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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영화] [DAY19]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1940)2014.05.29 AM 03:20
제목: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감독: 조지 큐커 (George Cukor)
제작년도: 1940년
장르: 로맨스, 코미디
미국 영화 연구소 (AFI)라는 곳에서 90년대에 20세기가 끝나가는 것을 기념하여 몇년동안 'Top 100 시리즈'라는 랭킹 프로그램을 CBS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 1999년에 나온 리스트가 '100명의 스타'라는 프로그램으로, 50명의 현존하는 전설의 스타들(케빈 베이컨, 알렉 볼드윈, 안젤리나 졸리, 더스틴 호프먼 등등)이 50명의 옛 전설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랭킹에서 남자 부문에선 1위에 험프리 보가트 (<몰타의 매>, <카사블랑카>), 2위에 캐리 그랜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아이 양육>), 그리고 3위에 제임스 스튜어트 (<현기증>, <이창>, <멋진 인생>)가 뽑혔고, 여자 부문에선 1위에 캐서린 헵번 (<아프리카의 여왕>, <초대받지 않은 손님>, <황금 연못>), 2위에 베티 데이비스 (<이브의 모든 것>, <나우 보이저>), 그리고 3위에 오드리 헵번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뽑혔습니다. 다들 헐리우드 고전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숭상할만한 이름인데요 (특히 50년대 전후 영화들), 사실 <카사블랑카>라는 독보적인 작품을 등에 업은 험프리 보가트에 비해 캐리 그랜트나 제임스 스튜어트는 한국에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이고, 캐서린 헵번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대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 고전 여배우라면 오드리 헵번과 마릴린 먼로 이전의 배우들은 대부분 모르는 한국에선 꽤나 생소한 사람입니다 (특히나 캐서린 헵번은 오드리 헵번과 성이 같기 때문에 많이 햇갈려들 하죠).
왜 이렇게 스타들에 대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냐고 한다면, 바로 오늘의 영화인 <필라델피아 스토리>가 당시로썬 최고의 스타들을 모아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스크류볼 코미디 장르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캐리 그랜트와 알아주는 연기파 스타인 제임스 스튜어트라는 투톱을 기용하고, 히로인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당시 유행하던, 남자에 지지 않는 현대적인 여성상의 화신이였던 캐서린 헵번이 맡은 영화입니다. 지금과 비교를 한다면 남자 배우 투톱이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에 여배우가 줄리아 로버츠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삼스레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이 얼마나 미친 작품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필라델피아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스크류볼 코미디라는 장르와 시대 배경에 대해 조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크류볼 코미디는 로맨틱 코미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남녀 대립이라는 주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여기에 사회지위, 경제적 차이, 사상적 대립(대부분 이성과 직감의 대립)같은 요소들을 곁들인 코미디 장르입니다. 물론 장르를 꿰뚫는 주제가 남녀 대립이 만큼 희극으로 끝나는 작품이 많은 코미디 영화로써 로맨틱 코미디와 비슷한 점은 불가피하지만, 결국 로맨스보단 대립과 그 대립에서 나오는 드라마와 희극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 시대 배경(대공황 말기와 영화 소비의 주 계층인 미국 중산층의 증가)에 맞물려 중산층을 겨냥한 달콤한 판타지면서도 그 내면에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존재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그야말로 '스크류볼 코미디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오는 스타들의 네임 밸류는 둘째치고 일단 주연 커플이 한쌍이 아닌데다가 영화상 존재하는 주요 대립들 또한 스크류볼 코미디의 공식을 전부 답습한 작품이거든요. 예를 들어,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한 중저산층을 대표하는 코너와 (당시 바뀌는 연인관계에 대한 것을 반영하는) 그와 연인아닌 연인 사이인 엘리자베스 임브리 양이야 말로 영화를 보는 미국의 중저산층 관객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해주는 캐릭터들입니다. 특히 코너와 캐서린 헵번이 연기한 상류층 여인이자 지독하리만큼 완벽주의자인 트레이시의 대립이야 말로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대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둘의 사이는 사회 계층 간의 대립이라는, 당시 바뀌는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현실적이였던 대립을 희극화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이런 대립은 스크류볼 코미디 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도 영화 전체를 꿰뚫는 주제로 등장하는데요, <필라델피아 스토리>도 언뜻보면 그와 비슷한 전개를 취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밤에 생긴 일>과는 달리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또다른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바로 트레이시의 옛 남편인 캐리 그랜트가 연기한 덱스터인데요, 덱스터는 코너나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트레이시와 같은 상류층 출신입니다 (게다가 트레이시의 소꿉친구이기도 하죠). 대신 인격적으로 약간 결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덱스터는 성격이 완벽주의자인 트레이시와 정반대되는 사람이죠. 오히려 자신이 이미 편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선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트레이시의 성격은 코너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시와 덱스터의 대립은 사회나 경제적인 것이 아닌 사상적인, 즉 타인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것에 대한 대립이죠. 이렇게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트레이시라는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당시 미국 사회가 겪고 있었던 사회 내 대립들을 스크류볼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코너와 덱스터라는 두 캐릭터에 의해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가장 전형적인 스크류볼 코미디 클리셰들을 답습한 작품이면서도 플롯 전개에선 예측할 수 없게됩니다. 영화가 다른 스크류볼 코미디나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르게 한 쌍의 주인공 '커플'이 아닌, 트레이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런 대립들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죠. 실제로 영화 내에선 과연 트레이시가 코너와 눈이 맞을까, 덱스터와 다시 사랑에 빠질까, 아님 <로마의 휴일>처럼 다 잊어버린 일로 하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 결말로 향할 것인가 등등, 같은 장르의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어떻게 결말이 날지 감이 잘 안잡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영화가 캐서린 헵번의 상대역으로 굳이 캐리 그랜트와 제임스 스튜어트라는 두 슈퍼스타를 기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론 영화는 이런 로맨스의 결말도 중요하지만, 트레이시라는 캐릭터가 이런 대립들 사이에서 어떻게 조금 더 성숙해지는가 라는 주제를 조금 더 부각시킵니다. 트레이시의 마지막 대사도 연인에게 말하는 사랑의 속삭임이 아닌,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고 더 이상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그녀가 영화 초반에 자신의 성격에 대해 쓴소리를 한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하는 대사인 것을 생각해보면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진정한 결말은 트레이시가 누가 결혼하느냐 보단 트레이시라는 캐릭터 그 자체의 성장에 중점을 두어야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 스토리 내에서 불륜을 허용하지 않았던 당시 헐리우드 제작 코드를 아시는 분이라면 결말이 어찌될지는 대충 감이 오시겠지만, 영화가 그 결말에 대해 내놓는 해명이야 말로 이 작품을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로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개인과 개인의 사랑이란 사회적 상징이 아닌, 개개인의 감정에 따른 것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들였을 때야 말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대립을 푸는 방식이 딱히 사랑일 필요는 없고, 그저 상대를 자신이 기대한 모습이 아닌,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화해와 이해를 가져오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교과서적인 스크류볼 코미디이면서도 스크류볼 코미디 공식을 결말에 가서 절묘하게 비꼰 작품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한줄평: "당대 최고의 스타가 보여주는 로맨스를 가장한 좌충우돌 성장기"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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