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일 영화] [DAY23] 판의 미로 (El Laberinto del Fauno, 2006)2014.06.05 AM 03:14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제목: 판의 미로 (El Laberinto del Fauno)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제작년도: 2006년
장르: 판타지, 전쟁, 호러, 드라마

전쟁이란 비극중 가장 큰 비극이야 말로 내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전을 다룬 작품들이 다른 전쟁을 다룬 작품들보다 유별나게도 비극적인 내러티브로 진행되는 이유는 바로 가족 간의 살육이라는 사실일텐데요, 한국 사람들에게 크나 큰 상처를 남긴 한국 전쟁을 다룬 영화중 단연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물론이고, 다른 내전을 배경으로 한 꽤 많은 영화에서도 (<그을린 사랑>, <블러드 다이아몬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렇게 가족/친구 간의 비극이란 요소를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뜻보면 잔혹 동화라고 보이는 <판의 미로>도 본질적으론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의미는 다른 여타 가족 영화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때는 1944년, <판의 미로>의 주인공인 오펠리아는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의 국민군 장교인 새아버지를 만나러가기 위해 임신 중인 어머니와 스페인의 어느 한 산골로 이사를 갑니다. 여기서 오펠리아는 으스스한 옛 유적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 곳에 존재하는 요정을 만나게 되죠. 그 요정을 따라간 오펠리아는 요정의 주인인 판(Faun/Pan: 염소의 하반신과 인간 상반신을 가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야생과 양떼, 그리고 양치기의 신)에게서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가 환생한 모습이며, 다시 지하세계의 왕인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자신이 시키는 일 세가지를 해야한다고 말해주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또다른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펠리아의 새아버지인 비달 대위는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무자비하게 게릴라들을 탄압합니다. 1944년이면 이미 스페인 내전은 끝난 상태이지만, 2차 세계 대전은 아직 한창 진행 중일 때이고, 아직 요정을 믿는 소녀인 오펠리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세계이죠. 이렇게 두가지의 극단적인 일련의 상황들이 교차되어 진행되면서 델 토로 감독은 전쟁이라는 현실과 아이의 동화적 꿈이라는 둘 사이의 미묘한 유사점을 끌어냅니다.

<판의 미로>의 가장 흔한 해석은 오펠리아가 보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해석한 것이 바로 그녀가 경험하는 판타지라는 것인데, 이 점은 영화에서 워낙 직설적으로 메타포를 만들어놔서 알아채리는데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일단 둘이 교차하는 것 자체가 그걸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더 나아가서 이 둘의 구체적인 유사점인데요, 이 유사점 중 하나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가족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미 쓰러진 사람에게 확인사살을 하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비달 대위 휘하의 군인들이 하는 것을 보면 감독이 그들의 무자비한 모습을 조명하려는 연출이라고 납득할 수 있지만, 게릴라들도 마찬가지로 확인사살을 하거든요. 국민군이나 게릴라들이나 이미 이데올로기보단 서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비가 없는 전장의 모습은 섬뜩한 이미지와 하나의 실수로 인해 오펠리아를 끈질기게 따라오는 괴물로 형상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괴물은 거의 맥거핀에 가까울 정도로 내러티브 상의 중요도는 거의 없고, 설정으로도 왜 그런 곳에 그 괴물이 있는 지에 대해 전혀 설명이 없거든요. 이 괴물이야 말로 오펠리아에겐 전쟁과도 같이 정말 뜬금없는 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이 괴물이 있는 장소는 대낮처럼 굉장히 환한 장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는 게릴라의 보급약탈도 괴물처럼 끈질기게 쫒아오는 국민군에 의해 몇몇의 게릴라들이 포위되어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사살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비달 대위 또한 델 토로 감독의 작품답게 미술팀이 만들어낸 그로테스크하게 과장된 상처로 얼굴이 일그러져가고, 그의 마지막 샷 또한 굉장히 잔인하면서도 천천히 묘사되어 시각적으로도 흡사 인간이 아닌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잔인한 묘사로 현실과 판타지의 연결점을 만들고 있죠.

하지만 판타지와 현실의 가장 중요한 연결점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펠리아가 현실에서 이사를 하게된 경위는 새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해서죠. 그녀의 판타지 또한 아버지에 대한 갈망이 주 원인입니다. 오펠리아는 영화에서 몇번 씩 "그 사람은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 제 아버지는 재단사에요"라고 강조하는데, 이렇게 오펠리아는 자신의 원래 가족에 대한 갈망이 굉장히 큰 아이입니다. 괴물과도 같은 새아버지를 사랑하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그녀가 살아있게 해달라고 비는 모습이야 말로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든 행동에 대한 동기는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공포나 반감이 아닌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이 영화는 왠만하면 전우애같은 테마가 주가 되는 전쟁 영화 성격이 강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테마가 유별나게 많습니다. 오펠리아를 중심으로 뿐만 아니라, 비달 대위의 아버지와 아들, 비달의 하녀인 메르세데스와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비달 대위에게 희생되는 농민 부자등, 델 토로 감독은 끊임없이 가족이란 주제를 상기시켜 영화의 중심에 놓습니다.

이렇게 가족이란 렌즈로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를 약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오펠리아(와 관객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선사하는 괴물은 주식으로 아이들을 먹는데요, 이런 설정은 오펠리아가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한 이 괴물이 상징하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바로 아이들의 피를 마시며 자라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아이들을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가족 그 자체를 파괴시키며 아이들을 망가뜨린다는 것이죠.

이런 아버지란 테마는 영화의 비달 대위에게서도 나타납니다. 비달 대위의 아버지 또한 군인으로써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남자인데요, 비달 대위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남자입니다.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자신이 직접 고쳐 사용하고 있는 비달 대위는 어찌보면 역시 전쟁에 의해 상처받은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바로 비달 대위가 자신의 아들이 오펠리아의 남동생에게 그토록 집착을 하는 이유중 하나라고 볼 수 있고, 결국 영화의 마무리가 안기는 아이러니야 말로 전쟁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역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오펠리아의 진짜 아버지에 대한 갈망 또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오펠리아는 자신의 진짜 아버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그녀가 판의 말에 따라서 지하세계로 가려는 의지 또한 지하세계에 있는 진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죠. 만약 전쟁이란 거대한 소용돌이가 그녀의 가족을 앗아갔다면, 그녀의 판타지 또한 그 전쟁을 이겨내고 가족을 다시 가지고 싶다는 그녀의 갈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남매에 대한 테마 또한 두 쌍의 남매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마리벨 베르두가 연기한 메르세데스와 그녀의 남동생인 페드로로, 이 둘은 함께 프랑코 정권에 대항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메르세데스가 페드로를 도와주고, 페드로 또한 메르세데스를 도와주는 장면과 함께 델 토로 감독은 이런 가족간의 유대감을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배경으로 더욱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비슷한 케이스로 오펠리아와 그녀의 남동생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오펠리아 또한 자신의 남동생을 누나로써 지키는 장면이 나오죠. 게다가 남동생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판타지의 산물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전쟁이란 비극 속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유대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 <악마의 등뼈>가 아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보여주었다면 <판의 미로>는 정반대의 비극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죠.

<그을린 사랑>의 포스팅에서도 제가 말했듯이 가족의 사랑이란 아무리 내전이라는 끔찍한 비극이라해도 결국 굴복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가족이 없어지는 비극을 겪어도 말이죠. 아직 어린 소녀인 오펠리아가 자신의 새아버지의 근무지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느낀 것은 전쟁의 비극은 아니였을 겁니다. 실제로 오펠리아가 직접 전쟁의 잔혹함을 두눈으로 보는 장면은 전무하고, 그녀가 과연 얼만큼이나 제대로 알고 있었을지도 의심이 갑니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적으로 느낀 건 아마 '가족'이라는 개념의 붕괴가 아니였을까요. 자신에겐 관심도 없는 새아버지, 점점 건강이 나빠지는 어머니, 그리고 같은 방에 있을 수 없는 남동생까지, 오펠리아에게 가장 큰 비극이란 이런 가족으로부터의 격리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 <판의 미로>는 비극 속의 '가족'이란 테마를 굉장히 잘 분석한 '가족 영화'인 것이죠.

한줄평: "내전에 파괴되는 가족이란 이름의 동화."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어제는 투표일이였는데 여러분은 잘하셨나요. 전 투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만 국적이 한국인이 아님으로 투표권이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었네요.
이 영화는 본 건 이미 몇일 전인데 한동안 이상하게도 글을 쓰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삘이 올때까지(...) 그냥 손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시각적 연출에 대한 분석보단 내러티브적인 연출에 대한 분석만 쓰게 된 것 같네요. 시각적 연출같은 건 여러번 보던가 아님 보고 나서 바로 글을 쓰던가 해야지 아니면 다 잊어먹어 버리는 것 같아서....

내일의 영화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입니다.
댓글 : 5 개
재밌게 읽었습니다.
극장에서 개봉때 봤었는데 한번 더 보고 싶어지네요~
같은 극장에서 봤던 아이는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
이걸 애가 봤다니 끔찍하네요;;
한국 외화 마케팅하는 곳들은 정말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갈 때가 많은 것 같음.
이 영화를 케이블로 몇 번 봣지만..

도대체 마지막은 뭔지 아직도 헷갈려요.

동화책 속에 빠져 사는 여자아이가 죽어가면서 본 환영인지..

아니면 진짜 그 지하세계의 공주로 돌아가는 건지...
일단 감독의 입장은
자신은 판타지 세계가 실존하고 오펠리아는 지하세계로 돌아간 설을 지지하지만
원래 영화란게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고, 판의 미로도 자신이 의도적으로 한가지 이상의 해석을 가지게 만들었기에 '정답'은 없다고 하네요.

원래 영화란게 본 사람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겁니다. 너무 '정론'에 연연할 필요가 없음.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