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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오스만의 근성술탄 메메드2세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2017.09.10 PM 06:44
메메드 2세: 100억 받기 vs 고자되기 정답은?
“비잔틴을 공격한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젊은 술탄 메메드 2세의는 제국이 발칸반도와 동지중해로 뻣어나가기위해서 반드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비잔틴 제국은 말만 제국이지 쇠락하여 도시국가 수준이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격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먹음직 스러운 콘스탄티노플을 못먹게 가로 막는게 있었으니 제국을 천년동안 지킨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 성벽’ 이였다.
< 재래식 성곽의 황제 - 테오도시우스 성벽 >
천년 동안 단 한번의 공략만 허용한 이 성벽은 말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한번 뚫린것도 내전상태에서 황제가 도망치는등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냥 단면만 봐도 답안나오게 생긴 이 무시무시한 성벽은 공격군의 엄청난 손실을 강요한다.
깊은 해자를 건너 1,2,3차 성벽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으며 힘들게 1차 성벽을 공략했다 해도 이때부터 1차 성벽공략과는 비교도안되는
2차 성벽 공략이 시작된다.
1차 성벽에서 후퇴한 수비군은 2차성벽에서 다시 방어하는데 1차성벽 공략때 사용한 중장비는 여기서 사용할수 없다.
2,3차 성벽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내며 중장비가 들어올정도로 1차성벽을 허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쓸 수 있는 공성장비는 나무사다리 정도인데 2차성벽의 높이는 1차성벽도 훨씬 높다..
이걸 이악물고 돌파하면 수비군은 다시 3차성벽으로 후퇴하고 똑같은걸 한번더 반복해야한다.
물론 3차성벽은 2차성벽보다 높다....
이런 무시무시한 성벽이였지만 앞서 말한대로 비잔틴 제국은 이미 도시국가 수준으로 영락하였기에 두 군대의 병력차는 어마어마했다.
콘스탄티노플 공략전 당시 오스만이 동원한 군대는 전투병만 15만인 엄청난 대군을 동원했는데 비잔틴 제국은 온 도시의 병력을 탈탈 긁어모으고 외부에서 용병을 지원받아 총병력이 7천 명밖에 안됐다
결국 1453년 4월 2일 메메드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고 순식간에 떨어질거 같았던 이 도시는 엄청난 저항을 하기 시작하한다...
< 1차 공격 – 우르반 대포 >
<초 거대 대포인 우르반 대포>
정복군주로 칭송받는 메메드2세가 머릿수만 믿고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공략하려 했던건 아니다.
술탄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헝가리 기술자인 우르반이 만든 초거대 대포인 우르반 대포였다.
본래 이 대포는 비잔틴 제국에게 팔 예정이였는데 비잔틴제국은 대금을 지불할수 없었고 결국 우르반은 이 대포를 메메드2세에게 팔아버린다.
메메드2세는 우르반 대포의 추가 주조를 요청하여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사용한다.
이 거대한 대포는 쏠 때마다 엄청난 포성과 함께 천년을 버텨온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허물어 갔다.
15만의 대군과 우르반 대포.. 비잔틴 제국은 금방이라도 멸망할거처럼 보였다.
메메드 2세: 15만 대군에 우르반 대포면 콘스탄티노플 함락각 아닌가요?
콘스탄티누스 11세 : 응 아니야~
하지만 의외로 결과는 처참했는데 4시간 동안의 전투에서 오스만군은 2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데 반해 비잔틴 제국의 피해는 전사자는 0명이었다.
이유를 꼽자면 첫째로 우르반 대포가 기대보다 2% 부족했다.
한 번 쏘면 자체 발열로 최소 3시간은 식혀야 다시 쏠 수 있었는데 많이 쏴봐야 하루 7발이 최대였다.
낮은 연사속도로 결정타격을 못주고 수비군에게 성벽을 보수할 시간을 주고 말았다.
두 번쨰로는 수비군이 생각보다 너무 잘싸웠다.
특히 수는 적었지만 제노바의 귀족 주스티아니가 이끄는 이탈리아,프랑크 용병들로 구성된 제노바 용병대는 완전 킬링머신들이였다.
십자군 시대때부터 서양의 기사는 전술 전략은 약하지만 백병전 만큼은 뛰어나 이슬람 군대가 정면에서 붙어서 이긴사례가 별로 없였다.
그러한 서양의 기사들이 계속 발전해 14세기 말이 되면 우리가 아는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기사들 상대로 비교적 경무장이 많은 오스만 군대가 공성병기로 갈라진 좁은 틈세를 뚫기위해 치열한 백병전을 벌인다면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14세기말 기사의 무장>
이러한 이유로 오스만군은 연일 포격을 퍼부으며 공세를 시도해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 2차 공격 – 금각만 봉쇄 >
<메메드2세의 금각만 봉쇄>
지상에서의 공격이 별다른 효과가 없자 메메드2세는 해상에서의 공격을 계획한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천년을 버틴 제국답게 해상에서의 공격도 잘 방비가 돼있었다.
도시의 항만인 금각만에 거대한 사슬이 설치하여 적선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메메드2세는 근성의 술탄답게 배를 육지로 날라서 사슬을 우회해 금각만 안쪽으로 진입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계획을 새운다.
이 어처구니 없지만 대담한 작전으로 4월22일 전체함대의 절반이 금각만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곧이어 오스만 제국은 바다와 지상에서의 대규모 파상공격을 시작한다.
메메드 2세: 이번에야말로 함락인거 인정하는 부분 아닙니니까?
예니체리: 인정합니다.
콘스탄티누스 11세 : 아직이다!! 아직이야!!
이번에도 도시는 함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격은 오스만군에게 2가지 큰 이득을 주었다.
첫째는 가뜩이나 병력이 적은 수비군이 정면과 항만 양면을 수비하기 위해 병력을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근근이 이어져오는 해상 보급을 완전히 차단했다는 것이었다.
< 3차 공격 – 땅굴 파기 >
도시의 보급이 끊겨 병사들만 겨우 적은 양의 식사를 하고 양면수비로 인한 병력 부족으로 교대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지만 수비군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이쯤되니 근성의 메메드2세도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메메드 2세: 헐.. 이게 함락이 안되네...
시간 오래 끌면 안되는데..
앞서 설명했지만 아직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오스만 제국은 전쟁이 길어지면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또한 현재는 가능성이 낮지만 전투가 길어진다면 언제 유럽의 지원군이 올지 알 수 없었다.
공성전에서 동서고금 막론하고 잘 안 된다 싶으면 하는 게 있으니 바로 ‘땅굴’이다
메메드2세는 대규모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엄청난의 수의 땅굴을 해자 밑으로 까지 팠다.
수비군은 오스만군이 땅굴을 파는 것을 알았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몇몇은 발견해내서 무너뜨렸지만 땅굴의 수가 너무 많아 다 찾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메메드 2세: 휴 이제야 점령할거 같군.
예니체리: ........
메메드 2세: 뭔대??
예니체리: 아군 장교가 포로로 잡혀서 땅굴 위치를 죄다 불어버렸습니다.
메메드 2세: ???
< 4차 공격?? – 항복 권유 >
비장의 땅굴마져 막히자 메메드2세는 콘스탄티누스 11세에게 굉장히 관대한 조건의 항복을 권유한다.
메메드 2세: 야 이거 솔직히 게속 싸우면 우리가 이기는거 아니냐 괜히 힘빼지 말고 항복해라 잘해줄게
콘스탄티누스 11세 : ㄴㄴ 그럴수 없음
메메드 2세는 도시의 시민과 황제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보장하며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나머지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엄청나게 관대한 조건을 제시하지만 콘스탄티누스11세는 술탄의 관대함에 감사하며 정중하게 거절한다.
"미안하오만, 이 도시를 넘겨주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사에 따라 죽기로 결정했고,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 5차 공격 – 최후의 공세 >
<무너지기 시작하는 테오도시우스 성벽>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오스만군 내부에서도 철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간 연이은 공략 실패로 오스만군의 피해도 막대했던 것이다.
특히 공성의 중심이 될 수 밖에없는 예니체리 부대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재상까지 철군을 주장하는 상황이였기에 정말 마지막 공격이였다. 이번 공격이 실패하면 아무리 술탄이라도 병력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오스만 군대는 최후의 대공세를 준비했고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비잔틴군도 최후의 결전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5월29일 새벽2시 드디어 최후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오스만군은 말그대로 총공세를 펼쳤다.
1차 공격대로는 아잡스, 바시바조우크 같은 비정규 부대가 투입되었다. 엄청난 물량으로 동이트도록 밀어 붙였으나 비잔틴군을 잘 버텨냈다.
이에 오스만군은 정규군인 아나톨리아 군단을 주축으로한 2차 공격대를 편성했다.
정규군인 만큼 1차 공격대보다 훨씬 매섭게 몰아쳤고 수비군은 계속되는 파상공세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오스만군은 남아있던 모든 예니체리군단을 모두 투입한 3차 공격을 개시한다.
콘스탄티누스 11세: 아니 여기서 예니체리를?!
물리쳐도 물리쳐도 적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강한 적이 나타나는 절망적인 소모전이 아침이 밝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
도시는 함락되지 않았다.
메메드 2세: ????
콘스탄티누스 11세: ???
이미 아침해가 밝았지만 도시의 수비군은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수비군의 머릿속에서 어쩌면 오늘이 천년제국의 마지막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사고가 터지고 만다.
제노바산 킬링머신들의 수장인 주스티아니가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고 후송되고 만것이다.
그와함께 오랜 전투의 피로때문이였을까?
반격이나 시민의 이동에 사용되던 비밀문인 케르카포르타(Kerkaporta)가 열려있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문으로 소수지만 오스만군이 성내로 들어오고 만다.
수비대는 빠르게 문을 탈환하여 다시 닫았지만 이날 콘스탄티노플은 멸망할 운명이였던거 같다.
침입한 오스만군의 일부가 수비군을 피해 성벽에 올라 오스만 깃발을 걸어버리고 만 것이다.
부상을 입고 후송되는 사령관과 성벽에 걸린 적의 깃발..,
병사들은 순간 성이 함락되었다고 생각하여 전투를 포기하고 뿔뿔히 흩어져버렸다.
전선이 무너지자 그 철옹성 같던 성벽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도시는 함락되고 만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망토를 벗어던지고 거리에서 싸우는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싸우며 최후를 함께했다.
이렇게 로마시대부터 2200년간 이어져온 대제국은 2달간 끈질기게 공략해온 근성의 메메드 2세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제 메메드2세의 다음 목표는 동 지중해의 로도스 섬이다.
동 지중해의 제해권 손에 넣기위해선 이슬람의 숙적인 최후의 십자군 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로도스섬을 탈환 해야만 했다...
근성술탄 메메드2세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여기서 마치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로도스 공방전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怪獸王
- 2017/09/10 PM 06:53
- 레빌장군
- 2017/09/10 PM 06:55
- zknight
- 2017/09/10 PM 07:00
- 레빌장군
- 2017/09/10 PM 07:04
- l시스l
- 2017/09/10 PM 07:07
비밀 통로가 들킨게 엄청 컸죠...많이 아쉬움
로마 최후의 전쟁이라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해도 좋을텐데..
서유럽(+미국) 애들이 동로마는 별로 신경 안쓰는듯.. 쩝
로마인걸 무시(?)할려고 비잔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 레빌장군
- 2017/09/10 PM 07:10
그러게요 영화화 되기 좋은 소재같은데 터키에서 한편 나온거 빼고는 안나오네요
- Pax
- 2017/09/10 PM 07:14
아니 서방에서 원군으로 와서 조낸 큰소리 탕탕 치고 조낸 잘 싸우더니 막판에 심한 부상 입었다고 부하들 데리고 전선에서 냉큼 이탈해?
지휘권 인계하고 부상입은 본인만 빠지면 되는거 아닌가?
덕분에 콘스탄티노플 떨어진 건 막론하고 잘 싸우던 용명이 빛이 바랬음...
- 레빌장군
- 2017/09/10 PM 07:22
보통 용병도 아니고 의용군같은 성격도 있는거 같은데 그렇게 다빠지는게 좀 깨긴했죠..
- Toutvabienn
- 2017/09/10 PM 07:29
- 레빌장군
- 2017/09/10 PM 07:32
- 네코마루
- 2017/09/10 PM 09:39
- 레빌장군
- 2017/09/10 PM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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