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 6. 예술2018.06.24 PM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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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 그것을 가리켜 예술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실 나는 예술을 잘 모른다. 몇 가지 예술들의 일부를 접하고 감상하며 즐길 뿐이다. 게임이나 만화 소설, 약간의 음악, 영화, 미술 정도. 광대한 예술의 세계 속에서 그 일부를 즐기는 정도에 불과한 내가 예술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터무니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 또한 사람이기에, 어쩌면 내가 바라보는 예술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작성해본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생각나는 것까지만 작성하고 나중에 더 정리할 예정이다.

 

 

첫째, 예술은 사랑

 

노동을 천시하는 자는 먹고 살 자격이 없고, 정치와 치안과 국방을 천시하는 자는 보호받을 자격이 없고, 문과를 천시하는 자는 생각할 자격이 없고, 이공과 상공을 천시하는 자는 문명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고, 예체능을 천시하는 자는 사랑을 하거나 받을 자격이 없다. (이것은 대략적인 구분이다.)

 

그렇다. 사랑이다. 예술은 사랑이다.

 

예술의 사전적 정의로는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가? 사람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다. 어떤 예술이든 동일하다. 대중을 위한 예술은 대중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위한 예술은 스스로에게 사랑 받기 위해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예술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

 

예술과 교훈에 대해 이야기를 함으로서 예술의 본질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예술에 교훈은 필요한가? 이야기를 만드는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 교훈을 담는 것을 두려워한다. 진지하거나 어려운 예술은 곧잘 외면 당하기 때문이다. 교훈, 즉 가르침을 담은 예술은, 예술이 아닌 학문이 되어버리기도 하여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 아닌 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즐기기 위해 예술을 접한 사람은 그 예술을 외면하게 된다.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겠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시대 다른 동화나 동시가 주로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을 띠었던 데 반해 앨리스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고 한다. 환상, 신비, 말장난, 오해, 착각, 실수 등의 순수한 즐거움으로 그 시대 아이들에게 사랑 받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 재창작 되기도 한다. 이 동화가 교훈이 없었기에 사랑 받았다면, 예술에 교훈은 필요 없는 것일까?

 

다른 예시를 통해 교훈의 필요성을 살펴보겠다. ‘피그말리온’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서문을 통해 예술에 대한 시각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고의적으로 교훈적이며, 주제 또한 매우 무미건조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에, 나는 예술은 결코 교훈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현명한 척하는 자들의 머리 위에 기쁘게 이 극을 던지겠다. 이 극은 위대한 예술은 교훈적인 것이라는 나의 주장을 증명할 것이다.]

 

실제로 ‘피그말리온’은 지극히 교훈적이다. (이후 약간의 내용 누설이 있다.)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소녀인 일라이자는 9년간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음에도 영어발음이 엉망이다. (여기서 공교육과 음성학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 소녀를 음성학 교수인 히긴스 교수가 6개월간 영어발음을 가르쳐 한 파티에서 공주로 인정받게 한다.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소녀를 6개월만에 공주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신분제도에 대한 비판이 있다.) 정작 일라이자가 공주로 보일 만큼의 숙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히긴스 교수의 영어발음 교정보다는 피커링 대령의 신사적인 태도 덕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예의범절이나 품위는 모범을 보여야 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도덕, 존중, 경제 등 수많은 교훈들이 있음에도 ‘피그말리온’은 대성공하게 된다.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영화로도 제작되어 수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마이 페어 레이디’를 한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 재창작 되기도 한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예술에 교훈의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을 매료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 된다. 교훈을 담은 예술들이 인정받지 못했던 까닭은 교훈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을 매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그말리온’이 그랬듯이, 교훈을 담았더라도, 즐거운 재미를 주어 사람들을 매료할 수 있다면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예술로 포장하면 어떤 학문도 사랑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많은 철학, 사상가들은 자신의 철학이나 사상을 사랑 받게 하기 위해 예술의 틀을 가져다 쓰기도 하였다. 볼테르의 철학적 콩트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같이 말이다.

 

사랑, 그래 사랑이다. 예술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였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대중을 매료할 수 없어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이더라도, 만약 그 예술이 자기자신 또는 특정 대상에게 사랑 받기 위했다면, 그리고 사랑 받았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단지 대중 예술이 아닐 뿐이다. 문학은 연애편지며 무용은 구애의 춤이다. 예술가들이야말로 (특히 대중예술) 이세상에서 가장 합법적인 하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몇 명에게 사랑 받는 건가?

 

 

학문으로 지식을 배운다면 예술로는 감정을 배운다. 사람을 매료할 준비가 되어있는 예술은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감정을 학습하게 만든다. 이것도 기쁘다가 될 수 있구나, 이것도 슬프다가 될 수 있구나. 단순한 경험뿐만이 아닌, 예술을 통해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풍부한 감성을 얻게 한다.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감정들도 예술을 통해 깨어나 정말로 알게 된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느끼는 감정,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감정 등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마음의 영역이 보다 더 넓어지게 된다. 넓어진 마음은 공감능력을 증대시켜 타인의 감정을 아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알게 됨으로써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하거나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을 천시하는 자는 사랑을 하거나 받을 자격이 없다. (뭐 사실 특정 예술을 천시할 수는 있어도, 예술 자체를 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술은 먹고 사는 것 이상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우리가 좀 더 고상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의 재료 중 하나다.

 

 

둘째, 예술은 정체

 

예술은 정체되어있다.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지닌 다른 학문들과는 다르게 예술은 발전이 매우 더디거나 멈춰있다. 왜?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수많은 예술들이, 사람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는 영역을 거의 모두 차지해버렸다. 남은 영역이 거의 없단 이야기다. 그래서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극에서는 셰익스피어가 공연되고, 아직도 클래식에서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연주되고, 아직도 미술에서는 피카소가 언급되고 있다. 마음의 근본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대에 정점을 찍은 예술들을 현대에서도 뛰어넘기 힘들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에게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예술의 본질로는 이미 선조의 작품을 뛰어넘기 어려워졌다. 기술의 발달로 형태는 바뀌어가고 있지만, 종합 예술인 게임을 보라, 형태조차도 정체되어가고 있다. PC방 점유율이 몇 년째 비슷비슷하다는 것이 그걸 증명한다. 가끔 뛰어난 게임이 등장하여 판도를 바뀌기도 하지만 그 바뀐 판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로 사람 수준의 자아를 지닌 NPC가 등장하는 게임이나 VR게임이 등장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이 판도가 크게 뒤집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정체될 전망이다.

 

 

왜 피카소가 기묘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걸까? 그 시대의 예술조차 새로운 영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이미 훌륭한 그림을 그렸던 그에게 새로운 영역은 차원을 넘는 그림 외엔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피카소의 고민은 현대 미술가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새로운 영역이 거의 없다. 그래서 좀더 기묘한 작품들을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대중이 현대미술을 외면하게 되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와 대단해”라고는 해도 그걸 진정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기묘하니까. (많은 사람이 즐기면 기묘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종종 돈세탁으로 쓰이는 것처럼 보이는, 붓으로 한 줄 그어둔 것(그림이라고는 못하겠다.)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보며 현대미술을 비판하는데, 그것은 애초에 예술이 아니다. 어떤 감정도 일으킬 수 없는 그것에는 어떠한 예술적 가치가 없다. (어쩌면 외적인 요인으로 분노나 슬픔은 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저 금전적 가치만 있을 뿐이다. 아무 가치가 없는 가상화폐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여 거래하는 것처럼, 아무 예술적 가치가 없는 것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여 거래하는 것뿐이다. 그걸 예술로 바라본다면 모든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니 그걸 빌미로 현대미술을 비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현대미술이 비판 받아야 될 점은 그 점이 아니다. 미술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려고 하다 보니 예술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을 비판해야 한다. 예술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괴상한 작품을 그리고, 그걸로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가? 대중의 사랑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만약 새로운 것을 위해 스스로가 사랑할 수도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사람은 예술가가 아닌 학자가 된다.  

 

또한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붓 터치가 어떻고, 색감이 어떻고, 그린 사람의 철학이 어떻고 하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 예술의 목적은 사람을 매료하여 사랑 받는 것이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A와 평범한 작가의 작품B를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공개하여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선택하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작품B가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면 그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능력은 더 뛰어나다고 봐야 한다. 그걸 보고 미술전문가가 식견이 없어서 그런 것뿐이라며 조롱한다면 나는 웃을 수밖에 없다. 그 미술전문가는 예술의 본질을 잃은, 수단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거나 금전적 가치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현상들은 대체로 예술의 발전이 정체되어있기 때문이 발생한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위해, 또는 비슷비슷한 것 중에 좀 더 우수한 것을 고르기 위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셋째, 예술은 과학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지향되어야 한다. 설령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그래서 예술이 아닌 학문이 되어버린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시도는 필요하다. 그런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만 간신히 새로운 예술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패션쇼를 보면 일반 사람들은 이해 못할 괴상한 패션들이 나오곤 한다. 왜 그런 괴상한 패션이 필요할까? 그런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일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패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그런 새로운 시도는 과학에서 신기술을 발견하기 위해 시도하는 수많은 실험과도 같다. 과학의 발전이 수많은 실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예술의 발전 또한 수많은 시도 끝에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괴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언젠가 새로운 예술로 대접받을 수도 있고, 설령 대접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예술의 토대가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미 하고 있겠지만…) 어떤 색이 어떤 감정을 일으키고, 어떤 선이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경험뿐만이 아닌 실험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의학 같은 다른 학문과 연계하여 사람의 감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예술을 과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생각은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요즘 현대미술은 다양한 볼거리 속에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냉정하게 말하겠다. 현대미술이 예술 그 자체로 사랑 받는 것으로 수입을 얻을 수 없어 말라 죽을 처지에 놓여있다면, 국가적 지원을 요구할 때 예술에 대한 지원이 아닌 미학이란 기초 학문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 또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토대가 마련되어야 더 수준 높은 예술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예술의 영역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요점만 잡아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요점에 대해 설명할 때 특정 예술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으나, 다른 예술에도 충분이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라도 예술이라면 사랑 받는 것이 목적이고, 어떤 예술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 정체되어있으며, 어떤 예술이라도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여기까지 쓰겠다. 나중에 예술에 대한 생각이 늘어나면 추가로 정리하거나 작성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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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체로 오래된 작품을 예시로 들려고 해요. 현대의 작품보다는 편견에서 좀 더 자유로운 측면이 있거든요. 그리고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야 다양한 요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어서 되도록 해외의 것을 사용해요. 우리나라에서 예민한 주제도 다른 나라의 것을 가지고 설명하면 조금 더 편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보통은 특별한 예시 없이 전개하거나 해외 고전을 예시로 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에요. 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요. ///

 

저는 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대화를 할 때 종종 그걸 느껴요. 저는 저를 배제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저를 포함시키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객관이 필요하고, 객관을 위해서는 주관을 분리시켜놔야 해요. 본질을 보고 싶어하는 제가 저만을 포함시켜 생각할 리가 없지요. 역할존중에 대해 쓸 때도 그걸 고심했어요. 예민한 주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생각들이 “너만을 위한 생각이지 않느냐” 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받아드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분명한 의도는 우리 모두를 생각하여 작성했음을 말해두고 싶어요. 부족한 부분이 많은 생각이지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정리하면 더 나아지겠지요. 저 스스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 글에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부끄럽네요. 빨리 발전하여 좀 더 잘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저는 B사의 W게임에서 유저가 만든 ‘캐슬파이트’라는 게임을 몹시 좋아했어요. W게임이 생산과 전투를 동시에 한다면, ‘캐슬파이트’는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지요. 굉장히 재미있게 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마이너한지 수많은 장르의 모바일게임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이 게임의 형식을 본 따 만든 작품은 보이지 않네요. 그저 제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유저는 적절한 생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모바일에서 상대와 대전할 때 드는 문제점 (Ping이라던가) 이 적어 의외로 괜찮을 거 같은데 만드는 곳이 없어요. 재미가 없거나 수익이 안돼서 그런 걸까요? 언젠가는 개발되어 해봤으면 좋겠네요.

 

 

몇 분이나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읽어줘서 고마워요.

 

 

2018년 6월 24일 작성

 

 

참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인물소개

피그말리온 서장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소개

실험소설 초반부

인터넷 검색 (사전)

 

댓글 : 1 개
마이페어 레이디 학교에서 틀어줬을 때 다들 자는 동안 제대로 본 영화였죠
처음으로 오드리 헵번의 연기를 본 작품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피카소의 예술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현대에 와서 누군가의 주관적인 에세이 그리고 재해석으로 들어서 알게 된 그 사람의 생애나 연애관 가치관 등에 대해 알게 되니
그제야 조금 그림이 이해되더군요 개인적으론 그림에 마음을 담다 라는 책이 참 좋았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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