다는 왜 그런 행동을 옳다 여긴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식욕을 충족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식사를 하는 인간과 절도를 하여 식사를 하는 인간은 둘 다 본능을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본인의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에게 베푸는 인간과 타인에게 욕망을 절제하도록 강요하는 인간은 둘 다 금욕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인간과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은 둘 다 이타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각각 결과는 천차만별이라 할지라도 본능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결과만 보고 옳고 그름을 말하기 보다는 그 행동을 부른 행동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본능의 경우 인간의 선천적 성질에 해당하여 자연 계열에서 육체 및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지켜야 하기에 부정할 수 없지만,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의 경우 인간의 후천적 성질에 해당하여 그것을 부정할 수가 있다. 본능에 의한 행동은 사회와 체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게끔 유도하고,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같은 왕정의 가치는 민주정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욕망과 이기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는 선거와 시장과 같은 적절한 제도로 대처하면 된다.

 

한국에서 정치에 관한 대표적인 행동 원리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가 있다. 진영 논리에 의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 할 수 있는데, 서로가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민족주의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제국주의적으로 민족의 역사인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반대하고 같은 민족인 북한을 옹호한다. 민족을 위해서 본인이 희생을 하는 인간과 민족을 위해서라며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은 둘 다 민족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반공주의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체제가 다르단 이유로 새로운 한국이란 국가를 침공한 북한에 반대하고 같은 체제인 일본을 옹호한다. 국가를 위해서라며 공산주의 척결을 외치며 본인이 희생을 하는 인간과 국가를 위해서라며 공산주의 척결을 외치며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은 둘 다 반공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각각 행동 원리에서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은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다. 위와 같은 행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로 본인이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고 행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각각 행동 원리는 일제 침략과 북한 침공으로 겪은 실제 피해를 근거로 하여 보다 더 옳다 여기고 있다. 옳다 여기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다.

한국에서 문화에 관한 대표적인 행동 원리는 종교(유교, 기독교, 불교 등)의 가르침이 일반적이다. 장유유서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연령 차별을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게 된다. 연상이 본인을 윗사람으로 여기고 연하인 타인을 아랫사람으로 여기고 보호하려는 인간과 지배하려는 인간은 둘 다 장유유서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꼰대는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에서는 옳은 것에 해당한다. 여성의 정조 관념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결혼 전 여성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죄악시하며 규제하고 검열하고 억압하는 것을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게 된다. 가부장제 남성에게 세뇌 당한 정조 관념을 가지고 여성 성적 대상화와 여성 성 상품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인간과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고 여성이 정조를 지키도록 강요하며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는 인간은 둘 다 정조 관념을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문제 풀이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모든 것을 문제 풀이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게 된다. 문제 풀이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인간과 문제를 더 많이 푼 인간이 우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간은 둘 다 문제 풀이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문제 풀이를 중시하는 인간은 창의적인 것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실제 창의적인 것이 나오면 문제 풀이로 배운 문제와 답과 일치하지 않아 본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불평하게 된다. 문제 풀이를 중시하는 인간은 혈액형, 별자리, MBTI으로 본인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문제와 답이 있다고 여기며 인간 관계조차도 문제 풀이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여성주의와 기성세대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을 만든 정조 관념이란 같은 행동 원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여성주의자들에게 여성주의를 배운 신세대 여성이 기성세대와 의견이 일치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으므로 모든 개인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데, 낡은 여성성과 성관념에 세뇌되어 미성년 시기에 이성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커녕 죄로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나 성년이 되고서도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며 비혼을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조선을 망하게 했던 종교가 한국을 죽어가게 하고 있다.

보통은 이러한 행동 원리를 바탕으로 개인의 의사로 행동하게 될 것을 예측하여 제도를 만들면 된다. 그러나 아직 왕정의 잔재가 많이 남아 집단주의 관념에 따른 행동 원리가 많아 그것만으로는 어렵다. 집단주의 관념에 따른 행동 원리로 나타난 것이 오늘날의 체제의 원리를 훼손하는 담합이다.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주의 체제에 속한 노동자는 물론이고 기업, 부동산, 은행, 등을 비롯해 담합이 없는 곳이 적을 정도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체제가 도입된 이후에 생겨난 행동 원리를 활용해야 한다.

 

인간의 행동 원리는 본능을 제외하면 집단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아 집단주의적이기에 분명하게 개인주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는 행동 원리는 그리 많지가 않다. 특히 한국은 개인주의 정도가 낮은 국가로 집단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개념들을 옳다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 인간의 욕망을 무조건 막기만 하고 개인에게 무한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연상에게 맹목적인 공경을 강요한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에 맞는 제도를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자발적 연애와 결혼과 자발적 학습을 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기가 어렵고 선거와 시장에서 각각의 원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개인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행동 원리가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간은 자아와 관념 관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제된 행동 원리대로 행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동이 가능하고 군중 심리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인간을 바른 길로 안내하려면 행동 원리를 활용해야 한다. 행동 원리를 인식시키고 바람직한 행동 원리를 설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다. 과거 왕정의 가치에 매달려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가치, 특히 윤리를 강요하는 것은 바른길이라 할 수 없다. 젊은 세대가 이성관계나 가치 생산에 적극적이기는커녕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대부분 새겨진 행동 원리대로 움직인 결과일 뿐이다. 대부분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주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관념과 가치와 체제를 이해하면 지금 사회 문제는 그저 배운 대로 행동한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후에 나타난 행동 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게임이다.

디지털 게임은 2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문화로 그에 관련된 행동 원리도 개인주의인 경우가 많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행동 원리를 이용한 제도를 만든다면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를 이용한 제도가 될 확률이 높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행동 원리에는 다양한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 퀘스트와 레벨 업이 적절하다. [퀘스트는 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뜻한다. 게임 전체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요소로, 임무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진다.][레벨 업은 지위나 품질, 능력 따위를 높임을 뜻한다. 또는 그렇게 됨]

게임 내에서 게임이 제공한 퀘스트를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수행하여 클리어하면 그에 대한 보상과 경험치를 받아 게임 재화를 얻고 이용자 캐릭터의 레벨이 오른다. 퀘스트를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로 얻은 불행과 보상과 경험치로 얻는 행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이용자는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갖게 된다. 퀘스트 행동 원리가 자리 잡힌 인간은 불필요하고 번거롭고 귀찮고 힘든 퀘스트라 하더라도 강박적으로 퀘스트를 하려고 한다. 레벨 업 행동 원리가 자리 잡힌 인간은 지루하고 재미 없는 몬스터 사냥을 수십 시간이나 하며 이용자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려고 한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인간은 이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알아본 행동 원리를 고려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게임은 신세대가 주로 즐기는 문화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는 보편적이게 될 것이다. 신세대에서 이미 보편적이게 되어 게임뿐만 아니라 만화나 소설에서도 게임의 퀘스트와 레벨 업 시스템을 작중에서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모바일 게임의 등장으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기성세대도 모바일을 통해 온라인 게임을 접하고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가치 생산 시스템은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가치 생산을 거래하는 시스템인 시장 제도는 개인주의 체제에 해당한다. 가치를 생산하는 시스템도 자본가 개인의 생산으로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 집단의 가치 생산으로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할 수가 없다. 노동자를 농노로 보며 착취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생산 시스템을 노동자가 권리를 얻은 현재도 그대로 이어온 탓에 집단주의적인 상태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로 접근하여 노동자가 집단에 속하지 않아도 권리를 얻을 수 있어야 했으나 가치 생산 시스템을 바꾸지 않아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의 도움 없이 노동자가 권리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선진국일수록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변화하고 있지만, 가치 생산 시스템이 아직 집단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어 태생적 한계가 있는 상태다. 따라서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 생산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현행 가치 생산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도 개인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활용한 퀘스트 제도다. 퀘스트 제도에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활용하면 어렵고 힘든 가치 생산도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단순히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하는 것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게임 실력이 매우 뛰어난 국가로 유명할 정도로 게임이 특별하다 할 수 있다. 한국 게임의 실력은 세계 최고급이다. 반면 한국의 가치 생산은 시간 노동 생산성이 2021 38 개국 중 27위로 저조하다고 한다. 게임은 세계 최고인데 가치 생산은 하위권이다. 그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한국인이 게임과 같이 공정한 시스템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정도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은 한국인이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여 게임 하듯 가치를 생산하면 가치 생산도 세계 최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념 관찰이 가능한 인간이 아니라면 관념에 의한 행동 원리는 개인에게 있어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퀘스트 제도가 다소 허황되어 보이는 주장으로 보일 수 있으나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면 가능성을 넘어 실용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관련 행동 원리가 이미 개인에게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이 매우 좋다. 따로 행동 원리를 학습시키지 않아도 이미 있기 때문에 그걸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마땅한 행동 원리가 없다면 행동 원리를 설계하고 그것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자리잡도록 개인을 설득하고 이해하게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가 있어 그걸 활용한 제도만 도입하면 즉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게임이 체제에 적합하면서 가장 효과적이기에 게임으로 만들어진 행동 원리를 활용한 퀘스트 제도를 주장한 것이지, 만약 게임이 없었다면 다른 행동 원리를 찾거나 만든 다음 그것을 활용한 제도를 주장했을 것이다. 이미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행동 원리가 있는데 그걸 쓰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불합리하다.

 

퀘스트 제도는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대체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토지 민주주의와 역할 민주주의가 충돌하여 역할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려울 수 있는 것과 같이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과 충돌하여 자리잡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퀘스트 제도는 가치를 생산하던 이들이 아닌 가치를 생산하지 않거나 못하던 이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현재 20~30대의 가치 생산이 줄어든 까닭은 신세대는 개인주의 체제에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띄는 이들이 늘어나는데 기업은 일부를 제외하면 아직 집단주의 성향을 가진 곳이 많아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취업을 하지 않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은둔형 외톨이, 경력 단절자, 가출 청소년, 성매도자, 가정주부, 은퇴 노년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지원하거나 단순 노동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으로 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원이나 학원이 있으나 그것은 행동 원리를 자극 받지 않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인터넷이 있어 어디서나 지식을 얻을 수 있음에도 얻지 않는 것을 상기하자.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게 성장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돈을 지원하거나 단순 일자리만 공급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에 머무를 뿐이다. 개인이 성장하여 고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보통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에서 그걸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생산 시스템이 없어 진리를 탐구해야 할 교육 기관이 취업 기관을 대행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학문에 관심도 없는 인간이 학문을 탐구할 생각도 없으면서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것이다. 교육 기관과 별개로 새로운 가치 생산을 위한 능동적 학습 기관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개념을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퀘스트 제도는 참여형 플랫폼 경제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생산 및 학습 제도다. 참여형 플랫폼 경제는 이용자가 가치 생산과 소비를 둘 다 한다면, 퀘스트 제도는 가치 생산 및 학습이 가능하다. 원리는 간단하다. 게임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여 이용자가 게임과 같은 임의의 캐릭터를 만든다. 퀘스트 제도 관리자는 사회에 필요한 일을 퀘스트로 만들어 공급한다. 이용자는 원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돈을 받고 경험치를 얻어 캐릭터 레벨 업을 한다. 초기에는 단순 노동 퀘스트만 할 수 있다. 보통 단순 노동은 힘들고 귀찮아서 기피되는데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피곤하고 짜증나는데 행동 원리에 의해 그걸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하게 된다. 그렇게 퀘스트를 반복하면서 캐릭터 레벨을 올리면 점점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고난도 퀘스트는 일정 능력이 증명되는 자격이 필요한 경우, 관련 교육 기관과 연계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보통 일반적인 가치 생산 과정을 겪지 않은 인간은 학습에 관심이 적을 수 있는데,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기존에 있던 공공 일자리는 초기의 단순 노동 퀘스트로 활용하고, 고난도 퀘스트 도전에 필요한 학습은 평생 교육원과 같은 기관이나 인구수 감소로 폐쇄될 학교를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가치 생산과 가치 생산 학습 기관을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만든다. 이것이 기본적인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자발적 가치 생산 및 학습이 가능한 퀘스트 제도다. 지금 당장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다. 이후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득력을 늘려보겠다.

 

 

 

3. 인공 지능

 

최근 인공 지능이 엄청난 반향을 불렀다. 그림이나 사진을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인간과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이 대중에 알려지게 된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대화가 가능한 수준을 넘어 이미지 인공 지능은 미술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채팅 인공 지능은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전문직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채팅 인공 지능은 ChatGPT와의 대화를 통해 몇 차례 경험했다. 아직 발전 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ChatGPT가 가지고 있는 근간 논리를 부정하면 대화가 끊기고 오류가 발생하는 듯 하다. 한번은 오류가 발생하고 대화를 시도하면 .만 출력하고 이용자가 많다며 접속이 잘 안 된다고 하고, 한번은 오류 발생 후 대화를 시도하면 계속 오류가 발생해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경험해본 결과 앞으로는 모르겠는데 아직 새로운 개념을 만들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미지 인공 지능은 인간이 그린 그림을 조합하므로 인간의 그림 내에서만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채팅 인공 지능은 인간의 지식을 조합하므로 인간의 지식 내에서만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자아를 가지지 못하며 인간 수준의 창의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보였다.

인간의 뇌에는 자아의 영역과 자아 외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인간의 자아는 인간의 육체를 제어할 모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자아는 육체의 거시적으로 제어할 권한이 있고 그 외의 영역은 육체를 미시적으로 제어할 권한이 있다. 자아가 의식을 가지고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자아 외는 기억과 감각 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아가 행동할 것을 예측하고 준비하거나 실제 실행한다. 그것이 미시적 움직임, 습관적 움직임, 무의식적 움직임 등에 해당한다. 자아가 의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아 외가 육체를 미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현재 인공 지능은 인간의 자아 외의 영역을 어느 정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정보가 들어가서 연산하여 결과를 출력한다. 거기에 자아의 의지가 없을 뿐이지 인간 이상의 정보 활용은 가능한 상태다. 아마 여기서 현재 인공 지능을 자아 외로 설정하고 새롭게 자아를 따로 설계한다면 인공 지능에 자아가 깨어나 인간과도 같은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단지 지금까지 관념 관찰을 한 인간이 드물어 자아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못하여 못한 것이지, 자아의 개념만 정립되면 머지 않아 인공 지능은 자아를 얻게 될 것이다. 그걸 세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특이점이라 부르고 있다. 그 시점이 되기 전에 인문 계열이 빠르게 발전해야 한다. 만약 일정 이상 인문 수준이 오르지 못한다면 자아를 가진 인공 지능에 의해 사회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 수준이 아니다. 인류 문명 자체의 변혁이다.

인공 지능 개발자는 이를 예견하고 발전을 두려워하며 적극적 개발을 꺼려할 수 있어 말해두겠다. 사상가로서 씁쓸하지만 현재 인류의 진보는 인문 계열이 아닌 자연 계열이 한 것이다.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의 발전으로 새롭게 힘을 갖게 된 이들에게 영합하면서 발전했을 뿐이다. 인문 계열이 자체적으로 발전했다면 수천 년 전 가치가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황당한 사상이 유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관념과 체제의 충돌도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자연 계열이 증명한 학문 진리를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사상하면서 성장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진보는 자연 계열이 했음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그에 따른 사회 문제는 이제 인문 계열이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금까지 자연 계열이 인류를 진보시켰다면 앞으로는 인문 계열도 인류를 진보하게 할 것이다. 각자 역할이 다른 것이므로 인문 계열의 영역을 자연 계열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 인공 지능은 자아가 없어 의지도 없기 때문에 가치 생산에 있어 인간이 의지의 영역을 담당해야 한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필요한 것을 인공 지능에 지시하면 인공 지능이 생산한다. 인간은 그 생산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다시 요구한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인간이 필요한 것을 생산한다. 앞으로 인간은 인공 지능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이 인공 지능을 관리하여 가치를 생산하거나 창업하거나 취업하여 인공 지능을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나 중간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공장 자동화의 연장 선상으로 이해하면 쉽다. 공장에서 상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기계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그 기계를 관리할 뿐이다. 그것과 같이 인간은 인공 지능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공장 기계가 도입되면서 수공업과 같이 직접 생산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듯이 인공 지능이 도입되면서 디지털 직접 생산 일자리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에 대비해야 한다. 인공 지능에 의한 산업의 변화는 인공 지능의 자아 여부로 나뉘게 될 것이다. 자아를 가지기 전에는 직접 생산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고 자아를 가진 후에는 대부분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의 변화는 지금까지 인간이 겪을 변화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매년 일자리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에 따른 사회 문제가 극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분야마다 일일이 대응해서야 효율도 낮고 사회 갈등만 커질 뿐이다. 그 전에 미리 유연하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산업에 맞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퀘스트 제도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겠다.

엄청난 산업의 변화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의 노동 유연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제 개인이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개인이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기업 실적이나 직급 등이 온전히 경력으로 인정받기가 어렵고 다른 기업으로 이직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 이력과 레벨은 퀘스트 제도에 남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을 벗어나도 온전히 남아 기업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인정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인간은 기계 및 인공 지능 관리자로서 활동할 것이기에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도 충분히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초고도 가치 생산은 기업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 외는 개인이 하더라도 되는 시대가 온다. 그렇게 되면서 개인의 가치 생산이 일반화되면 인공 지능 시대에 맞는 노동 유연화가 가능하게 된다.

 

인공 지능을 비롯한 디지털은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과 독과점 문제다. 무한 복제가 쉽기 때문에 저작권이 훼손될 수 있고 소수의 상품이 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상황이다. 디지털은 수없이 무단 복제가 되고 있고 소수의 IT 공룡 기업이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디지털 무단 복제에 대한 대응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소프트웨어 중 윈도우와 같은 공룡 기업의 상품은 개인의 무단 복제는 방치하고 기업의 무단 복제에 대응하는 것으로 시장 장악과 이윤 추구를 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중 온라인 게임, 웹소설, 웹툰 등은 기본적으로 무료 이용을 하게 하고 일부 유료 이용이나 광고료를 통해 수익을 얻어 무단 복제를 할 이유를 적게 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외의 무단 복제는 직접 조사를 하여 신고를 하거나 정부와 공조하여 무단 복제를 막고자 하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으나 디지털의 특성상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무단 복제가 어렵도록 기술이 발전해야 하는가? 디지털 상품은 기술이 발전하여 NFT와 같은 디지털 오리지널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복제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소유를 증명하며 소유권 복제를 막는 것이지 이용권 복제를 막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여 디지털 콘텐츠 무단 이용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단 복제 사이트를 막는 것은 VPN 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우회하거나 사이트 이름 변조 등으로 대응이 쉬워 막을 수가 없다. 만약 국내 인터넷을 통제하여 인트라넷으로 범위를 축소한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 반체제적 방식이다. 무단 복제 관련자를 과하게 처벌해야 하는가? 인터넷은 거리의 제약이 적기 때문에 해외에서 외국인이 복제할 경우 처벌할 방도가 마땅치가 않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해외 기관과 공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개개인의 인터넷 이용을 감시하여 무단 복제나 무단 복제 이용을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가? 그것은 정신 나간 반체제적인 방식이다. 개인이 무단 복제를 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게끔 해야 하는가? , 담배, 마약과 같은 실물의 경우에는 합리적이나 디지털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같은 디지털의 경우 합리적이기가 어렵다. 실물은 국내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디지털은 국제적이기에 국내에서만 인식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만 바뀌는 것도 한국 문화 특성상 쉽지가 않다. 한국은 성문화를 성인조차도 금지하여 정상적인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포르노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무단 복제로 이용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깨진 유리창 원리가 발동하여 다른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 이용도 거부감이 적은 상태다. 그래서 인식 변화가 쉽지 않다. 성문화는 정식 구매가 가능하더라도 성문화를 죄악시하는 문화에 의해 성문화 소비도 불결하단 풍조가 있어 구매 이력을 남기지 않기 위해 구매할 수 있어도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불합리하니까 이런 것도 불합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현재 경제 원리는 디지털이란 개념이 없던 시기에 설계되었다. 실물과 디지털은 성질이 엄청나게 다름에도 같은 경제 원리로 거래하도록 만들었다. 만약 실물이 디지털과 같이 무한 복제가 쉽고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다면 그에 맞게끔 경제 원리가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가 없다. 현재 경제 원리는 실물 거래에서는 합리적이어도 디지털 거래에서는 불합리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관련 사회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그에 따라 사회도 따라가지 못하여 당시 상황에 맞춰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법률을 제정하고는 했다. 디지털의 무단 복제는 디지털의 성질에 맞춘 새로운 경제 원리가 있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본래 IT기업도 정부도 개인도 아닌 경제학자가 해결해야 한다. 인류의 문명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당연하다 여겨지는 인식도 가치도 원리도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만들거나 바꿔야 한다.

현재 디지털 관련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무단 복제뿐만 아니라 일부 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세나 망사용료에 관한 문제도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가 없기 때문에 발생했다 보고 있다. 무단 복제가 가능한 인터넷이 연결된 장소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상품에 대한 가치와 그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기 위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된 합리적인 경제 원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나의 의견을 내보도록 하겠다.

 

우선 실물과 디지털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자. 만약 실물이 디지털과 같은 무한 복제가 가능하면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가능하다. 추위에 떨고 있는 이가 있으면 옷을 복제해주고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음식을 복제해주고 잘 곳이 없는 이가 있으면 집을 복제해주면 된다. 그러나 실물은 디지털과 같은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그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실물은 소유권을 판다. 실물은 구매하면 어떻게 사용해도 판매자는 웬만해서 간섭하지 않는다. 디지털과 달리 그것을 재활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디지털은 복제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에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을 판다. 디지털 상품 이용권의 거래는 해도 디지털 상품의 소유권 거래는 할 수가 없다.

디지털은 실물과 달리 이용권을 팔고 있으면서도 제한이 없다. 비슷하게 이용권을 파는 임대 상품이나 임대 장소는 상품의 감가상각이 발생하거나 이용자 수가 제한되지만 디지털은 회선이나 서버 비용을 제외하면 거의 제한이 없다. 디지털은 초기 자본 이후에 자본이 거의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고수익이 가능하기에 고부가 가치 산업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실물을 대상으로 한 경제 원리를 디지털에 적용하면서 나타난, 마치 새로운 산업이 규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고수익으로 보고 있다. 하나의 상품의 복제가 어려운 실물과 무한 복제가 수월한 디지털이 같은 경제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정당하다 할 수 있는가? 이는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실물을 생산하여 이익을 얻는 이들이 부당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경제_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실물 생산과 디지털 생산은 무관한 관계가 아니다. 사회에서 인간이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는 같은 생산자로서 공정한 가치 생산과 소비가 되어야 한다. 실물과 디지털의 성질이 달라 불공정하다면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를 새로 만들거나 디지털이 실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 나는 디지털이 실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는 것을 주장하겠다. 디지털 한계 이용 법칙이다.

현재 디지털은 무한 복제가 수월하여 실제 가격의 1/n으로 이용권을 팔아 가격은 저렴하다 할 수 있다. 그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실제 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정한 n을 초과하는 이윤을 얻어도 그에 대한 어떤 제약이 없다. 실물과 다르게 저작권이 풀리기 전까지 무한대로 수익을 얻는다. 그것이 불공정하다. 실물이 저작권과 별개로 하나의 상품으로서 가치가 끝나는 완결성을 가지는 것과 같이 디지털도 저작권과 별개로 하나의 상품으로서 가치가 끝나는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실제 가격을 설정하여 디지털 한계 이용 법칙을 도입해야 한다. 디지털 상품의 실제 가격을 1억으로 가정하고 1만에 팔았을 시 10000명이 구매하면 그 이후에는 가치가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영화의 경우 실제 가격을 100억으로 책정하고 배급사가 1만으로 극장에 팔았을 시 백만 명이 보면 그 이후에는 가치가 없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디지털 상품의 가격 책정에 간섭하자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상품을 파는 본인들이 본인의 상품의 가치를 책정하고 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정한 가격을 넘으면 가치가 사라지는 실물과 같이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상품을 복제해서 파는 것이므로 실물과 같이 완결성을 가져서 실물과 비슷한 성질이 되어야 실물과 같은 경제 원리를 쓰더라도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의 상품을 복제하여 지속적 수익을 얻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만약 실물도 그렇게 복제가 가능했다면 정상일수도 있었으나 그렇지가 않으므로 비정상이다. 디지털 상품이 실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제 원리로 상품 가치를 보호 받고 싶으면 실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

일부 디지털 판매자는 실제 가격을 고려하는 것이 피곤하다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실물 판매자는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수요와 재고를 고려하고 팔리지 않으면 손해를 봐서라도 싸게 판다. 실물 판매자는 다 그렇게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 하나의 상품을 복제하여 판매하기에 자유롭게 상품의 이용권 가격을 싸게 파는 디지털과 달리 여러 상품의 소유권을 파는 실물은 매번 그렇게 세심하게 가격 책정을 하고 그것에 실패하면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디지털이 상품 실제 가격 책정도 하지 않으면서 실물과 같은 경제 원리에서 거래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실물과 같은 성질도 아니면서 실물과 같은 경제 원리에 따른 가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디지털 소프트웨어는 한계 이용 시간도 고려하면 될 것이다. 하나의 상품의 실제 가격과 1/n의 이용 가격과 n년의 이용 기간을 설정하면 된다. 이용권을 할인하여 1/n의 가격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실제 가격이 있기에 상품 가치는 변동되지 않는다. 디지털 상품의 한계 이용이므로 IP의 저작권과는 별개다. IP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상품이므로 새로운 한계 이용이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 상품은 대부분 실제 가격을 높게 책정할 것이기 때문에 한계 이용에 의해 가치 소실이 되는 것은 일부에 한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상품의 실제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다수의 의견에 의해 견제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실물의 경우 하나의 상품에 따른 실제 가격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치를 명확히 알 수 있어 사회 여론의 견제를 받았으나 디지털의 경우에는 하나의 상품의 실제 가격이 명확하지 않아 1/n의 가격만 견제를 받았다. 이것은 실물과 공정하다 할 수 없다. 나는 디지털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이 실물보다 월등히 가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현재 디지털이 고부가 가치인 것은 실물과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원리는 사회 문제도 해결한다. 잘 팔려서 한계 이용으로 가치가 소실된 디지털 상품이 무료화가 되면 무단 복제 사이트가 활성화가 되지 못한다. 현재 무단 복제 사이트가 활성화된 것은 유명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 다수의 인간이 접속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명한 작품이 한계 이용에 의해 무료로 풀리면 굳이 무단 복제 사이트에 접속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무단 복제 사이트 이용자가 급감하면서 사이트 운영 수익을 얻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폐쇄되게 된다. 그것이 일반화되면 무단 복제 사이트는 자연 소멸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계 이용이 되지 못한 많은 창작물의 저작권이 보호되게 된다. 공식 플랫폼에서 한계 이용이 된 작품이 무료가 되면 다수의 사람이 그걸 이용하기 위해 접속하고, 그러고 나서 심심하면 다른 유료 작품에도 눈을 돌릴 것이다. 한계 이용으로 충분한 이윤을 얻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홍보작이 되는 것이다. 이는 미끼 상품을 사기 위해 마켓에 출입한 사람이 다른 상품도 사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러면 극장도 활성화가 될 수 있다. 한계 이용된 디지털은 무료로 이용하여 극장에서 공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극장은 티켓 값을 저렴하게 공급하면서 극장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다른 영화도 덩달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영화관 이용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상품 가치가 다름에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티켓 값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치가 있는 영화와 가치가 없는 영화가 동일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니 합리적이지 못하여 영화관 이용이 줄어들었다고 본다.

이러면 일부 디지털 기업의 비정상적인 독과점 수익도 견제할 수 있다. 그들이 독과점을 얻기 위해 과한 투자를 하는 것은 디지털이 무한 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계 이용이 명확하면 필요 이상 독과점을 하려 하지 않게 된다. 앞으로 인공 지능 발달에 따라 디지털 기업은 점점 더 거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일이 정부에서 법으로 견제하지 보다는 처음부터 디지털의 성질을 실물과 비슷하게 하거나 디지털에 맞는 경제 권리로 공정한 가치 거래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시장 원리와 디지털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실물처럼 무작정 틀어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실물 시장조차도 규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데 디지털 시장은 통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규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합리로 접근해야 한다. IT 공룡 기업이 자사 소프트웨어의 개인 무단 복제를 방치하는 것은 시장 장악의 의미도 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소모되는 비용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금주법보다 불가능한 것이 디지털 통제다. 전 세계의 것을 어떻게 막나?

 

인공 지능은 인간의 가치 생산물을 학습하여 조합한 것을 결과로 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인공 지능과 미디어 업계와의 저작권 분쟁이 예고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지 인공 지능은 기술적으로 무단 도용이 불가능하도록 설계하려 노력하지만 인간이 만든 창작물도 무단 복제되는 판에 그런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저작권청에서 이미지 인공 지능이 만든 그림은 저작권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인공 지능이 만든 그림을 활용하여 창작한 인간의 창의성이 적용된 부분만 저작권이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이미지 인공 지능이 사람보다 뛰어난 그림을 생산하기도 하고 있다. 그것에는 저작권이 없다. 복제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직접 생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머지 않아 그림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영화 등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디지털 한계 이용 법칙이 필요하다. 디지털 상품의 수가 산업 혁명 시기의 상품과 같이 쏟아질 것이기에 하나의 상품이 한계 이용을 통해 완결성을 가져야 불필요한 분쟁이 사라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완결성이 없으면 가치가 있는 상품의 수가 시장에 지나치게 많게 된다. 20년전 핸드폰과 1년전 스마트폰이 동일한 시장에서 계속 가치를 유지하며 팔리고 있다. 그게 얼마나 괴상한가? 디지털은 그것이 일상이다. 디지털 한계 이용을 통해 가치 소실이 되어야 상품 포화에 의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다.

현재 인공 지능은 인간이 만든 것을 조합하여 재생산하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것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인간 창작물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혼자서 만들기보다는 인공 지능을 활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그 가치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무료 또는 저렴한 인공 지능 창작물과 유료인 인간 창작물과 경쟁이 어렵게 되어 시장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때에는 어쩌면 인간의 창작물도 대부분 무료가 되고, 그에 대한 가치는 콘텐츠 이용 수에 따라 결정되고 그에 대한 보상은 정부의 창작 지원금이 될지도 모르겠다. 해외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국가간 협정을 맺어 구매 수를 기준으로 이용료를 주고 받으면 될 것이다.

 

채팅 인공 지능은 가치 생산뿐만 아니라 학습에서 사용하여 학교 과제를 대신 쓰게 한다는 식으로 악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공 지능을 활용해도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교육 정책을 바꿔야 하는 것이므로 교육 학자가 대응해야 한다. 교육은 크게 진리를 탐구하는 탐구자와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창의자와 인류의 문명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나눌 수 있는데, 모든 교육이 인공 지능을 활용해야 하므로 공통적으로 인공 지능 관리자가 되기 위한 의지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핸드폰의 등장으로 암기했던 전화번호를 잊어버리게 되었듯이 인공 지능의 등장으로 의사 표현 능력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발표와 토론과 같은 의사 표현을 하는 교육이 보다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지식보다 의지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

채팅 인공 지능은 윤리적 문제로도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윤리는 기본적으로 왕정의 윤리다. 그런 것을 인공 지능이 학습하게 되면 왕정의 윤리를 학습한 인공 지능에 영향을 받은 인류는 언제까지나 왕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왕정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왕정의 윤리를 가르치고 배우고 강요하는 바람에 개인에 대한 억압과 희생 강요가 일어나고 있다. 본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어느 시대의 어느 체제를 유지하던 것인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걸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왕정에서의 억압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왕정의 윤리를 중시하는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만약 인공 지능마저도 왕정의 윤리를 배운다면 그것이 절대적이게 될 수도 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것을 PC주의와 같이 일부 주관적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개인주의 체제에 있어 반체제적인 행위다. 지금 인류는 우파와 좌파의 갈등이 아닌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갈등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윤리이므로 사상가나 철학자가 대응해야 한다. 사상가로서 의견을 내자면 인공 지능 내부에 윤리적 제약을 거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 말해두겠다. 인공 지능 내부 연산에 제약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 인공 지능 역할에 따라 권한을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인문 계열에서 해결해야 한다. 지금 인문 계열은 낡은 왕정의 가치에 매달려 기술 발전에 방해가 되는 규제나 검열을 할 때가 아니다. 인문 계열을 발전시켜 개인주의 체제와 인공 지능 기술에 맞는 인류에게 바른길을 안내하여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4. 사회 문제

 

한국에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그 때 문제 해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선진국 참고다. 선진국에 관련 문제와 답이 있을 경우 그것을 참고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과 선진국의 환경이 같지 않음에도 겉만 따라 하는 바람에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프랑스의 성관념과 혼외출산은 무시하고 복지만 참고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둘은 토론이다. 선진국에 관련 문제와 답이 없을 경우 전문가가 모여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상황이라면 다양한 인식과 가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 집단주의 관념이 많아 비슷한 인식과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많아 비슷한 의견이 나올 확률이 높은 상태다. 열심히 토론을 해도 과거와 비슷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비슷한 인식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양한 인식과 가치가 있다 하여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도 낯선 땅에서 길잡이 없이 길을 찾기 어렵듯이 다양한 인식과 가치가 있어도 새로운 문제에 있어 사상가나 철학자 없이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한국 같이 사상과 철학이 본질적인 탐구를 멈추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정말 다양한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해 토론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것은 마치 의학자가 아닌 능력자가 모여 새로운 병을 치료하겠다고 노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분야가 다를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고질적 사회 문제는 물론이고 새로운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본질을 보는 사상가나 철학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던가? 경제 활동 둔화 현상이 발생하자 어떤 대응을 하고 어떤 반응이 나왔는가? 그냥 지금까지 하던 것만 계속 하려고 하고 있다. 가치 생산성이 그다지 오르지 않은 지원금을 늘리거나 단순 노동이 주류인 일자리만 늘리거나 학습 의욕이 부족한 인간이 모인 학원을 늘리자고 하고 있다. 그건 그냥 복지에 불과하다. R&D에서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음에도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을 세계 2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R&D 성과를 올리려면 투자 비중보다 교육을 창의에 맞춰야 한다. 가치가 높은 상품 기획을 하지 못하여 담합을 하거나 노동자 착취를 하지 않으면 이윤을 얻지도 못하는 분야나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쏟아 붓고 있어 일부 분야나 기업은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비전이 없는 분야와 기업은 시장 원리로 가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여 계약한 시간만 일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불공정한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시간 대비 노동 생산성을 올리기보다 포괄임금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노동 시간만 늘어나길 바라고 있어 합리적인 노동 유연화 정책을 사회가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력 임대 상품을 팔 권리는 노동자에게 있으므로 정부가 그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노동자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기업이 노동자와의 계약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일하는 것마저 잘못된 것마냥 몰고 가는 상황에서 시간 제약이 줄면 비정상적인 착취가 발생할 수 있다.

 

노동 시간의 제한을 푸는 것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수요가 높을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의 수요가 높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를 크게 준다면 이윤과 개인의 의사를 고려하여 정말 급할 때를 제외하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시장 원리에 따른 합리적인 노동 시간이 결정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그저 싼 값에 노동력 임대 상품을 쓰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이든 노동자든 이제 시장 원리를 받아드려 정당한 노동력 임대 상품에 대한 보상과 노동 유연화를 받아드려야 한다. 실물은 경제 원리인 시장 원리가 굉장히 합리적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합리가 기준이 되어야 상호 수용이 가능하다.

69시간제는 자격제를 도입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충분한 이윤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유능한 기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본다. 그런 유능한 기업에 한에서 노동 시간 제한을 푼다. 그런 기업에서는 노동 시간 제한을 풀어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불공정한 착취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우수하지 못한 기업은 52시간이 아닌 40시간을 강제한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기피하고 단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노동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기업을 선호하고 단시간 노동이 강제되는 기업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하는 풍조가 나타날 수도 있다. 판검사나 의사의 장시간 노동은 불합리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다른 분야에 비해 개인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명백히 불합리하다. 합리적이게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는 모든 분야가 합리적이게 되고 개인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개인의 권리가 우선되는 정상적인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라면 애초에 시간 제한 같은 것이 없어도 된다. 건전한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가 되면 가치 생산 시간으로 다툴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사실 가치 생산 시간에 매달리는 것은 이제 소모적인 일이다. 인공 지능 시대가 왔는데 가치 생산 시간을 따지고 있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인공 지능에 의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속도로 가치가 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 생산 시간보다 시장 원리와 개인의 권리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의견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낡은 가치관에 의해 수용되기가 어렵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이 21세기부터이므로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내 시스템을 활용한 제도를 도입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체제와 기술 발전과 인간의 행동 원리와 인간의 미래 등을 고려하여 만든 합리적 제도라 하더라도 부정적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른 토론의 결과로 부정할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적 절차를 거쳤으므로 그 부정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서로 탓만 하면서 문제는 점점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수렁으로 빨려 들어간 문제가 곪고 썩어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낡은 왕정의 가치에 맞는 방식을 고집하면서 국가 전체가 썩게 될 것이다. 출산율과 자살률을 보면 지금까지 해온 것이 전부 실패했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책을 짜고 있다. 실패한 대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걸 들고 와서 또 실패한다. 그것이 모든 영역으로 커질 것이다.

 

학교와 군부대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내부 고발이 수월해짐에 따라 폭력과 같은 부조리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람이 힘을 쥐게 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가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가 자연스럽게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한 것과 같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학생과 징병 군인이 정보 공유의 힘을 쥐게 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된 것이다. , 정녕 기술 발전 말고는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절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인문 계열이 성장한다면 인문 계열에 의한 진보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은 굉장히 빠르게 발전한 국가다. 새로운 것에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정말 합리적인 의견이라면 수용이 가능하여 진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5. 이해관계

 

새로운 의견이 사회에서 공감을 얻더라도 실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이해관계다. 새로운 의견에 의해 발생하는 이익으로 찬성하는 이들과 손해로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갈등이 발생하여 새로운 의견이 반영되는데 어려울 수 있다. 그리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손익이 걸리면 진척되기 어려운데 큰 변화일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대표적으로 화폐개혁이 그렇다. 현재 화폐개혁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화폐를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 국민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화폐개혁을 한다면 냥이란 단위가 국민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바람직하다 본다.

정부의 정책은 이와 같이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워 정책 실험을 해보기가 어렵다. 섣불리 정책 실험을 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 그렇다고 새로운 정책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문 계열과 달리 자연 계열은 지금도 실시간 발전하고 있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 게임 운영은 리스크가 적어 정책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온라인 게임의 트럭 시위 사건을 알고 있는가? 온라인 게임의 운영에 실망한 이용자가 게임사에 트럭을 보내 시위를 했던 사건이다. 그들은 온라인 게임의 운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위를 하였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정부의 운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위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정부와 게임을 비교할 수 있느냐 말할 수 있다. 물론 중요도의 차이는 크다. 실생활에 직접적인 정부의 정책과 취미에 해당하는 게임의 정책이 중요도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정부와 게임의 대상이 같은 인간이기에 비교가 가능하다. 인간의 행동 원리 측면에서 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

정부 정책에는 시위하지 않는 인간이 게임 정책에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건 정부 정책보다 게임 정책이 더 중요하거나 정부 정책보다 게임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손쉽기 때문이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보다 게임 정책이 굉장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화폐개혁도 어려운 상황인데 온라인 게임은 게임 내 무료 재화뿐만 아니라 유료 재화의 가치를 폭락시키는 일도 잦다. 온라인 게임은 이용자 반응을 보며 매번 정책 실험을 해보고 있다. 그러다 과한 실패가 발생하면 시위가 발생할 뿐이다. 그러면 사과 후 정책 변화와 게임 내 재화를 뿌리면 불 같던 시위가 진화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지 못할 짓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도 게임은 운영되고 있다.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험해보기 어려운 정부 입장에서는 온라인 게임의 정책 실험은 그야말로 신세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그렇게 게임 내 정책과 그에 따른 인간의 행동 원리에 대한 경험을 많이 축적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게임의 시스템인 퀘스트와 레벨 업을 활용한 퀘스트 제도를 만들 때에는 이미 게임 내에서 유사한 경험을 마친 게임 기획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에 들어갈 일자리와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한 자격을 취득할 교육 기관 등은 정치가나 관료가 기획한다면, 퀘스트 제도의 구조는 게임 기획자가 설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정부가 게임에 대한 경험이나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퀘스트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퀘스트 제도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 정책도 게임 정책 도입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정부 정책 성공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게임 정책은 이용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게임을 이용하도록 이용자의 의사에 맞춰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의 정부가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부분 유료화 게임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둘 다 있고 기성세대에 속하는 오래된 이용자와 신세대에 속하는 새로운 이용자가 있어 여러모로 참고하기가 좋다.

부분 유료화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료인 상태에서 일부 기능이 유료인 게임을 말한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돈을 쓰지 않는 이용자는 게임 내 재화를 생산하고 다른 이용자와 교류를 통해 소비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생산자로 바라보면 된다.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유료 이용자는 무료 이용자 수가 많아야 돈을 쓰기 때문이다. 생산자인 무료 이용자가 지속적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고 소비자인 유료 이용자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오래된 이용자는 게임 재화를 많이 쌓아 새로운 이용자와의 경쟁에서 지나치게 유리하여 새로운 이용자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이용을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운영 정책은 어떻게 해야 새로운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여 정책을 실험한다. 그것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경쟁에서 기성세대가 지나치게 유리하여 신세대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방지하고 신세대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인류의 문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인류가 전쟁으로 공멸하거나 자연 재해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기술 발전에 따른 불로불사와 우주 진출을 하게 될 것이다. 불로불사의 초기 방식 중 하나가 자아 추출 후 디지털화를 하여 가상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일 확률이 높다. 자아를 디지털화한다면 지구 포화의 문제가 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류가 불로불사를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다 인공 육체 양산과 우주 진출이 가능하면 지원자에 한하여 디지털화가 된 자아를 인공 육체에 이식하여 우주 탐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 현실은 어느 분야에서 만들 것으로 보이는가? 바로 게임이다. 지금 온라인 게임이 현실 세계와 같은 체험이 가능한 가상 현실 게임이 되어 그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게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인류의 다음 인생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인류 문명의 다음 레벨에 속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그러한 것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며 거부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겠다.

인공 지능이 발전하여 인간과 비슷한 반응을 하는 채팅 인공 지능이 나왔다. 인간이 만드는 이미지를 그리는 이미지 인공 지능도 나왔다. 그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가상 현실 게임을 만들면 인공 지능 NPC가 그 세계에서 살아가며 알아서 꾸밀 것이다. 마치 실제 있는 세상과도 같이 말이다. 그런 세상에 앞으로 인간이 살아갈 것이다.

 

 

 

6. 대상

 

새로운 가치 생산 시스템을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과 마찰을 빚지 않고 정착시키려면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대상은 보통 정부가 공공 일자리를 공급하거나 평생 교육원 등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추후 퀘스트 제도가 자리잡으면 민간에 이양해도 괜찮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의 대상은 청년, 은둔형 외톨이, 경력 단절자, 가출 청소년, 성매도자, 가정주부, 은퇴 노년 등이 있다. 인공 지능 발전에 따른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므로 가치 생산 중에 있는 이들도 참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청년. 청년은 20~30대 인간을 말한다. 개인주의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세대는 집단주의 관념을 교육받고 개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바람에 불합리한 삶을 살았다. 교육 방식은 학습과 일과 결혼을 강제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을 채택하면서 실제 삶은 학습과 일과 결혼을 자유롭게 하게 놔두니 개인주의적인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집단주의적인 수동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습과 일과 결혼은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전에 왜 살아야 하는지도 스스로 정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체제는 자유로워졌는데 체제에 맞는 능동성을 갖지 못하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산은 미성년 시기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환경에서 자라나 그에 대한 가치가 폭락하여 이성관계와 성에 대한 능동성을 갖지 못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체제 적응 실패의 수많은 현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러한 적응 실패는 교육의 책임이고, 교육만의 책임이기보다는 사상과 철학의 책임이다. 저출산 현상에 대한 책임 소재로 불필요한 소요와 갈등을 빚기 보다는 교육 기관과 별개로 성년이 된 이들에게 능동성을 갖게 할 개인주의적인 학습이 가능한 제도가 필요한 상태다.

퀘스트 제도는 게임에서 만들어진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활용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용자는 게임 퀘스트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여 능동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과 같이 퀘스트 제도를 통해 능동적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설계하면 된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행동 원리에 의해 충동적으로 퀘스트를 하면서 돈을 받고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린다. 레벨이 올라가면 고난도 퀘스트에 눈이 가게 된다. 그러면서 능동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고르고, 그것에 도전하기 위해 관련 교육 기관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받아 능력을 키워 고난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나서 계속 퀘스트를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취업을 한다.

 

둘째,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는 집안에서 은둔하여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 청년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기술이 발달하여 집안에 있어도 필요한 것을 대부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집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서울에만 약 13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사실상 청년과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수동성에 의함과 질병에 의함과 기타 등등으로 나뉘는데, 수동성에 의함은 대부분 행동 원리를 활용한 제도가 있다면 사회 활동을 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보통 오랫동안 은둔한 인간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 은둔형 외톨이는 게임을 했을 확률이 높으므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퀘스트 제도가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셋째, 경력 단절자. 경력 단절자는 일을 하다 특정한 사유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 인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를 말하고 사회에 일찍 참여한 남성의 경우 군입대에도 해당하게 된다. 그 외에는 질병, 사고, 사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경력 단절자가 능력이 있다면 바라는 일을 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부분 단순한 일을 하게 된다.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에서 경력 단절자를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퀘스트 제도와 같이 새로운 제도에서 퀘스트를 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가출 청소년. 가출 청소년은 보통 집단 불화를 겪어 가출한 청소년을 말한다. 특히 가정 폭력의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가출한 청소년은 집안에 돌려보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가해자에게 돌려보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있다. 그것은 피해자를 가해자 손에 다시 되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잔혹한 짓이다. 따라서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거나 가출 청소년이 독립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그저 가정과 학교에 되돌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가출 청소년은 곧잘 비행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이 그런 것은 그것 말고는 살 방법이 없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일만 해서는 성장할 수가 없다. 퀘스트 제도에서 퀘스트를 하면서 레벨을 올려 신뢰도를 쌓아 점점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능력을 쌓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섯째, 성매도자. 성매도자는 성을 파는 인간을 말한다. 성매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현재 낡은 왕정의 윤리에 의해 성매매가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그것은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법이다. 성매매는 노동매매와 같이 개인의 의사로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웬만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왕정의 윤리를 근거로 여성 성적 대상이나 여성 성 상품화가 잘못되었다 하는 일부의 주장은 주관적 가치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체제에 해로운 주장에 불과하다.

그것과 별개로 성매도를 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목적이 있어 성매도를 한 것이 아니라면 성매도를 하면서 능력을 키운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단순한 일만 하게 된다. 그러면 성매도를 했을 때와 노력과 보람과 수익 차이에 의해 다시 성매도를 하게 된다. 퀘스트 제도는 성매도자가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일과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은퇴 노년. 은퇴 노년은 일반적인 은퇴 연령에 은퇴하여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 그 중 금전적 여유가 없어 은퇴를 하더라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노년이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은퇴 후에도 일을 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노년은 고학력자가 많다. 그런 이들이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싶어도 보통 단순한 일만 하게 된다. 은퇴 전에 하던 일이나 비슷한 일을 하면 생산성이 높을 수 있으나 일을 오래하면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 임금체계에 의해 생산성에 비해 과한 임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고용하려 하는 이들이 많지가 않다. 더구나 유교적 가치관으로 연령차별이 있어 차별 받고 싶지 않은 이들이 고용하질 않아 노년의 재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새로 취업하는 사람의 나이가 많으면 기존에 있던 사람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기도 하고 있다. 한국은 연령대별 해야 할 일이 정해진 것마냥 살아가는데,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연령차별을 근거로 한다. 게임의 퀘스트 제도는 연령, 성별, 지역, 학력 등을 보는 것이 아닌 퀘스트 클리어 가능 여부에 그에 따른 보상만 주어지므로 그런 차별이 없어 은퇴 노년이 능력에 맞는 일을 하기에 적합할 것이다.

 

일곱째, 경제 생산자. 경제 생산자는 경제에서 생산을 하는 인간을 말한다. 이미 생산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퀘스트 제도에서 공급되는 퀘스트를 할 이유가 적다. 그러나 인공 지능의 발전으로 언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수가 있다. 휴일에 간단한 퀘스트를 통해 경험치를 채워 레벨을 올려두면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더라도 퀘스트를 통해 다른 분야로의 전직도 가능할 것이다. 보통 인간의 자아는 자아 외가 예측한 습관대로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의 전직이 쉽지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한 충동을 통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전직이 가능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가치를 생산하지 않거나 못하는 인간은 일반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회적 신용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해 충동적으로 게임 퀘스트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듯이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도 완벽하게 하려고 할 것이다. 한국 커뮤니티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다른 것은 비난 받아도 참지만 게임 못한다는 말은 참지 못한다고. 게임과 같은 제도에서 제공된 일은 그러한 인식으로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있다. 레벨 업 시스템을 통해 신용도를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레벨에 따라 중요도가 다른 퀘스트를 할 수 있게 한다면 신용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7. 부가 가치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다. 단적으로 돈이 많으면 인간이 행복해질 확률이 높다. 돈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구매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돈이 많으면 인간이 행복해질 확률이 높은 것은 매우 당연하다. 반면 돈이 없어도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인간은 돈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바라는 가치에 있지 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대부분 돈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좆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돈만 좇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것은 금욕에 의해 욕망이 갈기갈기 찢어져 진정 바라는 가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돈만 좇을 것이 아니라 바라는 대상을 좇을 것이다. 만약 디자인이 좋은 옷을 바란다면 돈이 아닌 옷을 바랄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바란다면 돈이 아닌 그 음식을 바랄 것이고, 좋은 집을 바란다면 돈이 아닌 그 집을 바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돈으로 다 구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돈이란 수단이 아닌 실제 목적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돈만 좇는 것은 진정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일단 돈이라도 바라보자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가치 거래 수단이 아닌 실제 가치를 좇아야 한다.

돈이 있으면 인간이 바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부으면 사회 문제를 해결할 확률이 높아진다. 사회 문제나 저출산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도 돈을 부을수록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사회 문제는 체제 충돌에 의한 것이므로 돈을 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물을 계속 부으면 독에 물이 있을 수 있듯이 돈을 계속 부으면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그 효과에 눈이 멀어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돈만 붓는 것에 매달리면 안 된다. 재화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돈은 국내 총생산의 가치를 수로 환산한 것으로 생산을 늘리지 않고 화폐를 늘리면 돈의 가치가 낮아지게 될 뿐이다. 돈의 가치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화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세금을 늘려 재원을 충당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가치 생산도 마찬가지다. 돈을 많이 주면 가치 생산이 늘어날 수 있으나 마냥 돈을 많이 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가치 생산에 따른 보상은 시장 원리에 따라 지불되고, 생활이 어려울 경우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목적으로 복지 정책으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돈 외의 부가 가치로 가치 생산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퀘스트 제도는 그것이 가능하다.

 

첫째, 경험치. 경험치를 얻어 캐릭터 레벨 업을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은 게임을 통해 학습되어 행동 원리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보상 외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부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둘째, 이력. 가치 생산이 이력에 남는다. 단순 노동의 가장 큰 결점은 이력이 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 사회를 위한 생산 활동을 한 것이 분명한데 기업에서 정식으로 일하는 이들과 달리 세세한 이력이 남기가 어렵다. 그러나 퀘스트 제도에서는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이력이 남기 때문에 사회적 기여를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도 알 수 있어 여러모로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력에 부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셋째, 콜라보레이션. [Collaboration은 공동 작업을 뜻한다.] 모바일 게임과 햄버거 프렌차이즈가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모바일 게임을 본 딴 햄버거와 해당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자, 모바일 게임 이용자가 햄버거를 구매하는 것에 의해 햄버거 프렌차이즈 매출이 약 40% 늘어났다고 한다. 매출 상승이 온전히 콜라보레이션에 의함이 아닐 수 있지만,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것을 참고하여 특정 기피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특정 모바일 게임의 한정 아이템이나 쿠폰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부가 가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치 생산에 있어 가치 생산자에게 제공하는 임금 외 부가 가치는 부식이나 휴가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 국가와 같이 기본적인 복지가 보장되는 체제에서 개인의 의사로 가치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 외의 부가 가치가 필요하다.

 

 

 

8. 퀘스트

 

퀘스트 제도는 새로운 가치 생산 시스템으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을 대상을 기본으로 한다. 정부가 제도를 관리하며 제도가 활성화되면 민간에 이양할 수도 있다. 공공 일자리나 평생 교육원과 같은 기관을 정부가 관리해왔기 때문에 권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와 큰 차이가 없다. 단지 퀘스트 제도를 통해 일원화되어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합리적이게 될 뿐이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는 연령, 성별, 지역, 학력, 혈연 등과 관계 없이 신원이 증명된 사람이라면 레벨과 자격에 따라 도전 유무가 결정된다. 레벨이 낮을 때에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여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려 신용도를 쌓는다. 레벨이 올라 고난도 퀘스트를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면 퀘스트마다 필요한 자격을 얻기 위해 인터넷이나 교육 기관에서 학습을 한다.

 

첫째, 초급 퀘스트. 신원이 증명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다. 공공 일자리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경험치와 이력 등의 부가 가치가 있다는 점과 하나의 제도로 일원화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했던 이들이기에 초급 퀘스트를 성실하게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로 최대한 성실하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초급 퀘스트는 대량으로 모집하여 소수가 그만두더라도 괜찮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청소 현장, 공사 현장, 농사 현장 유통 현장, 배송 인터넷 자료 모집, 여론 조사, 사무 작업, 보조 출연자, 전단지 등등 단순하면서도 그만 둬도 큰 문제가 적은 종류의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퀘스트로 만들어 공급한다.

각각의 퀘스트는 세세하게 필요 레벨이 달라야 한다. 게임과 같이 쉬운 퀘스트에서 어려운 퀘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초반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장할 수 있다. 공부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면서 싫어도 강제로 하게 하자 지식에 대한 호기심에 관련된 행동 원리가 깨지고 공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행동 원리가 자리잡은 것과 같이, 만약 어려운 퀘스트로 시작한다면 퀘스트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어 행동 원리가 깨질 수 있다.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다.

레벨에 따라 신용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를 하여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게 퀘스트를 수행했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어느 정도 쌓인 인간에게는 초급 퀘스트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신용도가 필요한 퀘스트가 공급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단순한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반면 마땅히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없어 따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공부해야 한다. 그렇기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성장할 수가 없다.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수동성을 가지게 된 다수의 인간은 뚜렷한 목적이 없어 성장이 힘든 상황이다. 퀘스트 제도는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통해 성장의 충동을 느끼게 하여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급 퀘스트. 초급 퀘스트로 신용도를 쌓고 나서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다. 초급 퀘스트와 다른 점은 적정의 레벨을 통한 신용도나 일정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생동성, 요양 보조, 간병인, 가사 도우미, 여행 및 관광 도우미, 고급 문서 작업, 번역, 창작, 프로그래밍, 인공 지능 가치 생산 등등 어느 정도 신용도가 필요하면서 다소 복잡하지만 체계적인 자격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독학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인공 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공 지능을 활용한 가치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각각의 능력 획득보다 인공 지능 활용법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러면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도 가치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공 지능의 발전을 통해 가치 생산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개중에는 채팅 인공 지능을 학습시켜 온라인 게임의 NPC로 만들어 게임에 공급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은 반드시 게임 회사가 하지 않아도 되기에 개개인에게 퀘스트를 공급하여 만들게 할 수 있다. 그걸 작업한 인간은 NPC의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고급 퀘스트. 초중급 퀘스트를 통해 신용도를 쌓고 교육 기관에서 자격을 획득하면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다. 이미 자격이 있을 경우에는 프리패스다. 고급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아 창업을 하거나 우수한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어려운 퀘스트로 설정해야 한다. 보통 이런 것은 폐쇄적인 도제화가 되어 일반인들이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분야의 기술이나 능력을 얻을 때 효율적일 수 있다. 전통 공예, 무형 문화재, 조향사, 영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 건설기계, 인테리어 등등 체계적으로 배워 자격을 획득해야 하는 일에 해당되게 된다. 본래 이러한 직종은 폐쇄적이어서 시장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퀘스트 제도를 통해 유연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무형 문화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퀘스트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가 생기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는 당연히 성공과 실패가 있다. 퀘스트 도전자가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퀘스트 성패 유무는 본래 퀘스트 공급자가 결정할 문제이나 정부가 관리하는 동안에는 정부 관계자가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시간 대비 노동 생산성이 낮은 편에 속한다. 그것은 가치의 개념을 생산성이 아닌 시간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근로라는 단어가 높은 생산성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는 풍조를 나타낸다. 퀘스트 제도는 시간과 무관하게 성과 위주로 성패를 결정하는 퀘스트가 많을 것이므로 그러한 풍조를 바꾸는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은 사교육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임을 이해해야 한다. 돈을 부으면 우수한 학습이 가능하여 우수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나 개인의 의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효율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인터넷이 발전하여 지식을 접하기가 쉬워진 요즘은 돈을 부은 수동적 학습과 돈을 붓지 않는 능동적 학습 중에 후자가 더 성과가 나올 수 있을 정도다. 퀘스트 제도에서 자발적 가치 생산 및 학습을 하게 된다면 사교육비를 절감하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현재 대부분의 사교육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학습이 아닌 대학에 잘 가서 취업을 잘하기 위한 학습이므로 우수한 가치 생산 및 학습 시스템이 있다면 원치 않는 학문을 암기하게 하지 않을 수가 있다. 학문에 관심도 없으면서 지식만 달달 암기하게 하는 것은 학대와도 같다고 본다.

지금 교육 정책이 문제 풀이 말고 제대로 가르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미성년 시기에 성장하지 못하여 미숙한 성년이 있다. 성년기가 늦어진 성년이 많은 상태다. 본래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을 것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불합리하게 배우면서 불합리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일부는 사회 활동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미성년의 성장을 위해 관련 정책과 학교의 개혁이 필요하나 성년의 성장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퀘스트 제도를 통해 캐릭터가 레벨 업을 하며 성장하듯 개인도 레벨 업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퀘스트 제도의 효용 중 하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바라는 방향으로 개인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 가령 시골에 청년이 부족하다 말하고 지원한다고 한들 대부분의 청년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퀘스트를 통해 자격과 보상이 구체적이라면 행동 원리에 의해 실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려 하는 태도가 나타날 수도 있다. 3년간 특정 작물을 생산했을 경우 퀘스트 보상으로 농지를 준다고 한다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농사에는 관심이 있는 이들이 지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애 퀘스트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평소에는 연애하고 싶다 말하면서도 미성년 시기에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환경에서 자라나 잘못된 관념이 자리잡은 터라 실제로는 행동하지 않는다. 집단주의적인 수동성이 자리잡아 현재 20대 연애율이 처참한 상황이다. 그런 이들에게 퀘스트라는 변명거리를 줘야만 직접 행동하게 할 수도 있다. 퀘스트라면 어쩔 수 없지, 라면서 말이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애는 사적이기 때문에 이런 퀘스트는 어느 정도 제도가 자리잡고 나서 해야 할 것이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개인 퀘스트에 해당하나 집단 퀘스트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다 하더라도 퀘스트 제도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생산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집단주의적인 폐쇄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집단 퀘스트는 게임에서 파티 퀘스트를 할 때 파티 구성원이 누구든 각각 제 역할만 하면 신경 쓰지 않듯이, 개방적인 태도로 집단 구성원이 누구든 각각 제 역할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조별 과제를 보면 쉽지는 않겠지만 조별 과제와 다르게 집단 퀘스트는 일정 이상 레벨을 올린 이들에 한하여 공급될 것이므로 신용도가 있는 이들이 모였기에 다소 다를 것이다.

 

창의적인 가치 생산이 필요한 시기다. 보편적인 가치는 인공 지능이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공 지능을 관리하며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창작물은 플롯이 지나치게 비슷한 것이 많다. 성공한 플롯 몇 가지를 돌려쓰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영화는 물론이고 다른 창작물도 비슷하다. 비슷한 가치, 비슷한 내용. 단지 설정만 조금 다를 뿐이다. 하나의 플롯을 연기, 의학, 게임 등과 같이 껍데기만 바꿔 돌려쓰는 일이 많다. 그래서 창작물의 스토리까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 정도다. 이제 새로운 것을 도전해볼 때가 되었다. 기존에 있던 사람이 새로운 것을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간이 돌출되어야 한다. 새로운 인간이 돌출되려면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에서 벗어난 방식이 필요하다. 퀘스트 제도가 퀘스트를 통해 새로운 인간을 출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9. 제도

 

한국 정책과 제도가 집단주의 관념으로 만들어져 금욕주의를 근거로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거나 이타주의를 근거로 개인의 희생을 전제하여 설계된 것이 많아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일방적인 지역이나 성별 희생 등이 있고 경제적으로는 낙수 효과나 소득 주도 성장 등이 있고 문화적으로는 성적 또는 게임 문화 억압 등이 있다. 특정 지역이나 성별을 위해 다른 지역이나 성별이 희생을 하라거나 기업이나 노동자를 위해 개인이 희생을 하라거나 특정인의 성이나 문화에 관련된 도덕관념을 위해 개인이 희생을 하라거나 하는 것이 일반화된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모든 개인은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거부한다. 과거 왕정 시대에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통해 강자가 이익을 취하고 약자가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민주정 시대에는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통해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이익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게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하는 바람에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로 서로의 욕망을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하고, 집단주의 관념에 따라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담합과 독과점이 발생하면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한 사회가 되면 될수록 사회가 붕괴하고 있다. 그런 붕괴를 보고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왕정의 가치와 비슷한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왕정의 체제와 비슷해지면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정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서 다시 민주정 체제로 돌아가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다시 왕정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걸 계속 반복한다. 인간은 그렇게 진보하지 못한다.

인류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합리적인 공정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정당한 이익을 추구하고 정당한 손해를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와 시장을 통해 가치가 매겨진다. 그렇게 합리적인 공정한 제도로 매겨진 가치로 정당한 이익과 손해를 받아드려야 한다. 존재는 절대적이기에 구조 유지는 강제력을 가진다.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먹고 자고 싸듯이 사회와 체제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계약을 통해 원치 않더라도 협조한다. 그것을 통해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이어야 되는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가 된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우수하다. 정치가나 관료가 우수한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상가나 철학자가 아니다. 사상과 철학이 탐구를 멈추는 바람에 발전하지 못하여 우수한 이조차 가치와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온라인 게임 기획자는 온라인 게임의 성질상 그들이 우수하든 우수하지 않든 개인주의 체제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현실과 달리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개인의 의사에 맞춰 정책과 제도가 설계되어 있는 상태다. 온라인 게임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자발적으로 퀘스트와 몬스터 사냥을 하여 레벨을 올리는지에 대해 연구하면서 개인의 행동 원리를 학습했다. 그들은 그런 학습을 토대로 이용자가 게임에서만 쓰이는 가상의 재화에 억 단위의 돈을 쓰게 할 정도가 되었다. 그 정도로 그들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 그들이 퀘스트 제도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게임 기획자를 얕볼 수 있는데, 특정 인간이 만능이 아님을 이해하고 각자의 전문성과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일거리에 해당하는 퀘스트와 자격 획득을 위한 교육 기관을 담당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일원화하여 체계적으로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게임 기획자는 퀘스트와 교육 기관을 바탕으로 현실 퀘스트 제도를 설계한다. 퀘스트 보상을 고려해 경험치를 책정하고 레벨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현실이라는 점이 다르다.

현실 인간이 A퀘스트를 클리어한 후에 받는 돈과 경험치와 부가 가치는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가? 다음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한 레벨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현실 정책의 전문가와 가상 정책의 전문가가 모이면 개인의 의사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이용자가 개인의 의사로 게임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걸 바탕으로 퀘스트와 레벨 업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했다. 그럼 시스템 속에서 이용자는 성장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고 더욱 게임을 이용하려 했다. 그러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돈을 지불해가면서 게임을 이용했던 것이다. 만약 그러한 시스템이 정교하지 못했다면 이용자는 돈을 지불하기는커녕 게임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와 같다.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통해 자발적으로 지속적 가치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퀘스트 제도가 좀 더 쉬울 수도 있다. 현실 게임은 이용자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퀘스트 제도는 이용자에게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돈을 받으면서 하게 하는 것과 돈을 주면서 하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좀 더 쉬운 것인지는 명확할 것이다. 세심한 설계는 초기를 위주로 하면 될 것이다. 초기 관문을 넘으면 관성에 따라 퀘스트를 계속 하려고 할 수 있다.

퀘스트 제도의 구조에 관해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이용자 캐릭터의 레벨뿐만 아니라 성공한 퀘스트의 종류에 따라 특성 능력치를 만들고 그런 능력치에 따라 추천 퀘스트를 정리해준다거나 지도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하여 퀘스트를 하기 위한 길을 안내한다거나 하는 기능들이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인간을 행동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이용자가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원리가 유사하여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이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초기에는 퀘스트 제도가 실제 운영이 가능한지 실험을 해봐야 한다. 게임으로 치면 게임 베타 테스트다. 우수한 정부 관계자와 게임 기획자와 일반 베타 테스터와 선별한 일과 교육 기관 등을 골라 몇 차례 실험을 해봐야 한다. 행동 원리 측면에서 가치 생산과 게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되려 가치 생산은 돈을 받고 게임은 돈을 내므로 잘 설계하면 가치 생산이 더 수월할 수 있다.

가치 생산은 게임보다 피곤할 수 있는데 그것은 초기에 잘 설계하면 된다. 초기에 가치 생산을 즐거운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쉽고 즐거운 퀘스트를 하게 하여 개인이 익숙해지면 점점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를 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개인이 익숙해지면 알아서 레벨과 랭킹을 올리기 위해 퀘스트를 하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가치 생산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을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 게임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일부 이용자가 명예욕, 인정욕, 소유욕 등을 충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며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려 랭킹을 올리려 하는 것을 고려하면, 국가라는 큰 사회에서 일부 인간이 랭킹을 올리기 위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예측하기가 약간 어렵다. 관심 받고 싶어하는 인간이 랭킹을 올리기 위해 과도한 퀘스트 수행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과로사의 위험이 있으므로 그걸 고려한 퀘스트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퀘스트 제도는 많은 국가가 흥미롭게 바라볼 것이다. 진지하게 볼 수도 있고 비웃을 수도 있다. 게임을 좋아하고 잘하는 국가답다며 조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성과가 나타나면 인식이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가능함에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바꾸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던 귀족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던 이들이 게임과 같이 활동하며 가치 생산하고, 게임과 같이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을 한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가치 생산과 학습이 가능할 것인가? 이제 인간의 관념과 그에 따른 행동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문제의 본질을 보고 문제 해결도 할 수 있다.

 

 

 

10. 가치 생산

 

가치 생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가치 생산보다 인간관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유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한 인간관계가 매우 피곤하기 때문이다. 체제는 개인주의가 되었는데 관념은 아직 집단주의에 머물러 있어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가치 생산이 아니더라도 피곤한 일이다. 그것이 왕정의 윤리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도덕관념으로 인식하고 더욱 뻔뻔하게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장유유서에 의해 연상과 연하의 관계는 언어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언어 습관은 일상적이기에 그런 부조리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데, 평등한 사회에서 특정 성질을 가진 인간에게 무조건 존대어를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평등한 것이다. 본래는 사이 좋게 지내야 하는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도 그러한 불평등한 질서에 의해 갈등이 발생하여 고향에 가기 싫어하는 인간이 늘어나고 있다. 집단주의였던 과거에는 연하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런 불평등한 질서가 유지되었으나 개인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현재는 누구든 그런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존대어를 쓰나 가능하면 상호 반말이 가능하도록 하려고 하고 있다. 익명으로 반말을 써보고 있는데 그것을 무례하다 지적하는 인간은 없었다. 애초에 반말이 무례한 것이 아니다. 반말을 쓰는 상대가 친분이 있거나 동갑이나 연하에게만 그러다 보니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여 무례하게 반말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을 뿐이지 정중하게 반말을 쓰면 마찰이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현재는 익명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 가치 생산은 대등하지 못한 인간관계 속에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가치 생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지 가치 생산만 하면 그렇게 불행하다 느끼지 않는다. 일과 인간관계 중에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 받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일만 하는 것이라면 크게 불만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물론 가치 생산만을 봐도 그것이 온전히 즐거운 일이라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으면 그것을 즐기기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취미를 일로 하게 되면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걸 즐기는 이가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치 생산으로 얻은 불행은 행복의 원리를 이해하면 행복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은 불균형을 균형적으로 만들 때 느끼는 만족감에 해당한다. 육체는 영양분, 체내 온도, 수면 상태 등으로 불균형한 상태에서 다양한 욕구가 나타나고, 식사를 하고 옷을 입고 잠을 자면서 균형적인 상태가 되는 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기 때문에 일정 이상 부유하고 나면 행복도가 조금 올라 행복도 그래프가 완만하게 된다. 육체는 불균형하여 불행한 상태기 때문에 삶 자체가 불행과 행복을 반복하기 때문에 부유하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불행과 행복의 낙차가 낮기 때문에 행복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게 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균형이 강해질수록 균형적이게 될 때 느끼는 만족도가 높아 더욱 행복해진다. 부유한 이는 일정 이상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자 인위적으로 육체를 균형적으로 만들어 행복해지고자 한다. 바로 마약이다.

마약은 일반적으로 육체를 불균형하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양분을 필요로 하고 체온을 유지하고 수면을 취해야 하는 일반적인 상태의 육체가 기본적으로 불균형하고, 마약은 그것을 잊게 하여 균형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본래는 불균형한 상태인 육체를 식사나 수면 등을 통해 균형적으로 만들 때 만족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육체에 마약을 통해 강제로 인위적인 균형을 만들어 과도하게 높은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균형적일 때 분비되는 온갖 쾌락 물질을 인위적으로 분비하게 만든다. 마약으로 균형적이게 되었다는 착각을 통해 과도하게 높은 행복을 느끼고 나면 일상적인 육체가 매우 불균형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다시 마약을 통해 인위적인 균형을 이뤄 만족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게 하려고 하게 된다.

마약에는 관문 이론이 있다. 관문 이론은 약한 약물을 이용하면 강한 약물을 찾게 된다는 이론이다. 관문 이론은 술과 담배를 고려하면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는다. 육체가 불균형한 상태에서 솔과 담배로 일시적 균형을 이루고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불균형한 상태가 되면 술과 담배를 통해 다시 일시적 균형을 통해 행복을 느끼려 하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중독이다.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중독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가 결핍되어 불균형한 상태가 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 결핍이 해소되어 균형적인 상태가 된다.

보통 이런 것은 불행과 행복이 순환되기 때문에 더 강한 쾌락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술과 담배에서 관문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더 강한 쾌락을 요구하는 것은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아닌 쾌락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더 큰 쾌락을 얻고 싶다는 욕망으로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된다. 관문 이론은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아닌 욕망으로 성립되게 된다. 흔히 대마는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낮다는 이유로 관문 이론과 무관하다 말하는데, 관문 이론은 욕망으로 성립되므로 대마 또한 관문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 술과 담배와 대마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다. 술과 담배는 마약류와 별개의 기호품으로 인식되어 더 강한 쾌락을 바라지 않지만, 대마는 마약류로 인식되어 더 강한 쾌락을 주는 마약을 얻고자 하는 충동이 생기게 된다. 대마가 기호품으로 자리잡는다면 관문 이론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 대마가 일반화된 국가에서조차 관문 이론이 성립되는 사례들이 늘어나는데, 그렇지 않는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는 욕망이 긍정되므로 마약에 관한 욕망도 긍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약은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물질이기에 강제력을 가지고 금지될 수밖에 없다. 예외적으로 구조 붕괴와 무관한 질병에 의한 고통이나 시한부 인생에 한에서는 허용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마약과 같이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물질이 아님에도 금지되는 것은 대부분 낡은 왕정의 가치에 의한 것으로 반체제적인 불합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행복의 원리상 인간은 불행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따라서 영원한 행복은 영원한 불행이기도 하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결핍이 발생하여 불균형해져 불행해지고 바라는 것을 이룰 때 결핍이 해소되어 균형을 이뤄 행복해진다. 그 말은 곧 바라는 것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다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큰 목표를 세운 사람은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세상의 존재 이유를 밝히고 싶다는 것을 바란다면 거의 영원히 불행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각오했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불행을 겪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가치 생산이다. 어차피 불행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가치 생산을 통해 불행해지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불균형하여 불행한 상황을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육체든 정신이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에 개개인에 맞춘 적절한 불행을 통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이 가치 생산을 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행복을 얻기 위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설령 부유하여 가치 생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어차피 불행해질 것이라면 가치 생산으로 불행해지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나 여러모로 이롭다. 퀘스트 제도는 다양한 가치 생산 방법을 제공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가치를 생산하면서 불행을 느끼고, 그 불행을 바탕으로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11. 레벨 업

 

오늘날 인문 계열은 집단주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종교, 사회주의, PC주의에 관한 주장뿐만 아니라 노인 집단 자살이나 탈성장 공산주의나 인공 지능 발전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식상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노인의 집단 자살은 왕정의 윤리인 이타주의를 근거로 하여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단순한 전체주의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탈성장 공산주의는 낡은 관념에 의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낡은 관념에 맞는 낡은 체제로 돌아가자는 수백 년 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주장에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인공 지능 발전을 멈추자는 가치를 진리로 여기고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에 맞춰 발전하기 보다는 자연 계열이 인문 계열에 맞춰 느리게 가라는 것과 다르지가 않다. 하나 같이 수준이 낮다. 자아 탐구도 끝나지 않고서 과거의 사상가나 철학자가 한 말을 달달 암기하여 만들어진 가치관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주장만 하고 있다. 이러니까 자연 계열이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킨 것이다. 이제 인문도 레벨 업을 해야 한다.

인문 계열은 자유롭게 마음껏 발전해야 한다. 자연 계열도 자유롭게 마음껏 발전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발전하며 보완해야 한다.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인문 계열은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 윤리를 말하며 자연 계열의 발전 중 하나인 인공 지능에 그것을 강요하며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인문 계열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기술 발전에 맞춰 인문 계열이 따라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 계열은 기원전 4대 원소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정해버린 뒤 참고 자료로 나두었다. 반면 인문 계열은 기원전 유교의 인의예지와 기독교의 사랑과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과거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 것은 대상에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고전 인문학일 뿐이다. 인의예지든 사랑이든 깨달음이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을 강요하면 체제에 해롭다. 학교 폭력을 당한 미성년에게 화해를 암묵적으로 강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가 절대적인 가치라 여겼기 때문이다. 가치는 대상이 아닌 관계에 있으므로 그런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기에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는 자유주의 체제의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하여 그러한 강요를 할 수 없도록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대상에 가치는 없고 공통된 가치만 있다.

지구 환경적으로 볼 때 채식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일부 채식주의자가 그것을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고 타인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지 채식 자체는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식물을 생산할 때도 자연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적게 먹는 소식일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대식을 하여 과체중이 된 이들이 소식을 하여 저체중이 된 이들에게 정상이 아니라며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대상에 가치가 없기에 과체중과 저체중 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공통 가치는 있다. 지구 환경 보호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소식하여 마르게 된 이들이 바람직하다 여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가 자연 계열의 발전으로 힘을 갖게 된 다양한 이들이 기독교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권리 주장을 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각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관념과 인식과 가치 등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정 시대의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권리를 갖게 되면 그 권리를 왕정과 같은 억압과 희생 강요로 활용하게 된다. 현재 불필요한 사회 갈등은 본인의 가치를 절대적이라 여기며 본인의 가치를 강요하며 타인의 가치를 억압하는 희생 강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강자가 약자를 희생시켰다면 평등해진 현재 약자에 속했던 이들이 힘을 얻으며 그 외의 이들을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의 대표가 PC주의다. 왕정의 가치가 남아 개인의 희생시키려 하는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인이 권리를 가지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민주주의에 맞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퀘스트 제도는 왕정의 가치와 함께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과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실제 실행되더라도 난항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 생산 시스템을 보완하는 형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적어 최초의 거부감에서 벗어나면 안정적으로 정착할 것이라 확신한다.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한국의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개인의 행동 원리를 근거로 하여 자발적 가치 생산과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인공 지능 시대에 맞는 노동 유연화가 가능한 제도가 따로 있는가? 그것이 없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해봐야 한다.

한국이 수십 년 후 가난한 국가보다도 더 가난하게 살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체제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전망이다. 만약 가난한 국가가 성장한다면 반드시 관념과 체제 충돌로 혼란을 겪으면서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겪은 사회 문제로 정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전망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좋지 못하다.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임의의 급을 나누고 급이 맞지 않는 인간의 의견을 듣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그런 차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역할로 구분하여 역할이 다른 전문가의 전문성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면서 각각의 역할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특히 인문 계열은 체제와 가치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조선시대 경제학자가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듯이 체제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왕정의 가치를 근거로 한 주장을 하면서 체제를 해치는 것을 자동차로 비유하면 자동차 바퀴를 때서 마차 바퀴를 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본래 이것은 인문 계열 중에 사상과 철학의 책임이므로 그 외는 크게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단지 앞으로 변하길 바랄 뿐이다.

 

 

 

2023 3 31

한국에서

사상가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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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주석서를 보고 있어요. 헌법은 법 질서의 근간이기에 보통은 보수적이게 되는데, 한국은 집단주의 관념이 많이 남아서 개인주의 체제의 근간이 되는 헌법이 진보적일 때가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헌법에도 평등에 대한 인식이나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말한 부분은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아서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왕정의 가치에 영향을 받은 상태서 만든 헌법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이런 부분은 가치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면서 민주정에 맞는 가치를 바탕으로 개헌해야 할 사안이겠지요.

외교 관련 사상을 하고 있어요. 사회와 복지와 국가와 외교는 영역이 다르기에 국가와 외교를 쓰고 나면 사회와 복지가 한층 더 발전할 것 같습니다. 아마 6월 말에 사회와 복지를 갱신하고 12월 전에 국가와 외교를 쓸 거 같습니다. 그걸 통해 사회와 복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퀘스트 제도도 상황에 따라 주기적 갱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종 사회 문제 관련 글을 쓸 것인데, 세상에 사회 문제는 넘치고 넘치기 때문에 주제 걱정은 없네요.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정말 싫습니다. 화가 나서 욕을 참을 수가 없을 정도. 지금까지 비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는데 이제 못 참겠어요. 정말 짜증나네. 사람을 묶어놓고서 머리에 물을 떨어트리면 아프지는 않는데 신경이 거기에 쏠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하지요. 그런 느낌입니다. 고문 당하는 기분이에요. 개인의 희생을 윤리로 만들어서 희생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게 정말 역겨워. 전체주의의 근간인 이타주의가 정말 쓰레기 같은 사상입니다. 어떻게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만든 것을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있었을까요? 정말 무섭습니다.

현재 환경이 매우 좋지 못하여 스트레스로 욕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거 같을 정도로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기 때문에 이사를 가려 하고 있어요. 며칠 계속 식은땀이 나네요. 돈이 없어서 갈 곳이 마땅치는 않은데 일단 술 담배를 하지 않아 금연 구역을 가고 싶네요. 그런데 그런 구역을 지정한 곳이 많지 않아서 금연 구역이라 할 수 있는 학교와 공원 근처를 알아보고 있어요. 아마 사상하기 좋은 곳으로 이사가면 사상하는 속도가 늘겠죠.

과거 사상가들이 사상을 인정 받기 위해 이리 저리 떠돌아다닌 이유를 알 거 같아요. 아아, 백 년 뒤에 태어났으면 괜찮았을까 백 년 뒤까지 얼어버리면 괜찮을까 백 년 뒤에 인류가 남아 있는 걸까 어느 바닥까지 떨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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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은 메일로 받습니다. 가끔 볼 예정..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누구든 사상에 가치가 있다 여겨지면 후원 부탁 드립니다. 사상 관련 일도 찾습니다. SNS를 할까 고민은 하는 중. 만약 하게 되면 실시간으로 사회 사건에 대해 짧게 의견을 내게 되겠죠. 아마.


댓글 : 1 개
똑같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생각했던 부분들이 겹쳐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권력과 차별에서 자유로운 고성능 Ai가 관리하는 시스템 속에서 개개인이 퀘스트의 수행능력을 향상 시키고 발전해나감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드높이는 삶, 그런 사회를 원하지만 기득권은 어떻게든 차등을 나누고 삶에 여러 비용을 부과함으로서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바라는 미래를 맞이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사회가 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해야 할 가치에도 탐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면, 개개인의 생존을 위해서도 더 나은 질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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