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일 영화] [DAY07] 셰임 (Shame, 2011)2014.05.13 AM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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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셰임 (Shame)
감독: 스티브 맥퀸 (Steve McQueen)
제작년도: 2011년
장르: 드라마

팜플렛같은 곳에 찍힌 도시의 야경은 그 누구라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도시만큼 멀리서 보는 장관과 그 안에서 보이는 경치가 다른 장소도 그리 많지 않을겁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셰임>에선 여러 인물들이 빌딩위에서나 멀리서 뉴욕의 경치를 보는 장면이 나오고, 또 여러번 "참 멋진 도시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실제로 맥퀸 감독이 가까이서 보여주는 뉴욕은 차갑고 외로운 곳입니다.

<셰임>은 뉴욕에 사는 어느 한 섹스 중독자가 자신의 여동생이 갑자기 자신의 아파트에 살게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감추고 살아가는 브랜든으로, 겉으로는 나긋나긋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하지만 내면의 심각한 중독으로 점점 파괴되어가는 인물입니다. 그런 브랜든에게 찾아온 여동생인 시씨는 그와 정반대의 성격인, 무엇이든 대충하는 성격에 감정이 풍부한 성격이죠. 맥퀸 감독은 브랜든으로 하여금 그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극을 이끌게하여 이를 통해 브랜든의 애정결핍증을 더욱 눈에 띄게 합니다.

브랜든은 나긋나긋하게 웃는 인상과 같이 언제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지내고, 맥퀸 감독 또한 배경음으로 클래식 음악과 그와 비슷한 느릿느릿한 음악을 선호합니다. <노예 12년>에서 맥퀸 감독이 자주 쓰는 연출중 하나가 바로 두 가지의 상반되는 사운드트랙을 동시에 틀어놓아 그런 불협화음으로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는 불편함을 나타내는 것인데, <셰임>에서도 맥퀸 감독은 비슷한 연출을 합니다. 맥퀸 감독은 클래식 음악으로 브랜든이 가진 우울한 나긋함을 표현하는데요, 거기에 한 술 더 떠 이런 클래식 음악으로 하여금 주위의 효과음까지 압도시켜 브랜든이 자신의 온화한 마스크로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까지 묘사합니다. 거기에 영화내내 배경음으로 나오는 섹스에 중독된 신음 소리와 고급적인 클래식 음악은 서로 교차하며 관객들의 귀를 침습하여 브랜든의 이중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그와 반대로 브랜든의 여동생인 시씨는 블루스 가수입니다. 가사를 원하지 않아 가사없는 음악만 듣는 브랜든과는 달리 시씨는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인물이죠. 브랜든에겐 음악이란 자신과 세상을 단절시키는 도구지만, 시씨에겐 음악이란 자신의 삶을 뜻하기도하고, 자신과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씨를 연기한 캐리 멀리건이 극중 부르는 곡이 뉴욕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 뉴욕"인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겁니다. 감정적인 시씨에게 도시란 외롭기만한 브랜든에게 도시가 의미하는 바와는 많이 다를테니까 말입니다.

결국 다시 도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네요. <셰임>에서의 섹스 중독 그 자체는 사실 맥퀸 감독이 집중하는 요소라고 하기 힘듭니다. 맥퀸 감독이 중요시하는 것은 브랜든의 (섹스 중독에 의한) 애정결핍증이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섹스 중독과 브랜든의 시점으로 본 도시의 이미지로 구체화되는 것이 <셰임>의 주 테마입니다. 예를 들어, 극중 브랜든이 고개를 들어 한 빌딩을 바라보는 샷이 있는데, 그는 그 곳에서 한 커플이 창문에 기대고 섹스를 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맥퀸 감독은 이 커플 뿐만 아니라 다른 방의 창문들도 함께 보여주면서 섹스와 일상이 단절된 채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단 하나의 샷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맥퀸 감독은 도시라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선 차갑고 기계적이고 외로운 장소를 연인 관계라는 테마와 대조시켜 브랜든이 가지고 있는 애정에 대한 본능적 적개심을 도시의 이미지로 하여금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합니다.

브랜든 주위의 사람들은 도시의 경치를 보고 멋있다고 하지만, 브랜든은 그런 도시를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봅니다. 이런 시각은 브랜든이 가지고 있는 연인 관계에 대한 불가해성과 일치합니다. 브랜든은 도시에서 기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여자와 정상적인 직장)만 찾고 탐닉하듯이, 연인 관계에서도 그가 원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기계적인 섹스뿐입니다. 그에겐 감정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목 <셰임>이 뜻하는 수치심이란 브랜든이 가지고 있는 섹스 중독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또한 브랜든 자신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적인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아닐까요.

영화의 두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 모두 지하철에서 이뤄집니다. 뉴욕 지하철이야말로 브랜든이 뉴욕에 가지고 있는 차갑고 기계적인 이미지를 가장 잘 상징하는 장소죠. 이 곳에서 브랜든은 어느 한 여성을 바라보고, 그 여성도 브랜든을 바라봅니다. 여성은 곧 자신이 이제 내릴거라고 브랜든에게 사인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잡이를 잡습니다. 이윽고 드러난 그녀의 왼손 네번째 손가락엔 결혼의 상징인 반지가 끼여져 있습니다. 영화 첫부분에서의 브랜든은 영혼에라도 홀린 듯 지하철을 나와 여자를 따라가다 놓치게 되지만, 그와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는 결혼 반지를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만 보고 있는 브랜든을 비추며 컷트합니다. 영화 첫 장면이 기계적인 삶(교차편집으로 브랜든의 일상을 보여줍니다)과 도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원하는 브랜든의 숨겨진 갈망을 상징한다고 보면, 마지막 장면은 수치심에 그것조차 두려워 자신이 있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브랜든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이 외로운 남자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도시라는 감옥 안에서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됩니다.

한줄평: "외로운 섹스, 차가운 도시."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존 휴스턴 감독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입니다.
댓글 : 4 개
와 글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전 이 영화를 봤을땐 그저 '아 우울하다 술을 더 마셔야겠어'였는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셰임 아직 못봤는데 빨리 봐야겠네요. 스티브 맥퀸 감독 아카데미 작품상 받고 방방 뛰는게 어찌나 귀엽던지 ㅋ
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놓쳤네요
얘네 맨날 시험전날 함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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