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보며 나를본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2021.10.19 PM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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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와 겉표지 조합은 정말 최악... 겉표지까지 버려버리고 싶어지는 마법같은 조합...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어차피 특정 분야의 기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데, 꽤 머나먼 옛날… 고대 그리스 시절 즈음보다 지금 사람들이 뭔가를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보다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많은 사실들은 알고 있다. 불이 원소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이건 요즘 좀 위태위태하긴 하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만유인력, 중력 때문인 것도 알고 있다. 진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고 있으며 위생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그냥 사실로써 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기들을 사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고, 냉장고에 음식을 넣으면 차갑게 유지되고 에어컨을 켜면 시원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많은 자리수의 곱셈, 나눗셈도 쉽게 할 수 있고 복잡한 계산도 척척해낸다. 심지어 나는 인류 최대의 난제라고 할수있는 문제인,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에 대한 답도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 사람들보다 지금 사람들이, 내가 똑똑하다고 할 수 있나? 하는 뻘 생각.

이 책의 주제인 ‘뇌’에 대해서. 나는 2천5백여 년 전의 누구보다도 뇌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만 이 지식이 어떤 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 내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이런 단편적인 지식으로 뭔가 건설적인 것을 하지도 않을, 사실상 전혀 몰라도 되는 지식이다. 이 책의 초반은 꽤 신선하다. 현대인의 뇌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에 대한 답과 여러 가지 신선한 이야기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뇌가 이렇게 커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안다고 해서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내가 뇌를 더 잘 쓸 수 있게 되나? 아마도 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책의 초반을 넘어가 중반, 후반의 내용은 다른 책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내용이 된다. 점점 더 의미 없어지는 독서의 시간들.

그렇다면 이런 책을 편찬하고, 읽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당장 꽤 적지 않은 이유가 떠오른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내 삶을 바꾸기보다는 그냥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조금 더 올려줄 뿐이겠으나, 나는 이 책을 구매함으로써 비용을 지불했다. 이 과학자의 주머니에 몇 푼 안 되는 돈이나마 꽂아줬다. 꽤 많은 부분 비즈니스적인 관계. 이 사람은 나에게 지식을 팔았고, 이 사람이 연구한 그 지식을 구매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면, 앞으로의 연구나 삶이 윤택해지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터다. 그랬다면 이 책을 쓴 사람은 또 다음 책을 쓸 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집필 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누군가는 이 사람이 쓴 책을 보고 뇌과학에 몸을 던져볼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술자리에서든, 누군가와 대화하는 자리에서든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가 또 이 책을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매우 낮은 확률이겠지만 관심을 갖다보면 누군가가 감응되어서 미래의 과학자를 키워낼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 낼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나의 이런 작은 보탬은 있으나 없으나 한 수준이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부분의 기술, 과학의 발전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을거다. 누군가가 어떤 계기를 통해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는 나같이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의 직접적인 방식을 통해 지원하고, 실험실 단계에서만 머무르던 지식이 언젠가는 실존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거다. 누구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반물질이나 전고체배터리같은 기술들. 내가 그런 흐름에 작은 힘 하나 보탠 것으로 만족한다. 독후감에 책 이야기는 없고 이렇게 잡썰이 가득한 이유는 당연히 책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아서이다. 신선한 지적 즐거움은 분명히, 그리고 강렬하게 존재했지만 너무 짧았고, 책의 분량 자체도 비용 대비 만족스럽지 못하다.

다만 확증편향에 관련한 아주 훌륭한 설명이 있어 그 부분을 발췌해 적어본다.
‘……이것은 때때로 사람들이 자신과 달라 보이거나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왜 공감하지 못하는지, 그런 경우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뇌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하려면 신진대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사람들의 자기의 기존 믿음을 강화해 주는 뉴스나 견해들로만 이루어진 이른바 반향실(echo chamber)에 안주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따르는 불편함과 신진대사 비용이 줄어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울 확률 역시 떨어뜨린다.’

누군가와 확증편향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아는척할 수 있는 한 토막이 늘었다. 책은 짧지만 즐거웠다. 가격은 이해할 수 없지만… 에효… 이놈에 도서 정가제 좀…

PS. 어… 이거 다 쓰고나서 보니 출판사 이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제목과 똑같다. 신기하군… 내가 이 회사 책을 본적이 없었나…? 출판사명을 봤다면 분명히 알아봤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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