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 역사] 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3장 :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12020.11.04 PM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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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3장 :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1
 
 
 
사전 지식의 세 번째로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틀 중에 하나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다.
(이런 정의가 이해하기 힘들 텐데, 이제 곧 사례로 설명할 것이다.)
 
이 세계관을 자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미 그 영향(힘)을 받아, 그 틀 위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당연함'하다고 느낄 뿐이다. 그러니 자각이 안된다. 
만약 세계관에 관련된 어떤 선택지가 생긴다면,
"이게(자신의 세계관과 맞는 쪽)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영화나 소설에서 언급하는 세계관은,
사고의 밑바탕에 깔려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라기보다
‘이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에 가깝다.
즉, 그 자체가 세계관이 아닌, 세계관의 작용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의 나열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조너선 하이트의 6가지 도덕 매트릭스도 세계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현상에 가깝다.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도덕성조차도,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후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 이 세계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자.
먼저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이다.
 
 
 
■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은 다르다.
동양과 서양이 독자적으로 나누어진 시기는 1만년 전 쯤으로 추정한다.
1만년은 생물학적 세계관이 완성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동양의 아이를 서양에서 키우면, 서양의 세계관을 가지기도 하고,
반대로 서양의 아이를 동양에서 키우면, 동양의 세계관을 가지기도 한다.
선천적인 틀이 약한 만큼, 후천적 학습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이다.
 
비록 그 힘이 약하다 해도, 타고난(선천적인) 틀은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앞쪽과 뒤쪽의 개념’이다.
 
2008년경 EBS 다큐 [동과 서]가 방영된 후, 아래 이미지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EBS 다큐 동과서 홈페이지 http://home.ebs.co.kr/docuprime/newReleaseView/212?c.page=12
참고로, 동양은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서양은 북미를 중심으로 한 영어문화권을 말한다.
즉, ‘동쪽 끝 VS 서쪽 끝’의 비교다. )
 
 
 
질문: 다음 그림 중 어느 게 앞쪽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서양인들은 작은 우주선이 앞이라고 했고, 동양인들은 큰 우주선을 앞이라고 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다큐 [동과 서]에서는
서양은 원근법이 발달했고, '내가 본다.(I see)'는 관점이 중요하므로 그렇다고 설명했고,
동양은 역원근법과 인드라망(구슬 투시)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틀린 이야긴 아니지만,  너무 어렵게 설명했다.
 
 
좀 쉽게 이야기하면,
동양은 '도착점'에서 '출발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고,
서양은 '출발점'에서 '도착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걸 좀 더 이해하기 쉽게, T자 구조로 바꿔보자.
그럼 어느 우주선이 앞쪽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동양과 서양 모두 '도착점(도달점)'을 앞이라고 생각한다.
앞이라는 ‘기준’은 같지만,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우주선의 크기가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동양인은 큰 우주선을 앞이라고 하고, 서양인은 작은 우주선을 앞이라고 하는 것이다.
 
 
 
 
집 주소를 읽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지점을 찾아가려면, 큰 분류에서 작은 분류로 이동해 간다.
즉, 출발하는 곳은 큰 분류이고, 도착하는 곳이 작은 분류(정확한 지점)이다.
이 개념은 동·서양이 모두 같다.
그렇지만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 주소를 불러주는 방식이 달라진다.
 
동양은 도착점에서 주소를 부르고, 서양은 출발점에서 주소를 부른다.
동양은 나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말해주는 방식이고,
ex) 경기도 의정부시 용민로 1번길 35, 1동 103호
 
서양은 내가 도착해야 할 지점에서부터 읽는 방식이다.
ex) 1-dong 103-ho, 35, Yongmin-ro 1beon-gil, Uijeongbu-si, Gyeonggi-do
 
 
 
 
질문을 할 때도 자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다.
 
도착점에서 출발점을 보는 방식은 ‘과거를 바라본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동양은 "왜?(Why?)"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원인(출발, 근원) 혹은 이유가 뭔지 알고 싶은 것이다.
- 왜 그렇게 되는 거지?
- 대체 왜 그러는 거야?
- 원리가 뭐지?
 
출발점에서 도착점을 보는 방식은 '미래를 바라본다.'는 개념을 가진다.
그래서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도착지에 갈 수 있는지를 '방법'을 묻는 것이다.
- 어떻게 하면 그걸 할 수 있지?
- 그럼 어떻게 하면 돼?
-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야?
 
 
 
 
과거를 보는 시선과 미래를 보는 시선의 차이로,
동양의학은 이유, 원인, 뿌리, 근본을 찾아 전체적인 흐름을 복구하는 쪽으로 발달했고,
서양의학은 어떻게 하면 해결 될지를 찾아,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려내는 외과술이 발달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경우,
동양은 '왜 그랬을까?' '이유가 뭘까?'를 궁금해 하고,
서양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이후 전개는 어떻게 되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예를 들어, 총기사고가 나면
동양 언론의 보도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무게를 두고,
서양 언론의 보도는 앞으로 어떻게 처리 될 것인지에 무게를 둔다.
 
 
 
 
 
 
아이를 혼낼 때도,
동양은 아이를 집에서 내쫓고,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도착점에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체벌이다.)
이제는 도시화되어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과거 시골에서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체벌했다.
서양은 집에 가두고, 나가지 말라고 한다.
(외출금지: 도착점에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체벌이다.)
 
쌍둥이를 낳을 때,
동양은 내가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한 아이가 형이다. (먼저 태어난 아이: 도착점 기준)
서양은 내가 있는 곳에 먼저 자리 잡은 아이가 형이다. (나중에 태어난 아이: 출발점 기준)
(양쪽 다 내 품에 먼저 안긴 쪽을 형으로 인식한 것이다.)
 
술 마신 후 취했을 때,
동양은 자신이 과거에 한 일을 자랑한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 말이야~~~!!)
서양은 이제 자기가 갈 곳을 자랑한다. (난 뭔가 해낼 거야! I will~ )
그래서 같이 술을 마시면,
서양인은 동양인을 보면서, '왜 저렇게 과거에 집착하지?' 라고 느끼고
동양인은 서양인을 보면서, '왜 저렇게 허세를 부리지?(아직 하지도 않은 일을 떠벌리지?)' 라고 느낀다.
 
일을 맡길 때도
동양은 과거에 성공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 믿는다.(과거 지향)
서양은 과거에 실패 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기회를 다시 준다. (미래 지향)
그래서 우리나라는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인색하다.
경력자만 뽑으며 경력 쌓을 기회를 안주거나,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물건을 살 때
동양은 고객이 낸 돈에 물건 값을 빼는 계산을 한다. (10000원 - 6000원 = ?)
즉, 도착점(내가 있는 곳)에 맞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서양은 물건 값에 얼마를 보태야 낸 돈과 맞는지를 생각한다. (10000원 = 6000원 + ? )
출발점(내가 있는 곳)에 맞는 방식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도 서양에서 발달했기에,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
ex) int T = X + Y
 
 
한국 소셜 미디어(SNS)가 망한 이유도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동양은 도착점에 있으므로, 상대의 말을 잘 들으라고 가르치고,
서양은 출발점에 있으므로, 더 논리 있고 조리 있게 설명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소통이 안될 경우,
동양은 듣는 사람이 못 알아듣는다고 탓하고,
서양은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설명 못한다고 탓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소셜미디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표적인 SNS였던 싸이월드.
페이스북 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세계화되지 못하고 사장됐다.
‘왜 우리나라 SNS는 세계시장에 나가지 못했는가?’라는 분석이 많이 나왔고,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는 게 한글의 특수성, 고립성을 지적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영어로 바꾸면 될 걸...)
 
 
그보다 중요한건, 밑바탕에 깔린 '화자의 말'을 전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자기 방’에 글을 써두면, 상대가 찾아와서 내용을 봐야 하는 구조다.
내가 도착점에 있기에, 친구가 무슨 글을 써놨는지 가서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은, 내 방에 글을 쓰면 친구들에게 다 전해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내가 말을 하면 친구들에게 다 들리는 서양과,
와서 보고 퍼가야 하는 동양은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SNS 댓글은 '퍼가요'로 도배된다.
 
 
 
 
이렇게 노가다(?)로 퍼오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의 SNS를 접하면,
'우와 신기하다. 여기다 쓰면 다 전해지네?'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양인이 우리나라 SNS를 접할 경우
'엥? 이게 뭐야? 그냥 기록장(일기장)인가?' 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서양의 경우 자신의 인지체계와 전혀 다른, 답답한 SNS를 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우리의 SNS가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동양은 남이 나를 본다고 인식하고, 서양은 내가 남을 본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동양이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남이 만족해야 나도 만족스럽다.
서양은 내가 만족스러우면 그만이다. 그만큼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앞서 세계관을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라고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가?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의 사고 밑바탕에 깔려 그 힘을 발휘한다.
(방향성을 좌우)
 
이런 세계관이 무의식 더 깊은 곳에 위치할수록 더 강하게 작용하고, 
우리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룰을 따르게 된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해도, 지구 안에서의 자유인것처럼,
의식이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세계관 안에서의 자유만 누릴 수 있다.
세계관의 관점에서 보면 우린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손오공 이야기)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은 그나마 약한 편이다.
다음 편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세계관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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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위 내용은 동·서양의 세계관 전부를 설명한 게 아니다.
그중 일부만 소개한 것이므로, 더 궁금한 사람은 아래 책들을 참조하시길....
 
[생각의 지도] - 리차드 니스벳. 김영사
 
 
 

[동과 서] - EBS <동과서> 제작팀, 김명진. 지식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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